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227화 (227/740)

227화 냥냥펀치

그동안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 없는 멤버.

나만큼이나 탈모맨을 피해 다닌 녀석.

의외로 핥짝이와 가장 먼저 만난 인물.

냥냥펀치.

궁금했다, 냥펀은 어떤 녀석인지.

녀석의 첫인상은.

“오오오옷! 눈부셔!”

“그, 그에엑!”

화려하다.

엄청 화려하다.

눈부신 황금빛 광채가 뿜어져 나온다.

이게 바로 아우라인가.

그건 아니고.

“대체 아이템을 몇 개나 끼고 있는 거야.”

녀석이 착용한 온갖 장비와 아티팩트, 기타 아이템이 내뿜는 빛이었다.

척 보기에도 엄청난 물건으로 보이는 황금 갑주와 어깨에 두른 황금 망토, 얼굴을 가리는 황금 도깨비 가면.

뭔지는 모르겠지만 기하학적인 무늬가 아름답게 수놓아 있었으며, 손가락에는 마디마다 반지를 꼈다.

금반지, 보석이 박힌 반지, 악마의 얼굴이 박힌 반지.

망토에는 브로치와 배지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놀라운 건.

[신의 가호 망토 (S)]

[절대 악의 변덕 (S)]

녀석이 가지고 있는 아이템 중에는 S급도 있다는 것.

보이는 것만 저 정도니 인벤토리나 아공간 아이템에는 얼마나 더 있을지 가늠도 안 된다.

말 그대로 장비빨의 정점.

기본 A급 이상인 것들로 도배를 해 놨네.

금천황후의 계승자가 됐다더니 이렇게 된 건가.

“이, 이블아이!”

사뿐히 걸어오던 녀석이 화들짝 놀란다.

왜 놀라는 거지?

잠깐 의문이 드는 것도 잠시.

냥펀이 후다닥 달려왔다.

멀리서 봤을 때는 커 보였는데 막상 앞에 서니 엄청 크지는 않다.

옆에 핥짝이가 있어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대충 160센티미터쯤 되려나.

가면을 쓰고 있어 얼굴을 알 수 없었으나 목소리를 들어 보니 여자.

“고갱님, 일회용 무적 아티팩트를 파시려고 오신 건가요!”

아, 그거였냐.

“온 건 내가 아니라 너흰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공… 이블아이!”

“잠깐 스톱.”

이 녀석 방금 공 어쩌고 하지 않았나?

공, 공… 공듀?

설마.

“말했냐?”

찌릿, 핥짝이를 노려봤다.

어깨를 으쓱이는 녀석.

“난 말 안 했다. 얘가 대충 알고 있던 거지.”

“알긴 안다는 거네.”

“무,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난 절대 이블아이가 쁘띠공듀인 걸 모른다구.”

슬쩍 시선을 피하는 냥냥펀치.

음, 그렇구나.

“모르긴 뭘 몰라, 다 아는구만!”

“으아아아!”

바로 냥펀을 붙잡고 흔들었다.

진작 눈치채고 있었으면서 이블아이 이러고 있던 거냐!

물론 힌트를 주기는 했었다. 계승자인 것도 알려 주고 했으니까.

그건 그거고 직접 듣는 건 다른 문제.

수치심에 얼굴이 달아오른다.

-빠악!

“냥펀 괴롭히지 마, 변태 놈아!”

“어흑!”

핥짝이가 머리를 때린다.

배구 국대 출신이라 그런가. 살짝 친 것 같은데도 머리가 다 울리네.

후우, 좋다. 진정하자.

속으로는 받아들이고 있지 않았던가.

어차피 들킨 거 같으니 먼저 자수하자고.

그래, 이제 와서 우긴다고 뭐가 달라질까.

차분하게 가자. 감정 컨트롤은 자신 있으니까.

난 투구를 벗었다.

“그래. 내가 쁘띠공듀다. 됐냐! 만족해? 꼭 그렇게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어야 속이 후련했냐!”

안 되겠다, 이걸 어떻게 참아.

아, 눈물 나올 거 같네.

[정신 보호 (AA) Lv.5]

[스킬 레벨 업!]

[스킬 레벨 업!]

메시지창은 왜 자꾸 뜨고 난리야.

“오, 쁘띠공듀 얼굴 대공개.”

“하지 마라.”

“흐지 므르.”

옆에서 깐족거리는 핥짝이가 이렇게 얄미울 수가 없다.

