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화 스페셜 매치
다음 경기는 유령 찾기.
강화된 벤시퀸이 등장했다.
안 그래도 영체인데 투명화까지.
기척은 당연히 없었고, 이동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게다가 기습적인 공격까지.
탐색 능력이 있어도 반응하기 힘들고, 제대된 스킬이 없다면 포착조차 할 수 없는 괴물이었지만.
이것 역시 상성이 나빴다.
[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
내 권능 앞에서는 소용없으니까.
핥짝이와 마찬가지로,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령을 잡아낼 수 있었다.
[상위권 제2경기 승자- 이블아이]
두 번 연달아 승리를 빼앗겨서일까 상대 팀들은 벙찐 표정으로 결과를 바라볼 뿐이었다.
“와아아아아아!”
“한국 뭐야, 뭔데!”
“봤냐? 쟤네 아무것도 못 했어!”
“마! 김치 묵어 봤나! 동치미 한 입이면 디진다 마!”
“이거 차이가 심한데.”
“인도 애들 꽤 빡세다고 들었는데, 이외네.”
“일본은 반응도 못 하더만.”
싱겁다면 싱거운 결과였지만 관중들은 열광했다.
상위권.
앞으로 헌터계를 좌지우지할 이들의 승부가 압도적인 차이를 보이며 끝나 버렸으니까.
난 가볍게 손을 흔들며 지정된 좌석에 앉았다.
“좀 친다?”
“어. 내가 좀 쳐.”
팔꿈치로 쿡쿡 어깨를 찌르는 핥짝이.
옆구리를 찌르려는 거 같은데 키 차이가 있어서 말이지.
“역시 이블아이, 대단했어요!”
“나쁘지 않군.”
김소담과 오지혁도 승리를 축하해 준다.
“대, 대단해요. 골격 한 번만 만져 봐도 돼요?”
“…어. 예. 근데 저 갑옷 입었는데.”
“괜찮아요!”
구석에 앉아 있던 지선화도 반겨 주고.
반겨 주는 거 맞나.
눈을 반짝이며 몸을 터치하는 것이 뭐랄까.
고놈 살이 통통하게 쪘네 하면서 흡족한 미소를 짓는 푸줏간 아저씨 같다.
솔직히 좀 무섭다.
“흠흠!”
“앗. 죄송해요.”
그래도 적당히 헛기침하니 물러나는 게 다행.
뒤로 빠져서도 내 모습을 훑고 있다.
“이걸로 8 대 7인가. 으흐흐. 소원 잘 쓸게.”
“아직 경기 다 안 끝났거든?”
“난 이미 미래가 보이는데.”
“콱, 씨!”
두 번째 경기에서 난 내가 이길 것에 걸었고, 핥짝이 역시 나한테 걸었다.
이제 남은 경기는 스페셜 매치까지 합쳐 네 번.
[상위권 제3경기]
[미로 돌파]
세 번째 경기가 시작되었다.
“이건 제가 나갈게요.”
“좋죠.”
“이기고 돌아와요.”
이번 경기는 김소담이 나섰다.
모두가 달려 나간다.
[S급 권능, 메카닉]
-탐지 로봇을 생성합니다.
40층에서 권능이 성장한 건 나뿐만이 아니다.
AAA등급이었던 메카닉이 S급으로 올랐으니까.
이거라면 믿을 수 있지.
“과연 그런 건가. 핥짝아, 난 김소담이 이긴다에 건다.”
“난 저기 중국 녀석.”
“흐음?”
핥짝이가 가리킨 사람을 바라봤다.
권능은 평범.
스킬 중에 이동기와 쓸 만한 것들이 많기는 했지만 김소담한테 밀릴 거 같은데.
난 조용히 결과를 기다렸고.
[제3경기 승자- 랴오판]
“와 씨, 저게 뭐야.”
“흐흐흐. 이걸로 8 대 8이다.”
이외의 결과가 나왔다.
분명 중반까지는 김소담이 앞서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랴오판이 앞질렀다.
마치 길을 알고 있는 것처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돌진, 간발의 차이로 승리했다.
“저거 칭호 효과일걸? 보니까 중간중간에 똑같은 골목길을 세 번 돌더라고. 나도 길 찾기 관련 칭호 있거든.”
상대가 하는 특이 행동을 눈치채고 베팅한 건가.
과연 핥짝이의 눈썰미도 보통은 아니다.
“다음은 나다.”
“잘 지고 와.”
“죽고 싶나?”
제4경기는 함정 해제.
