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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216화 (216/740)

216화 너 언제 들어왔어?

덕춘이가 주문한 메뉴는 헬다잉 키친의 스페셜Ⅲ.

가격이 상당했지만 나도 돈을 꽤 모아서 이 정도는 부담스럽지 않았다.

나와 헤그릭, 박재경은 밖으로 나와 있는 상태.

산장 안에서 먹을까도 했지만.

“비좁은 데서 뭐 하러 먹어. 어차피 스페셜 세트 정도면 서비스하는 애들 확실할 텐데.”

헤그릭의 밖에서 먹자고 제안. 그러기로 했다.

동의한다. 전에 알리오스와 페니와 함께했을 때도 규모가 제법 컸거든.

눈보라가 치기는 하지만 그들이라면 알아서 대처할 거라고 믿는다.

헬다잉 키친이 처음인 박재경은 잔뜩 기대한 상황.

“벌써부터 두근거립니다, 그려. 팔자 풀렸어. 탑에서 출장 뷔페를 다 먹어 보고.”

“이번 기회에 잘 봐 둬라. 좋은 경험이 될 게다.”

“걱정 마우. 내 그럴라고 아침부터 굶었응게.”

“…아까 통구이 하나 먹지 않았냐?”

“그건 간식 아닙니까, 스승.”

시답잖은 잡담을 나누는 둘을 보며 입꼬리를 올리던 때.

“왔다.”

헤그릭이 허공을 바라보면 말했다.

처음에는 느낄 수 없었지만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

-우우우우웅!

“반갑습니다, VIP 고객님. 50층대 지부장을 맡고 있는 체키 프랑켄이라고 합니다.”

허공이 열리며 일단의 무리가 내려왔다.

단순히 내려오기만 했느냐.

[안전가옥 (S) Lv.MAX]

“오우.”

스킬을 사용해 일대를 변화시키기까지.

경계가 생겨나더니 추위와 눈보라를 막아 줬다.

바닥 또한 축축하지 않게 말랐으며, 함께 온 다른 이들이 재빨리 움직여 테이블과 식기, 간이 주방을 설치했다.

이 모든 것이 완료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해야 10초.

맨 앞에 선 NPC가 예를 갖춰 인사했다.

“쾌적한 식사를 위해 세팅을 하였으니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체키 프랑켄- NPC]

-헬다잉 키친 50층대 이하를 관리하는 지부장.

-완벽한 서비스!

-완벽한 계산!

-먹튀는 하지 마세요.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겁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냥 NPC 중 한 명인가 싶었지만…….

‘어째 낯이 익은 모습인데.’

처음 보는 건 확실했지만 비슷한 NPC를 봤던 거 같다.

체키 프랑켄.

종잇장 같은 하얀 피부에 뿔 두 개는 잘려져 있었으며, 붉은 머리카락은 뒤로 땋았다.

옷이야 정장을 입고 있지만.

어디서 봤더라.

아…….

“고객님은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게일에게 이야기를 들은 게 있어서 말이죠. 보다시피 전 제4마계 출신입니다.”

“백귀였군요, 반갑습니다.”

그도 눈치챘는지 먼저 말을 건넨다.

백귀. 39층 노역장에서 착취당하던 악마 중에도 있었다.

게일한테 연락을 받았다니… 둘이 친분이 있던 건가.

생각해 보면 처음 만났던 관리자도 악마였지. 제4마계 출신은 아닌 거 같았지만…….

설마 헬다잉 키친은 악마들로 이루어진 곳인가.

괜히 궁금해져 질문을 던졌고.

“그건 아닙니다. 악마뿐만 아니라 천사, 요정, 수인 등등, 다양한 종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요리 앞에 종족은 아무런 의미도 없죠.”

“당연한 말이지. 헬다잉 키친이란 그런 곳이니까.”

“정정하신 것 같아 마음이 놓입니다, 헤그릭 님.”