넌 이미 내 얼굴 봤는데 왜 그러냐, 진짜.

멘탈 나갈 거 같네.

싸워서 입은 상처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큰 느낌.

“와, 충격. 그 얼굴로 쁘띠공듀로 살아왔던 거야? 흥미로운 인간 사회. 세상은 넓고 기이한 것은 많구나.”

중얼중얼 뭐라 떠드는 냥펀을 보니 마음이 미어진다.

그냥 척살단이랑 자폭하고 죽을 걸 그랬나.

지금이라도 늦지 않은 건 아닐까.

덕춘이가 뺨 한 대만 세게 때려 주면 고통도 못 느끼고 갈 거 같은데.

현타 온다.

“허허… 어허허허.”

“답답한데 잘됐다. 얼굴 정도는 보여 줘도 되잖아?”

해탈의 웃음을 흘리던 때.

핥짝이도 헬멧을 벗었다.

상쾌하게 웃는 녀석.

아무래도 얼굴을 가리고 있으면 답답하기는 하지.

나와 핥짝이가 냥펀을 바라본다. 이렇게 된 거 나만 당할 수 없지.

저 황금 도깨비 가면에 뭐가 숨겨져 있는지 봐야겠다.

그래야 분이 풀리겠어. 짐작은 가지만.

“하, 하하. 난 갑자기 일이 생겨서 이만.”

“어딜 도망가냐. 나도 네 정체 대충 알고 있으니까 그냥 까라.”

“으, 으응?”

도망치려는 녀석을 붙잡았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냥펀의 정체를 전혀 몰랐다.

강한 느낌이 온 건 헬다잉 키친 때 보송송이를 만나고부터.

지금도 긴가민가하다. 설마 이 사람이? 하는 생각도 있었고.

확인해 보면 되겠지.

핥짝이가 뒷걸음질 치는 냥펀을 붙잡은 상황.

난 인벤토리를 열어 보송송이가 준 티셔츠를 꺼냈다.

“순순히 얼굴을 공개하시지, 핑크펑크의 서브 보컬 박예은!”

“으아아악!”

본인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찍힌 티셔츠를 봤기 때문일까, 냥펀이 비명과 함께 무릎을 꿇었고.

“푸풉! 푸하하하! 어떻게 알았냐. 미치겠다, 진짜.”

핥짝이가 폭소를 터트렸다.

진짜였냐?

혹시나 했던 건데.

냥펀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가면을 벗는다.

티셔츠에 프린팅 된 얼굴과 똑같다.

“부, 부끄러워!”

“나만 하겠냐.”

“하지만 커뮤니티에서 ‘냥냥’거렸단 말이야!”

난 ‘모두들 안☆녕↗ 모두의 요정 쁘띠공듀예여!’ 이랬다.

어디서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아.

넌 그냥 부끄러운 거고 난 공개 처형인데.

사람들한테 말해 봐라.

‘짜잔! 냥냥펀치는 사실 걸그룹 멤버였답니다!’라고 하면 사람들이 ‘와! 정말로? 귀여워요!’이러겠지만.

‘짜잔! 쁘띠공듀는 사실 시커먼 남정네였습니다!’라고 하면 온갖 입에 담지 못할 단어와 싸늘한 시선이 돌아오겠지.

어디 운석 안 떨어지나… 대가리 맞고 그냥 죽게.

“넌 어떻게 눈치챘냐? 나도 보기 전까지 몰랐는데.”

“초반부터 보송송이랑 거래했었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거래한 게 너무 많았어. 다른 이유도 있고.”

슬쩍 옆으로 껴든 핥짝이의 질문에 대략적인 이야기를 해 줬다.

등반 초반부터 냥펀은 보송송이와 거래를 했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팬일 수도 있지. 굿즈를 가지고 다닐 수도 있고.

하지만 그 거래 수가 5개가 넘어간다?

심지어 골수팬인 보송송이도 모르는 내용으로 대화를 한다?

거기서부터 의심이 가는 거고.

“티셔츠에 박힌 사진도 셀카잖아.”

물론 SNS에 올라온 사진일 수도 있다.

박예은이 아니라 다른 멤버였을 가능성도 있고.

그래서 확신이 아니라 의심에 그쳤었다.

지금에 와서야 진짜였다는 게 밝혀졌지만.

그래도 의외기는 하다.

커뮤니티 멤버 중 한 명이 아이돌이었다는 게, 그것도 핑크펑크.

이래저래 유명하다.

인기가 많았던 것도 있지만.

