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화 역병의 알
조현수와 마이어스가 탐사대를 쫓아 내려가던 시각.
역병의 안개의 근원, 델버튼을 찾아 나선 탐사대는 땅에 갇혀 있었다.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석과 각종 수정.
평소라면 아름다웠을 풍경이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산란하는 빛 사이에 비치는 모습은 그리 좋지 않았으니까.
사방에 널브러져 있는 드워프들.
강한 열기로 구워진 공동 바닥에 날카롭게 빛나는 수정 조각들이 널려 있다.
벽을 뚫고 박혀 있는 것들 역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으며, 크리쳐들은 비수처럼 날아온 파편에 몸이 꿰뚫려 절명한 상황.
“크으으으. 다들 괜찮나?”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탐사대 대장인 동시에 프램버그의 대표 베힐탄이었다.
몸이 욱신거렸으나 엄살 피울 여유는 없었다.
프램버그에 있는 어떤 드워프보다 높이 올랐던 그가 이만한 데미지를 받았다는 건, 다른 탐사대원들은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였으니까.
운이 나빴다.
어쩌면 예정된 결과일지도 몰랐다.
역병의 안개, 오염된 대지.
차오르는 가스.
땅속 어딘가에 차 있던 휘발성 가스는 어디에든 도사릴 수 있는 것이었고, 땅을 파 내려가는 드워프들의 곡괭이질과 드릴에서 떨어진 불똥은 폭탄을 터트릴 불꽃이 되기 충분했으니.
사고는 한순간이었고 결과는 참혹했다.
“에드밀! 바일넌스! 제기랄!”
근처에 있던 동료부터 살폈으나 별다른 답이 없다.
두 시신을 바르게 눕힌 베힐탄이 다른 동료들을 살폈다.
“헉, 허억.”
“으으으으.”
다행히 남은 이들은 살아 있는 상태.
천운일 수도 있었고, 베힐탄 덕분일 수도 있었다.
드워프는 책임자일수록 먼저 움직이는 종족. 그 말은 대표이자 탐사 대장인 베힐탄이 선두에서 움직였다는 거였으며, 그가 대부분의 폭발을 뒤집어썼다는 뜻이었으니까.
베힐탄 뒤에 있던 이들이 상대적으로 폭발에 덜 휘말릴 수 있던 이유였다.
다만.
“대, 장… 팔이 안 움직여.”
“크으으읍.”
그들 역시 상태가 심각했다.
칼날이 되어 날아온 수정 조각이 그들의 안전 장비를 찢어발겼다.
폭발에 속이 진탕된 이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나가떨어지며 머리를 부딪힌 이는 코피를 쏟아 냈다.
절대 좋은 상황이 아니다. 챙겨 온 포션 역시 폭발에 깨져 버린 상황.
당연히 아공간 아이템에도 여분의 장비와 포션을 넣어왔지만.
[망가진 아공간 벨트]
-주요 마법진이 심각하게 훼손되었습니다.
-뛰어난 마법사가 공들여 복구한다면 안에 있는 물건들은 되찾을지 모르겠네요.
[망가진 아공간 반지]
-핵심 마정석이 깨졌습니다.
-복구 불가.
-물건을 소중히 여기는 게 어떨까요?
그것들도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부서졌다.
망가지지 않은 아공간 아이템은 하나.
안에 들어 있는 건 포션 10병과 여분의 보호 장비 5세트, 에어 캔디 몇 개와 간편식 2일 치가 전부였다.
턱없이 모자라다.
거대한 폭발로 지나온 길은 모두 무너진 상황.
구조대가 찾아올 수나 있을지가 의문.
크리쳐는 전부 사망했다.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건 베힐탄 한 명이었고, 보호 장비가 찢어진 이들의 몸은 빠르게 망가져 갔다.
쓰러져 있는 이는 여섯 명.
-까드드득
이를 악문 베힐탄이 폭발이 일어난 곳을 바라본다.
