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화 같은 욕심
경비원을 보고 떠오른 단어는 하나.
“호문쿨루스?”
매끈한 외형과 어딘가 인형 같은 관절과 턱.
에너지가 되는 아케인 젬에서 나오는 특유의 파동까지 똑같다.
왜 호문쿨루스가 있는 거지?
호문쿨루스는 현자가 만들던 거 아닌가?
현자는 세인턴 피스 출신이고.
그쪽과 사이가 안 좋은 드워프들이 쓸 거 같지는 않은데.
물론 현자만 호문쿨루스를 만들라는 법은 없지만.
내 반응을 본 걸까 갱블턴이 고개를 젓는다.
“아, 호문쿨루스는 아니야. 비슷하기는 하지만, 마도생명체인 건 맞는데 영혼이 없거든. 우리는 크리쳐라 부르지.”
“키메라의 이웃 정도로 보면 돼. 그렇다고 괴물인 건 아니고. 우리 왔네, 페코. 이쪽은 손님이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헤그웍이 손을 흔들자 경비원 복장을 한 채 창을 쥐고 있던 크리쳐, 페코가 모자를 살짝 들어 올리며 인사한다.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구경은 나중에 하도록 하고 지금은 청사로 가지. 그곳에 프램버그의 대표가 있으니까.”
“어찌 됐든 출입을 했으니 보고는 해야 하거든.”
대표라, 어떤 사람일지 궁금하네.
난 둘을 따라 거리를 걸었다.
탑에 있는 드워프는 이곳에 다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드워프가 많다.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면 그중에는 어린아이도 섞여 있다는 것.
이상하네. NPC가 되려면 적어도 상위층까지는 올라야 하는 거 아닌가?
예외인 경우도 있기는 하다. 알리오스와 함께 있는 페니도 탑을 오르지 않았지만 NPC로 살고 있으니까.
어디까지나 예외 상황이기는 하지만…….
‘그걸 떠나서 NPC 숫자가 너무 많은 거 같은데.’
아무리 못해도 수백, 어림잡아 계산하면 수천 명의 드워프가 있다.
안전지대에 있는 모든 NPC를 합쳐도 이만큼은 안 되지 않을까?
몇 가지 의문이 쌓이지만 잠깐 넣어 두자.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니까.
탑과 시스템, NPC.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
그것보다.
‘이렇게 주목받는 건 오랜만인데.’
여기저기서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낸다.
등반가가 찾아온 건 오랜만이라고 하니 어쩔 수 없지.
살짝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나쁜 의도는 없으니 무시할 생각이었으나.
“와, 피부 좋다.”
“나도 한창때는 고왔는데.”
“새로 온 건가? 58층은 오래 있어서 좋을 게 없는데.”
간간이 들리는 대화를 들어 보니 단순한 호기심은 아닌 거 같다.
길 안내를 하던 갱블턴이 나를 올려다본다.
“너무 신경 쓰지 말아. 자네가 멀쩡해서 그러는 거니까. 58층에 온 지 얼마 안 됐나 봐?”
“보통 이곳에 온 녀석들은 몇 시간 안 돼서 병 하나는 달게 되거든. 기침에 피가 섞인다거나 갑자기 시력을 잃는다든가.”
스윽. 소매를 걷어 올린 헤그웍이 팔뚝을 보여준다.
보라색으로 변색된 핏줄이 올라와 있고, 화상 흉터 같은 피부가 뒤덮여 있다.
“나도 팔이 온전치는 않지. 이름을 알 수 없는 병이야. 대부분 그래. 손쓸 방법이 없을 때는 아예 잘라내고 기계장치를 붙이지.”
“그럴 거 같지는 않지만 흉터나 상처에 대해 묻는 건 실례니까 조심하라고.”
“예. 그러도록 하죠.”
건드려서는 안 되는 역린 같은 건가.
나도 그런 걸 물을 정도로 조심성이 없지는 않다.
먼저 말해 주는 거라면 모를까.
“참고로 여기는 뭐든 오염되어 있다네. 숨만 들이켜도 폐에 노폐물이 쌓이지. 우리는 그래도 버틸 만하지만 자네한테는 위험할 수도 있어.”
“이것도 그나마 나아진 거야. 저기 동그란 것들 보이지? 저게 다 공기청정기거든. 정화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한계가 있어.”
그들의 말대로 이곳은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위험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독 내성 레벨이 올랐다는 메시지가 뜨는 중.
소화 스킬도 마찬가지.
미세한 오염 물질이 입속으로 들어갔다는 거겠지.
에어 캔디를 먹어서 숨조차 쉬고 있지 않건만 어떻게든 독성 물질이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에어 캔디 하나 더 먹어야지.
돌아다녀서 그런가 생각보다 빨리 사라진다.
“오호라, 에어 캔디라. 준비성이 철저하군.”
