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화 지하로
[유적, 지하 도시 프램버그에 입장했습니다.]
[주민들의 골칫거리를 해결해 주면 좋은 선물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단, 세인턴 피스 관계자는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유적 입장과 떠오른 메시지들.
세인턴 피스, 그곳이 어디냐.
48층에 있던 데니엄와 헤이다, 오델토가 있던 세계의 제국이다.
동시에 52층에 있는 현자, 존 트레일러가 연관된 곳이기도 하고.
백작에서 전쟁 영웅으로 공작자리까지 오른 데니엄, 녀석이 전쟁 병기로 사용했던 헤이다.
그런 헤이다를 구하기 위해 움직였던 오델토와 존 트레일러.
“음… 이거 나도 관계자라고 봐야 하나? 에이, 아니지. 난 관계자로 보면 안 되지.”
“그에에.”
잘 봐. 내가 한 거라고는 말이야 어? 데니엄의 뒤통수를 쳐서 완전한 NPC로 만들고, 헤이다와 오델토를 52층으로 이동시켜서 부활시킨 다음에, 현자랑 같이 인증샷 찍고 등반 팁을 받은 것밖에 없단 말이야.
이 정도면 스쳐 지나가는 인연 정도 아니냐?
“아니겠지? 그래…….”
암만 생각해도 관계자가 맞다.
하필 세인턴 피스 제국에 굵직한 인물들하고만 엮여서는…….
벅벅 머리를 긁었다.
일이 꼬인 건 어쩔 수 없다.
혹시나 유적에 있는 이들은 날 관계자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고.
일단은 조심해서 움직이는 거로 결론을 내리고 스킬을 사용했다.
[외톨이의 길 (B) Lv.1]
-스스스
옅어지는 존재감.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안 쓰는 것보다는 낫겠지.
클린과 샤워 스킬로 몸을 깨끗이 하고 갈증도 달랠 겸 생명수도 한 입 하고.
통로는 크다.
제작된 물건들이 나가는 길이라 그런지 몸을 숨길 만한 것들도 많고.
지게차 비슷하게 생긴 것도 있고, 박스 포장된 상품도 있다.
설비를 위해 모아 둔 것처럼 보이는 파이프도 다수 존재했다.
확실히 다른 곳이랑은 분위기가 다르다.
당장 천장에 있는 조명도 램프였으니까. 가스램프도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LED에 가까운 느낌이지.
보통은 발광석이나 횃불을 걸어 두는 걸 생각해 본다면 결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렇다고 완전히 다른 건 또 아니지만.”
기술적인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마법적인 부분도 남아 있다.
저기, 작업용 골렘도 그렇다.
내가 싸웠던 미니캣과 빅캣도 뜯어 보면 기계 부품과 마법 회로가 섞여 있을 거고.
마도공학? 그런 건가.
은밀하게 통로를 따라 걷자 또 다른 문이 나왔다.
하나가 아니다. 총 3개.
정면에 하나. 좌우 측에 하나씩.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 걸까.
다행히 위에는 통로 이름이 달려 있었고, 내게는 통역 스킬이 있었다.
더불어 정보를 읽어내는 권능도.
[상품 대기 창고]
-프램버그의 상품이 출고되기 전까지 모아 두는 곳입니다.
-혹시 도둑인가요?
-들어갔다가는 경비 로봇한테 얻어터질걸요!
왼쪽 통로는 패스다.
상품이 뭐가 있는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주인이 따로 있는 것들.
경비 로봇도 문제지만 분명 감시하는 장치가 있을 거다.
도둑으로 몰리면 골치 아프기도 하고.
남은 건 두 개.
정면에 있는 통로를 살폈다.
[중앙 통로]
-휴게실과 식당, 기타 장소로 연결되는 메인 통로입니다.
이어서 우측도.
[폐기물 처리장]
-납품 전, 마지막 점검 때 하자가 있는 물건을 부수는 장소입니다.
-쓰레기도 꼼꼼히.
-미니캣의 사료 공장이라고도 불리죠.
중앙 통로와 폐기물 처리장이라.
고민된다.
좀 더 많은 걸 보려면 중앙 통로가 옳은 선택이지만, 조용히 움직일 거면 폐기물 처리장 쪽으로 가는 것도 괜찮아 보이는데.
아니, 유적에 들어왔는데 숨어서 움직이는 게 맞나?
살짝 억울한데.
별수 있나. 내 팔자지.
아직까지 유적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상황.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오른쪽으로 가자.
-삐익
다행히 출입증은 정상 작동한다.
어디는 되고 어디는 안 되면 골치 아팠을 텐데.
