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249화 (249/740)

249화 59층

베힐탄에게 얻은 보상은 여러 개였다.

먼저 프램버그의 영웅 칭호로 공식적인 후원을 받게 되었다.

장비를 수리하거나 필요한 아이템이 있으면 지원해 주는 것이 주된 혜택인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프램버그에는 따로 수송팀이 없단 말이지.”

“그에에.”

유적에 갇혀 있는 입장이다 보니, 드워프들은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다른 곳에 거주하는 드워프도 존재하지 않고.

결국에는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건데, 선택지가 총 세 개 있다.

하나는 식량을 수입하는 헬다잉 키친을 이용해 물건을 주고받는 것. 난 헬다잉 키친과 파트너십 계약을 맺었으니 꽤 괜찮은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로는 릴카가 고생하는 것. 안 그래도 베힐탄이 릴카를 초청해 식견을 주고받고 싶다 했으니 이참에 연결 고리를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다.

마지막 세 번째는 화조국을 통하는 방법.

뭐가 됐든 플랜B, 플랜C가 있는 게 좋은 법.

굳이 하나를 선택하는 것보다는 세 가지 루트 전부를 열어 놓는 게 현명한 선택이었다.

-쿠르르르릉

“들어가시면 됩니다, 이블아이.”

“열쇠 받아 가십시오.”

“네, 수고하십니다.”

나를 알아본 드워프 보초 두 명이 지하 감옥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 준다.

건네준 열쇠를 받고 지하통로를 내려갔다.

냥펀과 핥짝이를 해치지 않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난 상황.

데리고 나와서 둘에게 상황 설명을 들어야 했다. 그래야 관계를 어떻게 유지할지 베힐탄이 정하지.

탑 숭배 집단의 존재를 알게 된 만큼 나와 멤버들 역시 뒤를 받쳐 줄 세력이 있어야 한다.

나야 뭐 이미 세 집단에 소속되어 있지만.

쁘찡연합, 헬다잉 키친, 프램버그.

등반가로 이루어진 집단과 NPC로 이루어진 집단 양쪽에 속해 있다.

꽤 괜찮은 것 같은데? 어느 한쪽에 치우친 것도 아니고, 집단 내에서 가지는 위치도 좋다.

연합에서야 상징적인 존재고, 프램버그에서는 영웅. 헬다잉 키친에서는 VIP 겸 파트너, 계약서까지 작성했다.

잡생각을 하면서 내려가자 퀴퀴하면서도 눅눅한 냄새가 올라온다.

애초에 감옥이라는 게 벌을 주기 위한 것인데 상태가 좋을 리가 없지.

철창 사이로 수감되어 있는 범죄자들이 보인다.

사람이 모이면 사고도 늘어난다고, 프램버그의 드워프라고 모두가 협력적이지는 않은 모양.

저들이야 알아서 하라 하고.

“으윽! 곰팡이를 마셔서 폐가 망가지는 건 아닐까?”

“그러기에는 네가 너무 건강한걸?”

“아냐,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구.”

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와, 누가 권능 안전제일 아니랄까 봐 감옥에 들어와서 호흡기 걱정을 하고 있네.

병사지대에 들어와서도 멀쩡한 애가 고작 감옥에 있다고 문제가 생길 리가 있나.

그래도 이 정도면 양반이다. 꺼내 달라고 아우성치지 않는 게 어디야.

내가 오기 전에 사고 쳤으면 골치 아팠을 텐데.

“역시 탈출하는 게 좋지 않을까? 후후. 이럴 때를 위해 위기 탈출 워프 케이지를 가져왔지!”

“오오, 냥펀! 귀환 스크롤 같은 건가? 그런 건 처음 보는데.”

“아니, 폭탄이야. 벽 부수고 도망치자.”

“…그게 왜 워프?”

“나도 몰라!”

오케이. 믿은 내가 멍청이지.

조금만 늦었으면 난장판을 만들었겠구만.

“탈출은 무슨,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지?”

“이블아이!”

“공블아이!”

공블아이는 또 뭔.

“나오기 싫다고?”

빙글. 철창에 몸을 기댄 채 열쇠를 돌리자 냥펀이 도리질을 친다.

“나가고 싶습니다! 살려 줘!”

“생각보다 빨리 왔네? 난 또 무슨 일 있나 했더니만.”

“됐고 일단 나와. 이야기는 대충 해 뒀으니까.”

-철컹

열쇠를 돌리자 철창이 열린다.

여기저기서 자기도 꺼내 달라며 범죄자들이 소리 쳤지만 가뿐히 무시해 줬다.

“냥펀, 이번에 생명수 때문에 온 거지?”

“어, 그치? 금천황후가 내가 직접 가서 말해야 된다던데.”

역시나, 근처에 있어서 냥펀을 보낸 게 아니라 확실한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그런 거였다.

다 좋은데 이거 하나는 확인해야겠다.

