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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242화 (242/740)

242화 밑으로

격리 건물을 나서며 에어 캔디를 물고 방독면을 착용했다.

드워프들의 말에 따르면 신성력 스텟이 700이 넘어가면 질병과 오염에 강한 면역력을 가진다고는 하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는 거니까.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어디까지나 잘 버틴다는 거지 무조건은 안 걸리는 건 아니라서.

게다가 그들이 말한 면역의 조건은 천족. 난 사람이라 다르게 적용될지도 몰랐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내가 확실히 남들보다 편하게 다니는 건 맞지만.

안개가 가득 찬 거리.

푸르스름한 조명만이 희미하게 길을 비추고, 질병과 저주를 담은 안개는 끊임없이 어딘가로 흘러간다.

움직이는 거라고는 나와 증기 골렘, 매캐한 연기를 뿜으며 도로를 질주하는 차량 정도.

구호물자를 전달하려는 걸까, 아니면 탐사대와 합류하려는 걸까.

잘 모르겠다. 프램버그는 처음이기도 하고, 생명수를 만드느라 시간을 지체했다.

탐사대가 어디로 이동했는지 알 수 없다는 말.

모를 땐 물어보면 그만이지만.

“저기요, 탐사대는 어디로 갔습니까?”

“으음? 자네 그렇게 있다가는 골병들어. 격리 시설에 들어가 있게.”

골렘을 조종하던 드워프가 청사를 가리킨다.

친절하기도 하지. 본인이 아파 봐서인가 걱정을 많이 해주네.

“괜찮아요. 다른 게 아니고 탐사대에 필요한 물건을 전해 줘야 해서 말입니다.”

“그런 거라면 저기, 북쪽 마정석 폐기장으로 가게나. 정확한 위치는 나도 모르네만 근처에 경비랑 탐사 시설이 있을 테니 찾기 쉬울 거야.”

“감사합니다. 이거, 혹시 안개에 닿은 곳 있으면 뿌리세요. 마셔도 좋고요.”

골렘 운전사에게 생명수 하나를 건네주고 땅을 박찼다.

독 안개 속에서 달리는 건 자살행위나 다를 바 없었지만, 방독면의 효과는 훌륭했고 에어 캔디로 숨조차 쉬지 않은 덕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스스스스

안개가 은근히 날 피하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

생명수가 강한 정화 능력을 보이는 상황.

그 말은 곧 역병의 안개가 신성력에 약하다는 증거였고, 난 지금 러브 앤 피스로 온몸에 신성력을 두른 상태다.

그것도 강하게.

-파아아앗

약점을 알아냈는데 써먹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그보다…….

“저쪽인 거 같지?”

“그에에에.”

도심을 가로지르며 달린 지 얼마나 됐을까.

중간중간 구조대원들에게 길을 물으며 이동을 거듭했고, 그 결과 임시로 지은 게 분명한 건물을 볼 수 있었다.

저기에 탐사대가 있는 건가.

주변에 돌아다니는 마법 생명체 크리쳐까지 있는 거로 봐서는 확실해 보이는데.

“접근 금지! 여긴 위험합니다. 돌아가 주십시오.”

“손님인 거 같은데 괜한 호기심으로 왔다가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청사에 봤던 자와 똑같은 옷차림의 드워프들이 길을 막는다.

방독면, 혹은 역병 마스크. 고글에 안면 마스크를 낀 녀석까지.

보호 장비는 제각각이었지만 최대한 피부를 드러내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같았고, 하나같이 기름을 먹인 망토를 두르고, 팔뚝까지 오는 시커먼 장갑을 끼고 있다.

복잡해 보이는 톱니바퀴가 도드라져 보이는 장비도 가지고 있고.

괜히 한번 만져 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니까.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이 정도는 괜찮으니까.”

지금도 계속해서 독 내성과 저주 내성 등등, 몸을 보호하기 위한 스킬이 발동하고 있었으나 움직임에 지장은 없었다.

