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하늘 정원
예고 없이 들어온 핥짝이의 일침.
개인 메시지에서도 콘셉트을 유지한 이유는…….
“제길, 이제 커뮤니티만 켜면 자동으로 나와!”
“그헤헤헤헥!”
웃지 마라, 주인이 어? 너 먹여 살린다고 이렇게 자존감과 인권을 내려놓고 있는데 말이야.
나라고 이렇게 되고 싶어서 된 줄 알아?
“그에?”
“그냥 모른 척 넘어가 줘라, 좀.”
뭔 개소리냐는 표정으로 덕춘이가 고개를 기울인다.
안다, 덕춘이랑은 관계없는 일인 걸.
탑에 들어온 뒤로 계속해서 이러고 있었는데, 갑자기 안 그럴 수 있나.
좋게 생각하자. 원래 말투로 핥짝이랑 냥펀이랑 개인 메시지를 하다가 공략을 올릴 때 어느 순간 말투가 섞여 버리는 실수를 할지도 모른다.
갑자기 내 말투가 변한다?
광적으로 나와 멤버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연합 사람들이 이를 포착하지 못할 리가 없다.
주어진 판에서 노는 건 상관없지만 이상한 쪽으로 신경이 쏠리면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되기는… 내 정체를 알아낸다면서 온갖 커뮤니티 탐정들이 등장하겠지.
이후 전개는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이미 내 정체를 의심하고 있는 이들이 나오고 있는 판국에…….
[쁘띠공듀]: ㅎㅎㅎㅎ… 우리 핥짝이 자꾸 그렇게 나오시면 호오오온쭐이 나는 수가 있습니다.
[쁘띠공듀]: 저한테 소.원.권이 있다는 걸 잊지 마시라구욧.
[쁘띠공듀]: 나쁜 마음을 먹을 수도 있어용^^
[정수리 핥짝]: 앗, ㅈㅅ;
약간의 협박을 가미한 경고를 주자 바로 수그러든다.
이 소원권은 아끼고 있어야겠다.
핥짝이를 막을 방법은 이거밖에 없으니.
[정신 보호 (AA) Lv.8]
[스킬 레벨 업!]
그 짧은 사이에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정신 보호 레벨이 올랐다는 알림이 떴다.
이게 원래 이렇게 쉽게 레벨을 올릴 수 있는 스킬이 아닌데.
오르면 좋은 거지. 정신 보호 스킬이 올라야 내 멘탈도 더 튼튼해지지 않겠는가.
약간의 멘탈 공격이 있었지만 꿋꿋하게 이겨 냈다.
오늘도 힘내자, 아자! 아자!
파이팅을 하며 핥짝이가 역할을 다할 때까지 기다리기를 몇 시간.
구름 고래의 안락한 등짝에서 휴식을 취했기에 체력은 충분했고.
[제2천장 클리어]
[하늘이 뒤집힙니다.]
“성공했나 보군.”
필드에 전체 메시지가 떠올랐고, 핥짝이가 내게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
[정수리 핥짝]: 이쪽은 완료, 대기하고 있는다.
[쁘띠공듀]: 저도 힘을 내도록 하죠!
-파앗!
“구오오오?”
휴식처가 되어 주던 구름 고래를 떠나 도약했다.
하늘이 뒤집히며 중력이 거꾸로 향한다.
“구오오오!”
화들짝 놀라더니 몸을 뒤집어 허공을 헤엄치는 구름 고래.
나 역시 폭발을 일으켜 자세를 잡았다.
제2천장이 깨지면서 가속도 또한 증가.
처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추락하기 시작했고.
“오우야.”
“그에에에.”
새롭게 생성된 제3천장을 볼 수 있었다.
-키이이이이잉!
-콰가가가각!
척 보기에도 흉악해 보이는 톱날과 칼날이 돌아가고 있다.
양심도 없는 것들.
