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화 58층
구름 사다리를 타고 정상에 오른 후, 포탈을 넘었다.
좀 더 쉬고 싶었지만 사다리 꼭대기에서 쉬기에는 몸 상태가 별로 안 좋아서.
-우우우웅
몸이 길쭉해지는 듯한 감각과 함께 포탈을 타고 전송됐다.
목적지는 당연하게도 58층.
[58층에 진입합니다.]
[58층- 병사]
[클리어 조건]
[한 달 동안 버티시오.]
[빅캣의 요람에 도달하시오.]
그곳에 도착한 내 첫인상은.
“썩 좋은 곳은 아닌 거 같은데.”
“그에에에.”
쓰레기 산.
썩은 물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시체의 내장이나 하수구의 묵은 침전물, 그런 거랑 비슷한 것들의 냄새라고 해야 하나.
곳곳에 보이는 파이프에는 유독한 가스가 뿜어져 나왔다.
어떻게 아느냐.
[독 내성 (A) Lv.8]
독 내성 스킬이 반응을 보였으니까.
58층의 테마는 병사.
그에 걸맞은 환경이다. 오염된 동시에 독성 물질이 가득하고, 척 봐도 위생적이지는 않다.
병에 걸리기 딱 좋은 상태.
살짝 곤란한데.
“다른 자극이 전해지는 거라면 몰라도 병은 내성이 딱히 없단 말이지.”
“그에에에.”
워낙 몸이 튼튼해져서 면역력 자체는 높지만 모든 병에 면역이 있다고는 말 못 하겠다.
실제로 병에 걸린 헌터도 종종 나오는 편이고.
등급이 높을수록 그런 일이 줄어든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밖에서의 이야기.
여기는 탑이다, 50층 후반대이기도 하고.
독성이야 내성 스킬로 커버한다 치고, 먹는 것도 소화 스킬이 있으니 오케이.
위생적인 부분은…….
[정화 스티커 (B)]
-스티커를 부착한 장비 착용 시 오염된 물질을 정화합니다.
이거, 플레타에게 베팅으로 받아 낸 아이템으로 1차 정화를 하고.
[클린 (F) Lv.1]
[샤워 (D) Lv.3]
클린과 샤워를 수시로 사용해서 최대한 깔끔하게 유지하는 게 중요할 거 같다.
나 말고 덕춘이도 마찬가지.
태생이 영물이라 사람인 나보다 면역력이 강하겠지만 혹시 모르는 거니까.
괜히 어설프게 대응했다가 고생하는 것보다는 과하게 조심하는 편이 나았다.
“아, 생명수도 좀 뿌려야겠다. 목마를 때도 그걸로 마시고.”
“그에?”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는 듯 덕춘이가 고개를 기울인다.
“우리 영특하지만 우물 안 개구리인 덕춘이는 모르겠지. 원래 물이 가장 빨리 오염된다고. 이것저것 다 섞여서.”
그동안 식수는 워터 스킬로 해결했지만 58층에 있는 동안은 참도록 하자.
잠깐만…….
생명수에는 정화 능력이 있고, 그 기본 바탕에는 신성력이 존재한다.
그 말은?
[러브 앤 피스 (AA) Lv.3]
-우우우우!
온몸에 신성력을 두르고 있으면 더 좋다는 게 아닐까?
단순 마력 낭비일지도 모르겠지만.
공격 스킬에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몸에 두르는 정도로만 쓰면 마력 소모도 큰 편이 아니니 괜찮을 거 같다.
겸사겸사 어깨에 붙어 있는 덕춘이도 신성력의 영향을 받을 거고.
오케이.
준비는 이 정도면 된 거 같고.
“좀만 쉬자.”
그나마 깨끗해 보이는 돌덩이에 엉덩이를 붙였다.
57층 때 번개를 하도 맞아서 아직까지 근육과 신경이 진정되질 않는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게 탑인 만큼 여유가 있을 때 휴식을 취하는 게 맞았다.