중간에 끼어든 헤그릭을 본 체키 프랑켄이 미소를 짓는다.

헤그릭도 이곳 출신이라 했었지.

‘님’이라고 부르는 걸 보니 꽤 높은 직위에 있었던 것 같은데.

“자네도 잘 지내는 것 같군.”

“헤그릭 님한테 여러모로 많이 배운 덕분이죠.”

“으하하하! 퇴물이나 다를 바 없는 사람한테 아부가 심하군. 이보게, 이블아이. 이 친구는 내가 잠시 빌려도 되겠지?”

“전 서비스를 드리기 위해.”

“괜찮아, 괜찮아.”

막무가내로 끌고 가는 헤그릭.

체키가 난감해했지만 난 갔다 오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심 기뻤는지 체키가 입꼬리를 올린다.

둘은 알아서 하고.

“우리는 즐겨 볼까?”

“좋습니다. 배도 채우고, 거 뭐냐. 얼마나 대단하신 양반들인지 확인 좀 해 보겠수.”

바구니에 담긴 바게트를 집은 박재경이 간이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요리에 진지한 녀석이니까.

권능도 그렇고, 성격도 그렇고.

덕춘이는…….

“궤에에엑!”

“그래, 우리 덕춘이 한결같아서 참 좋아.”

식탁에 올라가 애피타이저를 입에 넣고 있다.

아예 담당으로 NPC 한 명이 붙기까지.

서비스 정신 최고구먼, 개구리도 손님이라고 저렇게 대해 주다니.

이게 바로 프로 의식인가.

난 박재경 옆으로 붙었다. 예전이라면 별 신경 안 썼겠지만, 이제는 나도 요리 스킬이 생겼으니 숙련자들이 어떤 식으로 요리하는지 지켜볼 예정.

조리 과정도 서비스 중 하나라 이건지 주방은 오픈되어 있었고, 중간중간 화려한 불 쇼를 보여 주기도 했다.

“손목 스냅 쥑이네. 거기 셰프님, 거거 노란색 잎은 뭡니까?”

“73층에 서식하는 향초입니다. 알싸하지만 끝맛이 써서 불로 죽여야지요.”

“오오! 73층이란 말이지. 오케이, 기억해 뒀다.”

열심히 이것저것 물어보는 녀석.

셰프들도 관심을 받는 게 싫지는 않은지 은은하게 웃으며 친절하게 답을 해 준다.

나야 뭐.

[프레쉬 벙커]

-50층대 상부에 군락을 이루어 서식하는 식물

-상쾌한 맛이 일품!

-많이 먹으면 폭풍 설사!

-적당히 먹도록 합시다.

[마마 호두]

-고소하지만 기름집니다.

-기름을 짜낼 경우 고급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가시 상어의 꼬리]

-탱탱한 살결!

-가시를 제대로 제거하지 않으면 목에 걸릴걸요?

-스테미너 회복에 좋습니다.

따로 물어볼 거 없이 권능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못 보던 게 많다.

고기든 채소든 견과류든 가릴 것 없이 확인했다.

단순히 파악만 한 게 아니라 어떤 재료들을 배합하는지도.

머리가 핑핑 돈다.

프로라 그런가 손길에 망설임이 없다.

효과는 확실하지만 독성이 있어 서로 중화시켜야 하는 것도 있고, 섞어서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도 있고.

잠깐이라도 놓치면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기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치이이익

별안간 요리 속도가 줄었다.

불 세기도 조절하면서.

“헬다잉 키친은 언제나 고객님께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고맙습니다.”

“별말씀을요.”

내가 관심을 가지고 보는 걸 깨달은 셰프가 일부러 속도를 늦춰 준 거였다.

이 정도까지 배려를 해 주나.

꽤 즐거운 시간이 될 것 같다.

* * *

요리 구경 이어 식사까지.

어느 것 하나 아쉽지 않은 시간이 흘러갔다.

