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경기와 내기
난 친선 경기 참가자 명단을 확인했다.
생각보다 아는 닉네임이 많다.
소담소담이야 김소담이고, 오지혁은 오징어 아니, 오지혁이고.
[대한민국 상위권 참가자]
-냥펀 정수리 딱대^^
이건 어딜 봐도 핥짝이다.
어째 얘는 이벤트 할 때마다 닉네임이 이 모양이냐.
남은 한 명은 누군지는 모르겠다만.
이해 못 할 건 아니다.
핥짝이도 그렇고 김소담, 오지혁 모두 강하니까.
상위권에는 충분히 들었겠지.
고대진이나 이상옥, 최영미, 김서균과 같이 30층대에서 같이 했던 팀원들 모두가 상위권일 거다.
그저 아직 50층에 없거나 추첨에 뽑히지 않아서 참가하지 못했을 뿐.
냥펀도 신청했다고는 했는데 목록에 없는 걸 보니 당첨되지는 않은 모양,
[냥냥펀치]: 추천도 받았는데, 난 왜!
[니머리 탈모]: 그러게 평소 선행을 배풀었어야지. 나를 피한 벌이다!
[냥냥펀치]: 남는 장사네, 냥!
[니머리 탈모]: 네?
커뮤니티에서도 탈모맨이랑 놀고 있고.
중위권과 하위권에는 아는 이름이 없다.
-띠링
메시지 알림이 떴다.
발신자는 핥짝이.
[정수리 핥짝]: 공듀, 네 이노옴! 50층이었단 말이야? 아니, 왜 네가 대푠데!
왜긴 왜야.
[쁘띠공듀]: 고거슨 말이져… 제가 제일 강하기 때문이 아닐까욧☆
[정수리 핥짝]: 아아아악! 빡쳐! 말투 때문에 더 빡쳐!
아, 기분 좋네.
그동안 핥짝이가 ‘ㅋ’ 한 번만 쳐도 몸이 떨렸는데.
이런 식으로 약 올리니까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그에에에.”
“왜, 나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어. 헌법으로도 나와 있다고.”
헌법 제10조 행복 추구권 이 녀석아.
개구리라 그런 것도 모르지?
“궤으에? 게흐으.”
덕춘이가 띠꺼운 표정으로 날 바라보더니 고개를 내젓는다.
내가 말이야, 어? 마음만 먹으면 개구리보다 못나게 행동할 수도 있어. 조심하라고.
하여튼 장난은 여기까지 하고.
“릴카는 아직 안 온 거 같네. 먼저 가야지 뭐.”
난 무장을 완료했다.
빨간 머리, 노란 몸통, 파란 오른팔, 주황 오른 다리, 남색 왼쪽 다리.
포인트로 투구 위에 왕관.
완벽하다.
완벽하게 관종스럽다.
세트 효과 때문에 광택마저 돈다.
이 꼴로 나서야 한다는 게 조금 걸리기는 하지만.
“이미 인권은 많이 내려놨어.”
그동안 당한 게 많아서 이 정도는 괜찮다.
마음껏 욕해라! 얼굴을 기억해 뒀다가 반드시 복수할 테니.
난 덕춘이를 어깨에 올렸고.
[모든 참가자가 선정되었습니다.]
[경기장이 개설됩니다.]
[참가자들이 대기실로 이동합니다.]
[NPC 및 등반가는 관람을 원할 시 광장에 생성된 포탈을 이용해 주세요.]
-파아아앗!
빛이 나를 감쌌다.
경기장으로 이동하는 거겠지.
“다들 잘 있었으려나.”
30층대 이후로 처음 보는 거 같은데 다들.
무사히 50층까지 올라와서 다행이다.
내가 올린 공략 덕분이기도 하지만 본인 능력이 되니까 가능한 업적.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갔고.
[대한민국 서버 대기실로 이동했습니다.]
빛이 사라지며 난 새로운 공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 * *
커다란 방.
동시에 경기장을 내다볼 수 있는 관람석이었다.
