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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256화 (256/740)

256화 영입 제안

푹, 한숨을 내쉬며 다시 몸을 돌렸다.

왜 불길한 느낌은 틀리지 않는 걸까.

60층에 존재하는 무패 기록자 3명. 그중 한 명이 내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관심이란 게 항상 좋지는 않은 법.

특히나 결투가 일상인 이곳이라면 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결투해 두는 건데… 바로 나한테 결투 신청하는 건 아니겠지?

동일 등급의 권능을 가지고 있어 구체적으로 어떤 스킬을 가지고 있는지, 칭호는 어떤 종류인지 파악할 수 없다.

어떤 변수가 있을지 알 수 없다는 것.

한 번도 패배할 생각이 없는 나로서는 껄끄러운 부분이었다.

뭐, 질 거 같지는 않지만.

내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든 그녀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날 바라볼 뿐이었다.

“요 며칠, 결투하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내기를 하는 것도 봐 왔죠. 눈썰미가 굉장하던데요?”

“보는 눈이 있어서요.”

사실은 권능 덕분이다.

“저는 혜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멀리 나아가기 위해서는 시야를 넓게 가져야지요.”

“시력 좋은 사람 좋아하시는구나. 제가 눈이 좀 침침해서… 아쉽지만 그쪽 취향이랑은 거리가 머네요.”

“일부로 말을 피하는군요.”

“그쪽이야말로 직접적으로 말해요. 무슨 용건입니까?”

이야기를 빙빙 돌리고 있어.

싸울 거면 싸우고, 대화하고 싶으면 하고, 따로 할 게 있으면 하면 되는 거지.

결투도 신경 쓰이기는 하는데 가장 신경 쓰이는 건 그녀가 이끄는 노블 나이트.

아직까지 정체를 모른다.

안 그래도 베힐탄을 통해 탑 숭배 집단을 알게 된 상황. 의심병이 도질까 말까 간 보고 있는데 말이야.

NPC뿐만 아니라 등반가 중에서도 숭배자가 있다고 했다.

차라리 대형 길드였다면 의심이 덜 가지.

하는 짓이 마음에 안 들기는 해도 탑을 숭배하는 것과는 거리가 머니까.

하지만 저 집단은 성격이 다르다. 어떤 목적성을 지니고 있는지 알기 전까지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잠시 입을 다물었던 오필리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직설적인 걸 좋아하는군요. 좋습니다. 바로 말하죠. 당신을 노블 나이트에 영입하고 싶습니다.”

“싫어요.”

너무 단칼에 거절을 했나?

오필리아가 눈을 깜빡이며 할 말을 잃었고.

“네 이놈! 이게 어떤 제의인지도 모르고! 오필리아 님께서 직접 기회를 주시는 거다!”

“오필리아 님, 말하지 않았습니까. 말보다는 실력을 보인 다음 받아들이는 게 낫습니다.”

“60층에 있다고 다 같은 수준이 아닌 걸 왜 모르는 거냐!”

주변에 있던 녀석들이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살짝 오해가 있는데, 애초에 난 소속이 있다. 쁘찡 연합.

툭. 팔에 찬 연합띠를 두드렸다.

“보다시피 소속이 있어요. 그곳에 들어갈 이유가 없다는 거죠.”

“맞아! 형님은 우리 거라고!”

옆에서 기세등등하게 외치는 김정현.

내가 왜 너희 거냐, 난 내 거지.

따지고 싶었지만 내 편을 들어 주니 가만히 있기로 했다.

“갑작스러운 제안이었겠군요. 쁘찡 연합, 한국에 새로 생긴 집단이라는 건 압니다. 하지만 그곳보다는 우리가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답니다.”

과연 그럴까?

연합은 내 정신 보호 등급을 올려줬는데?

너희가 그럴 수 있을 거 같아?

생각만 해도 이가 갈리네.

“규모도 상당합니다. 아직 60층까지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쟁쟁한 실력자들이 올라오고 있어요.”

우린 대한민국 서버 3분의 1이 연합 소속이다.

최근에는 해외 헌터들까지 들어오고 있는 중이고.

커뮤니티를 확인한 결과, 오지혁을 비롯해 김소담과 이상옥, 이준석 등등이 50층대를 오르고 있다.

별거 없는데? 큰 차이를 못 느끼겠다.

반응이 영 시큰둥하자 그녀가 살짝 미간을 찌푸린다.

“후후. 우후후후! 우습군.”

반대로 내 옆에 선 정현은 거만한 표정으로 턱을 들고 있고.

왜 네가 기세등등하냐.

“노블 나이트는 다양한 아이템은 물론이고, 힘을 합쳐 얻은 공략법도 제공하고 있죠.”