‘강제 해체된 곳이니까.’

몬스터 웨이브로 소속사가 망하고 멤버 일부도 사망한 사건.

꽤 큰 사건이어서 뉴스에서도 나왔었다.

이후 살아남은 멤버들에 대한 근황이 없었는데 탑에 들어온 거였나.

권능으로 녀석의 정보를 살짝 읽었다.

[박예은]

-최고 등반층: 54층

-S급 권능, 안전제일 보유.

-SS급 권능, 특혜 상인 보유.

-칭호, 돈지랄 보유.

-칭호, 화조국의 황금마차 보유.

.

.

.

-자나 깨나 불조심, 물조심, 벼락 조심, 아무튼 안전한 게 최고입니다!

-금천황후의 가호를 받고 있어 자세한 정보를 읽어 낼 수 없습니다.

권능은 S급. 40층 안전지대에서 한 번 등급이 올랐을 테니 처음 얻었을 때는 AA급이나 AAA급이었겠고.

금천황후의 가호 때문에 자세한 스펙은 확인할 수 없다.

그나저나 권능도 그렇고, 설명도 그렇고, 안전제일이라.

이제야 냥펀의 행동이 이해된다.

대격변에 사고까지 당했으니… 탑에 불려온 후에도 한 번 죽었었지? 2층 코볼트한테.

트라우마가 생기고도 남을 상황.

어째서 화조국에 들어갔는지도 알겠다. 안전을 위해.

내 공략을 모아 재정리한 거?

그것도 마찬가지. 생각해 보면 누구보다 내 공략을 열심히 읽은 게 냥펀이다.

탈모맨을 피한 이유도 비슷하다.

놈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으니까.

핥짝이도 사고는 많이 치지만 어디까지나 경쟁의 영역이고.

둘이 붙어 있는 것도 강한 녀석이 옆에 있으면 안전하기 때문이겠지.

마지막으로 온갖 아이템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나한테 일회용 무적 아이템을 구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쩝. 머리를 긁적였다.

“야, 냥펀.”

“으으. 말 걸지 말라구. 멘탈 수습 중이니까.”

“일회용 무적 아티팩트 안 살 거냐?”

“하핫! 고갱님, 얼마까지 생각하고 오셨나요?”

회복 빠르네.

바로 접대용 미소와 함께 일어서는 녀석.

“다른 것들 거래할 때랑 똑같이. 거기에 하나 더.”

냥펀의 양어깨에 손을 얹고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내 정체는 누구한테도 말하지 말 것.”

“물론이지!”

그럼 됐다.

난 인벤토리에서 ‘대리 희생자 (S)’를 건넸다.

“가능하면 스킬북으로 줘. 펠라인 세트 찾는 것도 잊지 말고.”

“그럼! 신난다, 이예!”

계산은 확실한 녀석이니 알아서 잘해 주겠지.

아찔하기는 했지만 정신도 좀 들고, 포션을 마신 덕분에 상처도 얼추 아물었다.

어깨에 올라온 덕춘이가 뺨을 핥아 주면서 회복 특성을 사용하고 있기도 하고.

난 냥펀과 핥짝이를 바라봤다.

기묘한 조합.

무지개 용사 쁘띠공듀.

은갈치 헬멧 핥짝이.

황금 도깨비 냥펀.

여기에 쫄쫄이 타이즈 탈모맨까지 모인다면?

벌써부터 머릿속이 어지럽네. 무슨 대환장 파티가 벌어지는 거지.

머리를 흔들어 끔찍한 상상을 털어 냈다.

또 모른다, 지금 셋이 모이기는 했지만 계속 함께 움직일 거라는 보장도 없고.

나도 내 나름대로 할 일이 있어서 말이지.

릴카의 퀘스트도 깨야 하고, 50층대 어딘가에 있다는 지하 도시도 가야 한다.

60층에 올라가서는 릴카의 계승자가 될 예정이고.

가는 길이 같다면 모를까 갈린다면 그때는 따로 움직이겠지.

그래도 지금은…….

‘갈 길이 같지.’

녀석들이 이곳으로 온 이유.

내가 쏜 오로라 빔을 본 것도 있겠지만…….

“너희 55층으로 올라가려고 온 거지?”

“어. 여기서 한 달 동안 있을 생각은 없어.”

“나도 실적 쌓아야 된다구.”

묘하게 현실적인 이유네.

탑에서도 일을 하고 있다니.

뭐, 상관없다.

“잘됐네. 나도 막 올라갈 생각이었거든.”

