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화 냥펀과의 거래
51층.
대다수의 헌터들이 통과하지 못하는 구간이 50층대다.
1년에 나타나는 S급 헌터는 전 세계를 다 합쳐도 기껏해야 4명 정도.
60층에 발이라도 걸쳤다가 탑 밖으로 나오는 사람이 그 정도 된다는 거다.
실상은 60층대에서 멈추지 않고 더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 거지만.
그렇게 따지더라도 50층대의 난이도가 미쳤다는 건 변함이 없다.
서버가 통합되며 50층에 들어선 사람 숫자만 수백 단위. 이 중 대부분이 50층대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거니까.
잘못된 튜토리얼 공략법이 퍼졌을 때도 튜토리얼 생존율은 20퍼센트였다.
하지만 여긴 잘 쳐 줘도 1퍼센트가 안 될 거 같은데…….
과연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길래 이런 말도 안 되는 수치가 나오는 걸까.
탑을 오르기 전에도 궁금했다.
[51층]
그렇기에 51층으로 넘어 왔을 때도 긴장하고 있었는데.
“크합! 뭐야 이게.”
“궤에에에!”
생각지도 못한 풍경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포탈을 지나 51층에 진입하자마자 난 추락해 물에 빠졌다.
망망대해.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는 공간이었으니까.
“그나마 수영할 줄 알아서 다행이네.”
“그에에에.”
갑옷을 입고 있기는 하지만 신체 능력이 워낙 뛰어나서 헤엄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덕춘이야 신나서 돌아다니는 중이고.
입에 들어갔던 물을 뱉어 냈다.
짜다.
바다 한가운데라.
난 메시지창을 바라봤다.
[51-59층의 테마는 죽음입니다.]
[나를 죽이지 못한 고난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
[죽음을 극복하십시오. 실패는 죽음입니다.]
[51층- 익사溺死]
설마 죽음이 테마였을 줄이야.
이러니까 사람들이 못 버티고 죽어 나가지.
“해양종이 날뛰는 곳이라니.”
망망대해라고 표현하기는 했지만 정말 바다만 펼쳐져 있는 건 아니었다.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해양 몬스터가 돌아다녔으며, 잡다한 정보를 긁어모은 나조차도 처음 보는 몬스터가 물속에 모습을 숨긴 채 나를 엿보았다.
섬으로 보이는 곳도 몇 개 있다.
멀리 떨어져 있어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완전히 죽으라는 법은 없다는 걸까.
또 모른다. 저 섬에도 온갖 괴수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후우.”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이 흐르고 해도 있다.
저 멀리서는 먹구름이 보이고.
적어도 기상 변화가 있는 곳이다.
태풍, 해일, 파도.
몬스터만 상대해도 바쁠 곳에서 자연재해까지 일어나면 그때는 뭐. 진짜 죽을 기세로 살아남는 거지.
생존.
50층대 설명으로 살아남으라는 말은 말 그대로의 의미였다.
[51층- 익사]
[한 달 동안 생존하시오.]
이런 곳에서 한 달을 버티라니.
쉽지 않다.
환경 변화뿐만 아니라 밤과 낮까지 존재한다면 더 힘들어지겠지.
휴식 시간은 있지도 않고, 저체온증과 스트레스에 언제 덤벼들지 모르는 몬스터의 조합이니.
그래도 살 사람은 살아남을 거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 분명 지내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만…….
“시간이 없어.”
오델토의 부탁 퀘스트를 깨야 했으니까.
방법이 없지는 않다.
릴카도 말하지 않았던가. 힘들기는 해도 나라면 3일이면 52층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고.
왜냐.
[클리어 조건 중 하나를 만족시키면 포탈이 생성됩니다.]
[한 달 동안 생존하시오.]
[대양大洋의 봉우리에 도달하시오.]
특이하게도 50층대의 클리어 조건은 하나가 아니다.
40층대 선택 구간이랑 비슷한 느낌.
내가 노려야 할 건 대양의 봉우리로 향하는 것.
문제는…….
“봉우리라는 게 섬을 말하는 게 아니란 말이지.”
[대양의 봉우리에 도달하시오.]
