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233화 (233/740)

233화 전력을 가다듬을 때가 됐다

이준석이 보낸 개인 메시지.

그 내용을 살핀 난 뒷골이 아려오는 걸 느꼈다.

[이준석]: 공듀 님, 공듀 님의 선행과 매력이 만천하에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이준석]: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 출신 중에서도 연합에 가입하고자 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중입니다. 이미 연합에 가입한 이들도 있고요.

[이준석]: 중국의 금호령 길드는 공식적으로 연합을 지지한다는 입장 선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금호령이면 그 녀석이군.

52층에서 척살단한테 공격받던 사람을 도와준 적이 있다.

금호령 길드 소속의 헌터였는데 척살단에 대한 정보를 줬었지.

보상을 한다더니 이런 식으로 하는 건가.

이름이 뭐였지, 류 헤이? 류 메이? 잘 기억이 안 나네.

하여튼 간에, 여기까지는 괜찮다.

조금씩 연합의 이름이 퍼지는 거고, 나나 탈모맨, 핥짝이 같은 네임드들 역시 아는 사람이 늘고 있는 거니까.

문제는 다음 메시지.

[이준석]: 팬이 늘어나는 건 좋은 현상입니다.

[이준석]: 잘못된 튜토리얼과 백환에 대한 정보가 퍼지며 다른 나라에서도 변화가 생기고 있고요.

[이준석]: 그런데 이 녀석들이 멋대로 굿즈를 만들고 있습니다. 봐 보시죠! 어이가 없습니다!

이준석이 메시지에 넣어 보내 준 사진.

처음에는 뭔가 했었는데.

“이런 미친놈들이!”

다름 아닌 연합 사람 네임드들의 모습을 담은 브로마이드였다.

탈모맨과 핥짝이, 이블아이, 그 밖에도 오지혁과 김소담 등등.

아니지, 따지고 보면 사진을 인화한 건 아니다. 정교한 솜씨로 그린 포스터에 가깝지.

어떻게 아느냐? 그야 아직 모습을 공개하지 않은 쁘띠공듀와 냥펀이 상상을 통해 그려져 있었으니까!

뒷골이 아릿하다.

말 같지도 않은 미소녀 캐릭터를 가져다가 떡하니 쁘띠공듀라고 적어 뒀네.

“이거 만든 새끼 반드시 잡아서 조진다.”

“그헤헤헤헥!”

화가 난다.

나한테 이런 수모를 줘?

걸리기만 해 봐, 진짜 사지를 분지른 다음 태워 버릴 거니까.

덕춘이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뒤집혀서는 웃어 댄다.

웃기냐, 어? 웃음이 나와?

“아니, 왜 탑에 올라와 가지고 그림을 그리고 앉았냐.”

이해하려 하지 말자.

세상에는 이해 불가능한 것들이 너무 많고, 내가 보기에는 저 양반들도 마찬가지다.

좋다. 포스터? 까짓것 그럴 수 있다 쳐.

하지만…….

“팬픽은 또 뭔데! 크하아아악!”

괴성인지 비명인지 모를 것을 토해 냈다.

중국어로 적혀 있었지만 통역 스킬이 있기에 읽는 건 문제 없었다.

이준석이 캡처한 거로 보이는데, 커뮤니티 어딘가에서 우리들을 대상으로 한 소설인지 잡담인지가 올라와 있는 상태.

[이준석]: 상도덕이 없는 것도 유분수지! 굿즈 제작은 우리가 먼저 하려 했단 말입니다!

[이준석]: 모습도 달라요, 보세요! 탈모맨 님의 보타이 색깔이 바뀌었고, 핥짝 님의 은갈치 정장은 싱글 브레스티드 투 버튼이 아니라 더블 브레스티드라고요!

분개한 건 이준석도 마찬가지.

나랑은 다른 의미에서 화가 난 거 같지만…….

항상 느끼지만 얘도 정상은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제일 위험한 놈인데.

저런 거까지 외우고 다닌다고? 팬클럽 회장 아니지, 연합 회장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새삼 느꼈다.

