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화 요리의 자격
꾸벅 고개를 숙였다.
처음 인상은 근육질에 머리숱이 아쉬운 산적이었지만 불손한 생각이었다.
무려 요리 스킬을 가지고 있는 귀하신 분이거늘.
동시에 내 스승이기도 하지.
암, 그렇고말고. 정했다. 스승님께 반드시 요리 스킬을 받아 낼 것이다.
그런 내 진심을 전하기 위해 투구를 벗고 진지한 눈빛을 보낸 건 덤이었다.
헤그릭이 얼굴을 쓸어내린다.
그러다 버럭, 주방에 있는 박재경에서 소리를 질렀다.
“야, 이 멍청아! 대체 어떤 놈을 데려온 거야!”
“요리하는 데 방해하지 마십쇼! 나 지금 식칼 들었습니다?”
“이 자식이, 스승이 말하는데! 으휴.”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박재경에게 호통을 치던 헤그릭이 한숨을 내쉰다.
골이 아픈지 관자놀이를 누른다.
그러면서도 내 위아래를 살피는 건 잊지 않았다.
“다짜고짜 요리 스킬이라니. 알아, 등반가치고 이 스킬을 탐내지 않을 자는 없지.”
“그렇습니다, 스승님!”
“누가 스승이야!”
빼액 소리를 지른 그가 의자에 걸터앉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의 뒤로 다가가 어깨를 주물렀다.
“머저리는 한 명이면 족한데 어디서 또 이런 꼴통이 들어온 거지.”
“하하, 이블아이입니다!”
“하이고.”
어허, 덕춘아 뭐 하냐.
나도 이러고 있는데 너도 뭐라도 해야지.
“궤에에에.”
귀찮은지 울음소리를 흘리던 녀석이 헤그릭의 머리 위로 올라가 마사지를 해 준다.
옳거니! 역시 덕춘이다. 두피 마사지를 할 줄이야.
“어흐음, 시원하구만.”
처음에는 경계하던 헤그릭도 안마와 마사지가 마음에 드는지 은근슬쩍 거부하지 않고 즐기고 있었다.
나도 한때 회사를 다니며 사회생활을 했던 사람이다.
대격변 이후로 만들어진 회사라 개판인 곳이었는데, 업무 능력보다는 상사들 기분 맞추는 게 더 중요한 곳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진절머리가 나지만 이렇게라도 써먹을 수 있다니 다행.
“그, 이블아이라고 했나.”
“예, 맞습니다!”
“성의를 보이는 건 좋아, NPC라고 거리 두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들고. 그런데 요리 스킬이란 건 아무한테나 주는 게 아니야.”
까딱.
그만하고 오라는 제스처에 바로 그 앞에 섰다.
“상점창이든, 개인 거래든, 사냥을 통해서든 요리 스킬을 얻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나? 시도해 봤다거나.”
“찾아보기는 했었는데 못 찾았죠.”
“그렇겠지. 요리 스킬은 일반적인 것들과 달리 전수되는 거니까.”
전수?
새로운 형태의 스킬이다.
그러고 보니 박재경도 요리 스킬을 전수받았다고 했었지.
난 헤그릭을 스승으로 삼는다기에 요리를 배우는 줄 알았더니만, 말 그대로의 의미였다.
“드문 케이스지. 겪어 봤을지는 모르겠지만 스킬 중에는 특이한 방식으로 익혀야 하는 것들이 있거든.”
“전수는 아니었지만 그런 스킬을 하나 배우기는 했어요.”
“오, 귀한 걸 얻었나 보군.”
내가 가지고 있는 스킬 중 하나.
심연의 눈동자. A급 스킬이었고 상대가 마주하기 싫은 끔찍한 환상을 보여 준다.
효과는 확실하지만 한 가지 색다른 점이 있었으니.
‘나도 익힐 때 보기 싫었던 환상을 봤지.’
모두의 앞에서 쁘띠공듀인 것이 들통나는 환상.
다시 생각해도 끔찍하다.
이 스킬을 사용하고 싶다면 본인 스스로 그럴 만한 사람인지 증명하라.
이런 느낌이었다.
“한 번 겪었다니 말이 통하겠어. 요리 스킬을 배우기 위해서는 요리를 할 자세가 됐는지 확인을 해야 해. 왜냐 전수받고 일정 수준까지 도달하면 자네도 다른 사람한테 스킬을 전수할 수 있거든.”
“그게 정말입니까? 일정 수준이라 하시면…….”
“S등급. 참고로 맨 처음 전수받았을 때 요리 스킬 등급은 C등급이네.”
“그렇군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식으로 스킬의 명맥을 이어 나가는 건가.
등반가 사이에서 퍼지지 않은 이유도 알 것 같다.
다른 경로로 얻는 건 불가능. 전수받아야만 가능한데 자격이 있는지 확인 절차도 거쳐야 하고, 혹여나 통과하더라도 다른 이에게 주려면 S등급까지 성장시켜야 한다.
여러모로 널리 퍼지는 데 제약이 있다.
그렇겠지. 다른 것도 아닌 몬스터를 식재료로 쓸 수 있는 스킬인데.
