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초대
공허의 기사, 벨자트.
녀석은 공허의 저주로 채울 수 없는 허기를 느낀다.
도대체 어떤 놈한테 저주를 받았길래 NPC씩이나 되는 녀석이 이 꼴이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좀 더 이야기를 해 봐야 할 거 같다.
아직 박재경이 오지도 않았고, 헬다잉 키친에서도 별다른 연락이 없으니.
“배를 채우고 싶다 이거군요.”
“그렇지. 보다시피 안이 텅텅 비어서 말이야. 하하하하!”
제 딴에는 재밌는 농담이었는지 호탕하게 웃는 녀석.
그냥 모른 척 넘어가고 싶었지만 퀘스트로 연계될 가능성이 있으니 참고 들어야겠지.
“지금이야 이런 모습이지만 나도 한때는 뼈와 살이 있었지. 아, 지금도 뼈는 있구나. 흐흐하하! 그땐 꽤 잘 생겼었다고. 그놈의 저주만 아니었다면 말이지.”
“저주라 하면?”
“공허의 저주.”
어떻게 저주에 대해 이끌어 낼까 했는데 알아서 말해 준다.
“뭘 먹어도 굶주림을 느끼는 건데, 이게 참. 영혼에 각인된 저주라 내 힘으로는 풀 수가 없어. 사실 풀어도 문제지만.”
까득. 까드득.
턱뼈를 달그락거리며 웃던 그가 텅 빈 눈동자로 날 응시한다.
“내가 이 꼴인데도 살아 있는 건 저주 때문이거든. 뼈밖에 안 남았는데 움직이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아쉬워. 조금만 더 빨리 강해졌으면 이 꼴이 되기 전에 저주를 푸는 거였는데.”
“그렇긴 하네요.”
하긴, 언데드 형태의 NPC는 본 적이 없다.
난감하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라.
이건 내가 아니라 벨자트의 의지가 중요하다.
‘저주를 없애 드리겠습니다!’ 해 봤자 녀석이 거부하면 그만이니까.
사실 저주를 푸는 방법이 있는지도 의문이고.
NPC는 적어도 상위층까지 오른 존재. 아직 50층대에 머물고 있는 내가 해결할 가능성은 낮다.
낮은데…….
“벨자트, 공허의 저주를 풀고 싶습니까?”
어쩌면 적당하게 조절은 할 수 있을 거 같다.
아직 확신은 안 들지만.
“풀고는 싶네만 죽고 싶지도 않군. 아이러니하지. 이것 때문에 그렇게 고통받았건만 놓을 수 없다니.”
그 말을 시작으로 벨자트가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내뱉었다.
저주를 받게 된 이유, 허기를 채우기 위해 흙을 파먹었던 일화.
거대한 산맥에 터널을 뚫을 정도로 흙을 씹어 삼켰지만 허기는 사라지지 않았고, 이성을 잃은 나머지 동족까지 먹은 것도.
죄를 지어 추방당한 후에는 암살에 시달린 것도.
결국에는 암살자마저 잡아 먹었지만.
“난 죄가 많아. 지금도 짓고 있지. 내가 왜 제약을 받았느냐. 배고픈 나머지 등반가까지 잡아먹었기 때문이야. 우습지 않아? 이러고도 살고자 하니 얼마나 추한가.”
“추하다라… 살고 싶은 거에 추한 게 어딨습니까. 죄를 지었으면 그만큼 벌을 받고, 피해 본 사람들에게 속죄하기 위해 노력하면 되는 거지.”
예로 들자면…….
“어흠. 퀘스트를 준다든가, 보상을 준다든가. NPC인 만큼 해 줄 수 있는 건 많을 거 같은데.”
“크흐흐흑! 그래. 나를 구해 준다면 인정은 물론이고 그 이상의 것을 주지.”
“진짜입니까?”
“물론. 가능하다면 말이야.”
구구국.
벨자트가 고개를 숙여 날 바라본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말이야. 자네라면 다를까?”
“해 보죠.”
“건방진 녀석, 마음에 든다.”
[벨자트의 인정-돌발 퀘스트]
-NPC 벨자트는 공허의 저주에서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동시에 죽고 싶은 마음은 없죠.
-저주를 풀지 않은 채 저주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게 만드세요.
-보상: 포탈 생성, ???
퀘스트가 생성되었다.
그동안 수많은 퀘스트를 받아 왔지만 이번 것처럼 모호한 내용은 없었다.
저주를 풀지 않고 저주에서 벗어나게 하라니.
쉽지는 않겠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지.
몇 가지 떠오르는 방법이 있다. 테스트가 필요할 것 같은데.
“일단 배 속에 얼마나 들어가나 봅시다. 혹시 압니까. 저주에도 한계가 있을지.”
“내 이야기를 듣고도 그런 말이 나와? 먹어 치운 산맥만 여러 개다.”
“아뇨. 제대로 들은 거 맞습니다. 굳이 음식이 아니더라도 다 먹는다는 거 아닙니까. 입 벌려요.”