제1천장의 송곳 바위는 그나마 고정이라도 되어 있었지, 이번 천장에서는 떨어지는 이들을 반드시 죽이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천장이 깨질수록 더 위험해지겠지.
그래도 괜찮다.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
핥짝이에게 전한 계획.
방법은 간단했다.
천장이 깨지면 하늘은 뒤바뀌고 새로운 천장이 생겨난다.
그럼 다시 추락해서 천장을 클리어해야 하는데…….
“굳이 왔다 갔다 할 필요 있나. 한 명이 대기하다가 바로 부수면 되지.”
천장 양 끝에 클리어할 사람이 미리 있다면 말이 달라진다.
천장을 깨고 적당한 몬스터를 붙잡아 대기하고 있으면 되니까.
말로는 쉬운데 실행하기는 힘든 계획.
이 계획의 전제 조건은 천장에 도달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최소 두 명은 있어야 한다는 거다.
다행스럽게도 나와 핥짝이 모두 능력은 충분하다.
그러니…….
“빠르게 깨 보자고.”
“궤엑.”
속도를 올렸다.
톱날과 칼날이 빠르게 가까워진다.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것들.
[거인 절단기]
-위이이이이잉!
-위험해 보이죠?
-제대로 봤습니다!
-쇳덩이도, 바위도, 거인 절단기 하나면 걱정 끝!
-지금 바로 구매하세요!
크기도 거대해 안에 들어가면 믹서기처럼 갈릴 것 같다.
아니, 그것보다 설명 왜 저래. 이거 파는 거야?
의문이 들었지만 그건 나중에.
이제 거의 다 왔다.
-키이이이잉!
가까이에서 들으니 더욱 섬뜩한 소리.
한 가지 다행인 점이 있다면.
“커서 그런지 빈틈이 없지는 않군.”
“그에에.”
여유롭지는 않지만 톱날과 칼날을 피할 공간이 있다는 것.
아무렇게나 움직이는 듯 보여도 일정한 규칙이 있었다.
물리적인 사각지대.
섬세하게 움직여야 한다.
먼저 여기.
그라인더 같은 톱날이 지나다니는 곳은.
[프로즌 브레이크 (AAA) Lv.5]
-콰드드득!
얼음 다리를 만들어 빠르게 지나쳐야 한다.
탈인간적인 균형 감각을 이용해 그대로 미끄러져 내렸고.
-콰아앙!
일정 구간까지 갔다가 돌아온 톱날이 얼음 다리를 박살 냈다.
조금은 버텨 주지 않을까 했는데 어림도 없는 모양.
저 정도 위력이면 나라고 하더라도 버티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적당한 긴장감에 몸이 찌릿하다.
뭐가 됐든 첫 번째 장애물은 통과.
이어서.
“덕춘아!”
“궥!”
덕춘이를 던졌다.
작은 덩치 덕에 장애물 사이를 지나갈 수 있는 녀석.
난 권능을 사용했다.
“그럼 그렇지.”
씨익. 입꼬리가 올라갔다.
제3천장은 특이하다.
제1천장과 달리 인위적이었으니까.
게다가 규모가 남다르기는 하지만 기계 장치를 사용하고 있었고, 설명에 따르면 어디선가 파는 제품 같은 느낌이었다.
그 말은 곧…….
“어딘가 장애물을 가동시키는 에너지원이 있다는 거야.”
그게 전기든 뭐든.
난 최대한 몸을 비틀어 칼날을 피했다.
몇 번 위험한 순간이 있기는 했으나.
[행운 스텟이 발동합니다!]
운 좋게 스쳐 지나가는 걸로 끝났고.
빠르게 주변을 스캔한 결과.
[거인 절단기의 에너지 공급 장치]
-커다란 장치를 굴리려면 에너지가 듬뿍 있어야죠!
-덩치만큼이나 출력이 좋습니다.
원하던 물건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들어가기에는 무리인 곳.
하지만 덕춘이는 충분히 진입할 수 있었고.