“과연 자네가 자격을 지니고 있을까?”
헤그릭이 입꼬리를 올린다.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야 느낀 건데, 이 산장.
‘대부분이 식재료와 조리 용품으로 차 있어.’
한평생 음식에 몰두한 자의 포스가 느껴진다.
꿀꺽, 침을 삼켰다.
“저기 저 녀석도 머리는 텅텅 비었지만 최강의 요리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 자네도 그 수라장을 걸을 준비가 되어 있나!”
“있습니다!”
난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째서 최고의 요리사가 아니라 최강의 요리사가 목표인지는 모르겠지만.
“후후. 기세는 좋구나.”
흥미가 동했는지 자리에서 일어선 헤그릭이 날 내려다본다.
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존재감.
뭘 테스트하려는 걸까.
“묻겠다.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냐.”
“청결?”
“그딴 건 여유가 넘칠 때나 신경 쓰는 거다, 멍청아!”
아니, 위생은 지켜야지.
“우리는 전장에서 밥을 먹고 핏물에 손을 씻는다. 실전 요리란 그런 거야! 평안한 삶 속에서의 요리를 원하면 요리 학원을 가라.”
그가 내 어깨에 손을 얹는다.
“자급자족. 적자생존. 요리사의 기본 마음가짐이다.”
“아, 예.”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 중하느냐. 재료를 얻을 힘! 살아남을 힘! 강해야 한다. 강력한 몬스터일수록 맛있는 건 불변의 진리지.”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그가 말했다.
이래서 최강의 요리사를 운운했던 거구만.
살짝 질렸지만 맞는 말이다.
단순한 요리를 할 거면 냄비에 라면이나 끓이지.
내가 원하는 건 마물이 가득한 곳에서 배를 채우는 거다.
“자격 증명 첫 번째, 강함을 증명하라.”
-쿠구구구구!
투기가 나를 압박한다.
한없이 진지한 표정.
당장이라도 싸울 듯한 분위기.
“스승, 걔 강해! 빙극태웅도 혼자서 잡어.”
“간만에 분위기 잡는데 껴들지 말어!”
…였는데 박재경의 말에 깨지고 말았다.
무안한지 헛기침을 한 헤그릭이 다시 내게로 눈길을 돌린다.
“아무리 그래도 확인은 해야지.”
“실력을 보여 드릴까요?”
“그것도 나쁘지 않다만 요리할 때 싸우는 건 경우가 아니야.”
인정한다. 괜히 날뛰다가 주방에도 여파가 미치면 안 되니까.
“두 번째 자격 증명과 함께 확인하지. 자네가 요리에 관심이 있었다는 걸 봐야겠어. 평범하게 등반하는 자들은 식재료가 될 만한 걸 가지고 다니지 않지.”
그가 입가를 비튼다.
절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얼굴.
하긴, 보통 그렇기는 하다.
“보여 주시게. 자네가 가지고 있는 식재료를. 직접 잡은 거로 말이야. 어디 보자. 강하다는 것도 확인해야 하니 최소 5성급 이상인 것만 인정하겠네. 없으면 끝, 밥만 먹고 나가게.”
나는 아니지만.
인벤토리와 보물 주머니에서 식재료를 꺼냈다.
다름 아닌…….
[메스토카 유충의 살덩이]
-말랑합니다!
-미식가 사이에서는 귀한 음식 재료로 손꼽힙니다.
40층대에서 얻었던 살덩이와.
[크라켄의 촉수]
-탱탱한 식감!
-고오오오급 식재료입니다.
-안의 힘줄을 가공할 시 채찍과 화살 시위로 만들 수 있습니다.
51층을 오르며 챙겼던 촉수.
혹시 몰라 2개 챙기길 잘했다.
“이, 이건!”
“이 정도면 되겠지요. 5성급과 6성급 몬스터한테 얻은 거니까요.”
“크윽.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군.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가 손을 펼친다.
“요리하면 손질! 자네, 도축 스킬 등급이 어떻게 되나!”
“A등급입니다.”
“제에엔장!”
주먹을 내지른 그가 입술을 깨문다.
“그, 그렇지. 요리사는 불을 무서워해서는 안 되는 법. 화기 내성 스킬은 어떻지?”
“B등급이요.”
“하하! 고작 B등급으로 되겠나!”
맞네.
깜빡하고 있었다. 52층을 지나면서 화기 내성이 많이 올랐다. B등급 10레벨까지였나.
난 상점창에서 쿠폰을 사 등급을 올렸다.
하는 김에 전격 내성도 A등급으로 승급.
“이제 A등급입니다.”
“크으으윽!”
당당히 스킬창 목록을 공유해 보여 주자 그가 몸을 부르르 떤다.
“거, 스승! 추합니다. 그냥 인정해요.”
“닥쳐! 이건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난 결코 쉽게 요리 스킬을 준 적이 없어!”
“그게 고집이라는 겁니다. 덩치는 산만 해 가지고 속은 좁싸라기 같네.”
“이놈이!”
나이스, 박재경.
주방에서 요리하면서 서포트를 잘해 준다.