오지혁에게 장난치기는 했으나 난 녀석에게 걸었고.
[제4경기 승자- 아루쉬 칸]
“제길. 분명히 제대로 파괴했는데 왜 해제로 판단하지 않는 거지? 어이가 없군.”
“멍청한 놈아! 그건 그냥 부순 거잖아!”
“으아아아!”
이번 경기는 인도 소속 헌터가 승리를 가져갔다.
저 녀석을 믿은 내가 바보지.
이번에는 핥짝이와 나 모두 틀렸다.
“이제 한 경기 남은 건가.”
머리를 감싸 쥔 핥짝이가 말했다.
“스페셜 매치 남았잖아.”
“그건 네가 이길 거니까 의미가 없지.”
맞는 말이다.
다른 관중들은 모르겠지만 핥짝이는 내 정체를 안다.
핥짝이를 제외한다면 여기 모인 사람 중에서 나와 대등하게 싸울 사람은 없다는 것.
“설마 일부러 질 생각은 아니지?”
“그러겠냐. 나도 자존심이 있다.”
은근히 물어보는 핥짝이한테 손을 내저었다.
나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서 그런 치사한 짓은 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다음 경기에서 내가 맞춘다면 말이지.’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절대 핥짝이한테 소원권을 주고 싶지 않다.
무슨 짓을 시킬 줄 알고.
막말로 탈모맨 만날 때 ‘쁘띠공듀 왔뗘염! 뿌!’라고 말하라고 시킬지 누가 알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핥짝이는 그러고도 남을 녀석이라 더 무섭다.
그래. 이건 내 존엄성과 인권, 목숨을 건 대결.
무슨 수를 써서든 이긴다.
“그에에에.”
덕춘이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지만 내 마음은 변함없다.
[상위권 제5경기]
[회피]
[모든 관람객은 일어나 가벼운 스킬을 날려 주시길 바랍니다.]
[한 사람당 한 번의 스킬을 사용할 수 있으며 사용 스킬 등급은 B급 이하입니다.]
“회피라.”
속으로 나 자신과 타협을 보고 있을 때, 상위권 마지막 경기 종목이 나타났다.
그것도 관람석에 있는 사람들이 쏘는 스킬을 피하는 거다.
“이거 좀 편파적이지 않나?”
“인도랑 중국 애들 너무 많은데.
“너무하네요!”
“불평하지 마라. 이용할 수도 있으니까.”
팀원들 역시 불만을 제시한다.
오지혁이야 아닌 거 같지만.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자신이 속하지 않은 나라 참가자한테 스킬을 사용할 거다.
인구수 차이가 있는 만큼 중국과 인도 헌터가 많은 상황.
게다가.
[친선 경기 상황표]
[중국- 4승]
[대한민국- 3승]
[인도- 3승]
[일본- 2승]
[몽골- 1승]
[필리핀- 1승]
하위권, 중위권을 합쳐 지금까지 진행된 경기는 총 14번.
중국이 앞서고 있다.
그나마 우리나라와 인도가 따라잡는 중.
이번에 승리하지 못하면 우승은 물 건너간다.
만약 이기면…….
‘그때는 스페셜 매치로 승부가 나는 거고.’
중요한 승부다.
“어, 어으. 저 지금 긴장해도 되는 거죠?”
마지막 주자는 지선화.
양손으로 검을 꼭 쥔 채 떨고 있다.
부담감이 있겠지.
이해한다.
그러니까.
“우리 다 함께 긴장도 풀 겸 춤을 춥시다.”
“예?”
나도 해 줄 수 있는 건 해 줘야지.
“저거 맞아요. 춤춰요! 효과 좋아요!”
가장 먼저 내 노림수를 파악한 김소담이 자리를 잡았다.
나와 함께 30층대를 오르며 봤다.
34층. 플레타의 경기장에서 내가 최영미의 긴장을 풀었던 것을.
“너도 제정신은 아니구나?”
“겪어나 보시지.”
“좋아. 나도 사교댄스 좀 배웠어.”
자연스럽게 핥짝이도 합류.
이어서.
“병신들. 무슨 꼴값… 나는 왜!”
“같이해요. 혼자 있지 말고요.”
가만히 앉아 있던 오지혁도 김소담의 손에 이끌려 들어왔고.
[칭호, 불과 춤의 화신의 효과!]
-기분이 좋아집니다!
-모든 상태 이상이 줄어듭니다.
-회복 효과가 상승합니다.
-스텟이 일시적으로 상승합니다.
-정신 보호가 활성화됩니다.
우리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춤을 췄다.