오히려 스킬 레벨이 올라가면서 조금이지만 상태가 나아지는 중.

생명수도 넉넉하게 있으니 큰 문제는 없을 거다.

일단 줄 거부터 줘야지.

아공간에서 생명수를 꺼냈다. 일단은 절반 정도만, 대략 50병 정도 되나.

경비 사이에 있던 드워프 한 명이 관심을 보인다.

직책이 있는지 가죽 망토에는 커다란 망치 그림이 새겨져 있다.

“이건?”

“안개에 노출됐을 때 쓰세요. 치료가 될 겁니다. 이미 청사 쪽 격리 건물에 있는 환자들은 사용했고, 다른 격리 시설에도 나눠 주고 있어요. 이쪽은 제가 직접 온 거고요.”

“질병에 효과가 있다고?”

“못 믿겠나요?”

“아니, 믿네! 믿고 싶네.”

생각보다 반응이 뜨거운데?

좋게 다가오면 나야 땡큐기는 하다만 이렇게까지?

의구심이 드는 것도 잠시. 생명수를 집어 든 드워프가 임시 시설로 들려간다.

소독액이 뿌려지는 걸 보아하니 대기 인력이 있는 곳 같은데.

같이 따라 들어가자 눈살 찌푸려지는 광경이 펼쳐져 있다.

“…심하게 당했군요.”

“탐사대의 희생이지.”

헤그웍이나 갱블턴도 신체 일부가 망가졌지만 여기는 정도가 심했다.

전신에 수포가 차오르고, 눈은 거의 뜨지도 못하는 이가 다섯.

탄탄했을 근육이 쪼그라지며 관절이 비틀린 자도 보인다.

혀가 부어 숨 쉬는 것조차 힘겨운 이도 있었고.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 NPC의 강인함이 없었다면 진작에 죽었겠지.

마법 생명체인 크리쳐들은 이미 죽어 흰 천으로 가려져 있다.

“으으. 으으윽!”

“허읍!”

빠르지만 급하지 않게 생명수를 먹인다.

나 역시 그를 돕기 시작했고.

“헉. 허억. 나 살아 있나?”

“이제 다시는 망치를 못 들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닌 거 같군.”

“하여간 목숨줄 하나는 질기단 말이야. 으하하하!”

하나둘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당한 게 커서 완전히 회복하지는 못했지만 그건 시간이 흐르면 나아질 터.

그 모습을 보던 드워프가 환자들을 하나씩 끌어안는다.

묵묵했지만 그 속에 어떤 감정이 있는지는 알 수 있었다.

한바탕 생존 신고를 거치고 체력 회복을 위해 다시 침상에 눕힌 후 간이 시설을 나왔다.

방독면을 쓴 사내가 나를 올려다본다.

“고맙네. 탐사대 부대장 마이어스네. 동료들을 구해 준 은혜는 절대 잊지 않지.”

“이블아이입니다.”

가벼운 악수.

긴말은 없었다. 내가 가져온 건 치료제였고 그 효과는 이미 봤으니.

잠시 입을 다물었던 그가 어렵사리 말을 꺼낸다.

“자네, 이런 말 하기는 뭐하지만 도와줄 수 있겠나?”

“물론이죠.”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NPC가 있는데 여태 퀘스트 하나를 못 받았다.

베힐탄이랑 펠라인 세트 가지고 말싸움하느라고.

척 보기에도 프램버그는 대형 사건에 빠진 상황. 그것과 관련된 퀘스트라면 보상은 말할 것도 없지.

“쿨하군. 미리 말하지만 위험한 일이야. 급하지 않게 내용을 살피고 정하게나.”

[프램버그를 구하라! - 종합 퀘스트]

-본 퀘스트는 여러 하위 퀘스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탐사대 지원.

-델버튼 흔적 찾기.

-프램버그 안정화.