-대양의 봉우리는 해저에 있습니다.
-위치가 표시됩니다.
상당히 먼 곳에서 빛의 기둥이 보인다.
저곳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는 건데.
하여간 쉽게 가는 게 없네.
뭐가 됐든 목표는 정해졌다.
근처에 떨어졌으면 더 좋았겠지만 불평할 시간이 없다.
그러기에는.
“쿠콰아아아아!”
“그어어어어!”
나를 노리고 달려드는 해양종 몬스터가 너무 많아서 말이지.
환영식 한번 죽여 주네.
땅이라면 모를까 물속에서는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다.
반면 놈들은 거대한 덩치임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고.
기동력에서 지고 들어가는 싸움.
그러니…….
“너희도 굼떠져야 형평성이 맞지.”
[프로즌 브레이크 (AA) Lv.8]
-쩌저저저저적!
“크, 카오오오!”
“오오오오!”
단번에 얼어 버린 공간.
나를 향해 질주하던 씨-서펀트와 자이언트 크로커다일이 굳어 버린다.
아니, 악어가 바다에는 왜 있는 거야.
됐다. 진짜 악어도 아니고 그냥 생긴 것만 비슷한 거니까.
난 빙판 위로 올라섰다.
파이어 밤은 좀 그렇다. 물기가 있어 데미지가 살짝 덜 박히는 것도 있고.
“아직 몬스터한테는 실험을 안 해 봤단 말이야.”
인벤토리에서 뇌봉참검을 꺼냈다.
친선 경기를 통해 사람한테 통한다는 건 확인했지만 몬스터한테는 써 본 적이 없다.
적절한 기회.
심지어 전격이 잘 먹히는 바다!
이건 어서 실험해 보라고 부추기는 것과 같다.
“짜릿한 맛 좀 보자!”
-콰득!
망설임 없이 씨-서펀트의 미간에 검을 꽂아 넣었다.
약간의 저항감이 있었으나 그것도 잠시.
푸욱.
검이 놈의 앙증맞은 뇌를 꿰뚫었고.
-콰르르릉!
전격과 함께 낙뢰가 떨어졌다.
“쿠어어어어!”
“으그극!”
뇌를 찔려 즉사한 씨-서펀트는 펄떡이는 걸로 끝났지만, 함께 이어져 있던 자이언트 크로커다일과 마찬가지로 물에 젖어 있던 난 그대로 전기 충격을 받았고.
“후아. 짜릿하니 좋네. 저주파 안마 같기도 하고, 그래도 전격 내성 없는 애가 쓰면 위험하겠지?”
생각보다 괜찮은 성능에 만족했다.
안 그래도 요즘 전격 내성 스킬 올리는 게 힘들었는데 51층에서 최대한 올려놔야겠다.
어디까지나 퀘스트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그건 그거고.
툭. 혀를 빼문 채 부들거리는 자이언트 크로커다일을 쳤다.
“몬스터한테도 충분히 통하는군.”
해양 몬스터 대부분은 몸속에도 물이 차 있기에 전격 스킬에 취약하다.
이놈도 생긴 건 악어지만 아가미가 달려 있는 이상한 놈이고.
이대로 놔두기도 뭐해서 깔끔하게 죽여 줬다.
도축 스킬로 부산물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고.
아예 얼려 버린 채 잡았기 때문일까. 피도 별로 안 흐른다.
몬스터치고 피 냄새에 예민하지 않은 놈이 없는지라 가능하면 깔끔하게 잡는 편이 좋다.
특히나 이곳은 바다.
생각보다 멀리까지 냄새가 퍼져 나갈 거다.
하지만 마력도 무한정은 아니니 전투 때마다 이럴 수는 없을 터.
여유가 있을 때 친선 경기에서 얻은 물건이랑 릴카의 퀘스트를 확인해 보자.
“읏차.”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인벤토리를 열었다.
50층에 오르며 인벤토리 칸도 30개로 늘어났다. 비어있던 칸에 못 보던 물건들이 있었으니 바로 우승 상품이었다.
[전투광의 돌격 부츠 (AA)]
-바바리안 헥스톤이 사용하던 부츠.