“오호라. 쉽지 않을 텐데. 우리도 저 녀석한테 몇 번 퇴짜 맞았는지 몰라.”

저 녀석이라고 하는 건 볼 것도 없이 벨자트.

쑥대밭이 된 골짜기, 흔적도 없이 사라진 갈비찜에 서글픈 표정을 짓고 있다.

해골 주제에 감정 표현이 확실하네, 저 양반.

“이번에 통과하려고 준비 많이 해 왔다. 딱 보고 있어. 보여 줄 테니까.”

먼저 나선 건 핥짝이.

“해골 씨, 입 벌려.”

“또 왔구나. 마침 한층 더 공허해졌다. 뭐든 해 봐라.”

벨자트가 커다란 입을 벌렸다.

팔을 푼 핥짝이가 아공간 아이템에서 구슬을 꺼낸다.

사람 몸통만 한 무언가.

“이 근방에 있는 쓰레기랑 돌멩이는 싹 긁어모았다고. 받아 봐!”

자신만만하게 소리친 핥짝이가 압축된 구슬을 입에 던졌고.

[해제 (AAA) Lv.3]

구슬이 벨자트의 입으로 넘어가는 순간 압축을 해제했다.

급격히 커진 온갖 것이 팽창하며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하나, 둘, 셋, 준비해 온 것 모두 아낌없이 던진다.

“진짜 못됐다. 애한테 쓰레기를 먹이냐.”

“잘 먹던데.”

내 말에 냥펀이 고개를 기울인다.

처음이 아니구나?

무시무시한 녀석.

그러거나 말거나 핥짝이의 도전은 계속됐고.

“으아아! 왜 만족을 못 하는데!”

“아직 한참 멀었다. 크흐흐흐.”

기어이 모든 구슬을 먹어 치운 벨자트가 웃음을 흘렸다.

“그걸로 되겠어? 나만 믿으시지!”

다음 타자는 냥펀.

녀석이 초록색 무언가를 꺼내 들이부었다.

[말린 대왕 해조류]

-바싹 말랐습니다.

-물에 닿으면 최대 100배까지 불어납니다.

어우야.

마른미역 전법인가.

“권능으로 화조국에서 1톤을 준비해 왔다! 내 성과급의 원수. 그 대가를 받아라!”

비명 아닌 비명을 지른 냥펀이 워터 스킬을 사용한다.

그렇게 30분이 흘렀으나.

“어, 어째서?”

“해조류 맛이 좋구나. 더 주거라.”

마땅한 성과는 없었다.

연달아 실패한 녀석들이 기운 없게 비틀거린다.

“쯧쯧. 어리석은 것들, 그런 식으로 접근하면 안 되지.”

드디어 내가 나설 차례인가.

“우우! 너라고 다를 거 같아?”

“갑옷만 반짝이면 다야? 어? 인생의 쓴맛을 봐라!”

응원은 못 해 줄망정 이것들이.

됐다. 실패자들의 아우성 따위.

“벨자트, 저주를 풀지 않고 식탐을 없애고 싶다고 했죠?”

“가장 이상적인 그림이기는 하지.”

“곧 이루게 될 겁니다.”

아쉽게도 박재경이 쓰라 했던 조리 기구들은 전투 중에 망가진 상황.

그래도 괜찮다. 있는 대로 쓰면 되지.

헤그릭의 기본 레시피를 살피며 내가 가지고 있는 재료들을 조합했다.

방패를 불판으로.

깨끗하게 닦아 낸 투구를 냄비로.

겉보기에는 괴상했지만 그럭저럭 요리는 순탄하게 진행되었고.

“오오오오! 생각보다 제대로 했는데?”

“모야, 공듀 요리 스킬도 있었어?”

“군침이 도는구나.”

꽤 그럴듯해 보이는 스테이크와 스튜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가지고 있는 재료를 아낌없이 쓴 만큼 양도 제법 되고.

감탄하는 녀석들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직 한 단계 남았습니다, 마법의 소스.”

뽕.

아공간에 놔뒀던 포션을 부었다.

이런 건 왜 존재하나 싶었던 물건.

[맛없어 포션]

-음식에 뿌리면 음식이 맛없어집니다!

-물로 씻어도 우엑!

-양념을 둘러도 웩웩!

-다이어트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혹시 몰라서 10병 넣었다.

보기만 해도 소름 끼치는군.

완성된 요리를 들었다.

자.

어디 한번 이것도 먹어 보시지.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