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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207화 (207/740)

207화 현자

대양의 봉우리. 바다. 51층.

그래. 이런 게 나올 줄 알았다.

경험상 각 층대의 첫 번째 층에는 스킬북이 있었고 그건 이곳도 마찬가지.

[봉우리에 도달한 자에게 보상이 주어집니다.]

[수중 호흡 (B)]

이게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스킬.

재밌네.

바다 밑으로 내려와야 수중 호흡 스킬을 얻을 수 있다니.

순서가 잘못된 것 같지만 불만은 없다.

탑이란 곳에선 도전 없이 얻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난 바로 스킬을 익혔고.

“후우우우. 확실히 편하네.”

물속에서 숨을 쉬는 신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미묘한 감각. 일반인으로 있었다면 결코 겪어 보지 못할 경험이다.

이것만으로도 괜찮은 보상이기는 하다만.

[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고작 이것만 있을 리가 없지. 크라켄이 지키고 있는 곳인데.

권능이 발동하며 빛무리가 번진다.

봉우리 한구석에 있는 암초에 가려져 있는 물건들.

[숨겨진 보상을 발견했습니다.]

50층대라 그런가 주는 것도 많다.

[수중 시야 (E)]

-물속에서도 시야가 선명해집니다.

[대양의 옥석 (S)]

-풍부한 바다의 기운!

-격동하는 생명력!

-대양의 옥석이 있다면 죽은 바다도 되살아날지 모릅니다.

-호사가들의 수집품, 장인들의 재료로도 사용됩니다.

-해양 몬스터가 공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수중 시야를 익히자 시야가 좀 더 선명해진다.

아무리 신체 능력이 좋아도 물에 의해 사물이 굴곡져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어서.

억지로 뜨고 있느라 따가웠던 눈도 지금은 안 아프다.

대양의 옥석 이거는 뭐…….

“대박이네.”

자그마치 S급 아이템이다.

용도도 다양하니 상황에 맞춰서 쓸 수 있겠지.

단순히 팔 생각은 없다.

냥펀과 거래를 틀기도 했고, 이번에 약탈자들을 털어먹은 덕에 돈이 풍족하니까.

처분하지 않은 아이템들도 있으니 실제로 가지고 있는 돈은 더 많다고 봐야지.

어디 보자.

[보유 포인트: 1,302,000포인트]

백만 단위를 찍었다.

이 정도면 뭐, 어디 가서도 부자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매끼 스페셜 도시락만 먹어도 남는 금액.

“궤에!”

“그렇게 한다고는 안 했다.”

“그에에.”

살짝 기대했다가 시무룩해지는 녀석.

먹는 거로 쪼잔하게 군다고 말해도 어쩔 수 없다.

대략 백만 포인트.

많다. 이전이라면 상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그때야 뭐. A급 장비도 벌벌 떨면서 쓰던 때니까.

그래 봤자…….

“스킬 승급하고, 제작 재료 사고, 장비 업그레이드 하다 보면 금방 털린단 말이야.”

스킬 승급에 사용하는 쿠폰들.

실버 등급만 해도 7,000포인트였고, S급으로 승격시킬 수 있는 골드 쿠폰 같은 경우에는 10,000포인트에 구매해야 한다.

지금 쓰고 있는 A급 이상 스킬들을 모두 S급으로 승격시키려면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할까.

앞으로 익힐 스킬들과 아직까지 A등급에 오르지 못한 스킬들까지 전부 다 하면……?

“못해도 수십만 포인트는 그냥 깨지겠는데.”

일반적인 헌터라면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다.

주력으로 사용하는 것들만 올리고 나머지는 놔두는 경우가 많으니까.

스킬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사용해야 하기에 필요한 것들 위주로 쓰는 게 보통이다.

마력도 부족할 거고…….

하지만 나는 다르다. 마력량 자체가 말도 안 되게 많을 뿐더러.

[SS급 권능, 스킬 합성]

권능을 사용해 스킬북을 재료로 다른 스킬의 레벨을 올릴 수도 있다.

즉, 모든 스킬의 등급을 S급으로 맞추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라는 말.

재료로 사용되는 스킬북이 어마어마하겠지만…….

내가 괜히 냥펀과의 거래 대금의 반을 스킬북으로 받는 게 아니다.

추가적으로 스킬북을 상점창에서 사면 또 얼마나 포인트가 나가려나.

벌써부터 징그러워진다.

텅장이 자꾸만 떠오르는 건 착각일까.

후우. 이건 차차 생각하기로 하고.

“올라갑시다.”

“궤에.”

[포탈에 진입합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포탈에 발을 집어넣었다.

[크라켄이 사망했습니다.]

[5분 뒤 새로운 크라켄이 생성됩니다.]

넘어가기 직전, 크라켄을 잡았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위에서도 잘 해낸 모양.

그럼 번잡스러워지기 전에 떠야지.

비린내 나는 곳아, 잘 있어라.

-우우우우우웅

완전히 포탈에 몸을 담은 채 눈을 감았고.