-그의 발에 짓밟혀 죽은 사람이 몇 명일까요?
-투박하지만 튼튼합니다!
-전투 시 발놀림이 날렵해집니다.
[스타더스트 결정 (A)]
-하늘의 별빛을 모아 만들었다는 영약
-깨끗한 마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거인 안면 가죽 방패 (A)]
-흉측한 방패로 상대방의 기세를 죽여 보는 건 어떨까요?
-단, 거인족 앞에서 사용할 시 큰일 날 수 있습니다.
[골각도骨角刀 (A)]
-고대종의 뼈를 깎아 만든 도
-고대의 저주가 걸려 있습니다.
“생각보다 쓸 만한 게 많네.”
방패나 검은 관심 없다. 방패는 쓰지도 않을 뿐더러 검은 지금 쓰고 있는 게 더 좋으니까.
나중에 처분하든지 하고 영약 먼저 먹어 보실까.
망설임 없이 영약을 입어 넣었고.
[‘스타더스트 결정 (A)’를 흡수합니다.]
[힘 +18]
[민첩 +21]
[체력 +24]
[마력 +61]
[마력 회복이 소폭 증가합니다.]
“워우.”
즉각적으로 변화를 감지했다.
그 귀하다는 마력 특화 영약. 그것도 A등급.
다른 스텟은 그리 많이 오르지 않았지만 마력이 한 번에 61이나 올랐다.
굉장히 마음에 든다.
다음으로 부츠를 교체했다.
지금까지는 알리오스한테 얻은 부츠를 신고 있었다.
오케이. 착용감 좋고.
이걸로 기본적인 보상은 다 살폈으니 메인 보상을 봐 보자.
[대리 희생자 (S)]
-죽음에 이르는 공격을 받을 시 아이템을 파괴하는 것으로 보유자를 살립니다.
-귀속 아이템
“크으. S급 아이템.”
확실히 좋기는 하네.
여벌 목숨 하나 가지고 있는 거랑 똑같으니까.
물론 만능은 아니지만. 그냥 공격 두 번 맞으면 끝.
다 막을 수 있었으면 S급보다 등급이 높았겠지.
이건 일단 놔두도록 하고.
“이번에는 퀘스트 재료로 뭘 가져가야 하나.”
51층으로 가기 전, 릴카가 줬던 퀘스트를 확인했다.
[릴카의 부탁 (4)- 강제 퀘스트]
-당신은 릴카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계승자가 되기 위하여 열심히 구르세요!
-크라켄의 촉수 (0/1)
-만년설귀의 혓바닥 (0/1)
-벌룬로드의 눈 (0/1)
-미니캣 (0/1)
총 4개.
지금까지 받아왔던 퀘스트와 다른 점이 있다면 대량으로 챙겨갈 재료는 없다는 것.
하나씩만 가져가면 된다.
다르게 말하면…….
“얻기 힘들다는 거군.”
다른 건 모르겠지만 하나는 알 것 같다.
크라켄의 촉수. 저건 51층에서 나올 게 분명하다.
6성급 문어 괴물. 대형종. 객체에 따라서는 초대형종이 발견되기도 한다는 전설적인 몬스터다.
51층의 보스몹으로 있는 게 아닐까.
바쁘구만, 보스도 잡아야 하고 봉우리도 가야 하고.
다행인 점이 있다면…….
[Tip. 크라켄은 대양의 봉우리를 지킨다고 합니다. 그곳에 뭔가가 있는 걸까요?]
두 목적이 한 곳에 있다는 것 정도.
그래. 한 달이나 걸리는 클리어 조건을 대신하는 게 봉우리 도달인데 쉽게 갈 리가 없지.
파이팅 하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만큼 서두르는 편이 좋을 터.
-첨벙
난 얼음에서 뛰어내려 바다로 들어갔다.
먼저 내려와 놀고 있던 덕춘이가 나를 반긴다.
그래, 덕춘아.
“출발!”
“궤에?”
상점에 산 밧줄을 건네자 뭔 개수작이냐는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너 수영 잘하잖아. 끌고 가 줘라, 좀.