물론 가만히 멍때릴 생각은 없고, 앞으로의 계획과 해야 할 것들을 점검할 예정.
어느덧 50층 후반부.
58층과 59층을 지나면 60층 안전지대다.
커뮤니티를 확인해 봤다.
탈모맨은 53층을 지나 54층을 공략 중.
예상대로였다면 벨자트를 협박 아니, 인정을 받아 포탈을 여는 건 어렵지 않다.
내가 뿌린 맛없어 포션이 있으니까.
다만…….
“와, 이게 이렇게 되네.”
탈모맨이 올린 글을 읽고 감탄했다.
녀석이 사고를 쳐서 그런 건 아니고…….
[니머리 탈모]: 벨자트 이 자식 도망치는데?
아니이이이! 팔다리 묶여 있다며!
(사진)
맛없어 포션에 트라우마가 생긴 벨자트가 도주하기 시작한 것.
팔다리가 봉인되어 있었지만 벨자트는 해골.
팔다리 관절을 탈골해 구속에서 벗어났고, 맛없어 포션을 들이미는 수많은 헌터를 피해 도망치는 중이란다.
탈모맨이 올린 사진이 그 모습을 찍은 것. 얼마나 먹기 싫었으면 NPC가 저렇게까지 하지?
맨 처음 봤을 때는 침울하고 자포자기한 모습이었는데 저렇게 활발해질 줄이야.
이게 다 내 덕분 아니겠는가. NPC에게 활력을 불어넣는 뿌듯함이란.
[악마의 친구- 칭호]
[폭탄마- 칭호]
-당신의 폭발은 세계를 놀라게 할 것입니다!
-인성은 터지지 않게 조심하세요. (저런, 이미 터졌군요!)
뭐야. 칭호가 멋대로 뜨고 난리야.
손을 휘저어 칭호 메시지를 지웠다.
뭐가 됐든 벨자트 덕분에 시간은 늘어났다.
좋은 소식이다. 안 그래도 나도 시간이 좀 필요해서.
50층대에서 해야 할 게 아직 남아 있다.
릴카의 퀘스트.
마지막 재료는 미니캣.
58층의 클리어 조건은 빅캣의 요람으로 가는 것.
빅캣과 미니캣이라… 퀘스트 재료를 얻을 수 있는 곳이 여기라는 게 아닐까?
게다가…….
“아직 못 찾았단 말이지.”
모빌리딕이 준 지하 도시 출입증.
50층 어딘가에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 거쳐 온 곳 중에는 없었으니 여기 아니면 위에 있다는 건데.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은 확실한 것부터 봐 보자.
빅캣이라고 했나, 미니캣도 근처 어딘가에 있겠지.
이런 곳에 고양이가 사나 싶기도 했지만 내가 생각하는 고양이와 탑의 고양이는 다를 수도 있으니까.
잠깐이지만 휴식을 취했기 때문일까 몸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스으으윽
난 은밀하게 걸어나갔다.
말 그대로 은밀하게.
56층, 스킬 합성을 통해 만든 두 개의 스킬.
그중 하나.
[외톨이의 길 (B) Lv.1]
-소외된 존재는 존재감마저 희미합니다.
-당시의 행동은 주목받지 못할 것이며, 지나간 길조차 잊힐 겁니다!
-인간형 대상이라면 더욱 인기척을 느끼기 힘들어집니다.
은신형 스킬.
몸이 투명해지거나 그런 건 아니다.
그저 인기척을 지우고 주변 사람들의 인지 능력을 속이는 스킬이지.
다르게 말하면 짐승형이나 기타 몬스터한테는 비교적 효과가 적을 수도 있다는 거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자세를 낮추며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나아갔다.
용도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이 가득한 쓰레기 산.
눈길을 잡아끄는 것들이 많다.