나와 냥펀의 신뢰가 걸린 문제기도 하니.

“생명수가 희석돼서 팔린 거 너도 알고 있었어?”

“놉. 그럴 거였으면 계약을 새로 했지, 팔리는 물량이 다른데. 가격 책정도 다시 해야 하고. 나도 안 지 얼마 안 됐음. 너한테도 메시지 보냈다구.”

개인 메시지를 보냈었나?

커뮤니티를 열어 확인해 보니 진짜다.

델버튼한테 얻어터지느라 못 봤었네.

그럼 그렇지. 나도 냥펀을 믿고 있었다.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말이야. 그럼, 그럼.

“그에에.”

덕춘이가 날 흘겨봤을지만 모르는 척했다.

“핥짝이는 어떻게 들어온 거야.”

“냥펀이 유적에 간다고 해서 수행원으로 달라붙었지.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있나.”

감옥에 갇히는 기회를 말하는 건가.

취향인 듯하니 그런가 보다 하자.

잡담을 나누며 감옥에서 올라왔다, 목적지는 대표실.

* * *

“베힐탄, 왔습니다.”

“그래, 다들 앉지.”

냉큼 소파에 앉는 냥펀과 미심쩍은지 옆에 서서 팔짱을 끼는 핥짝이.

상석에 베힐탄이 앉았고, 난 그 옆에 앉았다.

혹시 급발진하거나 하면 말릴 생각.

“생명수에 대한 해명, 제대로 준비해 왔겠지?”

“물론이죠.”

냥펀이 서류를 꺼내 넘긴다.

이어지는 브리핑.

“화조국은 프램버그를 도우려 한 거예요. 시스템상 온전한 생명수를 직접 판매하는 건 불가능했거든요.”

“이유는?”

“베힐탄이 한 거래 때문이라는 것만 알고 있어요.”

끄응. 베힐탄이 미간을 좁힌다.

그 거래가 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안다.

델버튼과의 거래.

프램버그의 존망을 건 내기.

짐작이 간다.

“생명수가 지급되면 내기의 의미가 사라지는 거였군요.”

“그런 것 같네.”

나와 베힐탄은 바로 상황을 파악했지만 냥펀과 핥짝이는 아닌 모양.

별거 아니다.

탑으로 들어와 델버튼과의 연장전을 해야 하는데, 생명수가 지급되면 싸우지 않아도 드워프는 살아남을 수 있다.

내기 자체를 부정할 수 있다는 것.

그걸 탑이 가만히 두고 볼 일이 있을 리 만무.

해결책이 되는 생명수 공급 자체를 막아 버린 거다.

차선책은 효과를 줄인 생명수를 파는 것뿐.

화조국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프램버그에 도움을 주려던 행동이었다.

“내가 오해했구만.”

“그래도 나한테는 미리 통보를 했어야 하지 않았나?”

프램버그와의 거래는 그렇다 치고 나한테는 미리 말했어야지.

“아, 그거 말인데. 계약서 하위 조건에 이런 게 있더라구.”

냥펀이 계약서 사본을 꺼내더니 내게 보여 준다.

친절하게 밑줄을 그어 놔서 읽는 건 문제없었다.

“시스템적 제약에 접촉될 경우 갑·을의 이익 추구를 위해 상품의 변형 및 가공이 가능하며, 프로토타입이 완성되고 상품성이 검증된 경우 한 달 내에 통보한다.”

“웅, 아직 한 달이 안 지났다고 통보 안 한 거래. 희석된 생명수에 상품 가치가 있는지 검증하는 기간이 필요했다고.”

“계약서상으로는 문제가 없었다, 이거네.”

단순히 이익을 위해 희석했다면 문제가 되지만 시스템 제약에 걸렸기 때문에 상관없다는 이야기.

이렇게 되면 오히려 내가 곤란해진다.

계약 상품의 제조법을 내 멋대로 알려 준 거니까.

이걸 빌미로 화조국에서도 뜯어먹으려고 했는데 그건 안 될 거 같다.

어쩌지.

“보니까 이미 생명수 제조법은 다 알려져 있더라구. 그래서 너한테는 위자료를 받아야 하는데…….”

계약서 밑에 보이는 위자료.

어디 보자. 일, 십, 백, 천, 만…….

“처, 천만 포인트?”

파산이다. 이건 빼박 파산이다.

다 갚을 때까지 무상으로 화조국에 납품하는 수밖에 없는 건가.

앞날이 우울해지는 가운데 냥펀이 품에서 또 다른 서류를 꺼냈다.

“하지만 내가 누구냐! 위자료를 없애 버렸노라. 프램버그에 관한 건 넘어가기로 내부적으로 처리했어.”

그런 기특한 짓을!

“오오오, 최고다! 펀치펀치! 냥냥펀치!”

“으엑!”

환호를 지르며 냥펀을 얼싸안았다. 까딱했으면 천만 포인트 날아갈 뻔했네.