헤그릭이 술까지 꺼내 와서 마셔 댔으니 말 다 했지.

덕춘이에게는 주지 않았다. 또 무슨 짓을 할지 몰라서.

“아따, 여기 기가 막힙니다. 어떻게 이런 곳을 알았대. 덕분에 많이 배우고 잘 먹었수다, 형씨.”

“덕분이지. 네가 날 초대하지 않았다면, 요리 스킬도 못 얻었고 뷔페를 부를 일도 없었으니까.”

“것도 맞구만. 흐하하!”

배를 두드리며 호탕하게 웃는다.

박재경 이 녀석 새삼 느끼는데 대식가다.

앞에 놓인 그릇만 몇 개인지.

셰프들도 신기한 눈으로 보고 있다.

“식사는 마음에 드셨는지요?”

“훌륭했습니다.”

식사가 마무리된 타이밍. 디저트와 커피, 차를 가지고 온 체키가 물어온다.

“VIP님께서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힘을 좀 썼지요. 메글릿한테는 썩 좋은 감정이 없어서요.”

제4마계에 있었던 통합 전쟁.

원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황귀는 통합을 거부하고 다른 종족을 짓밟았다.

백귀도 그중 하나고, 사이가 좋을 리가 없지.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럼요.”

“저번 주문 때 VIP 초대권을 받으셨을 겁니다. 약 3일 후 연회가 열릴 예정이죠. 보통은 하루 전에 알려 드리지만 이렇게 온 거 직접 알려 드리고 싶었습니다.”

기억난다.

인벤토리에 있는 물건.

[헬다잉 키친 파티 초대권]

-선별된 고객에게 건네주는 물건

-맛보고 마시고 즐기고!

-VIP의 특권을 누려 보세요!

언제 부르나 했더니만 지금이었구먼.

체키 프랑켄이 살짝 고개를 숙여 속삭인다.

“파티에는 각 VIP와 파트너십을 맺은 자들이 모입니다. 그중에는 세력을 이끄는 자들도 있죠.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팸플릿을 건네준다.

“몇 가지 이벤트가 준비되어 있죠. 대표님과 선물을 교환하는 이벤트도 있는데, 강제는 아니니 가벼운 마음으로 오셔도 됩니다.”

선물 교환이라.

평범한 것들은 아닐 거고.

“가져간다면 요리와 관련된 거로 가져가야겠죠? 재료나 술이나 조리용품이나.”

“대부분 그렇죠. 개인적으로는 참가하시는 걸 추천합니다. 연회는 어디까지나 고객님들을 위한 자리, 무엇을 준비하시든 그 이상의 것을 얻을 겁니다.”

팁을 주는 거다.

연회에 참석해서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권능으로 본 정보.

계산은 확실하다, 이런 뜻이었나.

이렇게까지 말해 준다면 준비하지 않을 수가 없네.

그건 그렇다 치고.

“할 말 있으면 해, 기웃거리지 말고. 신경 쓰이니까.”

“어흠, 어흠! 그런가? 거, 말씀 중에 실례입니다만 저도 혹시 갈 수 있습니까?”

은근슬쩍 옆으로 다가온 박재경이 묻는다.

이미 헬다잉 키친에 푹 빠져 버린 상태. 오고 싶겠지.

도와주자. 나도 녀석 덕을 봤으니.

조언이 없었다면 지금까지도 헤그릭의 인정을 받기 위해 뒹굴고 있을지 몰랐다.

“동행자가 있으면 외롭지 않을 것 같네요. 가능할까요?”

“내 제자가 간다고 하면 싫어할 놈은 없을 걸세.”

헤그릭도 한마디 거든다.

“원칙상으로는 불가능합니다만…….”

곤란한지 손끝을 비비던 그가 나와 헤그릭을 바라본다.

“이것 참, 거절하기 힘든 분들이 모여 있네요. 동행자 한 명 정도는 제 권한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초대장을 따로 드릴 수는 없으니 두 분이 함께 계셔야 합니다.”

