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화 프램버그
부품에 적힌 문자.
제작- 프램버그.
난 모빌리딕에게 받았던 출입증을 꺼냈다.
금으로 만들어진 네모난 판.
흡사 카드와 비슷하게 생긴 물건이었고.
[지하 도시 출입증]
-유적, 지하 도시 프램버그에 출입할 수 있는 증표.
수수께끼의 유적인 프램버그로 진입할 수 있는 열쇠였다.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프램버그라고 적힌 물건은 이전에도 봤었다.
48층. 처음 헤이다와 만난 후 납치당했을 때도 있었으니까.
나를 구속하고 있던 쇠사슬.
[재앙 포박용 쇠사슬]
-지하 도시 프램버그의 드워프 장인이 만들어 낸 특별한 쇠사슬.
-재앙이라 불리는 존재를 구속하기 위해 영혼을 갈아 만든 물건입니다.
분명 이렇게 적혀 있었지.
그때도 난감했었는데… 뭔 짓을 해도 쇠사슬을 풀 수 없어서.
애초에 재앙을 잡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기도 했고…….
재앙이 뭘 뜻하는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미 겪어 보지 않았던가.
인류에게 모습을 드러낸 세 마리의 재앙.
그중 하나가 메스토카였지.
참고로 메스토카와는 사이가 좋지 않다.
놈의 유충을 잡으면서 제대로 찍혔으니까.
그거야 뭐, 나중에 생각할 일이고.
“좀 더 뒤져 보자.”
“그에에에.”
프램버그에 대한 단서가 더 있을지 모른다.
미니캣에서 얻을 수 있는 건 챙긴 다음, 그나마 상태가 멀쩡해 보이는 쓰레기들을 뒤졌다.
그때마다 떠오르는 알림.
[유독 물질에 노출되었습니다.]
[수상한 가루를 흡입했습니다.]
[면역력이 떨어집니다.]
[괴사가 진행됩니다.]
[혈압이 떨어집니다.]
.
.
.
괜히 58층의 테마가 병사가 아닌지 몸 상태가 안 좋아지는 거 같다.
보통 사람이라면 진작에 어디가 아파도 이상할 게 없었지만.
[샤워 (D) Lv.3]
[클린 (F) Lv.1]
[러브 앤 피스 (AA) Lv.3]
[소화 (A) Lv.8]
[정화 스티커 (B)]
[생명수]
난 보통이 아니라서.
온갖 스킬로 청결을 유지하고, 아티팩트에 생명수까지 뿌렸다.
이것만으로도 부족하다 싶으면.
-화륵!
[칭호, 불과 춤의 화신의 효과!]
-기분이 좋아집니다!
-모든 상태 이상이 줄어듭니다.
-회복 효과가 상승합니다.
-스텟이 일시적으로 상승합니다.
-정신 보호가 활성화됩니다.
칭호 효과까지 사용해서 버텼다.
결국 따지고 보면 병에 걸리는 것도 상태 이상이잖아?
회복도 할 수 있고 좋지 뭐.
물론 작업할 게 있어서 계속 유지할 수는 없고.
틈틈이 사용하면 좋을 거 같다.
과하지 않나 싶을 정도의 수준을 유지한 채 움직이자.
병이라는 게 무서워서, 언제 어떤 식으로 찾아올지 모르거니와 어떤 것에 영향을 받았는지도 불분명하니까.
-쿠르릉
내가 먼저 찾은 건 고장 난 거인 절단기.
여전히 흉악한 사이즈의 대형 칼날이 눈에 띈다.
아직도 믿어지지는 않지만 이게 정말 파는 물건이라면 어딘가에 제작한 곳이 적혀 있을 거다.
권능으로 본 정보에도 A/S기간이 지났다고 되어 있지 않았던가.
수리해 주는 곳이라도 있겠지.
칼날과 에너지 공급 장치, 뼈대 등등을 살폈고.
“찾았다.”
절단기의 아랫면.
음각으로 새겨진 문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똑같다.
제작- 프램버그.
혹시 몰라 다른 잡동사니도 뒤졌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상자와 다목적 선반, 청소기 비슷하게 생긴 로봇.
그리고 꽤 많은 물건에서 프램버그라는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정도의 양.
이 정도의 품질.
도대체 프램버그는 뭐 하는 곳일까.
머리로 스쳐 지나가는 게 하나 있다면…….
“브루헴이 말했었지. 탑에는 헬다잉 키친처럼 NPC들로 이루어진 집단이 있다고.”
NPC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대주는 릴카과 화조국.
그럼 그들이 판매하는 물건을 제작하는 곳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게 맞았다.
헌터들이 모여 만든 집단은 목적이 분명하다.
힘을 키우고 위로 올라가는 것.
그에 따른 지원과 협력, 단합을 통한 이익 쟁취.
상황에 따라서는 다른 이들과의 마찰에서 이기기 위한 보호 장치 역할을 하는 것.