“아니. 그런 뜻이, 으그그그극!”
난 곧장 벨자트의 입에다가 워터를 발동했다.
깔때기라도 꽂아 넣고 싶지만 그렇게 커다란 건 없어서 말이야.
콸콸콸 들어가는 물.
마력이 절반이 될 때까지 들이부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
“좀 배가 차는 거 같아요?”
“별 느낌 없는데.”
“오케이, 다음 거 갑니다.”
이번에는 흙이다.
흙을 파먹고 살았었다니 잘 먹겠지 뭐.
방패를 하나 꺼내 삽 대신 사용했다.
타워 쉴드라 그런지 듬뿍 퍼지네.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읍읍읍!”
그가 반항했지만 그래 봤자 팔다리 묶인 해골바가지.
도리질 치는 녀석의 입에 흙을 계속해서 퍼넣었다.
무려 반나절 동안.
일대는 엉망진창. 벨자트도 흙투성이가 된 상태.
“아, 역시 안 되네.”
“안 된다고 했잖아!”
“말로만 듣는 거랑 직접 해 보는 거랑 다르잖아요.”
단순히 노동만 한 건 아니다.
한 가지 확인해 볼 게 있어서 그렇지.
벨자트의 반응과 이야기.
모든 것을 종합했을 때 이상한 점이 느껴졌다.
방패를 대충 털어 낸 뒤 그를 바라봤다.
“벨자트, 배가 고파서 먹습니까. 아니면 먹고 싶어서 먹었는데 만족이 안 되는 겁니까.”
“음?”
얼핏 보면 선문답 같은 질문.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주자.
“이성을 잃어서 사고를 쳤다고 했죠. 식탐 때문입니까, 아니면 굶주림 때문입니까?”
“미묘한 질문을 던지는군.”
미묘하겠지. 서로 연관이 없는 문제가 아니니까.
중요한 건 행동 원리.
식탐과 굶주림.
무엇이 선행되는지가 중요하다.
벨자트는 NPC. 게다가 죄를 지어 추방당한 인물.
척살 대상에 올라 암살 시도를 당하기도 했으나 결국에는 살아남았다고 했다.
그만큼 강하다는 이야기.
대체로 NPC가 될 정도의 인물은 정신력이 강하다.
그런 그가 참지 못하는 게 무엇이냐.
“자세히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몇 가지 잡히는 건 있군. 나도 저주를 받자마자 이런 꼴은 아니었으니까.”
잠시 고민에 빠진 그가 입을 열었다.
“뭔가를 먹고 싶었다. 속이 공허해서 뭐라도 먹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지. 엄밀하게 따지자면 배고픔은 나중에 찾아왔어.”
“그거면 충분합니다.”
그럴 것 같았다.
정말 굶주림 때문에 미쳐 버린 거였으면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것도 불가능했을 거다. 배는 계속 고플 테니까.
충동적으로 찾아오는 강한 식욕, 그게 문제였다.
처음 초콜릿을 줬을 때도 그랬다.
더 달라고 했었지. 반면에 물과 흙을 먹였을 때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굶주림이 문제였으면 초콜릿이든 돌덩이든 줄 때마다 더 달라 했어야지.
방법을 찾은 그때.
“왔군.”
“그에에.”
난 고개를 돌렸다.
인기척이 느껴진다.
아직 거리가 있지만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대상.
“어이고, 형씨! 먼저 와 있었구만!”
“잘 찾아왔네.”
박재경이다.
나보다 좀 더 먼 곳에 떨어진 모양.
그래도 제때 와서 다행이다.
“오호. 새로운 인간이군.”
벨자트가 관심을 보인다.
지금까지 녀석의 인정을 받은 사람은 없다.
굳이 이곳에 찾아올 이유가 없다는 것.
그런 찰나에 나와 박재경이 등장했으니 반가울 만도 하다.
“와, 크네. 뭡니까 이 해골바가지는?”
“54층의 NPC 벨자트다.”
“NPC였수? 실례했수다. 난 또 보스몹인가 했지.”
박재경 이 녀석도 은근히 빡구가 없단 말이야.
보스몹은 너무한 거 아닌가.
“으하하하! 그래도 자네는 말이라도 걸어 주는구만. 어디 알록달록한 녀석은 말을 걸어도 귓등으로도 안 듣고 내 입에 흙을 퍼 넣고 그랬는데.”
내가 더 너무했었구나.
아무튼.
“형씨, 헬다잉 키친 가기까지 시간이 남았나?
“많이는 아니고 1시간 좀 안 될 거야.”
“그 정도면 충분하지. 가기 전에 손이나 좀 풀고 갑시다. 거, 듣자 하니 초대받으면 뭐라도 들고 가야 한다던데.”
“헬다잉 키친 대표와 선물 교환이 있다고 했었지.”
“내가 따로 돈은 없어서 좋은 건 못 사. 장비도 내가 쓸 것만 있어서 줄 게 없고, 대신…….”
-쿠웅
박재경이 인벤토리에서 갖가지 조리용품을 꺼냈다.
