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210화 (210/740)

210화 부지런한 놈들

탈모맨이 대수롭지 않게 던진 말.

녀석이 94특임대 출신이었다고?

“어이가 없는데 부정은 못 하겠어.”

“그에에에.”

그동안 워낙 말도 안 되는 짓들을 보여 줘서.

나만큼이나 난동을 부리며 올라온 게 탈모맨이다.

6층에 올라와서도, 10층 투기장 이벤트가 끝나고 나서도, 이후 30층대에서 난리가 났을 때도 녀석은 대형 길드와 맞서 싸웠다.

뻘짓을 해서 그렇지 등반 속도도 어마어마하고.

파격적인 행보를 거듭한 녀석.

뭐 하다 온 놈인가 했더니만.

출신이 94특임대라면 이해가 된다.

94특임대는 알지 못했지만 정부 소속 헌터들이 공략 불가 판정을 받은 게이트를 여럿 깼다는 이야기는 들어봤다.

인터넷에 떠도는 말에 따르면 정부 소속 헌터 중에 루키에 비견되는 괴물들이 있다는 말이 있었는데, 진짜였을 줄이야.

[냥냥펀치]: 너 군인이었어? 탈모라더니 빡빡이였던 거신가!

[정수리 핥짝]: 뭐야, 그럼 너도 저러는 거 알고 있던 거냐. 탈모 새끼가 말을 안 해!

[니머리 탈모]: 아니… 안 물어봤잖아. 그리고 나도 잘 몰라. 중간에 퇴출당해서

“퇴출?”

[니머리 탈모]: 말 안 듣는다고 쫓겨남 ㅎㅎ. 씨이이뿔 놈들은 낭만이 없어.

[정수리 핥짝]: 오, 네가 그렇게 말하니 그럴싸한걸?

[냥냥펀치]: 나였어도 쫓아냈음 ㅇㅇ.

[니머리 탈모]: …? 이래 보여도 나름 엘리트였는데? 딱히 꿀리는 거 없었음.

[냥냥펀치]: 역시 탈모맨. ‘모’자람이 없다!

[정수리 핥짝]: ㅋㅋㅋㅋㅋ 왜 쫓겨났냐.

다른 멤버들도 궁금했는지 질문을 던진다.

난 대충 짐작이 가지만.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 정보.

[김진성]

-닉네임: 니머리 탈모

-권능: 괴력난신怪力亂神 (S)

-미친놈입니다. 하지만 낭만파죠. 도망치세요!

내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놈보다 먼저 등반하려고 했던 원인.

어떤 일이 있었는지 대충 짐작이 간다.

[니머리 탈모]: 아니, ㅁㅊ놈들이 민간인을 미끼로 토벌하래자너.

[니머리 탈모]: 웃대가리들이 이게 문제임. 사람을 숫자로 보니까 이 ㅈㄹ 나지.

언뜻 단순해 보이는 놈이었지만 하는 행동을 보면 공통적으로 보이는 게 있었다.

아니다 싶은 건 정면으로 부딪치고, 신념에 어긋나면 상대가 누구든 덤빈다.

은근히 정이 많아 뻘짓도 많이 하고.

당장 45층 선택 구간에서도 NPC 두 명을 모두 구하고 올라오지 않았는가.

나 말고는 탈모맨이 유일할 거다.

내가 치히린과 모빌리딕을 구했을 때 서버 최초로 두 NPC를 안전지대로 데리고 왔다고 메시지가 떴었으니까.

[냥냥펀치]: 오… 쪼큼 멋있다냥!

[정수리 핥짝]: 탈모만 아니었으면 완벽한 남자……!

[니머리 탈모]: 누누이 말하지만 난 탈모가…….

[쁘띠공듀]: 탈! 모! 탈! 모!

[니머리 탈모]: ㅂㄷㅂㄷ.

[쁘띠공듀]: 그래서 94특임대가 어떤 곳인가요?

[니머리 탈모]: 거기? 음, 그니까…….

이 부분이 중요하다.

다른 나라의 척살단은 어떤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지 알 방도가 없다.

인맥도 없고, 관련 정보를 아는 사람도 없으니.

하지만 비슷한 성질의 집단이라면 94특임대와 얼추 통하지 않을까.

[니머리 탈모]: 대충 일반인 신분으로 몬스터를 잡는 곳? 각성한 대원들은 따로 움직여서 뭐 하는지 잘 모르겠고.

[니머리 탈모]: 크으… 지나고 보니 추억이네. 오크랑 맨손으로 주먹질하고 그랬는데.

“미친놈이네 이거.”

일반인일 때부터 몬스터랑 싸웠다고?

아니, 총이라도 들던가. 왜 주먹으로 싸우고 그래.

[정수리 핥짝]: 총은 네 머리에 쏘느라 갖다 버렸냐. 그걸 맨손으로 잡고 앉았네;

[니머리 탈모]: 어허, 낭만이 없구나. 사나이의 뜨거운 마음을 모르고.