“덕춘아, 거기서 왼쪽!”
“그에에엑!”
자유롭게 필드를 누비던 덕춘이가 에너지 공급 장치로 달려들었다.
과연 탑에서 만들어진 장치라는 걸까.
평범한 전력 장치가 아니라 마정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정석은 그 자체로 에너지를 품고 있고, 단단하다고 알려진 결정체이기는 했으나.
“그엑!”
-콰아아앙!
우리 스트롱 한 덕춘 님을 막을 정도는 아니었다.
특성, 외갑을 두르고 힘차게 주먹을 꽂은 덕춘이.
한 번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는지 연달아 주먹을 휘둘렀고.
“크아아아, 퉤엣!”
산성침까지 아낌없이 뱉어 줬다.
그걸로 끝.
-우우우우웅
-기이이잉
에너지를 잃은 기계 장치가 서서히 가동을 멈췄다.
그런 내게 울리는 알림.
[제3천장 클리어]
[하늘정원 개방까지 남은 천장 3개.]
[하늘이 뒤집힙니다.]
[가속도 증가]
[몬스터가 광폭화합니다.]
제3천장을 클리어했다는 것과 함께 난이도가 상승한다는 내용.
-쿠르르릉
필드가 변하며 톱날과 칼날이 사라진다.
다시 펼쳐지는 하늘.
뒤집힌 중력에 몸이 떨어지고.
“크하아아아!”
“구오오오오!”
아래에는 나를 기다리는 몬스터 무리가 보였다.
광폭화돼서 그런가. 온순하게 나를 업고 다니던 구름 고래마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고.
“그동안의 정이 있으니 편히 보내주마.”
[오로라 빔 (AAA) Lv.1]
“구아오아아악!”
약간의 애도를 담아 그대로 증발시켰다.
공중전이라 해 봤자 5성급 몬스터들.
잡는 건 어렵지 않다. 다만 좀 귀찮을 뿐이지.
체력과 마력은 최대한 아낄 생각.
학살보다는 시간 끌기로 가자.
-카아아앙!
-쿠웅!
놈들과 싸우는 중간에 핥짝이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쁘띠공듀]: 3천장 깼어요. 3개 남았고, 점점 어려워질 겁니다!
[정수리 핥짝]: 나도 앎. ㅇㅇ 다 뒈졌다.
핥짝이면 알아서 잘하겠지.
이제 남은 천장은 3개.
제4천장과 제6천장은 핥짝이가 해결해 줄 테니, 내가 해결해야 할 건 제5천장 하나.
점점 위험해지는 걸 감안했을 때 핥짝이한테 부담을 주는 건 아닐까 걱정도 들었지만.
약 30분 후.
[제4천장 클리어]
“그래, 이래야 핥짝이지.”
무사히 제4천장을 정복했다는 알림을 들을 수 있었다.
* * *
[제5천장 클리어]
[제6천장 클리어]
드디어 다 깼다.
[정수리 핥짝]: 와 ㄹㅇ 뒈질뻔; 냥펀 아니었으면 아슬아슬했을 듯.
[쁘띠공듀]: 고생했습니닷!
생각보다 55층은 속공으로 깨기 힘든 곳이었다.
사실 지금도 중간 과정을 지난 것뿐이지만.
내가 겪은 제5천장, 거기도 장난 아니었는데.
화산이 생성돼서 폭발해 댔으니… 스케일이 남다르기는 했지.
핥짝이가 겪었을 제6천장도 더 위험하면 위험했지 쉽지는 않았을 거다.
말하는 걸 보니 중간에 냥펀과 합류해서 잘 끝낸 거 같지만.
뭐가 됐든 이걸로 천장은 모조리 격파.
[모든 천장을 클리어했습니다.]
[하늘 정원이 개방됩니다.]
메시지와 함께 알 수 없는 기류가 터져 나왔다.
