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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228화 (228/740)

228화 55층

내가 준비한 음식.

그 정체가 뭔지도 모른 채 벨자트와 핥짝이, 냥펀이 감탄한다.

맛없어 포션을 겪어 본 덕춘이만이 질색하며 거리를 벌릴 뿐.

“맛있는 냄새가 나는구나! 어서, 어서 내놓아라!”

군침을 흘리는 벨자트.

맛없어 포션의 강점이 무엇이냐.

아무런 티가 나지 않는다는 거다.

냄새, 색깔… 요리에는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는다.

그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맛이 없어질 뿐.

굳이 요리를 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기댓값이 높을수록 충격이 클 테니까.

후후. 나도 이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악랄한 탑의 생태계가 날 버려 놨다.

그럼 그럼, 난 선량해.

“우리 입은 입도 아니냐! 맛 좀 보자!”

“맞아. 요리 스킬은 처음 본단 말이야!”

문제는 핥짝이랑 냥펀도 달라고 아우성친다는 건데.

미세하게 고개를 흔들며 말렸지만.

“아, 정체 떠들고 싶다!”

“곱게 내놓으면 유혈 사태는 없을 거라구.”

“치사한 거 봐라, 와.”

대놓고 협박을 해 댄다.

너무한 거 아니냐.

물론 진짜로 남한테 내 정체를 말할 애들은 아니다.

그만큼 먹고 싶다는 건데…….

“먹고 후회하지나 마.”

일단 경고는 해 줬다.

“걱정 마셔. 독이 있어도 중화할 방법 있으니까.”

“나도 방어 아티팩트 있음.”

씨알도 안 먹힌 거 같지만.

작게 한숨을 내쉬고 적당히 덜어 줬다.

그릇이 있을 리 만무했기에 적당한 돌의 속을 손으로 긁어 버린 뒤, 클린으로 세척해 돌그릇을 만들었다.

“이노오오옴! 나를 위해 만든 것인데 왜 덜어 내는 거냐!”

“거, 좀 있어 봐요. 별 차이도 없구만.”

중간에 벨자트가 발끈하기는 했으나 가뿐히 무시해 줬다.

본인한테 좋은 일인 것도 모르고, 쯧쯧.

아무튼 스테이크와 스튜를 적당히 나눠 줬다.

“먹기 전에 약속 하나만 하자. 먹고 나서 나한테 뭐라 하지 않기.”

“그렇게 속 좁은 사람 아니니까 걱정 마.”

“고… 공듀, 뭐야. 불안하게. 먹을 수 있는 거 맞아? 먹었다가 피 토하고 죽는 그런 건 아니지?”

핥짝이는 냉큼 집어 들었고, 냥펀은 의심을 시작한다.

역시 안전제일을 권능으로 가지고 있다 이건가.

“목숨에는 지장 없어. 그건 장담해.”

“그렇다면야… 으음.”

냥펀도 그릇을 쥐고 벨자트에게 다가갔다.

“아아.”

알아서 입을 벌리는 녀석.

그럼…….

“잘 먹으라고.”

그대로 있는 것을 모조리 붓고 도망쳤다.

덕춘이도 마찬가지.

주는 대로 냉큼 받아먹은 벨자트가 입맛을 다시는 것도 잠시.

[맛없어 포션×10을 섭취했습니다.]

[맛이 더욱 없어집니다!]

“음. 맛이 특이……. 우에에에에엑! 웩! 웨엑!”

중첩 효과가 터지며 놈이 발작하기 시작했다.

영혼까지 쏟아 낼 듯한 헛구역질!

어떻게든 삼켜 버린 것을 뱉으려 했지만 공허의 저주를 받은 녀석이 토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고.

“어? 으, 으어어어헉!”

“우웁! 날 암살하려 하다니! 범인은 쁘띠공…….”

벨자트와 함께 음식을 먹은 핥짝이는 발광을.

