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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240화 (240/740)

240화 역병의 안개

베힐탄이 나가고 나와 덕춘이 역시 밖으로 빠져나왔다.

대표실은 건물 상층. 지하인 관계로 거기가 거기인 느낌은 있지만 아무튼 그러했고, 내려가기 위해서는 엘리베이터를 사용해야 했다.

다른 세계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낯설지 몰라도 내게는 익숙했고.

-띠링

무사히 1층 홀에 내려올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열리자마자 나를 반기는 건 어지러운 발소리와 깜빡이는 붉은 조명, 사방에서 쏟아져 나오는 하얀색 증기였다.

얼굴에 방독면을 착용한 채 뛰어다니는 드워프들.

벽면에 고정되어 있던 계기판이 미쳐 날뛰고, 힘껏 밸브를 잠그는 관리자는 식은땀을 흘린다.

“정신없어서 누구 잡고 물어보기도 뭐하네.”

“그에에.”

긴급 상황이라는 건 알겠는데 누구한테 물어봐야 하나.

그런 내게 방독면에 기름 먹인 망토를 두르고 커다란 배지를 단 남자가 다가왔다.

“손님인 거 같은데 지금 상황이 안 좋아요. 일단 마스크부터 끼고 밖으로는 절대 나가지 마십시오!”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을까요?”

“프램버그의 고질병이라는 것만 알아 두세요.”

휙, 그가 던진 방독면을 확인했다.

[정화 방독면 ver.2.4 (AAA)]

-프램버그에서 생산한 방독면.

-오염 물질을 훌륭하게 막아 줍니다!

-디자인은 별로지만 말이죠.

AAA등급 방독면이라.

대충 알 거 같구만.

유리창 너머에는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은 채 도망치는 이들이 보였고, 골렘이 거대한 몸을 움직이며 상황을 통제하고 쓰러진 이들을 구출하고 있었다.

방금 내게 방독면을 줬던 사내와 똑같은 차림을 한 이들이 빠르게 어디론가로 이동하는 모습도 보이고.

문가 근처로 갈수록 묘하게 기분 나쁜 냄새가 코를 타고 들어온다.

은근히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일단 쓰자. 괜히 까불다가 죽으면 나만 손해니까.

방독면을 쓰고 펠라인의 빨간 머리통까지 착용했다.

들어갈까 싶었지만 어떻게 욱여넣으니 쓸 만하다.

문제는 덕춘이인데.

“그에에에.”

“넌 왜 편해 보이냐?”

“그엑?”

어째서인지 덕춘이는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 거 같았다.

카오스 개구리라 그런 건가?

생각해 보면 더덕이를 처음 만났을 때도 덕춘이는 아무렇지 않았었다.

그거야 덕춘이는 영물이고, 더덕이는 영약이었으니까 그런 거였는데.

“밖에 나가도 괜찮겠어?”

“궤에엑.”

마지막으로 확인해 봤지만 덕춘이는 오케이라 답할 뿐이었다.

그렇다면 뭐. 움직이면 되지.

특성에 독이 있기도 하고.

-푸쉬이이이

이중으로 닫혀 있는 문.

첫 번째 문을 들어서자 공간이 밀폐되며 소독약 같은 게 뿜어져 나온다.

권능을 통해 보이는 정보.

[역병의 안개 정화제]

-역병의 안개를 어느 정도 막아 줍니다.

역병의 안개라.

지금 밖에 퍼지고 있는 안개를 말하는 거겠지.

정화제가 최대한 많이 달라붙게 몸을 돌렸다.

그러면서 준비를 했으니.

먼저 레벨이 오른 독 내성 스킬을 승급시켰다.

[독 내성 (AA) Lv.1]

이어서 러브 앤 피스로 신성력을 몸에 두르고, 클린으로 몸을 깨끗이 했다.

생명수를 꺼내 몸에 적시는 것도 잊지 않았고.

일단 정화 스티커도 있으니 어느 정도 버틸 수는 있겠지.

-치이이익

2차 문이 열린다.

그와 함께 밀려 들어오는 역병의 안개.

보라색 연기가 넘실거리며 나를 집어삼킨다.

[독 내성 (AA) Lv.1]

[소화 (A) Lv.9]

[정신 보호 (AA) Lv.9]

[저주 내성 (A) Lv.6]

동시에 떠오르는 패시브 스킬들.

단순히 독만 가지고 있나 했더니만 저주도 섞여 있다.

연기 속 빛나는 간판과 조명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증기 골렘의 눈이 램프처럼 번뜩인다.

혼란스럽게 비명을 지르는 드워프들.

NPC마저 도망치게 만드는 안개라.

뭔지 모를 때는 직접 부딪치는 게 정답.

권능을 사용했다.

내가 원하는 정보는 이 안개.

[역병의 안개]

-수많은 질병과 저주, 장애를 담은 안개입니다.

-땅속 깊숙한 곳, 델버튼에서 피어오르는 멸망의 의지입니다.

-사라져야 했을 존재가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오케이. 봐도 모르겠다.