-철컹
-쿠르르르
역시나 엄중한 보안 장치들이 풀리고 나서야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는 폐기물 처리장.
“와우.”
감탄이 절로 나온다.
폐기물 처리장이라기에 뭔가 했더니만.
“프레스에 분쇄기… 저건 뭐야, 발화기?”
온갖 흉악한 것들은 다 모였다.
뭘 갖다 넣어도 아작 낼 수 있겠다.
네모나게 압축된 쓰레기가 압권.
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고.
“오늘은 유독 불량품이 많군.”
“생산 공정에 문제가 생겼나?”
폐기물 처리를 하는 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빠르게 입을 막았다.
프램버그는 지하 도시.
당연히 누군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구성원이 드워프였을 줄이야.’
힐끗. 모습을 숨긴 채 다시 살폈지만 확실하다.
작은 키에 다부진 몸, 수염까지.
세간에 알려진 모습과 일치한다.
[헤그웍- NPC]
-프램버그의 주민.
-맥주를 좋아합니다.
-사실 드워프는 모두 술을 좋아하죠!
[갱블턴-NPC]
-프램버그의 주민.
-압착기를 관리하는 드워프입니다.
-화가 나면 당신을 압착기에 넣어 버릴지도 몰라요.
권능을 통해 보이는 설명에도 그렇게 적혀 있고.
처음이다, 드워프를 보는 건.
탑에 들어온 지 시간도 제법 지났고, NPC도 여럿 만났다고 생각했지만 이상하게도 드워프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악마도 있고, 드루이드나, 정령도 있으니 드워프라고 없을 리가 없는데.
뭐, 따지고 보면 엘프도 본 적은 없지만.
하여튼 간에.
‘설명 한번 살벌하네. 압착기에 넣어 버린다니.’
드워프란 종족은 호전적인 건가.
잘 모르겠다.
유적에 들어온 이상 뭔가를 얻어가기는 해야 하는데.
설명에도 나와 있지 않았던가.
주민들의 골칫거리를 해결해 주면 좋은 선물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결국에는 모습을 드러내기는 해야 한다는 건가.
이왕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면 좀 괜찮은 녀석한테 드러내고 싶다.
잠깐만…….
‘내가 굳이 숨을 필요가 있나?’
세인턴 피스 관계자라고는 하지만 이들이 그 사실을 알 방법은 없잖아.
내가 말할 것도 아니고.
척 보기에도 세인턴 피스 쪽 사람들이랑 사이가 나쁜 거 같은데,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가능성도 작다.
오히려 이렇게 숨어 있다가 들키는 쪽이 그림이 이상하다.
변명할 것도 없이 무단 침입자로 보일 테니까.
뭐가 됐든 출입증도 가지고 있고 얻게 된 경위도 확실하다.
멍청한 짓을 했었네.
게다가.
‘일단은 NPC잖아. 은신 스킬 정도는 알아차릴 가능성이 커.’
기껏해야 B등급 1레벨짜리 은신 스킬.
다른 등반가라면 또 모르지만 NPC한테는 통하지 않을 거 같은데.
계산은 끝났다.
모습을 드러내자.
난 은신 스킬을 해제했고.
“하하, 안녕하세요?”
뻔뻔하게 나아갔다.
“등반가? 이상한 녀석이 얼쩡거리는 거 같기는 했는데 등반가였을 줄이야.”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지?”
다행히 공격해 오지는 않는다.
“별거 있나요. 출입증으로 들어온 거죠.”
품에서 출입증을 꺼냈다.
금으로 만들어진 카드.
그들의 눈이 커진다.
“골드 카드! 꽤 귀인이 오셨군.”
“그러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군.”
골드 카드? 이거 좋은 건가?
잘은 모르겠지만 호의적인 표정을 짓는다.
“프램버그에 온 걸 환영하네. 보아하니 골드 카드에 대해 잘 모르는 눈치로구만.”
“드워프에게 도움을 줬거나, 친한 이들에게 주는 출입증이라네. 언제 한번 찾아오라고 말이야.”
그런 거였군.
모빌리딕은 땅의 정령.
지하도시에 사는 드워프들과 연관이 있을 법도 하다.
“물론 등반가인 자네가 동료들에게 도움을 줬을 거 같지는 않고…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듣게나, 그 출입증은 어디서 났나?”
“그럴 일은 없지만 우리가 출입증을 준 친구한테서 빼앗은 거라면 우리도 좋게 나올 수는 없어서 말이지. 그때는 뭐…….”
드워프가 턱으로 압착기를 가리킨다.
말로 안 해도 알 것 같다.
은인에게 위해를 가한 자라면 처리하겠다는 거겠지.
난 입꼬리를 올렸다.