다 왔다.
드디어 찾아냈다.
[역병의 알- 델버튼]
-베힐탄의 거래로 프램버그와 함께 탑에 들어온 멸망의 흔적입니다.
-부디 멸망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합니다.
-매우 단단합니다.
-역병의 안개가 배출됩니다.
현무암처럼 구멍이 나 있는 검은 돌에서는 끊임없이 안개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잠시 그것을 노려보던 베힐탄이 동료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포션을 동료들의 입과 상처에 붓고, 여분의 보호 장비를 입힌다.
이미 노출된 이상 시간을 끄는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지금 당장 모두를 잃을 게 분명하니까.
여분은 다섯 개, 환자는 여섯.
비교적 평평한 곳에 동료들을 눕힌 그가 마스크와 보호장비를 벗는다.
폭발하는 찰나. 스스로를 보호했기에 그의 장비는 비교적 멀쩡한 상황.
“끄윽. 끅.”
베힐탄의 생각을 읽은 탐사대원이 힘겹게 손을 들어 그를 막는다.
“걱정 말고 받게나. 내 몸 튼튼한 건 잘 알지 않은가.”
거부해 봤자 안개에 노출되어 힘이 빠진 상태.
탐사대원의 손을 가만히 잡아 준 베힐탄이 그에게 방독면과 장갑, 정화 망토를 둘러준다.
조금이지만 안개의 양이 줄었다.
배출이 거의 끝났다는 이야기고, 그 말은 곧 역병의 알 역시 다른 곳으로 이동할 거라는 뜻.
-차앙
그가 도끼를 집어 든다.
오랫동안 함께한 애병.
“오늘이 마지막 탐사가 되겠군. 어떤 의미로든 말이지.”
-콰아아아앙!
베힐탄이 세차게 도끼를 휘둘렀다.
* * *
나와 마이어스는 계속해서 이동했다.
끝없는 지하로의 여정.
아래에 있는지 위에 있는지 앞으로 나아가는 건지 옆으로 가는지 파악할 수 없다.
방향성을 잃고 컴컴한 땅굴을 파 내려가면서 지상과 멀어지고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우리가 지나온 길이 무너지면 그 누구도 찾지 못할 거라는 확신과 서서히 죽어 가게 될 미래가 떠오르는 건 당연한 일일 터.
본능적인 공포감이 스멀스멀 올라올 법도 하건만 탐사대 부대장 마이어스는 별다른 내색 없이 동료들을 찾아 나섰다.
-치이이이
“크흡, 따끔하군.”
“따끔한 수준이 아닌 거 같은데요.”
“그에에.”
잠시 쉬는 시간. 시퍼런 멍으로 가득한 팔뚝에 마이어스가 생명수를 부었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팔이 부풀었다가 가라앉았다가, 사람 몸에서 나올 수 없는 색으로 변했다가 돌아오기를 반복.
생명수의 효과가 대단하다고는 하지만 계속된 손상과 회복은 신체에 무리를 준다.
그게 NPC인 드워프라 하더라도 마찬가지.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그의 팔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신체 반응으로 동료들이 지나갔을 통로를 찾아 나선 지도 1시간째.
원래였다면 포기하는 게 정석이었고, 구조에 나선다 하더라도 사실상 시신을 되찾기 위한 작업이 됐을 거다.
본인의 몸을 담보로 나서는 판단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
흘낏 마이어스를 살폈다.
별다른 말은 안 하지만 상태가 좋지는 않다.
단순히 팔뚝이 문제가 아니다. 드러난 신체. 약간이지만 벌어진 틈을 파고든 안개가 몸 전체를 좀먹고 있지.
“서둘러야 하네. 이제 알겠어, 왜 토굴이 무너졌는지. 가스 폭발이 일어난 걸세.”
“안개가 휘발성은 아니었던 거 같은데요.”