충격을 이기지 못한 냥펀은 앞으로 엎어져 바들바들 떨었다.

그러게 먹지 말라니까.

왜 사람 말을 안 들어.

그나저나.

“끄, 끄어으윽! 아흐윽!”

“괜찮나, 저거?”

“그에에에.”

벨자트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걸 보니 약간의 불안감이 밀려온다.

아플까 봐 걱정되는 건 아니고.

“살짝 아쉽네.”

꽤 괜찮은 반응이기는 하지만 아직 퀘스트 클리어 알림이 안 떠올랐다.

혹시라도 저주의 힘이 더 강해서 버티면 더는 방법이 없다.

그러니…….

“어쩔 수 없다. 있는 거 다 때려 붓자.”

“궥!”

아공간 팔찌에서 남은 맛없어 포션 전부를 꺼내 달렸다.

대략 20병 정도.

넉넉하게 남아 있어 다행이다.

내 의도를 눈치챈 것일까.

“아, 안 된다!”

“됩니다!”

벨자트가 열심히 도리질을 쳤지만 그래 봤자 팔다리가 구속된 해골바가지.

입을 꽉 다물어 봤자 틈새는 있었고.

-콸콸콸!

“크하아아아아악!”

난 성공적으로 포션을 먹일 수 있었다.

비명을 지르는 모습이 안쓰럽기는 했으나 본인도 말하지 않았던가.

저주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그러면서 죽기는 싫다고 했으니 방법은 이것뿐이다.

채울 수 없는 공허함, 굶주림.

모든 것의 원흉인 식욕.

문제의 근원을 처리하는 것이 정답.

[벨자트가 식욕을 잃습니다.]

[공허의 저주가 주춤합니다.]

“허허… 허허허허허. 삶의 의욕이 사라진다.”

정신이 나갔는지 벨자트가 입을 벌린 채 허탈하게 웃는다.

삶의 의욕이 사라질 만도 하지.

사람의 삼대 욕구.

식욕, 수면욕, 배설욕.

물리적으로 고자인 벨자트가 식욕까지 잃었으니 무슨 낙으로 살까.

모르겠다. 본인이 자처한 일이니 알아서 하겠지.

NPC잖아. 어떻게든 하지 않겠어?

그건 그거고.

[벨자트의 인정- 돌발 퀘스트 클리어!]

“예스. 성공이다!”

“궤엑!”

나와 덕춘이는 승리의 하이파이브를 했다.

[전 서버 최초! 벨자트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100,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포탈이 생성됩니다.]

-우우우웅

포탈은 생성됐고.

보상이 뭔지가 궁금한데.

물음표로 되어 있어서 감이 안 잡힌다.

난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건을 잡았다.

“오?”

생각보다 괜찮은 아이템을 받았다.

[거인의 무덤 열쇠]

-고대 거인족 전사 벨자트는 위대한 영웅의 무덤을 지키는 수호자였습니다.

-비록 타락했지만 열쇠만큼은 지니고 있었죠.

-위대한 거인족의 영웅 헬그레이트의 무덤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유적에 들어갈 수 있는 아이템.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거인족의 무덤이라고 했으니 찾기는 쉽겠지.

규모가 클 테니까.

그래도 쉽게 가면 좋으니.

“벨자트, 무덤이 어디에 있나요?”

“어흐흐… 어허허허.”

질문을 던졌지만 벨자트에게서 별다른 반응이 없다.

그저 슬퍼 보이는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볼 뿐.

현타가 왔나 보다.

내가 그 기분 잘 알지. 유적이야 알아서 찾으면 그만.

남은 건 여전히 비틀거리는 냥펀이랑 핥짝이인데.

아직 두 녀석은 벨자트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다.

포탈이 생성됐지만 어디까지나 내 전용 포탈이라서.

“정신이 좀 들어?”

“…복수, 복수할 테다아.”

먼저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냥펀부터 일으켜 세웠다.