“아까 보니 클린 스킬도 수시로 사용하더만. 좋은 선택이야. 참고로 물 마실 때도 조심해야 돼. 요즘에는 사정이 좀 나아지기는 했지만.”
헤그웍이 품에서 생수통을 꺼낸다.
“가져가. 전에는 필터로 거른 물을 마셨는데 그것도 문제가 많았거든, 배탈이 나기도 하고. 지금은 이걸 마시고 있어. 비싸기는 한데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다면 값싼 편이지.”
“흐흐흐. 줄 때 받아 둬. 괜히 아파서 고생하지 말고. 생명수라고 들어 봤을라나 모르겠네.”
난 또 뭐라고.
이제야 이해가 되네.
냥펀이 생명수 수요가 많다고 많이 만들어 달라고 했었는데, 프램버그에서 사들이고 있던 거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대용량으로 만들어서 줄 걸 그랬다.
“호의는 감사합니다만 저도 가지고 있어서요.”
“오오? 생명수는 화조국에서밖에 안 팔 텐데? 자네 화조국 소속이었나?”
“뭐, 화조국에 친구가 있기는 하죠.”
“좋은 친구를 뒀군. 생명수가 하나에 2,000포인트라고. 하루에 못해도 6병은 마셔야 하니 돈이 꽤 들지.”
“그마저도 물량이 없어서 못 사고 있지만 말이야.”
엥? 하나에 2,000포인트?
엄청 비싸네. 물론 공급에 비해 수요가 월등히 많으니 가격이 올라가는 건 어쩔 수 없다.
문제는 그거지.
NPC가 자아를 잃지 않고 살아가려면 시스템이 부여한 역할을 하거나 포인트로 생존비를 내야 한다.
단순히 물만 마시는 데 하루에 12,000포인트라. 일주일이면 84,000포인트고, 한 달이면 360,000포인트다.
“부담감이 엄청나겠는데요?”
“그렇지. 우리가 계속해서 물건을 만들어 파는 데는 이유가 있어. 생존을 위한 거지.”
“우린 대부분의 것들을 수입으로 유지하고 있어. 가지고 있는 건 기술력과 광물뿐. 이 저주 받은 대지에서는 무엇 하나 자라지 않지. 운 좋게 자라더라도 먹을 만한 건 아니야.”
“상점창으로 식량을 구하는 건가요?”
“아니. NPC는 상점창이 없어. 알아서 해결해야 돼.”
“대부분 헬다잉 키친에서 받아온다 봐야지.”
그 말을 시작으로 하소연을 풀어 놓는 헤그웍과 갱블턴.
헬다잉 키친이 식재료를 공급하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나마 헬다잉 키친에서는 배려를 해 주는 것 같다.
대량 소비를 하는 고객인 만큼 할인도 해 주고, 식기나 조리기구를 만들어 주는 거로 어느 정도 금액을 줄여 주는 것 같으니.
화조국도 이들이 만들어 낸 물품을 받는 조건으로 생필품 등등을 추가로 제공한다는 거 같다.
흐음. 이런 상황이란 말이지.
잘하면 꽤 괜찮은 보상을 얻을 수도 있겠는데?
유적에 들어왔을 때 떠오른 메시지.
[주민들의 골칫거리를 해결해 주면 좋은 선물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생명수 제작 방법을 알려 주면 어떨까?
신성력이 있어야 만들 수 있기는 하지만 드워프가 이렇게 많은데 신성력을 쓰는 이도 몇 명은 있겠지.
문제는 내 마음대로 해도 되냐는 건데.
생명수는 엄연히 냥펀이 거래로 납품하고 있는 물건.
내가 일방적으로 이들에게 제조법을 공개하면 화조국은 거래 대상을 잃는다.
금전적인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겠지.
냥펀이 곤란해지려나?
화조국과의 관계도 신경 써야 한다.
뭐가 됐든 스킬북을 얻을 수 있는 거래처니까.
고민되네.
머리를 굴리며 걸은 지 얼마나 됐을까.
“다 왔군. 이봐! 대표님 계신가? 손님이 왔는데.”
프램버그의 청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무직으로 보이는 이들이 서류를 들고 바쁘게 돌아다닌다.
물품 거래 목록 같은데.
“정신없지? 어쩔 수 없어. 우리는 탑 전체에 물건을 제공하니까. 맞춤 서비스도 해 주고.”
“거래처가 많나 보네요?”
“그럼. 요리는 헬다잉 키친, 상단은 화조국, 제작은 프램버그야. 탑에 있는 드워프는 모두 이곳 소속이지.”
“어쩐지 지금까지 등반하면서 드워프를 본 적이 없더라니, 전부 이곳에 있던 겁니까? 특이하네요.”
“나름 사정이 있어. 아무튼 내 역할은 여기까지. 대표님이랑 면담하고 잘 구경하고 가게나.”