-구조 작업.

.

.

.

-보상:???

-모든 퀘스트 종료 후, 성과를 종합해 보상을 지급합니다.

종합 퀘스트!

보기 힘든 형태다.

어떤 의미에서는 히든 퀘스트나 유일 퀘스트 만큼이나 희귀한 유형.

하나로는 정의할 수 없는 사건·사고가 연쇄적으로 터졌을 때만 생성되는 거니까.

자잘한 퀘스트 전부를 합쳐 보상을 주는 것이 특징이고.

보통은 공성전 같은 대규모 이벤트에서 공헌도에 따른 보상을 주는 것과 비슷한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이번에는 퀘스트를 하는 게 나 혼자지. 심지어 하위 퀘스트 하나하나가 굵직하고.’

거부할 이유가 없다.

“무리할 필요는 없어. 몸과 목숨이 소중하다는 건 우리도 잘 알고 있으니까.”

“물론이죠. 하지만 그 사실도 알겠죠?”

난 퀘스트 수락 버튼을 눌렀다.

“등반가는 여분의 목숨이 있다는 걸요.”

“재밌는 친구로군. 가지. 한시가 바빠. 숙지 사항은 바로바로 익히는 게 좋을 거야.”

내 말에 피식 웃은 마이어스가 품에서 몇 가지 물품을 꺼내 던져 준다.

그들이 입고 있던 망토와 장갑. 마스크.

“델버튼에 가까워질수록 안개의 농도가 진해진다네. 지금 사용하는 거로는 부족하지. 다 갈아 끼우는 게 좋을 걸세.”

과연, 특수한 소재로 만든 물건이라 이건가.

내가 착용한 방독면도 등급이 높았지만 이것들은 더 대단하다.

오로지 오염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만든 물건들.

[오염 차단 마스크 MAX (S)]

-호흡기를 통한 모든 오염 물질을 걸러 줍니다.

-주기적으로 필터를 갈아 준다면 말이죠.

-정화 방독면 ver.2.4의 고급 버전입니다.

[탐사대 전용 장갑 (AAA)]

-오염 방지용 장갑.

-뛰어난 착용감!

-질기고 튼튼합니다.

[정화의 망토 (AAA)]

-정화 마법진으로 코팅한 망토.

-부정한 것들의 접근을 차단합니다.

세 가지 공통적인 옵션이 있다면 착용자에게 맞게 사이즈가 변한다는 것.

다른 능력 없이 정화 능력만으로 이만한 등급을 받았으니 효과는 의심할 필요 없겠지.

장비를 갈고 그를 따랐다.

“혹시 아티팩트를 많이 사용하나? 마정석을 원료로 하는 복잡한 물건이라던가.”

“아니요.”

“잘됐군. 안에 들어가면 사용할 수 없을 테니까. 안개에 오래 노출되면 골렘도 가동을 멈추거든. 탐사대원이 팔다리가 멀쩡한 자들로 이루어진 이유기도 하지.”

어쩐지 임시 시설에 누워 있던 드워프 중에 신체 일부를 기계장치로 대체한 사람은 없었다.

프램버그에서는 꽤 흔한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한 명씩 차례대로, 사지 멀쩡한 이가 없어질 때까지 이들은 탐사를 계속해 나간다는 건가.

겪을수록 이상하다. 다른 어떤 층과도 다른 환경과 분위기. 내가 모르는 건 무엇일까.

“메릭, 상황 보고.”

“진입 탐사대원 총 18명. 진입 크리쳐 34기. 구조된 인원 8명. 사망 크리쳐 26기입니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지하 입구.

그곳을 지키고 있던 드워프가 상황을 보고해 준다.

“10명은 안에 있다는 거군. 가지.”

* * *

뚫은 지 얼마 안 됐는지 돌덩이와 흙이 떨어져 내리는 토굴.

그가 앞장서 걸어갔고 나 역시 그를 따랐다.