앙증맞은 주먹을 움켜쥐며 복수를 꿈꾸고 있다만.

“엑기스로 한 번 더 먹고 싶다고?”

“공듀, 내가 사랑하는 거 알지?”

내 말 한마디에 바로 태세를 바꾼다.

역시 대화는 이렇게 해야지.

이 꼴로 놔둘 수는 없었기에 생명수를 하나 건넸다.

미심쩍어 하는 게 노골적으로 보였지만 생명수는 냥펀과 거래하는 품목 중 하나.

곧 정체를 눈치채고 입에 털어 넣는다.

“으으… 이제 좀 살 것 같다.”

“핥짝아, 너도 마셔라.”

핥짝이한테도 한 병 줬고.

“다신 네가 만든 거 안 먹는다, 진짜로.”

기어이 속에 있는 걸 게워 낸 핥짝이가 날 지팡이 삼아 일어선다.

힘이 빠지는지 머리 위에 턱을 올려놓는 녀석.

정수리를 핥는 건 아니겠지?

살짝 불안했지만 그럴 정신은 없는 것 같다.

“자자, 몸에 힘 딱 주라고. 너희도 포탈을 만들어야 할 거 아니야. 55층 올라가야지.”

“그러기는 해야지.”

승부욕 강한 핥짝이가 좀 더 빨리 움직인다.

답은 이미 나온 상태. 포션만 있으면 위로 올라갈 수 있다.

문제는 맛없어 포션이 다 떨어졌다는 건데.

만들기 어려운 포션은 아니라서 재료만 있다면 금방 만들지만, 지금은 상점창을 쓸 수가 없다.

“나 먼저 55층 올라가서 포션 만들어 줄까? 나처럼 먹이면 통과시켜 줄 거 같은데.”

굳이 한 달 동안 54층에서 머무는 건 시간 낭비 아니겠는가.

“흐이익!”

“음?”

포션이라는 말에 벨자트가 치를 떤다.

오호라, 이거 잘하면 그냥 같이 올라갈 수도 있겠는데.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벨자트가 잘 들을 수 있도록.

“넉넉하게 10병 아니다, 20병씩 만들어 줄게. 둘이 사이좋게 벨자트 입에 부으면 될 거야.”

“시, 싫다! 먹기 싫다! 다 꺼져!”

[NPC 벨자트가 포탈을 생성합니다.]

-우우우웅!

비명과 함께 두 개의 포탈이 더 생성된다.

이렇게 나와 주면 땡큐지. 번거롭게 움직일 필요도 없고.

“너, 협박 좀 할 줄 안다?”

“협박이라니, 섭섭한 소리를. 벨자트, 고마워요!”

“썩 꺼져라, 악마 같은 녀석!”

내가 악마의 친구인 건 또 어떻게 알고.

턱으로 정수리를 누르는 핥짝이를 떨쳐 내고 포탈로 향했다.

위로 올라갈 시간이다.

각자의 포탈 앞에 선 우리는 서로를 바라봤다.

긴말은 필요 없겠지.

“55층에서 볼 수 있으면 보자고.”

“오케이.”

“공듀도 잘 가.”

짤막한 인사를 나누고 안으로 진입.

[55층으로 이동합니다.]

부유감을 느끼며 포탈을 지났다.

55층에는 뭐가 있으려나.

50층대는 죽음이 테마인 만큼 떠오르는 건 많은데.

가 보면 알겠지.

뭐든 좋다, 다 상대해 주마.

* * *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파아아앗!

새로운 광경이 펼쳐졌다.

가장 먼저 날 반기는 건 상쾌한 바람.

그리고…….

“음?”

“궤?”

중력.

[55층- 낙사]

[클리어 조건]

[한 달 동안 생존하시오.]

[하늘 공원의 큐브 플라워를 꺾으시오.]

“떨어진다아아아아!”

“그에에에엑!”

창공.