착취 아니냐고?
못난 주인을 만난 네 팔자를 한탄하거라!
“그에에.”
한숨을 내쉬는 녀석.
그래도 싫다고는 안 한다.
그럼 동의한 거로 아마. 적당한 보상도 줘야지.
“땡큐. 나중에 헬다잉 키친 주문할 때 네가 메뉴 정하게 해 줄게.”
“궤엑!”
저번 45층 때 모빌리딕과 치히린을 구하며 덕춘이에게 약속한 게 있었다.
헬다잉 키친 한 번 사 주기로 한 거.
어디까지나 사 준다고 했지 덕춘이가 메뉴를 고르라고는 안 했다.
나중에 내 계략을 알게 된 덕춘이가 뺨을 때렸었지.
후후. 지금 생각해도 뺨이 얼얼하지만 이렇게 써먹을 수 있다면 만족한다.
-촤아아아악!
밧줄을 입에 문 덕춘이가 세차게 나아간다.
이 정도면 쾌속선보다 빠르지 않을까?
역시 영물. 개구리 만만세다.
“이야! 좋다!”
속도가 워낙 빨라서인지 어느새 몸이 튕겨 올라왔고, 수상스키를 타듯 물 위를 미끄러질 수 있었다.
밖에 있을 때도 수상 레저를 해 본 적이 없는데 여기서 해 보네.
균형 감각이야 이미 탈 인간이나 다를 바 없는지라 걱정 없고…….
“크, 크아아?”
“그어어?”
나를 노리고 다가오던 해양 몬스터들도 개구리가 사람을 끌고 가는 진귀한 광경에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하하! 멍청이들, 너희는 슈퍼 개구리 없지?
기묘한 우월감을 느끼며 속도를 즐기는 타이밍.
-띠링
커뮤니티 메시지가 왔다.
발신자는 냥냥펀치.
얘가 웬일로 먼저 연락했을까.
난 커뮤니티를 열었다.
[냥냥펀치]: 고… 공듀! 너 이블아이랑 친하지?
[쁘띠공듀]: 그럼요. 제가 부탁하면 뭐든지 해 주는 사이죠.
[냥냥펀치]: 오오오!
거짓말은 안 했다.
부탁할 필요도 없이 내가 움직이면 이블아이가 움직이는 거니까.
[냥냥펀치]: 친선 경기 끝나고 찾으려 했는데 핥짝이가 이미 위로 올라갔다고 하더라궁.
[쁘띠공듀]: 핥짝이랑 만났다구욧?
[냥냥펀치]: ㅇㅇ, 상가에서 놀고 있던데. 암튼 이블아이랑 연결 좀 시켜 줄 수 있음?
[쁘띠공듀]: 이블아이랑요?
[냥냥펀치]: 친선 경기에서 보여 줬던 포션이랑 무기들. 가능하면 일회용 무적 아티팩트도 사고 싶어서.
[냥냥펀치]: 아니, 아무리 찾아도 흔적이 없어! 게시글, 댓글 하나도 없다구! 냐흐흐흑… 빌어먹을 신비주의자.
[냥냥펀치]: 공듀… 내게 실적을 줘. 나도 거래처 뚫어야 한단 말이야!
그야 없겠지.
내 닉네임은 쁘띠공듀니까.
어쩔까. 나쁜 거래는 아니다.
그동안은 스킬 합성을 이용해 포인트를 벌었지만 이제부터는 나를 위해 주로 쓸 예정이었으니까.
이 기회에 새로운 수익 루트를 만들어 두면 좋기는 한데.
[냥냥펀치]: 값은 제대로 쳐줄 수 있는데, 원한다면 물건으로 줄 수도 있는데!
잠깐만.
[쁘띠공듀]: 포인트가 아니라 다른 거로도 값을 쳐준다고요?
[냥냥펀치]: 탑은 포인트도 쓰지만 물물교환 형식으로도 많이 거래해서 ㅇㅇ.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도 가능한가?
난 냥펀에게 질문을 던졌고.
[냥냥펀치]: 충분히 가능할 듯?
긍정적인 답변을 받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