[정수리 핥짝]: 두 번 뜨거웠다가는 따뜻한 시체 될 듯.

[냥냥펀치]: 근데 탈모맨 지금도 맨손으로 싸우지 않냥?

[니머리 탈모]: 건틀렛 꼈는데요?

[정수리 핥짝]: 그것참 듬직한걸? ^^ 대가리 깨 버리고 싶네.

[쁘띠공듀]: 핥짝이의 정수리 사랑은 식지 않는군요!

[정수리 핥짝]: 너도 조심해 ㅎㅎ.

[쁘띠공듀]: 뾰… 뾰로롱! 저는 이만.

이후에도 탈모맨의 이야기는 계속되었고 종합적으로 이야기를 정리해 보자면…….

“일반인 때부터 실전을 겪고 탑을 올라가는 사람들. 사실상 대형 길드의 루키에 근접한 지원과 경험을 쌓았다라… 각성하고 나서는 주요 전력으로 사용되고.”

그뿐만이 아니다. 단순히 몬스터를 토벌하는 일 외에도 대테러 활동 및 침투 작전도 겸행하는 모양.

사실상 각성자로 이루어진 전투 집단이나 다를 바 없었다.

일반인으로서는 불가능한 일들도 참여한다고 하니.

사냥과 대인전 모두 능한 자들.

어째서 이들이 50층대에서 설치는지 알 것 같다.

그럴 만한 능력이 차고 넘쳤다.

[쁘띠공듀]: 아! 여러분, 아마 다른 나라 사람들도 잘못된 튜토리얼 공략법을 봤을 가능성이 큽니다. 근처 친한 외국인 친구가 있다면 한 번씩 찔러 보아욧!

마지막으로 연합 사람들에게 한 가지 메시지를 보내고 커뮤니티를 껐다.

피해를 본 건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니까.

이왕 터트리는 거 놈들이 한 다른 짓도 퍼트리자고.

분명 어딘가 있을 거다. 나나 이준석처럼 정부와 대형 길드의 눈길을 피해 백환을 먹지 않은 자들이.

그동안은 숨죽이고 활동한 것 같지만 지금부터는 다르다.

“50층 정도 왔으면 힘이 생기거든. 내가 올린 공략법도 읽을 수 있고. 혹여나 보복당할 수도 있지만…….”

나를 비롯한 탈모맨과 핥짝이, 냥펀, 그 외 연합 사람들이 50층대를 올라오며 약탈자와 척살단을 부숴 버릴 테니 적어도 탑에서는 걱정 없이 움직일 수 있을 거다.

어쩌면 밖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높은 곳에 오를 수도 있겠지.

제대로 된 공략이 생기며 새내기들의 생존율이 급격히 높아진 것처럼.

여기까지는 좋다, 문제는…….

“슬슬 멸망의 과도기에 접어들었다는 것도 알려야 하는데. 그냥 말하면 애매하겠지?”

“그에에.”

한국 헌터들이야 내 말을 신뢰하니 그렇다 쳐도 다른 나라 사람들은 아니다.

쁘띠공듀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

이건 나에 대한 신뢰가 쌓였을 때 푸는 게 맞을 것 같다.

어정쩡하게 정보를 풀어 봤자 묻힐 뿐이니까. 되려 해외 길드와 정부의 압박을 받을 수도 있다.

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결국에는 해외 헌터들도 내 말을 신뢰하기 시작할 테니.

어떻게?

“공략을 풀어야지.”

“궤엑.”

공략자 보상을 위해서라도 그래야 한다.

그러고 보니 이것도 슬슬 다음 보상을 받을 때가 됐는데.

난 칭호 정보를 켰다.

[공략자- 칭호 (성장형)]

-올 스텟 +30

-행운 스텟 +15 (행운 스텟은 일반 스텟과 별개로 적용됩니다.)

-신성력 스텟 +20

-현재 공헌도: 241점 (250점 도달 시 보상이 이루어집니다.)

9점만 더 모으면 된다.

나쁘지 않네. 이제는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공략을 뿌릴 수 있으니.

앞으로 행보는 정해졌다.

딱히 달라진 건 없다. 평소처럼, 하던 대로 하는 것이 정답이니까.

외출은 여기까지.

현자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자.

슬슬 오델토가 부활할 때가 됐다.

* * *

현자가 은거하는 용암 동굴.

그 안으로 들어가자 초췌한 표정의 존 트레일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완성됐나요?”

“자네가 핵을 준비해 준 덕분에 빨리 끝났지. 방금 영혼 이식을 마쳤네. 곧 눈을 뜰 거야.”

현자가 옆을 가리킨다.

사람과 무척이나 닮았지만 묘하게 다른 인형.

가장 큰 특징이라면 몸에 새겨진 수많은 마법진과 핵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

여기까지는 그렇다 치는데.

“뭐죠. 성형이라도 한 겁니까?”

왜 애가 잘생겨졌냐.

난 오델토의 초상화도 봤다. 그것도 화가가 보정을 해 줘서 미남으로 나왔는데 이건 거의… 꽃미남?