메인 경기장을 둘러싼 관람석에는 NPC와 헌터들이 앉아 있었고, 경기장 위에는 백여 명의 사람이 서 있었다.
내가 있는 곳은 아시아Ⅰ서버.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 그 외 아시아 일부 국가가 합쳐진 곳.
[친선 경기가 시작됩니다!]
[하위권부터 경기가 진행됩니다.]
[순위권마다 부여되는 경기 종목은 다섯 개.]
[모든 경기가 끝난 후에는 대표들 간의 스페셜 매치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친선 경기에서는 사망해도 코인이 소모되지 않습니다.]
[경기마다 포인트가 부여되며 가장 많은 점수를 획득한 팀이 우승을 차지합니다.]
[우승 상품 목록]
.
.
.
바로 시작되는 경기.
보상 물품이 나열될수록 사람들이 열광한다.
나야 이미 가지고 있는 게 많아서 시큰둥했지만.
A급이나 AA급 장비는 이미 가지고 있어서 말이지.
영약은 좀 탐나지만…….
“생각보다 이거 의욕이 생기겠는데?”
보상 때문은 아니고.
서버별로 나뉜 사람들 위로 각국의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탑에서 태극기를 보는 건 처음이라 느낌이 묘하다.
각 국가를 대표해서 나왔다는 게 실감 날 정도.
그 때문일까.
“와아아아!”
“이겨라!”
“대중국의 힘을 보여 줘!”
“칭기즈칸의 후예임을 증명해라!”
“대─한민국!”
국가별로 나뉜 관람석에서는 응원 열기가 뜨겁다.
나도 슬쩍 응원하려는 찰나.
“이블아이 씨!”
먼저 도착해 있던 낯익은 얼굴들이 내게로 몰려왔다.
여전히 핑크색 양 갈래 머리를 하고 있는 김소담.
활기찬 건 똑같다.
옆에는…….
“좀 더 짜증 나게 생겨졌군.”
“너도, 오징혁.”
“오, 오징… 여기서 먼저 승부를 가르지. 덤벼라!”
성질머리가 더러운 오지혁이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다음으로.
“너, 이 자식!”
“워워워. 바로 멱살을 잡네.”
핥짝이.
나한테 대표를 뺏긴 게 분한지 다짜고짜 멱살을 잡아 들어 올린다.
설레는 키 차이가 있다 보니 대롱대롱 매달리게 됐는데…….
“그대로 잡고 있어라. 내가 처리하겠다.”
이때다 싶었던 오지혁이 그대로 내 배를 걷어찼다.
-까아아앙!
시늉만 하는 줄 알았더니 진짜 찼네, 이 녀석.
하지만 괜찮다.
[강철의 의지 (A) Lv.9]
“후후후. 이 정도는 가볍지.”
공격하는 타이밍에 몸을 단단하게 만들었으니까.
방금 전 쇳소리가 울려 퍼진 게 그 증거.
놈도 진심으로 찬 건 아니라 타격은 없었다.
“가볍게 차기는 했지만… 아니, 그 스킬 안 끄나. 볼수록 짜증이 나는군.”
“너의 돌머리가 활약했던 때를 엊그제 같은데.”
“반드시 네놈의 머리통을 갈라서 뇌가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해 주마.”
“그래그래, 파이팅 해라.”
일전에 39층에서 오지혁을 공성추 삼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녀석에게는 익숙한 스킬.
낄낄거리며 몸을 털었다.
“오호, 맞네. 너 어째 더 화려해졌다? 알록달록. 풉. 크흐흡.”
스윽, 내 어깨에 손을 얹은 핥짝이가 귓가에 입을 댄다.
소곤.
“드레스만 입으면 공주 같을 거야.”
“아흐흑!”
나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
하지만 효과는 굉장했다.
비겁한 녀석, 남의 약점을 잡고 휘두르다니.
천인공노할 게 틀림없다.
언젠가 천벌을 받을 것이야!
그것보다…….
“너도 옷차림이 달라진 거 같은데?”