[이준석]: 이렇게 된 이상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죠. 저런 근본 없는 것들을 쳐 내고 자체 제작에 들어갈 겁니다! 아무도 말릴 수 없어요!

분한지 급발진을 하는 녀석.

아니야. 하지 마.

[이준석]: 이미 도안은 만들어 놨죠. 연합 띠가 있기는 하지만 다양성은 존중되어야 마땅한 법! 팬심으로 똘똘 뭉쳐 더욱 대단한 것들을 만들어 내겠습니다.

[이준석]: 저만 믿으십시오.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게 만들 테니까요!

미안해. 한 번만 봐줘.

어딜 내놔도 부끄러울 거 같아서 그래.

[이준석]: 그렇죠! 아예 안전지대에다가 동상을 세웁시다! 마침 제가 아는 헌터 중에 조각을 하다 들어온 친구가 있습니다. 광장 한가운 데다가 태극기랑 같이 세워 둘 겁니다.

[이준석]: 대한민국의 자랑, 쁘띠공듀! 탈모맨과 핥짝이에 냥펀까지! 우리는 공듀 보유국이란 말입니다!

“으아아아! 제발 닥쳐!”

이준석 이 자식 먼저 없애야겠다.

날 수치사로 죽이려는 간악한 의도가 엿보인다.

어떻게 꼬드겨 낸 다음 쓱싹해 버리면 되나?

그동안의 정이 있으니 아프지 않게 아스트랄 레인보우로 풀 도핑하고 쏴 버리면 인지도 못 하게 처리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진지한 마음으로 10분간 고민했지만.

“정신 차리자, 현수야. 그러는 거 아니다.”

초인적인 인내심과 객관화로 참아 낼 수 있었다.

내 손으로 팬을 해치우기 뭐한 것도 있고, 어느 날 갑자기 연합 회장이 사라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기도 싫다.

지금은 대형 길드도 못 건드릴 정도로 덩치가 커진 게 쁘찡연합이니까.

사실상 탑 안에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집단이기도 하고.

한국의 대형 길드들 역시 예전의 힘을 잃고 눈치를 보는 중이니 말 다 했지.

“어디까지나 탑 안에서 그렇다는 거지만.”

밖에는 여전히 대형 길드가 기득권층이다.

기득권이란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고, 심지어 대격변 이후 혼란한 사회를 진정시켰다는 대의를 지닌 이들이라면 더 힘들겠지.

내막을 아는 사람도 전체 비율로 따지면 극소수고.

탑 밖으로 나간 연합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 봤자 무시당할 게 뻔했다.

운이 나쁘다면 납치당하거나 살해당할 가능성도 있고.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밖에는 대형 길드의 사주를 받고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이 있다는 걸.

이준석의 형 역시 그들에게 죽었다.

모르는 사람은 이준석이 그저 팬클럽 회장으로 활동하는 줄 알겠지.

조금만 더 생각을 한다면 불특정 다수로 이루어진 거대 집단을 관리하는 엄청난 능력자라는 걸 알게 되겠지만…….

녀석이 굳이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

팬클럽 놀이를 하는 게 즐거워서이기도 하겠지만…….

“나를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의 힘을 원하는 면도 없지 않아 있겠지.”

녀석의 목표는 대형 길드와 정부의 어두운 면을 알리고 붕괴시키는 것.

혼자서 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일이었으니, 자신과 같은 입장을 지닌 이들을 모아 힘을 키우는 게 맞았다.

쁘찡연합. 이들의 공통점은 쁘띠공듀를 좋아한다는 것도 있지만, 백환과 잘못된 튜토리얼에 당했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것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몇 차례나 있었던 대형 길드와의 마찰에서도 나서 준 거고.

이번에 척살단을 지우는 작업에 적극적으로 행동한 것도 비슷한 이치였다.

톡톡, 손가락을 두드렸다.

뭐가 됐든 이준석을 한번 만나 보기는 해야겠다.

