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화 60층
59층은 즉사 구간.
지금까지 겪어 온 다른 층도 거지 같았지만 이번 층은 노골적으로 등반가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고, 하필 난 펠라인 세트를 벗은 상태였다.
마땅한 방어구 하나 없는 상태에서 떨어진 낙뢰.
난 죽었다.
“…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그에에에.”
머리를 문지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벼락을 맞고 멀리 튕겨 나가기는 했지만 죽지는 않았다.
물론 두개골이 조각난 것 같은 통증과 근육이 펄떡이는 후유증이 있기는 했지만 목숨에는 지장 없다.
후우.
입에서 연기가 다 나오네.
[독자무강獨者武强 (S) Lv.2]
[강체强體 (S) Lv.2]
[전격 내성 (A) Lv.5]
패시브 스킬이 없었으면 끽, 하고 죽었겠는데?
전격 내성은 A급이지만 다른 패시브 스킬의 보조가 있어서 버틸 수 있었던 거 같다.
상당히 강한 데미지를 받았기 때문인가, 전격 내성 스킬이 올랐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구사일생은 발동도 안 했다야.”
“그에에.”
이 정도는 버틸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는 건가.
사실 즉사 구간이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게, 내게는 구사일생이 있다.
죽음에 이르는 공격을 받으면 일정 수준으로 회복하는 스킬.
다른 건 몰라도 날 한 번에 죽이는 건 불가능하다.
그건 그거고…….
“이거 그냥 번개가 아닌데?”
찰나의 순간이지만 똑똑히 봤다.
권능으로 본 정보.
[마른하늘에 날벼락 (S)]
-화창한 오후. 커피 한 잔에 번개를 더하다.
-평온한 하루를 짜릿하게 반전시킬 수 있습니다.
짜릿하기는 했다. 머리털이 삐죽거릴 정도로.
아무튼.
-우우웅
[즉사 수준의 공격을 버텨 냈습니다.]
[포탈이 생성됩니다.]
오자마자 59층을 클리어했다.
살짝 허무할 정도.
나야 속 편한 소리를 하지만 다른 사람은 아니겠지.
아등바등 59층에 왔더니만 오자마자 기습 공격을 받는 꼴이니까.
난 필드 설명을 자세히 살폈다.
세부적인 정보까지.
권능이 발휘되며 추가적인 내용이 드러났다.
[59층- 즉사]
[50층대 구간 등반가가 즉사할 위력의 스킬이 가해집니다.]
[스킬 종류와 발생 시기는 랜덤입니다.]
대충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알겠다.
즉사 구간에서 한 달을 버티라는 게 뭔 개소린가 했는데, 정말 운이 좋다면 한 달 동안 공격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다.
그거야 정말 극소수, 불가능에 가까운 확률이니 패스하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어떤 공격이 올지 모르니 긴장해야 한다는 거네.”
사람 피 말리기 딱 좋은 조건이다.
어중간한 공격은 적당히 받아 내면 그만이지만 즉사 급은 그럴 수가 없으니까.
59층이 등반가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강력한 공격을 견뎌 낼 방법을 가지고 있는 것.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사실.
60층은 단순히 관찰력이 좋고 조심하는 거로는 부족하다.
비장의 수. 예상치 못한 공격에서 살아남을 방법이 최소 하나는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거다.
그 자격을 확인하는 게 이곳인 거고.
“흐으음.”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겼다.
이대로 60층에 올라가도 되기는 한데.
좀 아쉽지?
델버튼한테 일방적으로 당했던 시간은 다시 생각해도 끔찍했지만 되돌아보면 가장 빠르게 강해진 시기기도 하다.
죽지만 않으면 강해진다.
나 같은 경우는 죽지를 않으니까 죽어 가면서 강해져도 된다.
오케이.
“덕춘아, 우리 여기 좀 더 있다 가자.”
“그에?”
랜덤으로 즉사급 스킬이 떨어진다잖아.
어디까지나 50층대 헌터들 기준으로 책정된 것들이지만.
내게는 좋은 기회였고, 가능한 효율을 올리기 위해 그나마 가지고 있던 장비도 벗어 인벤토리에 넣었다.
59층에 얼마나 많은 공격이 기다리고 있는지 몸소 체험해 보리라.
번개든 우박이든 와라!
“내가 모조리 받아 내 주마!”
난 하늘을 향해 팔을 펼치며 소리쳤고.
“그에에.”
덕춘이는 고개를 저으며 거리를 벌렸다.
* * *
59층에 머무른 지 6일째.
난 노천 온천에 몸을 담근 채 상점창에서 산 계란을 삶아 먹고 있었다.
덕춘이 역시 뜨신 물에서 헤엄치며 노는 중.
온천이 어디서 나왔느냐.