안 좋은 거라는 잘 알겠지만.

그나마 쓸모 있는 정보가 있다면 두 가지.

“델버튼과 멸망의 대상.”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사라졌어야 할 존재는 말할 것도 없이 드워프.

애초에 NPC는 멸망한 세계의 주민들이니까.

어째서 탑에 들어오고도 멸망이 진행 중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겪은 어떤 필드와 유적에서도 이런 경우는 없었다.

프램버그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뭔가가 있다는 거겠지.

그건 나중에 베힐탄을 만났을 때 물어보면 되는 거고.

델버튼, 저 부분이 신경 쓰인다.

드워프들을 괴롭히는 게 안개라면 그 시작점이 되는 델버튼을 처리하는 게 옳은 방법.

드워프들이라고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겠지.

그럼에도 아직까지 해결을 보지 못했다는 거는 그들만의 능력으로는 부족한 뭔가가 있다는 거겠고.

[클린 (F) Lv.6]

잊지 않고 클린을 사용했다.

아직까지는 별다른 증상이 느껴지지 않지만 갑자기 몸이 안 좋아질 수도 있는 거니까.

미리미리 대비해 두면 좋지.

-파앙!

발을 박찼다.

혼란한 도심. 흐름은 크게 두 개로 나뉘었다.

하나는 안개를 피해 도망치는 이들과 그들을 돕는 이들.

다른 하나는 안개가 피어오르는 곳을 향해 돌진하는 이들.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우선 쓰러진 사람들을 도와 호감을 사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난 프램버그에 처음 왔고 내가 알지 못하는 것도 너무 많다. 성급히 행동하기보다는 조금 더 시간을 들여 정보를 모으는 편이 현명할 테니까.

“쿨럭! 크으읍!”

그런 걸 떠나서 일단 도울 수 있는 사람은 돕는 게 맞기도 하고.

괜한 오지랖은 아니다.

지금 피를 토하고 있는 남자, 구면이거든.

“헤그웍!”

“으으, 자네는?”

맨 처음 프램버그에 들어온 후 안내를 해 줬던 드워프 중 하나.

헤그웍이 벽을 짚으며 비틀거리고 있다.

안색이 안 좋다. 오다가 넘어졌는지 찢어진 옷 사이로 변색된 팔이 보인다.

안 그래도 상태가 안 좋았던 거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원래의 피부색은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

축 늘어진 팔을 덜렁거리며 걷는 그에게 달려갔다.

투구와 방독면을 벗고 그의 얼굴에 들이밀자 그가 그나마 성한 팔로 막는다.

“자네가 쓰고 있어야 해! 난 NPC지만 자네는 등반가야. 1분도 견딜 수 없을 걸세.”

“그냥 좀 써요.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입에 에어 캔디를 물고 억지로 방독면을 그의 얼굴에 씌웠다.

역병의 안개에 노출됐기 때문일까, NPC인 그 또한 반항할 수 없었고, 힘이 빠진 그를 업고 메인 도로를 향해 움직였다.

분명 증기 골렘이 돌아다니면서 구조 작업을 하는 걸 봤었다.

그쪽으로 가든지 아니면 건물에 들어가든지 해야지.

포션과 생명수를 꺼내 내 얼굴과 헤그웍에게 뿌렸다.

뭐라도 해야 답이 생기지.

“청사 아니면 격리 건물이 있어. 그쪽으로 가야 해. 나머지 건물은 봉쇄됐을 거거든.”

“봉쇄요?”

“안에 있는 자들부터 보호해야지. 어설프게 나섰다가는 모두가 위험해져.”

그래서였던 걸까.

피를 토하고 바닥을 기더라도 단 한 명도 남의 집을 두들기는 경우가 없다.

이미 수없이 겪어 봤기에 그럴 수 있는 거겠지.

저 집 안에 누가, 어떤 사람이 있을지 모르니까.

유적은 폐쇄적이고 드워프는 한곳에 살고 있었으며 모두가 동료, 친구, 가족 혹은 연인일 게 분명했다.

“크흡. 자네도 이렇게 됐나? 흐흐. 둘 다 꼴이 말이 아니구만.”

“갱블턴, 자네도?”

“흐하하, 크헉! 오랜만에 땡땡이나 쳐 볼까 했더니만 말이야. 지지리 운도 없군.”

“아저씨도 당했어요?”

메인 도로로 갈수록 구조되는 이들이 많아진다.

한 번에 모여서 격리 시설에 보내기 위함이겠지.

골렘에게 안긴 갱블턴을 마주친 것도 우연은 아닐지 모르겠다.

이걸 반갑다고 해야 하나 걱정된다 해야 하나. 복잡한 생각이 드는 와중에 서늘한 감각이 등을 훑었다.

“갱블턴, 설마…….”

“아하하! 내 눈 말인가? 하나 줘 버렸어, 제기랄. 괜찮아. 안 그래도 나이를 먹으니 침침해져서 이참에 인공 눈으로 바꿀까 하거든.”