NPC 집단은 다르다.
“걔네는 탑에 속해 있는 존재, 각자의 역할이 있으니까.”
최우선 과제가 다르다는 것.
헌터는 등반을.
NPC는 자아를 잃지 않고 살아남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들에게 있어 강함은 중요치 않다.
정확히 말하면 중요하기는 하지만 아무리 강해 봤자 시스템에 반하는 행동은 하지 못한다.
킬더레스가 투기장을 운영하는 이유였으며, 알리오스가 보석 세공을 하게 된 이유였다.
헬다잉 키친은 요리를, 화조국이 상단을 이끄는 것처럼.
대충 윤곽이 잡힌다.
남은 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는 것뿐.
58층에 있을 거라는 강한 확신이 든다.
이만한 조건이 모였는데 여기 없으면 더 이상하지.
지하… 지하라.
쓰레기 산 밑 어딘가에 있는 곳.
쓰레기를 처리하게 만들어진 미니캣.
미니캣을 만든 이유야 여기가 본인들이 사는 곳이니까 그런 거겠지.
필드 전체가 쓰레기로 꽉 차면 곤란하기도 하고.
보아하니 프램버그에서 만들어진 물건 대부분은 여기다 폐기하는 거 같은데.
적어도 본인들이 사는 곳 근처는 깨끗하게 만들려는 게 보통.
게다가 A/S와 완성된 물품을 공급하려면 통행로 역시 필수다.
다시 돌아와 그걸 유지하는 게 미니캣이라면.
“빅캣을 찾아야겠군.”
“그에에.”
미니캣을 부리는 빅캣 근처에 유적 입구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판단을 마친 난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니캣 사이즈만 해도 저 정도인데 빅캣이면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겠지.
움직일 때마다 악취가 몰려와 코를 괴롭힌다.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릴 지경.
내가 화학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냄새만 맡아도 몸에 해로운 거라는 건 알 거 같다.
방독면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게 있을 리가.
“있네?”
방독면은 아니지만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게 있다.
원래 용도는 다르지만.
빠르게 상점창을 켰다.
내가 원하는 물건이 있을 텐데.
여기 있다.
[에어 캔디 (D)]
-먹으면 30분간 무호흡으로 활동할 수 있습니다.
-입에 물고 있으세요.
-활동량에 따라 빠르게 소모될 수도 있습니다.
개당 1,500포인트로 비싼 편이지만 하나 먹고 30분 동안 숨을 참을 수 있으면 남는 장사다.
내가 인권이 없지 돈이 없나.
혹시나 잠깐 사이에 오염이 될까 싶어 캔디에 생명수를 뿌린 뒤 입에 넣었다.
상큼하면서도 시원한 느낌.
적당한 단맛에 기분이 좋아진다.
특이한 감각.
숨을 참고 있는데도 입안에서 생성된 공기가 저절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나쁘지 않다.
오히려 좋지. 여유롭게 10개를 더 산 뒤 달려 나갔다.
“그엡!”
덕춘이한테 먹이는 것도 잊지 않고.
시야를 확보하려면 높은 곳으로 가야 하는 법.
쓰레기 산 위로 올라가자 시야가 트인다.
어딜 봐도 쓰레기뿐.
한 가지 눈여겨볼 게 있다면.
“저기군.”
필드 동쪽, 말 그대로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고양이가 보였다.
옆으로 누워 있는 녀석 옆에는 미니캣들이 수시로 오가는 중.
왜 마더 로봇인가 했더니만.
“빅캣이 미니캣의 에너지 공급처였군.”
[빅캣]
-5성급 기계형 몬스터.
-미니캣에게 에너지를 주입합니다.
-공격력은 없지만 미니캣이 지켜 주죠!
-정말 위험할 경우 자폭까지 가능합니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쓰레기를 먹는 것만으로 저 덩치를 움직일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럴 수 있었다면 쓰레기 산이 만들어지지도 않았을 거고.
저곳이 빅캣의 요람.
58층을 클리어하는 조건인 동시에.
[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지하 도시 출품구]
지하 도시랑 연결된 통로가 있는 곳이다.
좋네. 포탈도 하나 만들어 두면 편하지.
혹시나 일이 틀어지면 도망칠 수도 있는 거고.
분명히 보인다.
-우우우우웅
빅캣을 중심으로 생성된 공간.
마정석을 비롯한 복잡한 회로가 겹친 구역.
저곳에 도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니캣부터 제쳐야겠고.”
심플하네.
당당히 앞으로 나섰다.
“냐아아아아옹.”
빅캣과 시선이 마주친다.
놈들이랑 싸우면서 깨달은 게 있다.
-지이이이잉
-촤라라라락
[적외선 탐지기에 탐지되었습니다.]
[열 감지 센서에 탐지되었습니다.]
[마력 유동 감별기에 탐지되었습니다.]