같은 편인 거 같기는 하지만 속내가 어떤지는 직접 들어 봐야지.

냉정한 말일지는 몰라도 아직까지 이준석과는 비즈니스적인 관계에 더 가깝다고 느껴져서.

일방적으로 녀석이 호의를 베풀어서 이루어진 관계기도 하고.

난 녀석에게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

[쁘띠공듀]: 모두가 사용하는 광장에 동상을 세운다니욧! 안될 말씀입니당.

[쁘띠공듀]: 굿즈 제작까지는 괜찮은 거 같네요.

[쁘띠공듀]: 연합 사람들을 함부로 그려서 파는 건 막는 편이 좋.겠.죠? (진지)

마지막 말에 힘을 줬다.

가뜩이나 이미지가 이상하게 굳혀지고 있는데 구체적인 모습까지 만들어지면 답도 없다.

동상도 마찬가지. 필시 쁘띠공듀의 모습도 넣으려 할 텐데 그럴 수는 없지.

박제되는 건 사양이다.

굿즈는 제작 도면까지 나와 있다고 했으니 말려도 할 게 분명하니 패스.

이준석이 하지 않더라도 이미 만들어지고 있기도 하고.

이 부분은 알아서 하라 한 다음 본론을 꺼냈다.

먼저 해외 헌터들이 연합에 가입하는 거.

[쁘띠공듀]: 해외 쪽은 접점이 없으니 몇 명 믿을 만한 사람을 구한 다음 매니저 느낌으로 두는 건 어떨까용?

[이준석]: 그것도 괜찮은 방법입니다! 아무래도 정서도 다르고, 겪어온 것도 다르니까요.

[이준석]: 아직 그쪽은 대형 길드와 정부의 힘이 강한 면도 있습니다. 반발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도 대놓고 활동하기는 힘들죠. 그들을 지원한다고 하면 반응을 보일 겁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한국이야 나와 탈모맨, 핥짝이를 주도로 대형 길드를 박살 냈고, 이후에는 연합 사람들이 뭉쳐 저항했다.

흐름 자체가 바뀌었다는 말.

반면에 해외 헌터들은 50층에 올라와서야 간접적으로 비밀을 전해 들었고, 의구심을 가지고 있던 소수만이 눈치를 살피는 타이밍이다.

[쁘띠공듀]: 중국 쪽은 금호령 길드의 류 헤인가 뭔가 한테 부탁하면 될 거라구욧! 이블아이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으니까용☆

[이준석]: 오오! 이미 연결점이 있었군요. 다른 연합 사람들한테도 이야기해서 커낵션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쁘띠공듀]: 조아여☆ 조아여. 그런데 말이죠오오. 준석 님은 어디까지 올라오셨나요?

[이준석]: 이제 막 53층에 들어왔습니다. 어… 그러고 보니 요즘 공략을 잘 안 올리시던데 설마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거나…….

[이준석]: 공듀 님, 등반도 좋지만 건강이 우선입니다. 부디 체력을 보존하시옵고, 우리들의 빛이자 희망인 것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오… 제법 부담스러운 말을 하는걸?

하긴, 공략을 요즘 안 올리기는 했다. 그래서 지금 올리려던 차였고.

여튼 목적을 달성했다.

이준석이 53층에 왔다는 것.

내가 있는 곳이 56층. 녀석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두자. 그래야 날을 잡아서 염탐이라도 하지.

정체를 숨겨 봤자 내 권능 앞에서는 의미가 없으니까.

이준석과의 대화는 여기까지.

적당히 마무리하려는 때.

[이준석]: 아, 탈모맨도 53층에 있습니다. 공듀 님한테 할 말이 있다던 거 같은데 한번 연락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탈모맨이?”

녀석이 53층에 있는 건 이상하지 않다.

평소 탈모맨의 등반 속도를 생각한다면 더 높이 왔을 법도 하지만, 내가 만년설귀를 잡고 왔으니 어쩔 수 없이 그곳에 있을 거다.

만년설귀는 죽으면 일주일 후에 리젠되니까.