단순한 상자나 장비류부터 시작해서 거인이나 쓸 법한 거대한 물건도 제법 있다.
밖에서는 흔하지만 탑에서는 보기 힘든 가전제품 비슷한 것들도 있고.
저건 믹서긴가? 냉장고 같은 것도 있네.
오, 내가 아는 것도 있다.
[망가진 거인 절단기]
-고장 났습니다!
-A/S 기간이 다 됐습니다.
55층 낙사 구간.
여섯 개의 천장을 깨는 도중에 봤던 거대 칼날 장치.
지금 구매하라더니 진짜 파는 거였나.
살짝 어이가 없어지려는 찰나.
-위이이잉
-철컥철컥
소음이 들렸다.
58층에 온 이후로 처음 느껴지는 인기척.
난 쓰레기 더미를 방패 삼아 몸을 숨겼다.
사람인가? 그렇다기에는 소리가 묵직한데.
말도 안 하고 걷는 보폭도 불규칙적이다.
냄새는 모르겠다. 주변에 썩은 내가 너무 많이 나가지고.
은신 스킬을 사용 중이니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 보자.
고개를 살짝 내밀어 소음의 근원을 찾았고.
“…고양이?”
내가 원하던 대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미니캣.
난 또 캣이라길래 뭔가 했더니만.
“키햐아아아오옹!”
-쿠웅! 쿠웅!
-콰아아앙!
“로봇이었네!”
렌즈가 빛나더니 붉은 광선이 사방을 휩쓸었고, 그대로 나의 위치가 발각.
놈이 달려든다.
아니, 미니라며! 미니캣이라며!
“저게 어딜 봐서 미닌데!”
최소 중대형급.
날렵한 체형을 가지고 있지만 쇳덩이로 이루어진 녀석이었고, 고양이 특유의 빠른 움직임을 자랑했다.
[미니캣]
-기계형 5성급 몬스터.
-앙칼진 손톱 맛을 보면 정신 못 차립니다!
-마더 로봇인 빅캣을 따릅니다.
-쓰레기도 잘 먹어요!
그니까 저걸 데리고 오란 말이지?
릴카 이 녀석 알고는 있었지만 양심 터졌네.
저거 인벤토리에 들어가기는 하나?
들어가겠지. 안 들어가면 뭐, 조각내서라도 가져간다.
일단 잡고 보는 게 맞겠지?
따지고 보면 더덕이를 잡았을 때랑 비슷한 느낌이다.
그때도 인벤토리에 넣을 수 있었으니 덩치에 당황하지 말고 하던 대로 하자.
일단 첫 만남은 악수부터.
“그에에엑!”
[고유 능력- 뺨치기 (S)]
-콰아아아앙!
“키햐오오옹!”
역시 덕춘이야. 첫인사 한번 화끈하네.
짧은 비명을 지르며 미니캣이 쓰러진다.
비틀거리며 일어서려고도 했지만 이미 상체 대부분이 박살 난 상황.
생명체였으면 진작에 죽었겠지만 미니캣은 기계로 이루어져 있었고, 당연하게도 통증도 못 느꼈다.
어떻게 보면 골렘이랑도 비슷하지만…….
-철컥
-피이이잉!
“어우야.”
괜히 기계형 몬스터가 아니라는 건지 몸 일부가 변형.
미사일 비슷한 게 날아온다.
어릴 적 동심이 살아날 법한 광경이었으나.
-콰아아아앙!
-콰아앙!
지금은 폭격을 피하는 게 정답.
폭발과 함께 쓰레기와 오물이 터진다.
절대 뒤집어쓰고 싶지 않은 것들.
[프로즌 브레이크 (AAA) Lv.5]
-콰드득!
빙벽을 생성해 쓰레기들을 막고, 그대로 오로라 빔을 쏴 버렸다.
남아 있던 부위마저 깔끔하게 사라진 미니캣이 작동을 멈추고 고꾸라졌으며.