“아, 이번에 새로 맞췄지. 앞으로도 이 상태일걸?”
핥짝이의 모습이 바뀌었다.
이전에 만났을 때는 비교적 정상이었는데.
효율적이고 가성비 좋은 장비를 착용했었으니까.
다르게 말하면 일반적인 등반가의 모습.
지금은…….
“후후후후. 멋과 성능을 모두 갖춘 아이템. 심지어 성장형! 별사탕 같은 네 녀석과는 차원이 다르지.”
“어, 그래. 축하한다.”
정장에 헬멧을 쓰고 있다.
팔에는 이전에도 착용하던 띠를 두르고 있었는데.
[아공간 띠 (A)]
-아공간을 쓸 수 있는 띠입니다.
저거 아공간 아이템이었구나.
하기야 나도 보물 주머니 말고도 하나 더 있으니까.
확실히 핥짝이의 말마따나 괜찮은 차림새기는 하다.
‘탑만 아니었다면 말이지.’
중무장이 기본인 곳에서 정장을 입고 있으니 엄청 눈에 띈다.
아니, 솔직히 거기까지는 괜찮은데…….
“은갈치.”
“닥쳐.”
때가 어느 땐데 은갈치 정장을 입고 있냐.
사실 저 녀석도 관종이었던 게 아닐까.
생긴 거랑은 별개로 성능은 좋았지만.
[샤이닝 슈트 (AA- 성장형)]
-어디서든 돋보이는 그대!
-핏 좀 보세요. 멋져 보이고 싶다면 이 슈트가 제격입니다!
-촌스럽지 않냐고요? 그게 좋은 겁니다!
-장비 흡수를 통해 성장합니다.
.
.
.
다른 장비의 스텟과 옵션을 흡수하는 것.
잘만 사용한다면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겠다.
그래도 디자인은 좀…….
탑에 와서 느끼는 건데 성능은 스타일에 반비례하는 게 아닐까.
쯧.
작게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앞으로 널 은갈치로 부르마.”
“넌 무지개 용사로 불러 줄까?”
“오오! 그거 좋네요. 무지개 용사 이블아이!”
아흑!
가슴을 부여잡았다.
김소담 너마저 날 공격하다니.
딜 교환이 안 된다.
다른 건 몰라도 겉모습으로 내가 이길 수 있는 건 탈모맨뿐이 아닐까.
그 녀석은 타이즈에 보타이잖아.
핥짝이와 상처뿐인 대화를 하던 때.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이블아이 씨. 40층에서 따로 뒤풀이도 못 하고 아쉬웠는데.”
“아, 다른 팀원들도 잘 지내나요? 커뮤니티 보니까 등반 열심히 하는 거 같던데.”
“상옥이도 50층이에요. 대진이랑 영미도 곧 올라올 거 같고. 아! 서균 오빠는 바로 위로 올라갔어요. 친선 경기가 기대되기는 하지만 좀 더 강해지고 싶다고.”
전에는 누구누구 씨라고 부르더니 이제는 이름으로 부른다.
내가 멤버들과 떠들고 노는 것처럼 김소담도 팀원들이랑 친해진 모양.
“어차피 있어도 중위권 멤버로 들어갔겠지.”
“오징혁 씨는 말을 좀 예쁘게 할 필요가 있어요.”
“조용히 해라.”
“어라? 이제 저한테 닥치라고 안 하네요?”
“…닥쳐.”
뭐, 오지혁은 여전히 씨라고 부르는 거 같지만.
그래도 오징혁이라고 하는 걸 보니 은근 가까워지긴 한 모양.
“야, 간만에 만났는데 구경만 할 건 아니지? 따라와.”
“또 뭘… 악!”
조금은 인성을 되찾은 오지혁을 흐뭇하게 바라보는데, 핥짝이가 내 머리를 붙잡더니 관람석 구석으로 끌고 간다.
그런 우리를 흘낏 쳐다보는 사람들.
보지만 말고 도와줘요. 사람이 끌려가는데.