그릴과 냄비, 따로 병에 담아 둔 조미료.
오면서 잡은 거로 보이는 볼케이노 리자드의 살코기. 그 외 따로 준비해 둔 식재료가 즐비하다.
“가서 요리라도 해 주면 되지 않겠수. 파티라매, 먹고 마시는 건데 딱 좋지.”
“어… 그런가?”
요리는 그곳에서 준비해 줄 거 같은데.
살짝 신경이 쓰였으나 너무 자신에 차 있는 표정이라 말을 못 하겠다.
그래. 이런 것도 상관없겠지.
“나도 도와줄까?”
“형씨도 준비한 거 없소?”
“난 있지. 그냥 스킬 레벨이나 좀 올릴까 해서. 옆에서 배우면 더 좋고.”
“흐하하하! 좋지. 손질부터 갑시다.”
흔쾌히 허락하는 녀석.
샤워 스킬로 옷과 장비를 깨끗이 했다.
“뭘 하면 되지?”
“손질부터 해 주쇼. 먼저 찜부터 하려니까.”
찜이라. 괜찮지.
난 헤그릭에게 배웠던 대로 손질을 해 나갔고.
“거긴 근막 떼야 합니다. 질겨요. 뼈는 따로 빼 두시고.”
간혹 실수할 때면 알려 주기까지.
10년 넘게 요리를 해서 그런가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면서도 시야가 넓다.
그렇게 30분.
그럴싸한 요리가 완성되었다.
“냄새 좋고, 플레이팅은 신경 쓰지 마시고 맛이나 봐 봅시다.”
“그에엑.”
가장 먼저 반응한 건 덕춘이.
냉큼 큼지막한 고기를 입에 넣었고.
“그에에에!”
“맛있나 보네.”
“흐하하! 맛을 아는 개구리라니까.”
만족스러운 울음을 토해 냈다.
나도 한 입.
“크으, 녹는다. 양념이 제대로네.”
“그럼, 누가 만든 건데.”
안 그래도 땅 파느라 힘들었는데 잘됐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는 타이밍.
“그, 나도 한 입만 나도 먹을 수 있다!”
“맞네. 덩치 큰 양반을 잊고 있었구만.”
벨자트가 소리쳤다.
턱을 타고 흐르는 침.
침샘도 없으면서 어디서 나오는 거야.
됐다. 해골이 말도 하는데 침 나오는 걸 따져서 뭐 해.
“뭘로 드릴까. 이 부위가 맛있는데.”
“아무거나 상관없다! 그냥 줘!”
“그럴 수야 없지. 첫입이 가장 중요합니다. 맛있는 걸로 골라 줄게요.”
박재경이 큼지막한 대접에 고기를 고른다.
벨자트가 뭐라 소리치던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런 쪽으로는 고집이 있단 말이지.
그런데…….
-띠링.
[헬다잉 키친 파티가 곧 시작됩니다.]
[VIP와 동행자를 전송합니다.]
“야, 우리 가야 한다. 준비해.”
“엥? 지금? 거기! 덩치 큰 양반! 여기 두고 갈 테니까 알아서 드쇼!”
초대는 때를 가리지 않았다.
급하게 내려놓은 대접.
박재경이 그나마 손에 닿는 조리기구를 챙긴다.
나와 박재경이 사라지는 찰나.
“어, 어디 가! 나 묶여 있다고! 이 나쁜 놈들아─!”
벨자트의 비명이 들렸던 것도 같다.
* * *
조현수와 박재경이 헬다잉 키친으로 전송된 시점.
벨자트가 있는 골짜기에는 일단의 무리가 모여 있었다.
인기척을 죽인 채 은신해 있는 이들.
그들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했다.
“사라졌습니다!”
“벨자트의 인정을 받은 걸까요?”
척살단.
조현수를 처리하기 위해 연합한 이들이 난색을 표했다.
공격 대상이 사라졌으니 난감할 수밖에.
남은 거라고는 무엇인가 담겨 있는 냄비와 그곳을 향해 발버둥 치는 벨자트뿐.
“벨자트의 인정을 받은 건 아닐 거다.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그렇고 사라지기는 했지만 포탈이 생성된 건 아니야.”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거겠군.”
“우리를 눈치채고 도망쳤을 가능성은?”
“그건 아닐 거다. 그동안의 행적을 살폈을 때 먼저 공격했으면 했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어.”
온갖 추측이 난무하는 상황.
예상치 못한 전개에 의견이 갈리기도 했지만 결론은 같았다.
“갑작스럽게 사라진 만큼 이 자리에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챙기지 못한 물품들도 있는 걸 보니 본인들도 몰랐다는 거겠지.”
박재경이 조리를 위해 빼 두었던 기구 몇 개가 굴러다니는 상황.
저 둘도 갑작스럽게 이동됐음을 암시했고.
“차라리 잘됐어. 지금부터 함정을 판다. 놈들이 돌아왔을 때 절대 피할 수 없도록.”
각국에서 모인 척살단들은 사냥 준비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