부유감과 함께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을 때는.

[52층에 진입합니다.]

[52층-분사焚死]

“어우야.”

화끈한 열기가 나를 반겼다.

* * *

52층의 죽음은 분사.

타 죽는 것.

이곳을 클리어하기 위한 조건은.

[한 달 동안 버티시오.]

[카르탄 산맥 용암 동굴의 조각상을 복원하시오.]

“이번에도 한 달 살기냐.”

예전에, 세상이 이 꼴 나기 전에는 어디 가서 한 달 살기가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탑에서도 그걸 보게 될 줄은 몰랐네.

한 달 버티기든, 용암 동굴이든 지금은 관심이 없다.

“이틀 남았어.”

인벤토리에 넣어 둔 오델토의 영혼 인형과 헤이다가 봉인된 장치를 확인했다.

봉인이 풀리기까지 남은 시간은 이틀.

52층에 왔다고 끝난 게 아니다. 현자, 존 트레일러를 만나서 오델토를 부활시켜야 끝나는 거지.

-치이이익

검게 죽은 땅을 걸을 때마다 겉면이 부서지며 시뻘건 내부가 발자국처럼 남는다.

곳곳에 치솟는 불길.

10층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열기다.

지옥불이나 다를 바 없는 곳.

하늘은 재가 날아올라 어두컴컴하고, 유독 가스가 차올라 있는지 숨을 쉴 때마다 목이 따끔하다.

화기 내성을 제대로 올리지 않은 사람이라면 버티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곳이었지만.

“덥긴 한데 버틸 만하다.”

“그으으에.”

적어도 나는 참을 만했다.

[화기 내성 (B) Lv.5]

[독 내성 (A) Lv.2]

독 내성까지 반응하는 걸 보니 진짜 유독 가스가 같이 있는 모양.

[워터 (D) Lv.2]

-화아아악!

워터로 물을 쏟아냈지만 생성되기가 무섭게 증발해 버린다.

목이나 축이려 했더니만.

이곳의 난이도도 미쳤다.

살인적인 열기에 땀도 계속 나는데 물은 제대로 마시지도 못한다니…….

나야 상관없지만.

[프로즌 브레이크 (AAA) Lv.1]

-치이이이익!

물이 아니라 얼음덩어리를 만들어 내면 조금은 더 버텼다.

이때 냉큼 물을 마시는 거지.

“그에에에.”

덕춘이도 이때다 싶었는지 혀로 할짝댄다.

예전이었으면 힘들어했을 녀석인데 지금은 비교적 여유로운 모습.

성장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화륵

덕춘이가 몸에 불을 두른다.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겠지.

화염 특성이 있는 만큼 열기에 내성을 가지고 있는 건 당연하고.

불덩이처럼 변해 버린 덕춘이를 어깨에 달고 주변을 살폈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 하늘은 별 하나 없이 캄캄한데 대지는 불타오른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거대한 산.

그곳에서 흘러내리는 용암.

오, 저기 화갑룡도 있다. 오랜만에 보니까 반가울 지경.

그리고…….

“키르르륵!”

까맣게 생긴 악마형 몬스터까지.

50층부터는 악마종이 나오는 건가.

정보를 살폈다.

[소악마]

-5성급 몬스터

-요정계에는 요정이, 마계에는 소악마가 있죠!

-작다고 무시하면 사지가 절단될지도 모릅니다.

-태세 전환이 빠릅니다.

기껏해야 요정과 비슷한 덩치건만 5성급 몬스터다.

삼지창에 뾰족한 꼬리, 날개를 퍼덕이는 게 딱 악마 하면 떠오르는 모습.

“키하아악!”

놈이 빠르게 접근하더니.

“키하아아아.”

내 앞에서 재롱을 부렸다.

뭐야, 얘 왜 이래. 버근가?

[악마의 친구]

-악마들이 우호적으로 다가옵니다.

-대악마의 가호를 받고 있습니다. 일정 수준 이하의 악마들이 두려움을 느낍니다.

버그는 아니었다.

칭호의 효과였을 뿐.

39층. 게일을 도와주고 얻었던 칭호다.

쓱쓱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영광이라도 되는 듯 부르르 몸을 떨며 굽실거리는 녀석.

옳지. 착하다.

손.

“캭!”

냉큼 손을 올린다.

“영특하네. 데려다 키울까?”

“그에에에.”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는 덕춘이.

농담이다. 몬스터를 애완용으로 키울 수는 없지.

악마종은 따로 날 공격할 생각이 없는 거 같고, 굳이 덤빌 만한 놈은 화갑룡 정도인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몬스터가 더 있을 수 있으니 확정 지을 수는 없지만.

마음 같아서는 더 놀아 주고 싶지만 갈 길이 바쁘다.

“너 혹시 현자가 어디 있는지 아냐? 존 트레일러.”

“키햑?”

말한다고 알아들을 리가 없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난 인벤토리에서 아켄인 젬을 꺼냈다.