별거 아니다. 그냥 허공에서 폭격이 떨어져 크레이터가 생기고, 산성비가 내려서 물이 고이고, 볼케이노가 터져 뜨끈해진 것뿐이니까.
그렇다. 온천이라고는 하지만 실상은 뜨겁게 끓어오르는 산성 연못이나 마찬가지.
몇 가지 더 섞이기는 했는데 하나하나 따지면 끝도 없으니 넘어가자.
[스킬 레벨업!]
[화기 내성 (AAA) Lv.2]
지금도 스킬 레벨이 올라가고 있다.
이것도 슬슬 한계인 것 같지만.
레벨이 오르는 속도가 느려졌다. S급에 오른 것들은 이미 레벨업을 하지 않은 지 오래다.
“와, 이제 패시브 스킬이랑 공격 스킬이랑 비슷한 수준이네.”
스킬창을 둘러본 난 작게 감탄했다.
이전까지는 공격 스킬의 등급과 레벨이 월등히 높았는데 지금은 엇비슷하다.
그만큼 두들겨 맞았다는 거지.
계속해서 겪어 보니 알겠는데 59층도 공략할 만한 게 있었다.
나라고 멍청하게 앉아 있지만은 않았다는 이야기.
즉사 구간에 어떤 공격이 들어오는지 몸으로 카운트 해 봤다.
지금까지 내가 겪은 스킬의 종류는 총 26개.
맞은 횟수는 완벽히 기억은 안 나는데 최소 100단위다.
많이 맞은 날은 하루에 30번도 처맞았다.
불길이 치솟고, 환각과 자해를 부추기는 꽃이 피어나는 등, 물리적인 것부터 시작해서 마법적인 공격까지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어느 정도 가이드가 있으면 대처하기 수월해지겠지.
오랜만에 공략을 적어 보실까.
난 커뮤니티를 켰다.
그동안 스킬 내성 올린답시고 구르느라 확인을 못 했다.
따지고 보면 프램버그 이후 본 적이 없으니 나로서는 굉장히 오랜만에 열어 보는 것.
나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네.
“메시지가 많군.”
이준석이 특히 많이 보냈고, 냥펀과 핥짝이, 보송송이가 보낸 것도 있다.
이준석이야 연합 관련해서 보낸 거겠지.
별일 없었으면 좋겠는데.
실질적인 관리자는 이준석이라 알아서 잘해 줬을 거 같다만, 해외 길드나 집단이 다시 덤볐을 수도 있고 NPC와의 트러블이 생겼을 수도 있다.
연합이 커지면서 자연스레 이상한 놈들이 섞였을 가능성도 있고, 외국인이 들어오면서 문제가 생겼는지도 모른다.
안 그래도 탑 숭배 집단에 대해 알게 돼서 신경 쓸 게 많아진 상황.
난 긴장을 유지한 채 이준석의 메시지를 열었고.
[이준석]: 공듀 님, 보십시오! 우리들의 자랑. 공듀 님의 굿즈가 완성……!
오케이 넘어가자.
걱정한 내가 등신이지.
잠시 얼굴을 쓸어내리며 숨을 골랐다.
혈압 오를 거 같으니 진정 좀 해야지.
혹시나 해서 다른 것들도 살펴봤지만 나와 멤버들, 몇몇 연합 사람의 모습을 담은 굿즈 사진이 대부분이다.
마지막에는 연합에 대한 보고서가 있었는데 아직까지는 큰 문제가 없는 듯했다.
50층대를 등반하고 있는 이들도 생각보다는 많은 거 같고.
시간만 충분하다면 60층에 오르는 이들이 제법 될 거라는 긍정적인 내용이었다.
이준석의 메시지는 이 정도로 하고.
“보송송이도 올라가고 있고.”
털복숭이가 보낸 메시지 내용은 간단했다.
요약하면 67층까지 올랐다는 것.
저번 헬다잉 키친에서 만났을 때 65층에 있었지 아마? 60층대는 등반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는 모양이다.
이어서 냥펀과 핥짝이의 메시지를 살폈는데 보아하니 아직 프램버그에 있는 모양.
단순히 협의만 진행하는 게 아니라 따로 퀘스트를 받아서 진행하고 있던 것 같다.
[냥냥펀치]: 공─듀 님의 조각상이다!
[정수리 핥짝]: 무지개 공듀 님 나가신닼ㅋㅋㅋㅋㅋ!
내 동상을 찍어 보내며 놀리는 것도 잊지 않고 말이지.
꾸준한 놈들. 두고 봐, 내가 언젠가 반드시 복수한다.
수치스럽다는 게 뭔지 알려 주고 말 거야.
꾸욱. 주먹을 쥐고 개인 메시지를 지웠다.