말하는 걸 보아하니 둘은 이미 만난 거 같은데.

그나저나 할 말이라.

이준석과의 연락을 마치고 커뮤니티를 살폈다.

별다른 점은 보이지 않는다. 몬스터를 때리면서 놀고 있는 거 같은데.

나도 일단은 공략을 올렸다.

56층까지의 공략집.

[쁘띠공듀]: 영! 차! 영! 차! 등반을 합시닷!

다들 안뇽? 여러분의 친구 제가 왔다구욧!

혼자 왔느냐? 그.럴.리.가.요.

여러분을 위한 공략도 함께 가지고 왔답니다! (박수)

자자, 우리 굼벵이 같은 친구들은 어디까지 올라왔을지 모르겠지만 56층까지의 공략을 시─워어언하게 털어 보겠어요☆

.

.

.

공략은 이미 여러 번 썼기에 작성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특히 조심해야 할 것들이랑 약간의 팁.

당부 사항만 적으면 됐으니까.

55층의 하늘 정원과 56층의 페이크 포탈 같은 것들.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수많은 댓글이 올라왔고.

[니머리 탈모]: 공듀, 내가 왔노라!

어김없이 탈모맨이 등장했다.

이 녀석은 하루 종일 커뮤니티만 보고 있는 건가.

아니면 아예 켜 두고 사냥을 하는 건가.

모르겠다. 반응 한번 빠르네.

[쁘띠공듀]: 탈모, 탈모 탈MO맨!

[냥냥펀치]: 탈! 모! 탈!

[정수리 핥짝]: 모! 탈! 모!

얘네도 마찬가지기는 하지만.

죽이 척척 맞는 녀석들.

[니머리 탈모]: ㅂㄷ… 공듀한테 이야기하고 있는데 껴들어!

[냥냥펀치]: 우리한테는 관심도 없냥!

[정수리 핥짝]: 우리만큼 반겨 주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쁘띠공듀]: 우우! 해명하세욧!

[니머리 탈모]: 아니, 나한테 왜 그러는… 아, 몰라! 아무튼 공듀 나 지금 53층 거의 깼거든? 우리 만나기로 했잖아, 기억나지!

기억나지. 내가 한 최대의 실수가 아닐까.

슬슬 피할 수가 없을 정도로 죄어오는 약속이기도 하고.

[니머리 탈모]: 50층대에서 보기로 했잖어.

[쁘띠공듀]: 그… 럼요. 아앗! 갑자기 빠르게 60층을 넘기지 않으면 죽는 병이……! 콜록☆켈록.

[냥냥펀치]: 죽지 마, 겅듀ㅜㅜ.

[정수리 핥짝]: 야! 너 땜에 공듀한테 탈모 옮았잖아! 머리카락 뱉는 거 봐!

[쁘띠공듀]: …? 그게 무슨?

[냥냥펀치]: 공듀, ㄱㅊ. 고양이도 털 뱉음. 헤어볼 제품 먹고 빗질 잘해 주면 낫는다구!

[쁘띠공듀]: 아니, 안 옮았…….

[정수리 핥짝]: 공듀는 빠져 있어 우리가 혼내 줄 테니까.

[냥냥펀치]: ㅇㅇ, 우리만 믿음됨.

나쁜 새끼들, 아주 말을 못 하게 만드네.

그러거나 말거나.

[니머리 탈모]: 후후. 나를 막는다라, 오케이! 너희도 같이 만나는 걸로 알아듣는다.

[니머리 탈모]: 생각해 보니까 공듀랑 처음 만나는데, 테마가 죽음인 곳에서 만나는 건 좀 아닌 거 같더라고. 주변에 뭐가 없기도 하고

[니머리 탈모]: 60층에서 만나자, 알겠지? 약속이다! 난 등반하러 감 ㅂㅂ.

니머리 탈모는 제 할 말을 마치고 사라졌고.

“…60층이라.”

[SS급 권능, 스킬 합성을 사용합니다.]

난 그때를 대비해 전력을 가다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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