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231화 (231/740)

231화 큐브 플라워

갑자기 발화하는 꽃들.

놀랍게도 꽃들은 타들어 가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환경이 좋다는 듯 더욱 화사해진 느낌.

‘레드 플라워’라더니 이름값을 하는 건가.

나는 닉네임값도 못하는데… 그냥 평범한 닉네임으로 바꾸고 싶다…….

어흠… 아무튼.

“화력이 세기는 한데 못 버틸 정도는 아니군.”

“그에에.”

이미 화기 내성 스킬 레벨이 높은 편이라.

진짜 문제는 이거지.

“큐브에 퍼즐이라.”

도무지 감이 안 잡힌다.

나도 어릴 때는 게임을 좋아했었다.

중학생이 됐을 때도 마찬가지였고.

학교랑 학원, 친구들과 함께 가끔 PC방 또는 노래방을 가는 것이 일상이었으니까.

어디까지나 대격변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말이지.

중학교 2학년 때 대격변과 함께 세상은 변했고, 지옥이나 다를 바 없는 생활이 이어졌다.

생존.

그게 최우선이었으며 불안함과 공포, 세상에 대한 원망이 가득하던 시기를 겪었다.

그 와중에 퍼즐이나 놀이를 할 틈이 있을 리가 있나.

물론 세상이 개판으로 돌아가는 만큼 할 수 있는 게 줄어들어, 시간을 때우기 위해 놀이를 하기는 했다.

몇 장 부족한 카드로 원카드를 하고, 포커를 치고.

명절 때나 꺼내던 화투를 치는 걸 구경하거나 빙고를 했다.

할 게 그거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나가면 죽는 줄 알았고, 실제로도 많이 죽어 나가는 시절이었으니.

다른 걸 할 기회조차 박탈되었던 시기.

큐브 같은 건 해 본 적도 없고, 가져 본 적도 없다.

사회가 안정화되고 나서는 성인이었고… 내가 대학을 못 나온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때부터는 뭐… 먹고 살려고 사력을 다했지. 말 같지도 않은 회사에서 구르면서, 탑의 부름을 받기만을 기대하며 준비하던 시기기도 했고.

살짝 자신감이 사라지기는 하지만.

“깰 수 있으니까 있는 거 아니겠어?”

경험상 알고 있다.

탑은 말도 안 되게 어려운 과제를 줄지언정 불가능한 조건을 제시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하늘 정원에는 규칙이 있다.

규칙에 의거하여 답을 찾으면 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게 맞았고.

“가자.”

“그엑.”

판단을 마쳤으면 행동하는 게 나였다.

지금까지 그래 왔고, 그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었으니까.

앞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갔다.

아직 레드 플라워 구역이 더 남아 있다.

-화륵

불이 피어오르며 나를 반긴다.

잘 왔다는 것처럼.

목표? 그거야 당연히 큐브 플라워가 있는 중앙이고.

세세한 방법은 모르지만 내게는 정보가 있다.

55층을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큐브 플라워를 꺾어야 한다는 것.

이동기도 제약된 상황. 가능한 변수를 이용해 최대한 접근하는 게 답 아니겠는가.

시야를 넓게 가지자.

돌아가도 좋다.

중앙에 가깝게 갈 수 있는 루트로 이동하자.

규칙을 어기면 페널티가 부여된다고 했고, 그 페널티가 뭔지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막말로 규칙을 어기는 순간 즉사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

굳이 그런 위험을 부담하고 싶지는 않았다.

“여기가 하늘 정원인가.”

“보기보다는 평화롭군.”

내 뒤로 하늘 정원에 도착한 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생김새를 보니 동북아 사람인 거 같은데.

중국 쪽인지 일본 쪽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알 수 있는 건.

“규칙? 까다롭게 가는군, 결국 꺾으면 되는 것을.”

조심성이 부족했고.

한 명이 그대로 큐브 플라워를 향해 달렸다는 것.

녀석이 맨 처음 밟은 건 나와 같은 레드 플라워 구역.

메시지창에 떠오른 규칙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달려든 녀석이 다른 색깔의 꽃들을 지르밟았다.

[블루 플라워 구역에 진입했습니다.]

[페널티가 부여됩니다.]