“안개와 별개로 오염된 땅에는 가스가 차오르지. 탐사대가 들어가고도 몇 차례 폭발이 있었어. 흔한 현상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터진 모양이야.”
그냥 하는 말은 아니었다.
이동하는 중간에 크리쳐의 시신을 발견했는데 빈말이라도 멀쩡한 상태가 아니었다.
내게는 익숙한 형태. 내 주력기도 폭발이라서 말이지.
결과론적으로 우리는 옳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흔적도 흔적인데.
“들리죠?”
“들리고말고.”
아주 미세하지만 진동음이 들린다.
땅을 타고 올라오는 울림.
자연적인 소리가 아니다.
눈을 감고 집중했다. 사방이 울려서 정확한 위치를 찾기가 힘들다.
마이어스 역시 땅에 귀를 대고 소리의 근원지를 찾았고.
“대각선으로 내려가면 되겠군. 쉴 만큼 쉰 거 같으니 움직이세. 이 잠깐의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절실할 테니 말이야. 그럼, 크흡!”
몸을 일으키던 마이어스가 비틀거린다.
쓰러지려는 그를 붙잡고 등을 내밀었다.
“저한테 맡기시죠.”
“부탁하지.”
마이어스의 마음은 알겠지만 그는 이미 한계에 가깝다.
생명수를 마음껏 썼다면 또 모르겠는데 안에 갇혀 있을 탐사대원들을 위해 최소한으로만 사용했다.
내가 가지고 들어온 생명수는 50개.
마이어스가 사용한 게 3개.
안에 갇혀 있을 탐사대원은 대략 9명으로 추정된다. 사망자가 없다는 가정하에 말이지.
모르긴 몰라도 심각한 상황일 게 뻔하다.
응급 처치를 하고 토굴 밖으로 빠져나올 때까지 버티려면 꽤 많은 양의 생명수가 필요할 텐데.
지금 가지고 있는 거로 충분할지…….
부정적인 생각이 자꾸 들었지만 애써 무시하고 스킬을 사용했다.
[땅굴 이동 (A) Lv.2]
-쿠르르릉
이미 땅굴 이동은 승급을 마쳐 A등급에 오른 상황.
방향만 안다면 빠르게 길을 만들 수 있었다.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든 마이어스를 등에 업고 전진했다.
“역시 자네는 드워프랑 잘 어울리는 거 같아. 땅 파는 것만 봐도 알지.”
“제가 삽질 좀 했었죠.”
“뻘짓도 많이 했나?”
“뭐,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네요.”
농담을 하는 걸 보니 아직 힘이 남아 있는 거 같아 다행이네.
피식 웃으며 밑으로 파고든 지 10분 정도 지났을까.
-콰아아앙!
-쿠구구구궁!
“마이어스, 들었죠?”
“들었네.”
미세하던 진동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탐사대가 사용했을 거로 보이는 드릴과 곡괭이까지 보였으니 분명하다.
드디어 탐사대를 쫓았다.
그런데.
“이상하군.”
마이어스가 중얼거린다.
맞다. 이상하다.
묘한 이질감.
탐사대원이 한두 명이 아닌데 어째서 소리는 한 사람이 내는 것만 들리는가.
서늘한 감각이 등을 타고 올라왔고.
-콰르르르릉
이윽고 길을 뚫어 공동에 도착했을 때는.
“제기랄! 제기랄! 부서져 제발!”
“베힐탄!”
제대로 된 보호 장비도 끼지 않은 채 시커먼 돌을 내려찍는 베힐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드러난 몸은 이미 괴사가 진행 중이었고, 코와 입에서는 검은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그의 무기로 보이는 도끼는 부러져 바닥에 나뒹굴고 맨주먹은 피투성이.
“그만 해요! 치료부터 합시다!”
“이거 놔라!”
서둘러 그를 붙잡았지만 거세게 저항한다.
그럼에도 뒤로 끌려오는 걸 보니 이미 힘이 많이 빠진 상태.
원래였다면 가뿐히 날 떨쳐 냈을 텐데.