“이런 미친.”
“이런 게 있었어?”
“헤헤. 괜찮죠? 그쵸?”
어이없는 모습과는 별개로 효과는 탁월.
처음에는 수줍어하던 지선화도 자신감을 얻었는지 격정적인 춤사위를 이어 나간다.
긴장 좀 풀어 주려고 한 건데 너무 풀어 준 거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좋은 게 좋은 거지.
“어때요. 할 수 있겠죠?”
“그럼요!”
내 물음에 밝게 대답한 지선화가 날 껴안더니 경기장 안으로 달려간다.
“다 죽여서라도 이기고 올게요!”
“아니, 그렇게까지…….”
죽일 필요는 없는데.
뒷말을 잇기도 전에 지선화는 경기장에 자리를 잡았고.
“누구 고를 거냐?”
“솔직히 이번 건 좀 어렵네. 몰라! 우리 팀으로 고를란다!”
“으음. 이거 너무 불리해. 난 중국에 건다.”
나와 핥짝이 역시 마지막 내기를 걸었다.
나는 지선화. 핥짝이는 중국.
긴장되는 순간.
[제5경기, 시작합니다!]
“쏴! 쏴라!”
“한국 쪽 노려!”
“인도 애들도 놔두지 마!”
“공격 스킬만 쓰지 말고 디버프도 쓰라고!”
“누구 바인딩 없냐!”
경기 시작과 함께 관람석에서 온갖 스킬이 날아왔다.
그야말로 무차별 폭격.
-콰아아아앙!
-콰가가강!
[탈락자 발생!]
[탈락자 발생!]
.
.
.
시작한 지 30초 만에 탈락자가 속출했다.
먼지가 피어올라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도 파악하기 힘들다.
굉음이 귀를 때리고, 박살 난 경기장의 파편이 어지럽게 튀어 오른다.
그렇게 1분이 더 지나고.
[생존자 4명]
[생존자 3명]
[생존자 2명]
빠르게 줄어든 난장판 속에서.
[승자-지선화]
“이겼어요!”
-와아아아아아아!
지선화가 모습을 드러냈다.
터져 나오는 함성.
[친선 경기 상황표]
[대한민국- 4승]
[중국- 4승]
[인도- 3승]
.
.
.
상황표가 바뀌었다.
“잘했어요!”
“괜찮군.”
“오오오오! 나이스!”
“아흐흑. 내기가! 그래도 잘했다!”
우리는 지선화를 껴안으며 환호했다.
핥짝이 역시 내기는 졌지만 반겨 줬고.
조금은 정신 사나운 시점.
그녀가 들고 있는 검에서 핏방울을 본 거 같기도 했다.
* * *
마지막 정규 경기가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
스페셜 매치를 앞두고 있는 것도 있지만, 무차별 공격으로 인해 경기장이 박살 나 재정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게다가.
[현재 동점 팀이 존재합니다.]
[스페셜 매치로 우승 팀이 결정됩니다.]
[스페셜 매치에서 승리한 팀에는 2점이 부여됩니다!]
[이후에도 동점 팀이 생길 경우 재결투로 승부가 납니다.]
“이게 이렇게 되네.”
말 그대로 스페셜 매치라는 건가.
우리나라와 중국은 4점으로 동점으로 공동 1등이었고,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는 건 인도 팀.
3점을 보유하고 있으니 그들에게도 역전의 기회는 남아 있었다.
일본도 마찬가지, 2점을 보유한 만큼 무슨 수를 써서든 스페셜 매치를 이기려고 하겠지.
그럼 4점을 보유하게 되고 한·중·일 삼파전으로 결론을 낼 테니까.
뭐. 부질없는 일이지만.
“어차피 내가 이길 거거든.”
“자신감 넘치고 좋네.”
장비를 점검하며 준비하고 있는 내 옆으로 핥짝이가 온다.
“왔냐? 소원권 잘 쓸게. 흐흐흐.”
“으아아아! 진짜! 내가 이길 수 있었는데!”
“자고로 먼저 하자고 한 사람이 걸리는 법이다. 그 쉬운 걸 모르다니.”
“너도 운으로 이겼잖아!”
“운도 실력인 거 아시죠?”
이래 보여도 행운 스텟도 있는 사람이야.
나를 이기려거든 더욱 수련에 매진하도록 하거라.
너무 좋다. 탑 등반 이후 가장 행복한 날이 아닐까.
“그래서 무슨 소원 쓸 건데.”
“어허, 왜 이리 급하신가. 천천히 가장 알뜰하게 써먹을 방도를 찾을 생각이거늘.”