[이동기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페널티가 부여됩니다.]

[그린 플라워 구역에 진입했습니다.]

[페널티가 부여됩니다.]

연달아 경고창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동기 사용 페널티]

[모든 내성 스킬이 70퍼센트 감소합니다.]

[블루 플라워 진입 페널티]

[급속 냉각]

[그린 플라워 진입 페널티]

[극독]

-콰드드득!

-치이이이익!

일순간 녀석의 주변에 있던 블루 플라워 존에서 냉기가 쏟아져 놈의 몸을 굳혔고, 그린 플라워 존에서는 맹독이 뿜어져 나와 녀석을 녹였다.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일.

중앙을 향해 손을 내뻗는 모습 그대로 죽어 버린 녀석이 하얗게 물든다.

“말도 안 되는……!”

녀석과 같이 온 일행이 두 눈을 부릅뜬다.

말이 안 되기는 뭐가 안 돼.

무턱대고 달려들면 저 꼴 나는 거지.

경솔한 건지, 아니면 55층까지 올라오니 실력에 자신이 붙은 건지. 쯧.

결과론적으로는 자신이 아니라 자만이었다.

그건 그거고.

난 눈을 가늘게 떴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죽기 전에 가지고 있던 장비도 같이 녹아내렸다.

그만큼 독하다는 거겠지.

냉기도 마찬가지. 독에 절여지기 전에 얼어붙었을 때 이미 놈은 죽었다.

페널티가 강력하기는 하다.

특히 저거.

“이동기 제약 페널티는 무조건 피해야겠어.”

내성 스킬이 70퍼센트나 하락한다라.

정말 내성 스킬이 미치도록 높은 게 아니라면 치명타로 다가온다.

대충 내 화기 내성 스킬이 A급이니 C급, 어쩌면 D급까지도 떨어질지 모른다는 거니까.

그 정도 수준이면…….

“이 자리에 있는 것조차 힘들 거 같은데.”

당장 내가 밟고 있는 구역도 불타오르고 있다.

52층 분사 지대보다는 아니지만 지금도 상당히 뜨끈하다.

난 잠시 상황을 살폈다.

지금도 속속히 하늘 정원에 도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상황.

대충 10명 정도 모인 건가.

핥짝이와 냥펀은 아직이다.

몇몇은 경계심을 가지고 움직였고, 누군가는 규칙을 읽더니 과감하게 움직였다.

나도 걸어 나갔다.

내가 맨 처음 밟은 건 레드 플라워, 빨간 칸만 밟으며 지나가면 문제는 없을 테니까.

거침없이 움직였기 때문일까. 오래지 않아 중앙에 도달할 수 있었고.

턱.

큐브 플라워에 손을 델 수 있었다.

[레드 플라워 존을 통과했습니다.]

[큐브가 변화합니다.]

-촤르르르륵

큐브가 움직인다.

여전히 섞여 있지만 조금은 바뀐 모습.

[도달 루트가 활성화됩니다!]

[큐브 완성도 (1/6)]

-레드 루트 (1/1)

-블루 루트 (0/1)

-그린 루트 (0/1)

-옐로우 루트 (0/1)

-화이트 루트 (0/1)

-퍼플 루트 (0/1)

[닉네임을 설정해 주십시오.]

닉네임?

“이블아이.”

[큐브 완성 공헌도]

[가장 먼저 큐브 플라워에 도달했습니다. 추가 공헌도가 부여됩니다.]

-1위. 이블아이

공헌도가 따로 있는 거였나.

이건 몰랐는데.

[레드 루트가 활성화됩니다.]

[레드 루트는 이블아이만 이동 가능합니다.]

-화르르륵!

메시지와 함께 불길이 거세진다.

정확히 내가 걸어온 루트에만 변화가 생겼다.

나한테는 별다른 데미지가 없었지만 주변에 있는 이들한테는 아닌 모양.

“크윽, 열기가!”

“엄청난 화력이군.”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인상을 찌푸린다.

난 아까랑 별 차이 없는 것 같은데.

내가 걸어온 루트는 나만 이용 가능하다는 게 이런 의미였나.

그것보다…….

“일이 꼬였군.”

“그에에.”