“다행이야! 생존자가 있어, 이블아이!”
“여기 있어요!”
베힐탄을 말리는 사이, 마이어스가 탐사대원을 살폈다.
그에게 생명수를 건네고 베힐탄에게도 뿌렸다.
상태가 안 좋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다. 뼈가 보일 정도로 험하게 쓴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고, 거친 숨을 몰아쉬는 입안은 잇몸까지 검게 죽어 가는 중.
어떻게 서 있을 수 있는지가 신기할 지경이었지만 그의 눈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분노와 절망.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 표정.
“저걸, 저걸 부서야 하네. 우리에게 남은 기회는 없어! 더 이상 몸이 멀쩡한 이가 없다고. 빌어먹을!”
“저거라는 건.”
난 현무암처럼 생긴 바위를 바라봤다.
어마어마한 크기. 주변이 초토화됐을 정도로 헤집어졌건만 전체 윤곽이 나오지도 않았다.
NPC인 베힐탄마저 파괴하지 못한 광물.
지금도 미약하지만 역병의 안개를 내뿜는 그것.
[역병의 알- 델버튼]
-베힐탄의 거래로 프램버그와 함께 탑에 들어온 멸망의 흔적입니다.
-부디 멸망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합니다.
-매우 단단합니다.
-역병의 안개가 배출됩니다.
여기까지가 기본 정보.
베힐탄의 거래로 탑에 들어왔다?
의미심장한 문장이었지만 지금은 넘어가자. 그건 나중에 물어봐도 되는 거니까.
내가 더 신경 쓰고 있는 건 하나.
역병의 ‘알’
이건 표면에 불과하다는 뜻이었고.
[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권능을 통해 추가적인 정보가 드러났으니.
[역병의 알-델버튼]
-멸망의 의지.
-혼돈의 파편, 델버튼이 깃든 알.
-델버튼은 베힐탄과의 거래에 의거, 프램버그의 드워프에게 완벽한 종말을 선사할 것입니다.
-남은 드워프 수 (2,384/312,900,356)
안에 뭔가가 있다는 것.
눈을 의심했다. 거래? 종말?
다 떠나서.
‘3억이 넘던 드워프가 2,000명밖에 남지 않았다고?’
다른 종족을 떠나 오로지 드워프만을 계산했을 때의 이야기다.
무게감이 달랐다.
단순히 멸망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와 구체적인 숫자로 확인하는 것은.
그것도 눈앞에 죽어 가는 이들을 보면서.
“더는 기회가 없어. 수많은 대가를 치러 멸망을 미루고 미루었지만 우리에게도 끝이 찾아오는군.”
베힐탄이 멍하니 읊조린다.
이 아저씨 답답하게 구네. 끝나기는 뭐가 끝난다는 건지.
머리를 굴렸다.
할 수 있나? 모르겠다. 그래도 가능성은 있다.
“마이어스, 베힐탄, 움직일 수 있죠? 환자들 데리고 빠져나가세요. 생명수가 있으니 빨리 치료한다면 회복할 수 있을 겁니다. 덕춘이가 도와줄 거예요. 그치?”
“그에에에.”
내 생각을 읽은 덕춘이가 탐사대원 두 명을 혀로 들어 올린다.
베힐탄을 흔들어 정신을 차리게 하고 역병의 알을 가리켰다.
확인할 게 있다.
“이거 못 부수죠?”
“적어도 지금 장비로는 불가능해. 안개 배출도 막바지지. 안개가 멈추면 이것 또한 사라질 거야.”
“아직 시간이 있기는 하다는 거네요.”
-스윽
난 역병의 알에 손을 댔다.
구멍을 통해 흘러나오는 안개가 느껴진다.
“빠져나가요. 여기는 제가 맡을 테니까.”
“자네 뭘 하려는 건가!”
뭘 하기는.
[안개 질주 (AA) Lv.9]
안으로 들어가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