한쪽 눈이 하얗다.

마치 백태가 낀 것처럼 뿌연 눈이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침울할 법도 하건만 갱블턴은 호쾌하게 웃어넘겼다.

이미 이들에게는 일상이나 다를 바 없는 상황이라는 걸까.

그럴 리가 있나. 사소한 일이라도 나에게 벌어지면 세상에서 제일 큰일인 법인데.

그냥 참는 거다. 애써 웃어넘기는 거고.

씁쓸한 미소를 짓던 갱블턴이 헤그웍에게 시선을 던진다.

“그래도 다행이군. 자네 팔은 좀 나은 거 같아서. 이번에도 당하면 말할 것도 없이 기계 팔을 쓰게 될 줄 알았는데.”

“뭔 소린가. 이미 어떤 제품으로 갈아 치울까 고민하고, 어?”

등에 업혀 있던 헤그웍이 얼빵한 소리를 낸다.

“내 팔이?”

“엥? 좀 나아졌네요? 축하해요.”

“축하하고 자시고 지금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

경악하는 헤그웍. 좋은 거면 좋은 거지 왜 소리를 지르십니까. 고막 터지는 줄 알았네.

놀라운 건 잠시 뒤로 두고.

“격리 시설에 도착한 거 같군요.”

사방에서 모여들던 증기 골렘과 구조대원들이 거대한 돔 형태의 건물로 들어간다.

안개에 당한 사람도 있지만 혼란스러워진 상황 속 사고를 당한 이들도 심심치 않게 섞여 있다.

건물은 거대했고 안에는 청사에서 봤던 정화제가 쉴새 없이 뿜어져 나온다.

방독면과 가면을 쓴 채 환자 사이를 누비는 이들이 있었으며, 벽을 타고 연결된 밸브와 계기판은 계속해서 위태롭게 흔들렸다.

“환자는 이쪽으로! 구조팀은 바로 빠지고 탐사대원들을 보조하러 가!”

“기존 루트가 아니야! 새로운 루트가 발견된 거라고! 탐사대도 무사하기는 힘들 거야, 얼른!”

루트? 탐사대?

탐사대는 구조대랑 반대로 갔던 이들을 말하는 거 같은데.

맨 처음 나한테 방독면을 줬던 드워프처럼.

내가 모르는 것들이 들려 왔지만 일단은 하던 거부터 끝내자.

병상에 헤그웍을 눕혔다.

바로 옆에는 갱블턴이.

여전히 놀란 눈을 한 헤그웍이 나를 바라본다.

변색되어 있던 팔은 어느새 많이 호전되어 예전과 비슷한 색을 되찾았다.

“자, 자네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건가! 아니, 괜찮은 거 맞나? 못해도 10분은 안개에 노출됐어! 겉으로 멀쩡하다고 방심하면 안 되네. 폐, 장기, 속부터 썩어 갈지도 모르는 일이야!”

“일단은 괜찮은 거 같은데요. 크게 이상은 없는 거 같아요.”

잠복기 같은 게 있어서 잠깐 괜찮을 걸 수도 있고, 아니면 의외로 큰 영향을 받지 않은 걸 수도 있다.

여전히 독 내성이나 저주 내성 스킬은 발동되고 있으니 멀쩡한 게 아닐까?

“말도 안 되는 소리로군. 이제 막 58층에 올라온 등반가라면 아무리 오래 버텨 봐야 10분을 넘기지 못하고 온몸이 녹아내렸을걸세.”

옆에 있던 갱블턴이 말을 잇는다.

그건 좀 무섭네.

녹아내리고 싶지는 않다.

“이블아이, 아까 나한테 뭔가 뿌리지 않았나? 내가 중독돼서 미친 게 아니라면 똑똑히 봤어. 내 팔은 못 쓸 지경으로 오염됐었다고. 그런데 자네에게 업혀 있는 사이에 이만큼이나 호전되었지. 불가능한 일이야.”

나도 봤다. 그의 팔이 안 좋았던걸.

설마 이거 때문인가?

“올 때 포션이랑 생명수를 뿌리기는 했는데요. 몸에도 신성력을 두르고 있었고. 그거 때문인가?”

“신성력에 정화 능력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신성력 스텟이 700은 넘었을 때 의미가 있는 거네. 천족이 아닌 이상에는 그러기 쉽지 않아.”

어쩐지. 마침 내 신성력 스텟이 700을 넘는다.

“포션이야 우리도 쓰는 거지만 안개에는 큰 효과가 없었어. 남은 건 생명수인데 그렇게 따지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것도 효과가 있어야겠지.”

품속에서 생명수를 꺼내는 헤그웍.

그러고 보니 안내해 줬을 때도 하나 주려고 했었지.

그때는 크게 신경 안 써서 못 봤는데.

“…이거 화조국에서 산 거 맞습니까?”

“그렇네.”

아, 그런 거였나.

몸을 일으켜 격리 시설을 바라봤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이들이 수십 명.

-촤르르륵

난 아공간 팔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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