“하! 고작 그 정도로 우리 형님을 데려갈 수 있다고 생각해?”

보다 못한 김정현이 나서더니 쁘찡 연합을 어필하기 시작했다.

“모두의 요정 쁘띠공듀 님도 공략을 푼다고. 심지어 유적까지 정보를 공유하시지. ‘모두들 안뇽! 요정 등장!’ 이게 연합 사람들 수백 수천의 마음을 울리는 한마디라는 걸 왜 모르냐!”

당당하게 외친 녀석이 성큼 오필리아에게 다가간다.

“게다가 어? 포션까지 뿌리셨어. 맛없어 포션이라고 뭐에 넣어도 지랄같이 맛없는 대단한 물건이야. 너흰 이런 것도 없지?”

“아니, 그렇게만 말하면 이상해 보이잖…….”

“아! 있어 보십쇼, 형님! 제가 따끔하게 혼내 주겠습니다!”

붙잡는 손을 떨쳐 낸 김정현이 박차를 가한다.

“그뿐인 줄 알아? 상점에는 있지도 않은 스킬들도 판매하셨다 이거야! 카메라에 사진등록, 봐 봐!”

녀석이 내민 건 사진.

그것도 50층 국가대항전 때 모닥불에 모여 다 같이 춤을 추던 모습이다.

미친, 저거 어떤 놈이 찍은 거야.

“보아라, 화기애애한 이 모습을! 느껴라, 이 강렬함을! 사거라, 굿즈를!”

박력 넘치게 외투를 펼친 녀석이 스페셜 에디션 굿즈 티셔츠를 내민다.

동시에 인벤토리를 열어 멤버들 모습이 박힌 배지와 브로마이드를 펼쳤으니.

“오오! 병신같지만 멋진걸?”

“확실히 우린 저런 건 없지.”

“없어도 될 거 같은데.”

“우욱! 이게 뭐야.”

“그거 어디서 파냐! 나도 함 사자!”

다양한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노블 나이트뿐만 아니라 구경하고 있던 녀석들까지 뭐라 뭐라 떠드는 중.

부끄럽다.

이 짓거리는 얘가 하고 있는데 왜 내가 부끄러워야 하지?

“음하하핫! 우리 공듀 님은 커뮤니티로 팬 미팅도 하신다! 너희는 이런 거 없제? 이벤트로 선물도 뿌려 주신다고!”

흥이 올랐는지 호탕하게 웃어 대는 녀석.

“노, 노블 나이트는 유대감이 깊습니다. 동료를 위해 기꺼이 희생할 줄 알죠!”

어째서인지 지고 싶지 않아 보이는 오필리아가 노블 나이트의 장점을 어필했으나.

“어허허, 쁘찡 연합은 말이야 공듀 님 하나로 똘똘 뭉쳤다는 말씀. 각 파벌로 더 깊은 유대감이 있지. 참고로 난 이블아이파다.”

정신 나간 녀석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돌연 고개를 돌리더니 결연한 표정을 짓는 녀석.

“형님만 원하시면 팬티라도 벗어 드리겠습니다. 좋아하는 색깔만 말해 주십쇼! 충성충성!”

“…제발 그러지 말아 줘.”

아, 얼른 탑 밖으로 나가고 싶다.

연합에 이런 놈들만 가득한 건 아니겠지?

아니었으면 좋겠다, 진짜로.

밀리고 있다고 느낀 걸까. 오필리아가 외쳤다.

“그, 그런 마음가짐으로 100층까지 오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60층대로 만족하는 그저 그런 사람인 겁니까!”

이건 내가 나서야겠군.

“100층 하니까 말인데요.”

스윽, 그녀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나한테는 100층이 가지는 의미가 다르다.

왜냐.

“오를 수 있냐 없냐가 아닙니다. 올라야 하는 거지.”

안 그러면 밖으로 나갈 수가 없거든.

진짜 세상이 망하기 전에 탑을 클리어하고 나가야 한다.

이 고생을 해 놓고 평생 여기에 갇혀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내 진심 어린 말에 오필리아의 눈이 흔들린다.

입을 벙긋거리던 그녀가 다시 자세를 잡는다.

“확고한 신념이 있군요. 더욱 탐이 납니다.”

오필리아가 손짓하자 노블 나이트 일원들이 넓게 포진한다.

마치 나를 감싸는 모습.

놈들의 반응에 김정현 역시 날카롭게 기세를 내뿜으며 경계한다.

“실례를 무릅쓰고 다시 한번 제안하죠. 직접 확인하고 결정해 주세요. 정말 정상에 서고 싶다면 누구와 함께해야 하는지. 그렇게 만들어 줄 사람이 누구인지.”

“기어이 싸우겠다는 거네요.”