“자고로 호문쿨루스는 빼어난 미모를 가지고 있는 게 국룰이라네.”

“국룰이라는 단어는 어디서 들은 거예요, 대체.”

“허허허. 다른 세계의 언어를 배우는 것도 즐거운 일이거든.”

됐다, 그러려니 해야지.

사소한 거 따져서 뭐 할까.

난 적당한 짐꾸러미에 걸터앉았고.

-파아아아앗!

[오델토가 호문쿨루스로 재탄생합니다!]

[새로운 NPC가 생성되었습니다!]

[놀라운 광경을 목도!]

[탄생 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혼돈 수치 +2점]

[오델토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칭호, 호문쿨루스의 친구를 획득합니다.]

강렬한 빛과 함께 오델토가 몸을 들썩였다.

수많은 메시지가 떠오른다.

혼돈 수치에 칭호까지.

[호문쿨루스의 친구- 칭호]

-호문쿨루스가 우호적으로 다가옵니다.

-일정 수준 이하의 마법 생명체, 키메라와 크리쳐가 두려움을 느낍니다.

나쁘지 않은 효과다.

칭호는 일단 접어 두고.

“다시, 살아났구나.”

“살아난 걸 축하한다, 오델토.”

“너무 늦게 그대의 부탁을 들어주었군, 미안하네.”

나와 현자는 오델토를 환영했다.

비록 그가 있던 세계가 아니라 탑이지만 그의 염원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고.

“아닙니다, 현자님.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대, 어… 뭐라고 해야 하지요?”

“이블아이라고 불러.”

“이블아이 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는 녀석.

그래도 살아 있을 때는 귀족이었을 텐데 예의가 바르다.

하긴 생명의 은인인데, 그렇고말고.

날 이렇게 대우해 주는 NPC는 오델토가 유일할 거다.

“곧 헤이다도 봉인이 풀릴 거야. 우린 잠시 비켜 주죠? 둘이 할 말 많을 거 같은데.”

난 현자를 보며 말했고.

“좋은 생각이네. 늙은이가 주책맞게 분위기를 망칠 뻔했구만.”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은 현자가 먼저 방을 빠져나왔다.

오델토랑을 아직 주고받을 게 있어서 난 이따가 나갈 생각.

“퀘스트를 정말 깨 주실 줄 몰랐습니다.”

“말했잖아, 깰 수 있다고.”

“그럼 보상을…….”

“뭐가 그리 급해. 퀘스트 달성 조건은 헤이다와 만나는 것까지잖아.”

“그, 그렇죠. 정식으로 NPC가 된 건 처음이라.”

“긴장 풀고 이거 받아라.”

보물 보따리를 열어 예쁘게 포장된 상자를 건넸다.

미리 사 뒀던 물건.

“내가 샀다 하지 말고 네가 준비했다 그래.”

“이건…….”

별건 아니다.

그냥 애플파이.

헤이다가 이걸 좋아하더라고.

오델토가 촉촉한 눈으로 애플파이가 담긴 상자를 바라보더니 날 보며 미소 짓는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다.”

“뭘 또 그렇게까지야. 뒷일은 알아서 잘해. 1시간, 아니다. 대충 3시간 뒤에 돌아올 테니까.”

난 대충 손을 흔들고 방을 나섰다.

오랜 시간 떨어져 있던 둘의 재회를 방해하기 싫은 것도 있었고…….

“나도 나대로 할 일이 있어서.”

척살단. 그놈들부터 조져야지.

얼른 만나면 좋겠다. 아주 작살을 내 버리게.

용암 동굴 밖에 서 있는 현자에게 3시간 후에 들어가자는 말을 남기고 필드를 걸었다.

* * *

여전히 뜨거운 공기.

화갑룡은 브레스를 내뿜고, 악마는 낄낄거리며 허공을 난다.

어디로 가야 놈들을 만날 수 있을까.

어디긴 어디야.

“여기 근처 어딘가에 있겠지.”

척살단의 목적은 타국의 강자를 없애 국가 전력을 깎는 것.

단순히 한 달을 버텨 위로 올라가려는 사람이 아니라 용암 동굴로 오는 사람을 노릴 게 분명했다.

[카르탄 산맥 용암 동굴의 조각상을 복원하시오.]

이게 또 다른 52층 클리어 조건이니까.

용암 동굴로 향하는 초입.

고지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고.

“부지런하기도 하지. 어떻게 바로 만나냐.”

“그에에.”

30분 정도가 흐른 시점.

일전에 봤던 괴한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본의 척살단, 오니노츠메 소속의 헌터들.

-스르릉

난 검을 뽑았다.

저번에는 그냥 가게 내버려 뒀지만 지금은 아니다.

난 은밀하게 놈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고.

[오델토의 부탁 클리어!]

[퀘스트 보상이 지급됩니다.]

[특수 조건을 만족했습니다.]

[추가 보상이 지급됩니다.]

타이밍도 좋지.

헤이다가 깨어났는지 퀘스트 완료 알림이 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