[중급 아케인 젬 Arcane gem (A)]

-과거 92층까지 올랐던 현자 존 트레일러의 작품

현자와 관련된 물건은 이것뿐이다.

오델토의 영혼 인형한테 길을 물어볼까도 했는데 힘이 다했는지 반응도 없고.

“키, 키히히힉!”

다행히 이 녀석은 뭔가 아는 눈치인데.

발작하듯 뛰어오른 녀석이 부들부들 떤다.

두려워하는 기색.

난 소악마 앞에 아케인 젬을 들이밀었다.

5성급 몬스터는 강력한 만큼 지능도 높다.

1성급 몬스터인 고블린도 집단생활을 하고 함정을 파는데 5성급이면 오죽할까.

“이거 만든 사람 알고 있어?”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어디서나 보디랭귀지는 통하는 법.

어떻게든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키에에에.”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소악마가 가리킨 곳은 붉은 암석으로 뒤덮인 공간.

산맥으로 향하는 길이다.

저곳에 있는 건가.

“오케이. 고맙다.”

적당히 답례로 보물 주머니에서 막대사탕을 꺼내 쥐여 줬다.

보통 사탕이 아니다. 특별한 처리가 되어 있어 이 열기에도 녹지 않는 아이스 사탕이지.

영문을 몰라 고개를 기울이는 녀석을 놔두고 움직였다.

덕춘이한테도 사탕 하나를 물려 준 건 덤.

* * *

그렇게 1시간.

중간중간 마주친 화갑룡과 지옥견, 라바 골렘을 물리친 끝에 암석 지대에 도착할 수 있었고.

“그대를 기다리고 있었네.”

한 NPC를 만날 수 있었다.

기척 없이 나타난 노인.

하얗게 센 머리카락과 눈썹.

주름이 진 얼굴이었지만 몸은 건장하다.

NPC의 상징인 푸르게 빛나는 심장을 지닌 채 뒷짐을 지고 있던 그가 나를 바라보더니 덕춘이에게 시선을 던진다.

“징조가 나타났다 하더니 진짜였군.”

“당신이 현자 존 트레일러입니까?”

“맞네. 현자라는 칭호는 부끄러우니 넣어 두시게나. 오델토와 헤이다를 데리고 갔다는 등반가가 자네겠지.”

“어떻게 아셨어요?”

“미약하지만 그들의 기운이 느껴져. 그에게는 마음의 빚이 있지, 따라오게.”

툭 말을 뱉더니 뒤돌아 걸어간다.

무방비한 모습이지만 내가 기습해서 이길 만한 대상은 아니다.

누가 뭐라 해도 90층대에 올라간 사람이니까.

생각보다 일이 쉽게 진행된다.

혹시나 다른 NPC들과 만났을 때처럼 싸우지는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현자라 그런가. 그래, 현자 하면 현자 타임이고, 평화의 상징이지.

암, 그렇고말고.

덕춘이가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무시했다.

그것보다…….

“용암 동굴로 향하는 길인데요, 여긴?”

“잘 봤네. 내 은신처가 그곳에 있지. 나중에 위로 올라가면 도움을 주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오델토와 헤이다를 데리고 와준 자이니.”

산맥 입구. 바위로 이루어진 곳에는 동굴 입구가 여러 개 나 있었다.

52층 클리어 조건 중 하나는 용암 동굴에 있는 조각상을 복구하는 것.

볼일을 마치면 어렵지 않게 올라갈 수 있을 거 같다.

“저… 오델토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오델토는 왜 죽은 겁니까? 원래 계획이었다면 그 전에 빠져나왔어야 했는데.”

“그와 만나기로 한 날, 탑의 부름을 받았다네.”

“아…….”

바로 이해했다.

타이밍 한번 제대로 꼬였다.

기껏 준비해서 계획을 짰더니 현자가 탑에 끌려갈 줄이야.

“그때 지키지 못한 약속을 이제야 지킬 수 있겠군.”

은신처에 도달했는지 존 트레일러가 앉으라고 손을 뻗는다.

생각보다 조촐한 공간.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들과 실험실로 보이는 방, 척 보기에도 복잡해 보이는 수식으로 가득한 책이 펼쳐져 있다.

정리 정돈이 잘된 편은 아니었고 현자 역시 그렇게 생각했는지 머리를 긁적였다.

“손님을 들인 지 오래돼서 좀 어지럽다네. 편한데 앉게나. 크흠.”

그냥 치우기 귀찮아서 놔둔 거 같은데.

미리 마중까지 나온 양반이 손님이 올지 몰라 안 치웠다는 게 말이 되나.

물끄러미 바라보자 헛기침을 하며 외면한다.

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저 말고도 누가 왔었나 보네요?”

난 적당한 곳에 앉으며 물었고.

“바깥 기준으로 10년도 전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왔었지. 아직도 이름을 기억하네. 구황모, 김성탁, 배문호… 그 밖에도 몇 명 더 있었지.”

“오, 생각보다 많이 왔었…….”

잠깐만.

구황모, 김성탁, 배문호?

그거.

“대형 길드장들 이름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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