첫인상은 미묘했는데 볼수록 호감이네.
“끄으응. 다음, 뭐로 할까. 옳지! 자네가 진심으로 먹는 데 관심이 있다면 전용 식기는 있겠지? 설마 없나? 하하하하! 없나 보군!”
눈을 찌푸리는 날 보고 득의양양해진 헤그릭이 호탕하게 웃는다.
식기라.
이건 진짜 없는데. 도시락을 사면 일회용 식기가 같이 나와서 따로 챙겨둔 게 없…….
잠깐만.
하나 있잖아.
처음에는 이딴 것도 보상인가 했던 물건.
[가니안이 사용한 숟가락]
-영웅 가니안 자히무스가 애용하던 은수저
-목숨을 내놓고 사는 이들에게는 무수히 많은 미신과 징크스가 존재합니다.
-평범한 은수저지만 가니안에게는 아니죠.
48층, 데니엄의 퀘스트를 완수하고 얻었던 숟가락.
그걸 본 헤그릭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잠시 비틀거리다가 의자에 주저앉기까지.
“이럴 수가… 말도 안 돼.”
“말이 됐네요.”
나도 될지는 몰랐지만.
꺼냈던 것들을 챙기고 손을 내밀었다.
“요리를 하고 싶습니다, 스승님!”
“으으으음!”
고뇌에 빠진 듯 팔짱을 낀 채 신음하는 헤그릭.
일단은 기다려 보자.
옆에서 부추긴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니까.
뭐가 됐든 선택권은 그에게 있다.
“요리 다 됐소. 거, 스승. 의자에 박혀 있지 말고 소주나 좀 꺼내와 봐요.”
“때액! 아주 맡겨 놨구나!”
“감자탕 비슷한 거 만들어서 그라요. 여기에 소주 한잔 털면 기가 막힌다니까.”
박재경이 커다란 냄비를 식탁에 올리며 턱으로 어딘가를 가리킨다.
소주가 있는 곳이겠지.
스승한테서 뜯어내면 된다는 게 이런 뜻이었나.
그의 말마따나 감자탕과 흡사한 비주얼.
이걸 탑에서 볼 줄은 몰랐네.
나도 모르게 침이 넘어갔다.
“냄새 좋네.”
“거럼, 누가 만들었는데. 그건 그거고. 아! 반주 안 할거요?”
“저저, 스승한테 말하는 본새 보소!”
“싫음 마시고. 나중에 후회하지나 마십쇼.”
“간다, 가. 거기 너! 아직 결정한 거 아니니까 설레발치고 있지 말어.”
괜스레 나한테 경고를 날린 그가 자리를 비운다.
털썩, 자리에 앉은 박재경이 피식 웃는다.
“요리에 관심 있으시다고?”
“아무래도 필요할 거 같아서 말이지.”
“맞는 말이지. 잠만 와 보슈.”
그가 가까이 오라며 손짓한다.
상체를 숙이자 헤그릭이 사라진 곳을 슬쩍 보고는 속삭이는 녀석.
“저 양반 고집이 장난 아닙니다. 나도 몇 번을 빠꾸 먹었는지 몰라. 자격 증명? 저거 다 꼬장 부리는 거요. 인정받을 방법은 따로 있지.”
똑!
그가 술 넘기는 시늉을 한다.
“자고로 요리란 각자 생각하는 게 있거든. 스승은 음식과 함께 술을 즐기는 거야말로 미덕이라 여기지. 나도 소주 하나 주고 제자가 됐어. 탑에 들어올 때 편의점 들렀다 가는 길이었거든.”
“그 말은…….”
“괜찮은 술 하나 주면서 살살 달래 보쇼. 알코올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는 양반이니까.”
“다 들린다, 요놈아!”
-빠악!
“어이쿠, 사람 잡네!”
언제 돌아왔는지 한 손에 소주를 쥔 헤그릭이 박재경의 머리통을 친다.
소리 한번 살벌하네.
오랜만에 보는 초록색 병.
짧게 혀를 찬 헤그릭이 조심스레 병을 내려두고 박재경을 노려본다.
“스승이 콩고물이나 얻어먹으려는 소인배로 보이냐.”
“맞잖아요.”
“콱, 씨!”
험험. 분위기를 환기시킨 그가 감자탕을 그릇에 떠 주며 넌지시 물었다.
“그렇기는 해도 내 마음에 들 만한 술을 준다면 성의를 봐서라도 전수할 수 있지. 요거, 이세계의 술만큼이나 귀해야 할 거야.”
하긴 NPC 입장에서는 우리가 이세계인이겠지.
그나저나 술이라.
마침 괜찮은 것들이 있다.
이거면 되려나.
45층. 치히린에게서 얻은 술.
[요정의 꿀벌주]
-요정계 파티하면 빠질 수 없는 술!
-달콤하다고 막 마시면 금방 취할걸요?
-요정계가 멸망하면서 더욱 귀해졌습니다.
“한잔하시겠습니까?”
“오냐, 제자야. 한 잔 가득 부어 보거라.”
[NPC, 헤그릭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