여기서 드는 의문 한 가지.
“넌 네가 이겼으면 무슨 소원 빌려고 했냐?”
생각해 보면 내기를 하자고 했던 것도 핥짝이고, 소원권을 걸자고 했던 것도 핥짝이다.
소원권 자체를 거는 건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이전에, 누가 먼저 10층에 오르냐를 가지고 내기했을 때도 소원권을 상품으로 걸었으니까.
그래도 궁금하니까.
“알고 싶냐? 그럼 소원권 쓰든가.”
“응. 절대 안 써.”
“아. 명치 한 대만 쎄게 치고 싶다.”
주먹을 움켜쥔 채로 부르르 떠는 녀석.
그러거나 말거나.
[스페셜 매치가 시작합니다!]
기다리던 이벤트 경기가 시작되었다.
“에휴. 가서 이기고 와라.”
“믿고 있어요!”
“꺼져.”
“이, 이블아이 씨 파이팅이에요.”
핥짝이와 김소담, 오지혁, 지선화가 응원을 해 줬고.
“다들 우승상품 받을 준비 하고 있어요.”
난 망설임 없이 경기장으로 걸어 나갔다.
덕춘이는 두고 혼자서.
굳이 덕춘이의 도움까지 필요할 거 같지는 않아서 말이지.
대표들이 대형 길드의 루키라는 것도 신경 쓰였다.
덕춘이는 멸망의 징조. 그들 또한 그 정보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고, 어떤 식으로 나올지 감이 안 잡혔다.
괜히 위험 부담을 만들 생각은 없다.
“흐음.”
적당한 긴장감.
두렵지는 않았다.
목숨 걸고 싸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
그거랑 별개로 기대하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스페셜 매치는 결투입니다.]
[상대를 지목하십시오.]
[전투 종료 후, 10분간은 선택받지 않습니다.]
이번 매치는 규칙이 특이하다.
각자 싸울 상대를 지목해서 싸우는 거니까.
어느 정도 밸런스를 지키기 위해 전투 직후에는 10분의 휴식 시간이 주어지고.
전략을 잘 짜야 한다.
빠르게 승부를 끝내 가능한 많은 사람을 탈락시켜도 되고, 반대로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다른 대표들이 탈락하기를 기다리는 방법도 있다.
우승할 가능성이 높은 건 후자지만.
“믿는다! 보여 줘!”
“일본 대표 뭐 해! 대표면 책임을 지란 말이야!”
“겁쟁이처럼 숨지나 마라!”
경기장에는 각 나라의 관람객들이 있어서.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가는 조롱을 받겠지.
실망한 이들이 반감을 가질 수도 있고.
루키는 이후 길드를 이끌어갈 중요 전력. 신임을 얻어야 한다.
돋보이면 돋보일수록 가치도 올라가고.
‘나야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복잡한 표정의 각국 대표들을 바라봤다.
처음 나를 봤을 때의 거만함은 보이지 않았다.
경계심과 투지만이 감돌 뿐.
[베트남 대표가 필리핀 대표를 지목합니다.]
[몽골 대표가 말레이시아 대표를 지목합니다.]
조금씩 선택하는 사람이 나온다.
그들을 중심으로 생성되는 배틀 필드.
다른 사람에게 방해받지 않도록 하기 위함인가.
나를 지목하는 건 누구려나.
난 느긋하게 기다렸고.
[인도 대표가 대한민국 대표를 지목합니다.]
[배틀 필드가 생성됩니다.]
-우우우우웅!
“오?”
뜻밖의 인물이 나를 지목했다.
인도는 우승 가능성이 있는 나라. 안전하게 갈 거라 생각했는데.
우리를 중심으로 전투장이 생성된다.
“구면이지? 반가워.”
난 앞에 선 벤카테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반응은 없었다.
묵묵히 폴암을 든 채 날 노려볼 뿐.
방심할 생각은 없다는 건가.
조금은 조용한 시간.
[전투 시작!]
알림이 경기의 시작을 알렸고.
“네놈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마!”
벤카테쉬가 달려들었다.
재미없기는.
그런 그대에게 선물을.
입꼬리를 올리며 아공간 팔찌를 개방했다.
내가 친선 경기에 참가한 이유.
첫 번째는 일회용 무적 아티팩트를 얻기 위함이었고.
두 번째는.
“테스트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갱님.”
그동안 만든 포션과 장비의 성능을 테스트하기 위함이었다.
나를 향해 달려오는 벤카테쉬.
그에게 수많은 포션병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