“걱정 마시죠. 모빌리딕한테서 얻은 거니까요.”
“아! 모빌리딕!”
“자네가 그 친구였구만. 소식 들었네. 45층에서 고생하던 모빌리딕이 빠져나왔다고 말이야. 하하하! 진작 말을 하지.”
역시나 모빌리딕과 아는 사이였던 건가.
호탕하게 웃은 그가 날 두드린다.
힘이 굉장하다. 몸이 흔들릴 지경.
덩치는 기껏해야 내 배꼽까지 올 정도인데 근력은 나를 한참 뛰어넘은 것 같다.
나도 어디 가서 꿇리는 스텟은 아닌데.
그런데.
‘자세히 보니 다들 상태가 안 좋네?’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가까이서 보니 알겠다.
두 드워프 모두 피부가 녹아내렸다.
일부분이기는 하지만.
물집 같기도 하고 피부병인 거 같기도 하고.
한 명은 손톱이 빠져 있었는데, 인위적으로 뽑혔다기보다는 저절로 떨어져 나간 거로 보였다.
이유는 대충 짐작이 간다.
이곳은 병사 구역.
아무리 강력한 NPC라도 오랜 기간 노출되면 문제가 생기겠지.
“어이구. 아직 통성명도 안 했군. 난 헤그웍이라고 하네. 옆에 있는 친구는 갱블턴이고. 자네 이름은 뭔가?”
“이블아이라고 불러 주세요.”
“그래, 이블아이! 따라오게나. 도시로 들어가야지.”
갱블턴이 따라오라며 손짓한다.
안쪽으로 갈수록 길이 복잡해진다.
미궁 아닌 미궁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새삼 모습을 드러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은신한 상태로 모든 길을 파악해 들어가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으니까.
도시라고 불리는 만큼 구성원도 꽤 많은 거 같고.
“이봐, 헤그윅! 벌써 일 다 끝낸 건가?”
“오? 인간이네? 알록달록한데?”
“손님인가? 보아하니 거래처에서 온 것 같지는 않군그래.”
통로를 지날 때마다 새로운 드워프가 모습을 드러낸다.
구성원끼리는 다 아는 사이인 건가.
아직까지는 도시라기보다는 커다란 공장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생각보다는 규모가 작네요? 지하 도시라고 하길래 좀 더 큰 느낌인가 했었는데.”
“음? 그야 아직 지하로 내려가지도 않았으니까.”
“예?”
-끼이이익
헤그웍이 문을 연다.
눈앞에 펼쳐진 건 동굴.
뒤를 돌아보자 내가 있던 건물이 보인다.
그곳에 적혀 있는 글자.
[제13 출납고]
“여긴 지상과 연결된 출납고 중 하나일 뿐이야. 도시는 이 아래에 있다네.”
“좋은 경험이 될 거야. 타게나, 화물용이기는 한데 이쪽이 더 빨라.”
동굴 끝에는 거대한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투박하지만 튼튼한 철창.
벽이 따로 없어 바람이 그대로 들어온다.
밑에서부터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과 연기.
미약하게 독성이 섞여 있었으나 두 드워프는 익숙하다는 듯 별 반응이 없다.
그저 장난스러운 미소만 짓고 있을 뿐.
“다시 한번 환영하지. 프램버그에 온 걸 말이야.”
-구구구구궁
-쿠르르르릉!
“으아아앗!”
“그에엑!”
헤그웍이 버튼을 누르자 엘리베이터가 하강한다.
추락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빠르게!
“흐하하하! 처음에는 다들 놀라지!”
“하여간 짓궂기는 미리 설명해 주지 그랬나.”
“그러는 자네도 입 다물고 있었으면서.”
“그게 또 재밌잖아. 하하하하!”
끼리끼리 논다고 일부러 안 알려줬구만.
철창을 꽉 잡고 자세를 잡았다.
그런 내 눈에 들어오는 풍경.
“이건.”
“어때? 굉장하지?”
끝없이 떨어질 것만 같은 구멍.
그 아래에 펼쳐진 도시.
바벨탑을 연상시키듯 높이 솟은 기둥에는 작은 태양과도 같은 발광체가 존재했다.
그 주변을 날아다니는 비행선에는 마법으로 만들어진 홀로그램 광고가 달렸다.
뿜어져 나오는 증기.
마정석의 은은한 빛과 신체 일부를 기계로 대체한 드워프들.
자연스럽게 길거리에 섞여 돌아다니는 골렘까지.
지하에 가까워지며 더 생생하게 풍경을 살필 수 있었고.
-쿠르르르릉
이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엘리베이터를 지키는 존재를 볼 수 있었다.
약간 낯익은 생김새.
설마 그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