커뮤니티도 좀 둘러보고 공략도 써야 해서.
나 없는 동안 무슨 이야기가 있었는지 살펴보는데 익숙한 닉네임이 보였다.
[니머리 탈모]: 실종자를 찾습니다! ㅠㅠ
실종된 공듀를 찾습니다. 우리 공듀가 커뮤니티에서 실종된 지 어언 12일.
밥은 먹고 다니는지, 내 생각은 하는지… 내가 많이 보고 싶다!
탑 밖으로 나간 거 아니지? 그럴 리가 없지, 그렇고말고.
나 58층 도착이야. 60층에서 기다릴게!
“벌써 58층이라고?”
아니지. 탈모맨이면 충분히 올라올 타이밍이다.
지금 온천을 즐길 때가 아니다.
58층은 마음만 먹으면 빠르게 클리어가 가능한 곳. 이 꼴로 탈모맨과 마주칠 수도 있다.
절대 안 되지.
60층에서 만나는 건 만나는 거고 지금은 사양이다.
서둘러 몸을 말리고 장비를 입으며 댓글을 살폈다.
-근데 ㄹㅇ 공듀 님 안 보인 지 오래됨.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겠지? ㅜㅜ
-전에도 몇 주 잠수 탄 적 있음 ㅇㅇ. 걱정 ㄴㄴ.
└ㅇㅈ, 누가 누굴 걱정하냐. 너네 앞날이나 걱정하자.
└네 앞날은 창창하고? ^^
└ㅈㄴ 깜깜한데요, 엌ㅋㅋㅋㅋ.
-냥펀이랑 핥짝이도 별말 없는 거 보면 바빠서 그런 듯?
-공듀 님 없음 우리는 무슨 낙으로 삽니까! 엉엉 돌아와요.
-호오오옥시 말이야 대형 길드가 수작을 부린 건 아닐까?
└킹능성 있음. 안 되겠다, 이참에 싹 다 불태우자.
└파티원 모집합니다 (1/100)
└참가요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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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안 보이니 애들도 정신이 나가기 시작한 모양.
곧장 글쓰기를 눌러 공략을 적어 나갔다.
연합 사람들을 싫어하는 건 아닌데 종종 정신 나간 짓을 할 때가 있어서 말이지.
진짜로 애꿎은 사람들을 테러할 수도 있다.
[쁘띠공듀]: 모두 안뇽! 이. 몸. 등☆장!
아구구구. 다들 잘 있었나요?
저눈 요새 바빴답니다.
왜냐구욧?
바로 여. 러. 분을 위해 공략법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죠!
여러분 때문에 고생하잖아요. 다들 머리 박아요!(진지)
…는 넝담이구용.
어디 보자, 뭐부터 해야 하나.
59층에 대해 이야기하죠.
여러분을 조지기 위한 공격이 무려 26개!(체크한 것만!)
지금 바로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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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오! 공! 듀! 공! 듀!
-풍악을 울려라!
└쿵짝! 쿵짝!
└쿵, 짜라!
└뀽짝!
└뀽은 공듀 꺼다, 이노오오오옴!
-기다리고 있었다구우우우.
나의 등장에 조회수가 폭발한다.
뭐지, 대기하고 있던 건가?
하라는 등반은 안 하고, 커뮤니티에 상주하고 있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니.
인류의 미래는 괜찮은 것인가.
중간중간 외국어도 보이는 걸 보아하니 외국인 중에서도 연합에 가입한 사람이 좀 되는 것 같다.
하여튼 이걸로 생존 신고는 완료.
공지글이 되는 건 시간문제인 것 같고, 공략 점수도 늘어나겠지.
준비는 이제 어느 정도 된 상태.
60층에 진입하자, 탈모맨을 만나기 전에 해 둬야 할 것들이 있으니.
온천에서 빠져나온 뒤 장비를 착용했다.
펠라인의 빨간 머리통.
주황색 오른발.
노란색 몸통.
파란색 오른팔.
남색 왼발.
보라색 왼팔.
[펠라인 세트 (6/7)]
무려 일곱 파츠 중 6개를 모은 상태.
입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다.
세트 효과는 말할 것도 없지.
[클린 (B) Lv.3]
클린으로 갑옷에 묻은 먼지 하나까지 털어냈다.
60층은 전 세계 예비 S급 헌터들이 모이는 곳.
어쩌면 앞으로 함께 탑을 오르게 될지도 모르는 사람들 아닌가.
좋은 첫인상을 주는 것도 작전이다.
가자, 60층으로.
-우우우웅!
난 보무도 당당하게 포탈을 넘었고.
[60층 안전지대]
“…왓 더 뻑킹 레인보우?”
상큼한 첫인사를 받을 수 있었다.
하, 진짜.
“그냥 서열 정리부터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