어느 정도 안으로 들어왔다고 생각했을 때쯤 마이어스에게 말을 걸었다.

“어… 아까 10명이라 했는데 크리쳐는 안 세나요?”

“대부분 여기서 죽을 걸세. 그러기 위해 탄생한 존재기도 하고.”

목적이 따로 있다는 건가.

“탐사대원은 날이 갈수록 줄지. 대원들을 최대한 오래 살리고 구출하기 위해 크리쳐가 활동해. 혹은 우리가 진입하기 힘든 곳도 몸소 탐사하기도 하고.”

“안개 농도가 깊을수록 기계장치가 맛이 가 버리니 인공 생명체를 쓴다는 거네요.”

“맞아. 잔인하다고 생각하나?”

“글쎄요.”

“우리가 영혼이 담긴 호문쿨루스를 만들지 않는 이유라네. 변명거리라 해도 할 말은 없지만.”

그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고 느낀 건 착각이었을까.

모르겠다. 이들에게는 이들만의 사정이 있으니.

나는 결국에 이방인에 불과하다.

말을 멈추고 걷는 데 집중했다.

얼마나 이동했을까.

안개가 점차 차오르고 토굴에는 누군가 토해 낸 잔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토사물이 핏물로 변했고, 크리쳐의 시신이 발견되었으며, 더 깊은 곳으로 갔을 때는.

“베닌.”

눈을 뜬 채 죽어 있는 드워프를 발견할 수 있었다.

검붉은 핏물을 흘린 채 온몸이 타들어 간 듯 일그러진 인물.

마이어스가 그의 눈을 감긴다.

난 자리에 얼어붙었다.

시체를 봐서? 아니, 이미 시체는 많이 봐 왔다.

내가 놀란 이유는…….

“생소한가? NPC도 죽는다네.”

“…그렇군요.”

죽은 이가 NPC인 드워프라는 것.

알 수 없는 이질감에 온몸이 근질거린다.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한 불쾌감. 본능적이 외치는 경고.

대항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NPC. 그들의 목숨마저 갈취하는 멸망의 흔적.

그런 곳으로 직접 들어온 나.

“그에에.”

덕춘이가 작게 운다.

긴장하지 말자. 될 것도 안 되니까.

툭. 덕춘이의 코를 터치하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따악

마이어스가 품에서 발광체를 꺼내 시체 옆에 둔다.

후에 이곳을 빠져나가는 이가 시체를 발견할 수 있도록 표시하는 거겠지.

“베닌이 있다는 건 다른 탐사대도 근처에 있다는 거겠지. 서두르세.”

발걸음이 빨라진다.

복잡하게 이어진 통로.

희미한 조명 아래 우리는 달렸고.

“제길!”

“곤란하게 됐는데요.”

토굴이 무너진 걸 볼 수 있었다.

길을 뚫는 건 어렵지 않다. 내게는 땅굴 이동 스킬이 있었고, 드워프인 그 역시 땅을 파는 거 저도는 쉽게 할 테니까.

문제는 하나.

어디로 가야 하는가.

토굴이 무너졌다는 건 안 좋은 신호다.

안에 있는 이들이 갇혔을 수도 있고,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했다는 걸 수도 있으니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탐사대는 더 위험해질 게 분명했다.

어떻게 행동하는 게 최선일까. 머리가 복잡해지는 가운데.

“자네. 생명수에 여분이 얼마나 있나.”

“대충 50개 정도 남은 거 같네요.”

“다행이군.”

-지이이익

“마이어스!”

마이어스가 소매를 찢었다.

그대로 드러나는 팔뚝.

안개에 노출된 팔뚝이 그대로 비틀리며 물집으로 뒤덮였고.

“오른쪽 아래가 가장 농도가 짙군. 저쪽으로 움직이지.”

물집이 생겨난 위치로 방향을 잡은 그가 신음 하나 없이 땅을 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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