내가 걸어온 쪽은 더 이상 지나칠 수 없다, 그 말이 무엇이냐.

남은 사람들은 내가 걸어오지 않은 곳을 이용해 큐브 플라워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

도달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움직일 수 있는 경로는 줄어든다는 것이다.

즉,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 훨씬 유리한 게임이라는 거였고.

“뭐야, 벌써 이만큼이나 모였어?”

“고생은 우리가 다 했는데!”

때마침 핥짝이와 냥펀이 도착했다.

이미 10명가량의 사람이 움직이고 있다.

서둘러야 한다.

냥펀 말대로 고생한 건 우리인데 다른 사람들이 날로 먹는 건 억울하니까.

“빨간색 말고 다른 쪽으로 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오케이, 난 노란색으로 간다.”

“그럼 난 보라색!”

내 외침을 들은 두 녀석이 각각 다른 색 꽃밭에 들어선다.

머리가 좋은 건가. 규칙을 보자마자 바로 어떤 식으로 움직여야 하는지 알아차린 것 같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지만.

중앙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은 많아 봐야 여섯.

선착순으로 모든 게 갈리는 상황이었고, 여기 모인 누구도 위로 올라갈 기회를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저리 꺼져!”

“이런 개자식이!”

그렇기에 근접해 있는 헌터를 공격하는 건 정해진 수순일지도 몰랐다.

단순한 이치.

경쟁자를 낙오시키면 자신에게 기회가 돌아오게 되어 있었으니까.

방법도 쉽다.

[퍼플 플라워 구역을 침범했습니다.]

[페널티, 다중 저주에 걸립니다.]

“크아아악!”

밀어 버려서 다른 칸을 밟게 만들면 그만이었으니까.

저주에 걸린 녀석이 비틀거린다.

그러다 또 다른 발판을 밟았고.

[화이트 플라워 구역을 침범했습니다.]

[페널티, 빛의 소멸]

-지유우우웅!

그대로 솟아오르는 빛줄기에 사망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이들은 어떤 판단을 내릴까.

“제길! 당하기 전에 조진다.”

“나 건들면 다 죽는 거야! 알았어?”

“너 이 새끼, 칼 내려. 해보자는 거냐!”

불안은 불신으로 바뀌었고, 욕심은 충동을 낳았다.

규칙 어디에도 공격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애초에 이렇게 의도한 건가.

꽃밭에 피가 뿌려지기 시작했고, 꽃에 생기가 더해진다.

마치 더 많은 피를 내놓으라는 것처럼 꽃들은 꽃잎을 활짝 벌린 채 흔들거렸으며.

-화아아아

[큐브 플라워가 꽃가루를 뿌립니다.]

[폭력성이 상승합니다.]

이때를 노렸다는 듯 큐브 플라워에서 분말이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꽃가루를 들이켠 이들이 더욱 거칠게 행동했다.

큐브 플라워 바로 아래에 있는 나 역시 분말을 들이켰지만.

[정신 보호 (AA) Lv.9]

핥짝이 덕에 올라 버린 정신 보호로 버틸 수 있었다.

냉정함을 잃으면 끝이다.

중앙 근처까지 왔던 이들마저 이성을 잃고 다른 사람을 공격하러 몸을 틀었다.

이미 머릿속에서 규칙은 잊힌 지 오래.

그대로 본인의 구역을 벗어나 꽃밭을 달렸고.

[페널티가 부여됩니다.]

[페널티가 부여됩니다.]

.

.

.

수많은 페널티가 중첩.

“으아아아악!”

그대로 리타이어 되었다.

이미 절반 이상이 페널티로 죽었다.

지금도 계속해서 사람들이 올라오고 있으니 혼란은 더 커지겠지.

그나마 다행인 점은.

“도착!”

온갖 아티팩트로 몸을 보호하고 있던 냥펀이 무사히 큐브 플라워를 터치했다는 것.

핥짝이도 마찬가지.

“아, 골 아파. 썩을 놈들이 페어플레이를 몰라. 룰은 지켜야지.”

대단한 녀석.

권능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에 의하면 핥짝이는 정신 보호에 실패했다.

스킬이 아닌 본인 의지력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것.