“키햐아아아옹.”
“그르르릉.”
흩어져 있던 미니캣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확실한 적의.
센서로 주변을 파악하는 만큼 은신 스킬도 의미를 잃었다.
[외톨이의 길 (B)을 해제합니다.]
괜히 유지하느라 마력을 뺄 필요는 없지.
눈에 보이는 놈만 다섯 객체.
설명대로 어디서 쓰레기라도 파먹다 왔는지 몰골이 말이 아니다.
쓰레기를 먹는 기계 로봇이라.
누가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대단하네.
“하나만 제대로 잡으면 되겠지.”
퀘스트에 필요한 건 하나니까.
생각보다 까다로운 놈이라 멀쩡한 상태로 잡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최대한 해 봐야지.
우선 정리부터.
[파이어 밤 (S) Lv.1]
-콰아아아앙!
스킬 한 번에 미니캣 한 마리가 그대로 폭발한다.
그래. 로봇은 터지는 게 국룰이긴 하지.
작은 틈새로 들어간 불길이 회로와 전선을 모조리 끊어 버리고.
[일렉트릭 쇼크 (AAA) Lv.3]
전기가 놈들을 관통하며 시스템을 망가트린다.
굳이 전체를 파괴하지 않더라도 무력화시키는 건 어렵지 않다.
퀘스트 재료에 쓰이는 미니캣이 이런 상태여도 되는지가 의문이지.
여기서 구해야 한다. 60층에 올라가면 다시는 58층으로 올 수 없으니까.
지속적으로 클린을 사용하는 걸 잊지 않은 채 공격을 감행했다.
정교하게, 움직임을 봉쇄하면서.
그렇게 4마리의 미니캣을 박살 내고 남은 건 하나.
직접적인 공격은 한 적이 없으니 상태는 괜찮은 편이고.
남은 건 제압을 하는 것뿐.
방법은 다른 놈들을 잡으며 파악해 뒀다.
-파지지직
“살짝 따끔할 거야.”
일렉트릭 쇼크의 위력을 살짝 줄이면 망가트리지 않고 잠시 동안 움직임을 멈출 수 있다.
경계하는지 발톱을 세운 채 으르렁거리는 녀석.
“캬오옹!”
녀석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고, 나 역시 앞으로 돌진했다.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앞발.
위력적이지만 상대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평소였다면 검으로 튕겨 냈겠지만 괜한 상처를 냈다가 가치를 잃으면 곤란하니까.
[디그 (D) Lv.5]
놈의 발이 있는 곳에 구덩이를 만들었다.
5성급 몬스터인 만큼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하겠지만 앞발의 궤도는 바꿀 수 있었고.
“잡았다.”
손바닥을 놈에게 댈 수 있었다.
스파크가 튀어 오른다.
-파지지지직!
“크기기기각!”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며 일순간 멈춘 녀석.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인벤토리를 열었다.
되려나?
모르겠다. 밀치듯이 인벤토리를 향해 미니캣을 넣었다.
[릴카의 부탁 (4)- 강제 퀘스트]
-당신은 릴카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계승자가 되기 위하여 열심히 구르세요!
-크라켄의 촉수 (1/1)
-만년설귀의 혓바닥 (1/1)
-벌룬로드의 눈 (1/1)
-미니캣 (1/1)
무사히 퀘스트 조건이 만족된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걸로 할 일은 끝.
검을 뽑았다.
사냥한 놈들을 분해할 생각.
기계형 몬스터는 보기 드문 편이라서 뭐가 나올지 모르겠다.
일단은 금속으로 되어 있으니까 뜯어서 재료로 써도 될 거 같은데.
난 열심히 사냥한 미니캣을 분해했고.
“음?”
부품에 적힌 문장을 볼 수 있었다.
[제작- 프램버그]
프램버그라면.
지하 도시 이름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