[침입 트랩을 지나쳤습니다.]
“진짜 너무하네. 뭘 이렇게까지 하냐.”
적어도 단순 은신 스킬로는 이놈들을 통과하지 못한다는 것.
차라리 생명체였으면 눈속임이라도 가능하지 기계는 그런 것도 없다.
짜인 대로 객관적인 데이터만 가지고 움직이니까.
김소담이 오면 좋아하지 않을까 하고 잡생각이 지나간 것도 잠시.
-콰앙!
놈들을 향해 전력을 다해 달렸다.
어차피 클리어 조건은 간단하다.
빅캣이 있는 곳에 도달하기만 하면 되니까.
굳이 싸울 필요도 힘을 뺄 필요도 없다.
물론 놈들이 가만히 있을 때 이야기지만.
“키햐오오오!”
“히아아악!”
날쌔게 달려드는 미니캣들.
-파라라락!
-피유우우웅!
돌아버리겠네.
시작부터 전력을 다하는 건지 육탄 돌격뿐만 아니라 기체에 내장된 무기들까지 전부 사용한다.
일전에 봤던 미사일도 있고, 저건 미니건인가?
레이저 비슷한 것도 있다.
레이저라…….
“나도 있는데.”
[오로라 빔 (AAA) Lv.1]
-찌유우우우웅!
오색 빛깔 광선이 놈들을 통과한다.
깔끔하게 부서진 녀석들도 있고, 아닌 녀석들도 있고.
관심 없다. 신경 쓸 여유도 없고.
기계형 몬스터라 그런지 동료가 당하든 말든, 본인이 다치든 말든 공격을 감행하니까.
-후웅!
앞으로 날아오는 앞발을 슬라이딩으로 피했다.
주둥이를 내밀며 그대로 나를 물어뜯으려는 녀석에게는.
“궥!”
-쩌어어엉!
덕춘이의 싸대기가 꽂혔고, 포위됐을 때는.
[지옥불의 순례자 (AA)]
-화르르륵!
성물을 사용해 길을 텄다.
성스러운 불길이 타오르며 나와 빅캣을 잇는다.
“크르르륵!”
거대한 몸을 일으키려는 빅캣.
그러면 안 되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놈이랑 싸우고 싶지는 않아서 말이야.
[홀리 크랩 (AAA)]
-콰직!
신성한 집게발을 소환해 고정시켰다.
자폭하면 안 되지.
내가 다칠까 봐는 아니다. 자폭하더라도 안개 질주로 피하면 그만이니까.
혹시나 옆에 있는 지하 도시 통로가 무너질까 봐 그렇지.
“크, 크아오오옹!”
집게발에 붙잡힌 채 버둥거리는 녀석.
전투력이 없다고는 하나 5성급 몬스터. AAA등급 성물로 완전히 제압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으나, 성물은 신성력을 기반으로 사용되는 법.
내 신성력은 예전보다 훨씬 강해진 상태. 그 말은 곧 성물의 위력 역시 강해졌음을 뜻한다.
굳이 불길을 뚫고 덤비는 놈들이야 깔끔하게 파이어 밤으로 박살 내며 전진했고.
“무혈입성 완료!”
[빅캣의 요람에 도달했습니다.]
[58층 클리어!]
[포탈이 생성되었습니다.]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미니캣을 좀 부수기는 했는데, 피는 안 흘렸으니 무혈입성이 맞지. 암, 그렇고말고.
여전히 빅캣이 버둥대기는 했지만 사뿐히 무시해 줬다.
“이쪽으로 들어가면 되는 건가.”
빅캣의 뒤에 자리 잡은 거대한 문을 바라봤다.
쇳덩이로 되어 있었으며, 어디 SF영화에서나 볼 법한 잠금장치가 달렸다.
힘으로 부수는 건 불가능하겠지.
문이 단단한 걸 떠나서 지하 도시는 유적이다.
특별한 조건을 달성하지 않을 경우 시스템적으로 열리지 않는다는 이야기.
어떻게 보면 최고의 보안을 유지하는 곳일지도 몰랐다.
내게 출입증이 없었다면 말이지.
-삐익
-푸쉬이이이
문 옆에 있는 작은 틈새.
그곳에 출입증을 넣자 기계음과 함께 문이 열린다.
정식 입구는 아닐 거다.
권능에도 적혀 있지 않았는가.
출품구라고.
만들어진 상품을 내놓는 곳인 게 분명하다.
하지만 안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지.
-콰르르륵
-치이이익
꼼꼼하기도 하지.
4중으로 이루어진 보안 장치가 풀리고 나서야 완전히 내부를 드러내는 입구.
출입증을 챙기고 안으로 진입했다.
그런 내게 떠오르는 알람.
[유적, 지하 도시 프램버그에 입장합니다.]
[세인턴 피스 제국 관계자는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세인턴 피스?
…어, 그거.
“오델토가 있던 곳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