상태를 보아하니 뭔가를 더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큐브 완성도 (3/6)]

-레드 루트 (1/1)

-블루 루트 (0/1)

-그린 루트 (0/1)

-옐로우 루트 (1/1)

-화이트 루트 (0/1)

-퍼플 루트 (1/1)

완성된 루트는 현재까지 3개.

[그린 루트가 비활성화됩니다.]

“크, 크으윽. 닿았다.”

어떻게 살아남은 등반가 한 명이 추가로 들어오면서 4개까지 완성됐다.

큐브가 돌아간다.

이제 어느 정도 맞춰진 모습이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더 큰 문제는.

“길이 끊겼군.”

네 명이 중앙으로 오면서 발판 대부분을 가로질렀다는 거다.

즉, 다른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중앙에 도달하는 건 불가능.

새롭게 하늘 정원에 올라온 이들은 미쳐서 칼질을 해 대고, 길은 끊겼다라…….

개판이 따로 없지만.

“냥펀.”

“엉?”

“너 움직일 수 있지?”

“괜찮을 듯?”

나와 냥펀이 있다면 말이 달라진다.

난 내가 걸어온 레드 루트를 이용할 수 있다.

냥펀은 퍼플 루트를.

남은 루트는 두 개, 블루와 화이트.

“내가 블루 루트로 움직일 테니까 넌 화이트로 가. 그래야 여기 깬다.”

“으음… 그렇네. 알았어!”

내 생각을 파악한 냥펀이 고개를 끄덕인다.

다시 정원 밖으로 나갔다가 중앙으로 향한다.

그게 방법이었고.

“으아아악!”

-콰아아앙!

분말에 이성을 잃은 녀석들을 날려 버리며 달렸다.

꽃밭 밖으로 나온 뒤 다시 밟은 건 블루 플라워 존.

[블루 플라워 구역에 진입했습니다.]

[다른 구역에 진입하면 페널티가 발생합니다.]

“나도 안다고!”

가능한 빠른 속도로 몸을 날렸다.

나를 공격하려고 무기를 휘두르는 사람들.

무차별적으로 날아오는 스킬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저놈들 하나하나 상대할 시간이 없다.

괜히 대응하다 페널티를 받을 수도 있고.

가능한 간결하게 놈들을 제치고 달렸다. 필요하다면 일렉트릭 쇼크로 마비시키면서.

중간에 길이 끊겼지만.

[레드 플라워 구역에 진입했습니다.]

[레드 루트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페널티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레드 루트를 이용할 권리를 사용.

페널티 없이 레드 루트를 가로지를 수 있었고.

[블루 루트가 생성됩니다.]

[큐브 완성도 (5/6)]

“됐다!”

무사히 큐브 플라워에 닿을 수 있었다.

이어서 냥펀도 큐브 플라워에 도달.

-촤르르륵!

큐브가 빠르게 맞춰진다.

나와 냥펀은 그 모습을 지켜봤고.

[큐브가 완성되었습니다.]

[큐브 플라워를 꺾을 수 있습니다.]

“이만 끝내자.”

중앙에 모인 나와 냥펀, 핥짝이, 들러리1이 큐브 플라워의 줄기에 손을 댔다.

-콰직!

그대로 줄기를 잡아 뜯자 꼿꼿하게 서 있던 큐브 플라워가 쓰러졌고.

[55층 클리어!]

[포탈이 생성됩니다.]

[큐브 플라워가 꺾였습니다.]

[하늘 정원이 모습을 감춥니다.]

[제1천장이 다시 생성됩니다.]

모든 것이 리셋 된다는 설명과 함께 포탈이 생성됐다.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하는 하늘 정원.

“으으, 나 1등으로 간다.”

“어, 그래. 파이팅 해라.”

핥짝이가 비틀거리며 포탈을 넘는다.

저 정신에 1등을 포기 안 하네.

핥짝이 다음으로는 이름 모를 들러리가 통과.

“덕분에 펴어어언하게 갑니다!”

내게 손을 흔든 냥펀도 56층으로 향했다.

이제 내 차례인가.

올라가야지, 올라는 가는데.

[큐브 완성 공헌도]

-1위. 이블아이

[보상으로 하늘 정원의 큐브가 지급됩니다.]

주는 건 받고 가자.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