-차앙

망설임 없이 검을 뽑았다.

가능하면 그냥 넘어가려 했더니만 이렇게 나오면 어쩔 수 없지.

패배의 전당에 새로운 이름 하나 올려주는 수밖에.

일촉즉발의 상황.

진지한 우리와는 다르게 구경꾼들은 신이 났다.

“여러분, 언제 또 볼지 모르는 스페셜 매치! 여왕님과 무지개 용사의 싸움!”

“아! 베팅하라고!”

“이건 짐작이 안 가는데?”

“무지개가 상승세기는 한데 여왕한테는 안 되지 않을까?”

“응, 네 안목 쓰레기야. 반대로 건다!”

여왕이라는 건 오필리아를 말하는 거겠지.

아직 결투는 시작도 안 했는데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고 있네.

하여간 심심한 사람 참 많아.

“노블 나이트가 그쪽 연합보다 강하다는 걸 증명하겠어요.”

그녀의 말에 한 남자가 앞으로 나오더니 김정현 앞에 선다.

개인 간의 전투를 넘어 연합 간의 싸움이라 이건가.

쯧. 작게 혀를 차던 그때.

“여기 사람 많네? 어라?”

“공블아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절대 헷갈릴 수가 없는 비주얼.

은갈치 헬멧, 핥짝이.

황금 도깨비, 냥펀.

드디어 60층에 올라온 건가?

올라올 때가 되긴 했었다, 그게 지금일지는 몰랐지만.

뉴페이스의 등장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다.

특히나 반응이 좋은 건 김정현.

“으아아아닛! 핥짝이 님 아니십니까!”

“뭐야 얜?”

쪼르륵 달려가더니 바로 아는 척을 한다.

“쁘찡 연합의 김정현이라고 합니다. 항상 핥짝 행님을 사모하고 있었습죠!”

“내가 왜 네 형님이야!”

그럼 그럼, 형님이 아니라 누님이 맞지.

음성 변조 헬멧을 끼고 있는 만큼 모를 만도 했지만.

그것보다 저 자식 아까는 이블아이파라고 하지 않았었나?

뭐지, 이 미묘한 찝찝함은?

됐다. 그게 중요한 것도 아니고.

“보니까 뚜들겨 맞기 직전인 거 같은데?”

“우리가 구하러 왔으니 안심하라구!”

“이제야 숫자가 맞네요, 형님들.”

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쪽은 오필리아를 포함해 다섯 명.

그중 한 명은 이미 결투를 치렀으니 실질적으로 결투 신청을 할 수 있는 건 4명.

물 흐르듯 자연스레 내 쪽으로 합류한 두 녀석이 맞은편에 있는 노블 나이트를 바라본다.

얼떨결에 각 연합 대표 세력이 만난 상황.

“이야아! 미국 대 한국!”

“노블 나이트 대 쁘찡 연합!”

“판돈 키워!”

“팝콘 팝니다. 팝콘! 탄산수도 있어요!”

예상외의 매치에 흥분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스케일이 커진 만큼 구경꾼이 모이는 것도 당연.

어디서 소문을 듣고 왔는지 못 보던 사람들이 얼굴을 내민다.

그중에는 광장에 있던 이지키일 존 스페너스도 있었으며.

“흐음.”

말로만 듣던 무패 기록자 파비안까지 얼굴을 비추었다.

안전지대에 있는 사람은 모두 모인 느낌.

지금의 승부로 두 연합의 평가가 결정된다.

난 냥펀과 핥짝이에게 속삭였다.

“너희들 60층 이벤트에 대해 들었어?”

“광장에 있던 애한테 대충. 결투 시스템이라며? 지면 저기 박제되는 거고.”

“내 닉넴 알리고 싶지 않은뎅. 으에엥.”

핥짝이는 투지를 올렸고, 냥펀은 패배의 전당을 신경 썼다.

아직 정체를 밝히지 않은 건 냥펀도 마찬가지라서 말이지.

시간이 없으니 빠르게 설명해 주자.

“결투 이기면 상품권 주는데 그걸로 권능 등급 올릴 수 있는 아이템 살 수 있다, 반드시 이겨.”

“뭣? 진작 말하지. 안 그래도 이길 생각이었지만 확실히 조져야겠네.”

“궈, 권능 업! 그동안 모아 온 아이템을 쓸 때가 왔노라!”

오케이. 이걸로 사기 진작 완료.

“형님, 저 이기면 같이 셀카 한번 찍어 주십쇼.”

“투구는 안 벗는다.”

“물론입죠! 빨간 투구가 메인 아닙니까!”

김정현까지 파이팅을 외쳤고.

[결투를 신청합니다.]

[결투를 신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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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결투를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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