헤그윅과 갱블턴이 손을 흔들더니 자리를 뜬다.
은근히 둘의 피부병이 신경 쓰인다.
“황금 카드를 지니셨다고 들었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그런 내게 다른 드워프가 붙더니 대표실로 안내를 해 줬고, 청사 꼭대기에 있는 방에 들어설 수 있었다.
* * *
드워프들이 일하는 곳이라 천장이 낮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러지는 않았다.
나 말고도 거래처에서 찾아오는 사람이 있어서 크게 만든 건가.
“대표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들여보내.”
노크를 한 직원이 문을 열며 자리를 비켜 준다.
안으로 들어가니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는데.
“…대장간?”
대표실이라기에 사무실이나 응접실을 생각하고 있었더니만 대장간이 나오네.
잘못 들어온 건가? 잠깐 의심이 들었지만, 떡하니 자리 잡은 테이블 위에는 ‘프램버그 대표 베힐탄’이라고 적힌 명패가 올려져 있다.
“아, 미안하군. 작업 중이어서 말이지.”
다른 드워프보다 키가 더 크다.
내 명치까지 닿으려나.
뜨겁지도 않은지 상의를 탈의한 채 가죽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얼핏 봐도 근육량이 엄청난 것이, 팔씨름 하면 3초 내로 질 거 같은데.
수염은 땋아서 내렸고, 얼굴에는 흉터가 가득하다.
대장장이보다는 전사에 가까운 느낌.
“비록 우리가 각종 제품을 만들고 있다고는 하나 근본은 대장간 일이지. 드워프의 마음가짐을 잊지 않으려면 하루에 3시간은 망치질을 해야 한다고.”
“어… 예. 대단하시네요.”
별로 궁금하지는 않았지만 굳이 말해 주니까 맞장구는 쳐 주자.
“앉지. 황금 카드도 줘 보고. 살펴볼 게 있어서 그렇네.”
작업 중이던 걸 내려놓은 베힐탄이 소파를 권한다.
카드를 주자 찬찬히 살피더니 돌려준다.
“확실하군. 세계가 멸망하기 전, 모빌리딕이 도움을 준 적이 있었지. 신분은 확실하군. 그 녀석이 45층에서 벗어났다는 이야기는 들었으니까. 구해 줬다는 은인이랑 외형도 일치하는군. 헷갈리기 어렵게 생기기는 했지, 이런 색이라니.”
왜 색 가지고 그러십니까. 마음 아프게.
나도 알아요, 이상한 거.
“너무나 뛰어난 발색이다! 고전적이지만 세련된 스타일도 감명스러워! 잠깐 일어나 보겠나? 좀 더 살피고 싶군!”
“예?”
“어서!”
얼떨결에 일어서자 기대감 어린 눈으로 그가 다가온다.
흥분했는지 콧구멍이 벌렁거리는 건 덤.
“오오. 이쪽 마감을 이렇게 했단 말인가. 과연 대단하군. 과연 펠라인 세트! 희대의 명작이야.”
“펠라인 세트를 아세요?”
“모를 리가 있나. 난 드워프야! 탑에 존재하는 수많은 보물들을 알지. 그중에서도 펠라인 세트는 아주 가치가 높지. 흐흐흐.”
그가 조심스럽게 갑옷을 쓰다듬으며 웃는다.
음… 솔직히 좀 징그럽다.
털 많은 아저씨가 더듬거려.
안 그래도 감각공유 옵션이 있어서 다 느껴지는데.
그래도 오랜만 아니지, 처음으로 펠라인 세트의 진면목을 봐 주는 사람이 생겼다는 게 뿌듯했고.
[펠라인 세트 효과! (5/7)]
-펠라인 세트의 광택이 더욱 도드라집니다!
“우오오옷! 눈부셔!”
특별 서비스 좀 해 줬다.
가슴을 부여잡으며 감동하던 그가 예상치 못한 말을 했다.
“다섯 개가 모였음에도 이 정도라니. 내가 가지고 있는 파츠가 합쳐지면 얼마나 대단해질지 모르겠군.”
파츠?
설마 펠라인 세트?
“호, 혹시 펠라인 세트를 가지고 있으십니까?”
“그럼! 아무도 모르게 모셔 두고 있었지. 흐하하! 이제는 나랑 자네 둘이 알게 됐지만 말이야!”
그토록 찾고 있던 게 여기 있었단 말인가.
이런 행운이 있나.
좋았어, 결정했다.
화조국에는 미안하지만 생명수 제조법을 알려 주고 세트를 얻자.
난 마음을 굳혔고.
“그 세트 저한테 주시죠. 합당한 대가를 치르겠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자네가 입고 있는 거 나한테 팔게나. 값은 제대로 쳐 줌세!”
동시에 욕심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