“그건 걱정 마쇼!”

“그러도록 하죠.”

오케이, 좋게 끝나서 다행이다.

이걸로 마무리는 끝났고.

“그럼 다음 만남을 기대하겠습니다.”

서비스가 종료되는 것과 함께 체키 프랑켄이 손을 뻗었다.

일순간에 정리되는 공간.

-우우우우웅

공간이 일그러지며 출장 나온 NPC들이 사라졌다.

등장만큼이나 자연스러운 퇴장.

나도 가야 할 시간이다.

“헤그릭,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바로 가는 거냐? 일주일 동안 가르친다고는 했지만 곧장 가다니… 에이잉.”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안다, 가져가.”

헤그릭이 뭔가를 던진다.

작별 선물 같은 건가?

총 두 개.

하나는 낡은 공책, 하나는 메달?

겉으로 보기에는 허름한 것들이었지만 권능을 통해 본 정보로는 아니었다.

“이건…….”

“뭐가 됐든 내 가르침을 받지 않았더냐. 내 얼굴에 먹칠은 하지 말아야지.”

[헤그릭의 기본 레시피]

-NPC 헤그릭이 기본을 다지기 위해 적어 놓은 레시피 수첩

-뭐든 기초가 탄탄해야 합니다!

[헤그릭의 제자 증명 메달]

-헤그릭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걸 증명하는 메달

-몇몇 NPC가 호감을 가질지 모릅니다.

곧 떠날 사람이라고 제자로는 안 받아 준다더니.

츤데레인가.

“그냥 주는 거 아니다. 여기 이놈, 강하기는 해도 어벙해. 네가 옆에서 좀 도와줘라.”

“스승!”

퍽, 하고 헤그릭이 박재경을 내게 민다.

그 말은…….

“이제 그만 올라가. 언제까지 여기 박혀 있을 거야. 오늘 느끼지 않았느냐. 아직 넌 갈 길이 멀었다.”

“그렇긴 하지만…….”

“가라면 좀 가라. 꼭 말을 두 번 하게 해. 콱, 그냥!”

“아, 좀! 훈훈한 분위기 만들어질라 카는데 왜 그라요.”

소매를 걷어 올리며 때릴 자세를 취하자 박재경이 움츠러든다.

멀리서 보면 그저 만담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알 것 같다.

그들만의 작별 인사인걸.

“안 그래도 갈라 했습니다… 짐도 다 싸 뒀고.”

“잘했다. 너한테는 레시피는 의미가 없을 테니 메달만 가져가거라.”

“에이, 남사스럽고로. 어차피 스승 계승자인데 그거면 됐지.”

“이놈 새끼, 내가 그거 말하지 말랬지! 말을 안 들어!”

“아악! 살살, 살살 쳐요!”

곧장 박재경을 두들겨 패던 헤그릭이 스윽, 날 바라본다.

“그, 자네.”

“압니다. 계승자인 건 비밀로 하죠.”

“고맙구만.”

“건강하십쇼.”

하여튼 이걸로 끝.

나와 박재경은 산장을 떠났다.

* * *

눈이 쌓인 공간.

걸어온 길이 눈에 뒤덮인다.

“형씨, 만년 서리 수정으로 갈 거지? 아직 올라온 지 한 달 안 됐잖아.”

“그래야겠지.”

53층을 클리어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한 달을 버티든가.

[만년 서리 수정에 흔적을 남기시오.]

만년 서리 수정이라는 것을 찾아 흔적을 남기는 것.

“나야 이미 포탈이 열렸지만 그짝은 아니니까. 내 안내해 주지, 길은 잘 알거든.”

“그렇겠지. 헤그릭한테 배우고 있었으니 여기에 한 달은 넘게 있었을 텐데.”

“한 달이 뭐야, 10년도 넘었구만.”

“생각보다 오래, 뭐?”

10년이요?

“너 언제 탑에 들어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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