내가 있는 곳은 하늘이었다.

얼마나 높은지 짐작도 안 간다.

아찔한 감각, 전기가 통하는 것 같기도 하고.

바닥을 내려다봤지만 떨어지기까지는 한참 남았다.

아니, 그 전에 떨어지면 죽는 거 아닌가?

아무리 몸뚱이가 튼튼해도 이 정도 높이면 답도 없을 것 같은데.

그것만 문제가 아니라.

[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나락 기류]

-낙하하는 대상을 가속시키는 기류가 불고 있습니다.

어째 추락하면 할수록 속도가 빨라진다 했더니 이상한 기류가 흐르고 있는 모양.

그래. 각성자를 낙사로 죽이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

침착하자.

워낙 높은 곳이라 바닥이 다 평평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뾰족한 암석들이 빼곡하게 이어져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일단 파이어 밤.

-콰아아아앙!

폭발을 일으켜 위로 떠올랐다.

비행 스킬은 따로 없으니 평소처럼 파이어 밤을 이용해서 버텨야 할 것 같은데.

마력이 무한이 아닌 만큼 한 달 동안 파이어 밤만 사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아니면 아예 조금씩 속도를 줄이면서 추락해 볼까.

속도만 조절할 수 있으면 바닥에 안전하게 착지할 수도 있을 거 같은데.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55층은 날로 먹을 수 있다.

“사실 난 천재인가?”

“그에에에.”

“왜, 주인인데 칭찬 좀 해 주라.”

생각을 굳혔다.

때로는 대담하게 움직일 수도 있어야 하는 법.

난 꼿꼿하게 몸을 세웠다.

저항이 줄어들수록 더 빨리 떨어질 수 있으니까.

거기에 파이어 밤을 몇 차례 터트려 가속했다.

-쒸애애애액!

바람 소리가 거세진다.

저 멀리, 나처럼 추락하고 있는 이들보다도 빠른 속도.

핥짝이와 냥펀도 55층 어딘가에서 떨어지고 있겠지.

둘이야 알아서 잘 살아남을 거다.

중요한 건 나.

가속한 덕분인지 떨어진 지 약 1시간이 지날 때쯤 바닥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동안 가만히 멍만 때리지는 않았다.

54층에서 레벨이 올라간 스킬들을 승급하고 있었지.

이걸로 준비는 끝.

집중할 타이밍이다.

-콰아아앙!

세밀하게 폭발을 일으키며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상상 이상으로 떨어지는 힘이 강하다.

중력이 배로 늘어난 것만 같은 느낌.

하지만 내가 누구냐.

100명가량의 척살대 앞에서도 살아남은 사람이다.

이 정도는 충분히 해낼 수 있었고.

-쿠구구구구궁!

-콰가가가각!

뾰족한 암석 바위를 스치듯이 미끄러져 내릴 수 있었다.

여전히 빠른 속도.

몸에 전해지는 부담감이 상당했으나.

[강철의 의지 (AA) Lv.2]

[강체强體 (AA) Lv.9]

패시브 스킬이 활성화되며 어느 정도 버틸 만했다.

여기에.

[달라붙기 (C) Lv.4]

-콰드드드드

마찰력까지 올리자 서서히 몸이 멈춘다.

성공이다.

무사히 바닥에 착지해 냈다.

“거봐, 덕춘아. 이게 맞다니까?”

“그에에에.”

덕춘이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봤지만 어쩌겠나, 내 계획이 성공했는데.

주변은 개판이다.

내가 타고 내려온 송곳 바위는 반파되어 조각나 있고, 나처럼 착지하지 못하고 떨어진 이들의 것으로 보이는 갑옷 파편과 무기 일부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으니.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등반가 중 대다수는 여기서 죽지 않을까.

팔다리를 풀며 잠깐의 여유를 즐기던 때.

[제1천장에 도달했습니다.]

-콰르르르릉!

필드에 변화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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