하늘 정원. 저곳에 있는 큐브 플라워를 꺾어야 55층을 정복한 게 된다.
한 달을 버티는 방법도 있지만, 그럴 거였으면 이 고생 안 했지.
덩달아 덕을 본 건 같이 55층에 있던 사람들.
지금도 커뮤니티가 뜨겁다.
-지금 55층인 사람 있냐? 미쵸따, 진짜 ㄷㄷㄷ.
-하늘 계속 뒤집히고 토 쏠려 뒈지는 줄.
-천장이 어디 있었다는 거임?
└몰라. 계속 떨어지느라 정신없었음.
-하늘 정원이 어디 있나 했더니만 조건이 있었나 보네. 개꿀! 딱 기다려라!
└그리고 잠시 후, ???: 하늘 정원 ㅈㄴ 어렵네! 살려 줘요!
└ㄹㅇㅋㅋㅋ 조건도 몰랐던 애가 하늘 정원에 뭐가 있을 줄 알고 덤비냨ㅋㅋ.
나와 핥짝이가 연달아 천장을 부순 덕에 중간에 껴 있던 이들은 누구보다 편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
뭐, 하늘 정원에 가는 건 또 다른 이야기겠지만.
그거야 알아서들 하라고 하고.
“저긴가 본데?”
“그에.”
난 멀리, 공중에 떠 있는 섬을 바라봤다.
권능을 사용할 것도 없다.
주변에 있는 거라고는 저거밖에 없었으니.
여전히 비행 몬스터들이 돌아다니고는 있었으나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망설일 거 있나.
-콰아아앙!
난 파이어 밤을 터트려 그곳으로 쇄도했다.
중간에 가로막는 놈들이야 일렉트릭 쇼크로 감전시켜 추락시켰으며, 이내 섬에 도달했을 때는…….
[하늘 정원에 입장했습니다.]
[하늘 정원에는 규칙이 있습니다.]
[규칙을 어길 경우 페널티가 발생하니 주의하세요.]
[규칙Ⅰ]
[하늘 정원에서는 모든 이동기 스킬이 제한됩니다.]
“규칙? 내가 기대하던 모습과 다른데?”
하늘섬에 입장했다는 메시지와 함께 하늘 정원의 광경이 들어왔다.
정원이라고 해서 수목원 같은 모습을 상상했었는데.
따지고 보면 비슷하기는 하다.
평평한 정원, 갖가지 색을 뽐내는 꽃들이 즐비하게 있었으니.
다만 신경 쓰이는 건.
[레드 플라워 구역]
[블루 플라워 구역]
[그린 플라워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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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섯 색으로 나누어 꽃들이 따로 모여 있다는 거다.
마치 체스판을 연상시키는 곳.
다른 점이 있다면 각 네모 칸이 꽃으로 차 있고, 색깔이 다양하다는 것 정도.
또 한 가지 특이점이 있다면…….
[큐브 플라워]
-큐브 플라워는 각 면의 색을 통일시키지 않으면 꺾을 수 없습니다.
-하늘 정원의 규칙에 따라 움직이다 보면 색이 바뀝니다.
정원 중앙에 보이는 큐브 플라워.
꽤 크다. 높이만 보면 어지간한 나무 못지않을 정도.
꽃이 있을 위치에 큐브가 달려 있었는데, 누가 섞기라도 한 듯 색이 꼬여 있었다.
골치 아프네.
단순히 때려 부수는 거라면 하겠다만 이번 건…….
“일종의 게임이잖아.”
그것도 실수하면 페널티를 받는.
일단 움직이자.
난 한 발 앞으로 내디뎠고.
[레드 플라워 구역에 진입했습니다.]
[규칙Ⅱ]
[당신은 지금부터 다른 플라워 구역을 밟을 수 없습니다.]
[레드 플라워 구역이 활성화됩니다.]
-화르르륵!
붉게 빛나던 꽃들이 일제히 불을 뿜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