“와, 연합 메인 멤버를 둘이나 봤어.”
“사대천왕? 그건가!”
“연합의 빅4! 쁘띠공듀를 수호하는 탈모맨, 핥짝이, 냥펀, 이블아이. 그중 둘이나 보게 될 줄이야. 오늘은 일기 쓴다.”
“김소담이랑 오징혁도 있다니까? 하위권이지만 뽑히길 잘했어!”
“오징혁 오빠한테 사인해 달라 하면 해 줄까?”
아니다.
제정신인 사람이 별로 없다.
사대 뭐? 빅포? 언제 그딴 게 생긴 거야.
애초에 이블아이랑 쁘띠공듀는 동일 인물이다.
뭐라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입을 꾹 닫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야 알아차린 건데, 참여 멤버로 뽑힌 사람 중 태반이 연합 사람이다.
이준석이 말했던가.
대형 길드의 위세가 꺾이고 연합에 들어온 사람들이 폭증했다고.
단순히 저층 구간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50층대에서도 제법 있는 모양이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왜?”
이제 막 경기 시작했는데 부르고 그러냐.
좀 즐기자 나도.
“승부하자.”
“어?”
다짜고짜 승부라니.
“설마 싸우자는 건 아니겠지?”
“누굴 탈모맨으로 아나.”
내 물음에 핥짝이가 손가락을 흔든다.
이 승부욕 괴물이 또 뭔 짓을 하려고.
“내기하자고. 경기마다 누가 이길지 더 많이 맞추는 사람이 이기는 거로. 뛰어난 안목 역시 승부사가 가져야 할 자질이지, 어때?”
“이길 수는 있고?”
자만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걱정돼서 그런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한테는 상대방의 정보를 읽는 권능이 있다.
남들보다 훨씬 유리한 입장에서 판단할 수 있다는 것.
정작 핥짝이는 도발로 받아들인 거 같지만.
“하! 내가 이래 보여도 국대 출신이거든? 시합 보는 눈은 정확해!”
“엥? 너 국대 출신이었어?”
“후후. 내가 바로 여자 배구의 원탑 이소연이다.”
“어, 미안. 배구 관심 없어서 들어도 몰라.”
“지금부터 기억해!”
울컥한 녀석을 피해 한 발짝 물러섰다.
국대 출신인 건 몰랐네.
하긴, 그러니까 나만큼이나 빠르게 탑을 등반하지.
“내기 진짜 괜찮냐? 지금이라도 죄송합니다 하고 머리 박으면 봐줄 수도 있는데.”
“쫄? 처어어언하의 이블아이가 쫄린 건 아니지? 그래. 이해한다. 50층도 나보다 늦게 올라왔는데! 하하하핫!”
이거 은근 빡치네.
“허허. 내가 너를 불쌍히 여겨 넘어가 주려 했더니만. 쫄린다 하였느냐? 바로 하지. 내기 한번 제대로 해보자고.”
“좋아. 단순히 포인트나 아이템 걸고 하는 건 재미 없으니까 소원권은 어때? 뭐든 소원 하나 들어주기.”
소원권?
조오오옿지.
“무르지나 마라.”
“아, 혓바닥 기네. 계약서 찍어.”
“오케이. 대신 말도 안 되는 소원은 안 되는 걸로.”
“그건 매너지.”
핥짝이가 계약서를 내밀었고.
난 망설임 없이 사인을 했다.
-파아아앗!
시스템적으로 성립된 내기.
우리는 서로 이길 것을 확신하며 마주했고 경기장을 내려다보았다.
* * *
이미 시합은 시작되었다.
첫 번째 경기는 단체전.
경기장 밖으로 밀어내기.
온갖 스킬이 난무하며 팀 단위로 공격을 해 댄다.
난 빠르게 전장을 살폈고.
“먼저 고른다.”
“벌써? 찍어서 될 게 아니거든?”
“지켜보기나 하시지.”
첫 경기 승리 팀을 선택했다.
“우리나라가 이길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