피식 웃으며 나와 냥펀을 바라보는 베힐탄.

“은인을 신경 써 줘서 고맙군.”

“그런 의미로 화조국과의 우호적 계약에 사인 좀… 저도 실적이 필요하다구요!”

날 밀쳐 낸 냥펀이 또 다른 계약서를 내민다.

이번 기회로 프램버그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려는 모양.

“흐음, 이 부분은 우리 손해가 심한데 이건 이렇게 하는 편이…….”

“수수료는 저희도 인건비가 있어서 좀 힘든데… 좋아요. 대신 상품 목록 중에 이걸 독점적으로…….”

냥펀과 베힐탄이 협의에 나선다.

잠시 지켜봤지만 전혀 모르겠다. 자본주의의 노예인가 전문가인가.

뭐가 됐든 내가 할 건 다 끝난 거 같으니.

“베힐탄,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벌써 가나? 좀 더 쉬지 않고. 자네를 위한 연회도 준비해 놨네!”

“그러고 싶지만 이미 시간을 많이 써서요.”

델버튼한테 뚜들겨 맞느라 시간을 꽤 흘렀다.

초반에는 몇 초 만에 뚝딱 죽었는데 뒤로 갈수록 죽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베힐탄의 말에 따르면 내가 사라진 지 12일이 지났다고 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얻을 것도 다 얻은 만큼 더 머물고 있을 필요는 없다.

내 생각을 깨달았는지 베힐탄도 잡지는 않았다.

그저…….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하게. 자네를 위해 개인 거래창을 만들어 뒀으니 말이야.”

“그럼요. 아, 가기 전에…….”

난 인벤토리에서 아이템 하나를 꺼냈다.

[드루이드의 평화지대 (AA)]

-오염된 구역을 정화하고, 생명이 숨 쉬는 곳으로 만듭니다.

35층, 드루이드 프리스트인 펜그릴에게 얻었던 아이템.

델버튼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오랫동안 오염되었던 만큼 원래의 모습을 되찾는 건 시간이 필요할 터.

이게 있으면 보다 빨리 정상적인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을 거다.

“이, 이건. 쉽게 구하지 못하는 물건인데.”

“받기만 하기에는 좀 미안해서. 마이어스랑 갱블턴, 헤그웍, 그리고 다른 탐사대원들한테도 안부 전해 주세요.”

보상으로 받은 건 펠라인 세트뿐만이 아니다. 다른 물건도 얻었지, 그것도 꽤 마음에 드는 것들로.

이 정도는 선물로 줄 수 있다는 말.

“그럼 가 봅니다.”

“몸 건강하게. 내가 했던 말 잊지 말고.”

베힐탄이 손을 흔든다.

“뭐야. 혼자 가는 거야?”

핥짝이 역시 내가 바로 갈지는 몰랐는지 말을 걸었고.

“그럼, 60층은 내가 먼저 간다. 1등으로 말이지. 후후후후! 넌 2등인가?”

“야, 이─!”

녀석이 발광하기 전에 문을 닫고 탈출했다.

* * *

가능한 조용히 빠져나오고 싶었기에 펠라인 세트를 해제하고 움직였다. 아무래도 갑옷 색이 너무 눈에 띄어서.

백금 카드가 있는 만큼 문을 여는 건 식은 죽 먹기.

맨 처음 왔을 때 탔던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출납고를 빠져나왔다.

“후우, 여긴 여전하네.”

“그에에.”

유적을 벗어나자 쓰레기 산이 날 반긴다.

여전히 퀴퀴한 냄새가 진동했지만 전보다는 나은 것 같다.

58층의 클리어 조건은 한 달을 버티거나 빅캣의 요람에 도달하는 것.

조건은 이미 달성했다.

-우우우웅

내 옆에 준비된 포탈.

그럼 가 보실까.

망설임 없이 포탈을 넘었다.

[59층에 진입합니다.]

기묘한 느낌과 함께 위로 전송됐다.

눈을 뜨자 허허벌판이 펼쳐져 있다.

특별한 것 없는 풍경.

한 가지 좋은 게 있다면.

“쓰읍. 하아. 공기 좋다, 그치?”

“그에에에.”

58층과는 차원이 다르게 공기가 좋다는 것.

은근히 느껴지던 두통이 사라진 기분.

상쾌한 것도 좋지만 장비부터 다시 입자.

뭐가 됐든 50층대는 죽음의 구간.

마지막 층인 59층 역시 뭔가가 준비되어 있을 테니까.

베힐탄에게서 얻은 펠라인 세트도 있고 말이야.

으흐흐. 난 웃으며 펠라인 세트를 착용하려 했고.

[59층-즉사]

[클리어 조건]

[한 달 동안 생존하시오.]

[죽음을 견디시오.]

-콰르르르릉!

-콰과과광!

내 머리로 검푸른 번개가 내리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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