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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195화 (195/740)

195화 유형

눈을 떴을 때는 백색의 공간이었다.

온몸이 부서질 거 같다.

NPC를 상대로 난동을 부렸으니 목숨이 붙어 있는 것만 해도 다행인가.

죽는 것까지 염두에 뒀는데.

헤이다가 날린 일격에 놈이 치명타를 입어서 다행이다.

“강했었지.”

놈의 팔 하나가 날아가고, 무수히 많은 상처를 입혔음에도 밀렸었다.

심지어 함정에 빠트리고 놈이 방심한 틈을 노렸는데도.

결국은 이겼지만.

펠라인 세트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

“으읏차.”

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상처가 조금씩이지만 낫고 있다.

“궤에에엑.”

“땡큐. 역시 덕춘이가 최고다.”

다른 이유는 없고 덕춘이가 회복을 시켜 주고 있었다.

포션도 몇 병 마시자 컨디션이 살짝 돌아온다.

일단 안전 확보부터.

난 검을 지팡이 삼아 일어선 뒤 주변을 살폈다.

“뭐가 없네, 여기는.”

그동안 겪었던 40층대랑은 분위기가 다르다.

아무것도 없다.

정말 아무것도.

순백의 타일이 깔린 공간.

지형이라 불릴 만한 것도 없었고 풀 한 포기, 생명체 하나 없었다.

인위적인 느낌이 드는 동시에,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네.

위협적인 게 없다는 건 알겠다.

권능을 통해 들어오는 것도 없고, 문제가 있었으면 덕춘이가 옆에서 날 핥고 있지도 않았겠지.

공격해 오는 놈들을 상대하고 있었을 테니까.

그러면…….

“48층에서 얻은 수확을 확인해 보실까.”

“그에에에.”

“끼이이이이.”

다행히 나를 도와줬던 더덕이도 함께 전송됐다.

데니엄의 퀘스트를 깨고 얻은 보상들도 같이.

혹시나 48층에 놔둔 채도 이동되지는 않을까 걱정했건만 탑도 그 정도로 악독하지는 않은 모양.

가장 먼저 덕춘이에게 줬던 정신체 저장 장치를 챙겼다.

[정신체 저장 장치]

-현재 헤이다가 깃들어 있습니다.

-10일 뒤, 봉인에서 깨어납니다.

-봉인 해제 후 장치가 망가집니다.

제대로 잘 봉인되었다.

씨익, 입꼬리가 올라간다.

내가 계획했던 것.

[오델토의 부탁- 히든 퀘스트]

-오델토의 부활 (0/1)

-부활한 오델토와 헤이다의 만남 (0/1)

-헤이다의 악몽 처리 (1/1)

-특수 조건, ‘데니엄에게 복수 (1/1)’ 달성 시 추가 보상.

“오델토를 부활시켜서 48층으로 보내는 건 불가능해.”

그렇다면 헤이다를 데리고 가면 되는 거 아닌가.

분명 52층에 현자, 존 트레일러가 있다고 했다.

10일 안에 그를 찾아내면 될 일.

동시에 헤이다의 악몽을 사용하면서 특수 조건까지 한 번에 달성해 버렸다.

이게 바로 일거양득, 꿩 먹고 알 먹고.

겸사겸사 마음에 안 들었던 녀석한테 엿 좀 먹이고.

크. 훌륭하다, 훌륭해!

“그에에에.”

“아, 왜. 이번엔 진짜 힘들었어. 칭찬 좀 해 줘라, 좀.”

혀를 날름거리는 덕춘이를 어깨에 올렸다.

“끼이이이이.”

자기도 귀여워해 달라며 달라붙는 더덕이.

그래그래. 너도 고생했다.

상으로 ‘집착하는 망령 (A)’를 사용해 줬다.

누군가에게는 속박기지만 더덕이에게는 한낱 간식에 불과할 뿐.

나를 한차례 노려본 망령이 호로록 더덕이의 입으로 들어간다.

그럼 헤이다가 담긴 아이템은 인벤토리에 넣어 두고.

“보상을 살펴보실까.”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48층에서는 여러 퀘스트가 얽혔다.

한곳에서 이만큼이나 퀘스트를 깬 건 처음인 거 같은데.

펠라인 세트와 기타 등등은 이미 받았으니 데니엄의 퀘스트 보상을 확인해 보자.

[헤이다 봉인- 히든 퀘스트 클리어!]

-보상: 프레그렌트 가문의 보물, 탐욕의 검 (AA), 멸망한 세계의 영웅이 남긴 장비 (택 1), 태산의 정수 (A)

먼저 프레그렌트 가문의 보물.

사실 크게 기대하지는 않는다.

나중에는 공작 자리에 올랐다고는 하나 원래는 백작가였고, 무력보다는 상업을 통해 성장한 가문이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청룡의 눈물 (AAA)]

-동양의 영물이 흘린 눈물로 만들었다는 명주!

-프레그렌트가의 시조가 이 술을 통해 이종족과의 거래를 텄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엘프, 드루이드, 요정, 수인할 것 없이 모두가 즐길 수 있습니다.

-마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건강이 좋아집니다.

-부정적인 감정이 사라집니다.

-모두에게 우호적으로 변합니다.

전투와 관련된 물건은 아니었다.

그래도 놀랍다.

포션이나 영약도 아닌 술 하나가 AAA등급을 먹다니.

일단 킵 해 두자.

가지고 있어서 나쁠 건 없지.

다음은…….

[탐욕의 검 (AA)]

-탐욕이 깃든 검입니다.

-낮은 확률로 전투 상대의 아이템을 훔쳐 옵니다.

-착용 제한: 힘+450

-힘 +43

-체력 +29

-민첩 +53

“이건 좀 쓸 만하겠는데?”

능력치도 준수하고, 무엇보다 옵션이 마음에 든다.

상대방의 아이템을 훔쳐 오다니.

이거 개사기 아닌가?

착용 제한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나야 상관없고.

좀 더 주의 깊게 정보를 읽었다.

-상대방 아이템을 훔칠 확률 0.03퍼센트

아, 확실히 낮기는 하네.

10,000번 휘두르면 3번 훔칠 수 있을까 말까.

그래도 혹시 아는가 잭 팟이 터질지.

“이것도 오래 쓰긴 했고.”

난 허리에 찬 검을 쓸었다.

지금까지 타락한 천사의 검을 사용하고 있었다.

경계를 끊는다는 옵션을 알차게 썼지.

다만 A등급이었고 스펙도 이것보다는 낮은 편이라…….

타락한 천사의 검은 옵션이 필요할 때 꺼내서 써야겠다.

어차피 인벤토리에 넣어 두면 언제든 꺼낼 수 있으니까.

다음은 영단, 태산의 정수.

영단은 영단이지.

바로 입에 넣었다.

[‘태산의 정수 (A)’를 흡수합니다.]

[힘 +34]

[민첩 +28]

[체력 +53]

[마력 +24]

[태산 같은 굳건함!]

[피격당할 시 덜 밀려납니다.]

“오우. 역시 A등급 영단.”

상당히 스텟이 올랐다.

영약이 좋기는 해.

이러니 시장에 영약이 나오면 비싸게 팔리지.

그럼 마지막 보상을 챙겨 보실까.

[멸망한 세계의 영웅이 남긴 장비 (택 1)]

[목록이 생성됩니다.]

-가니안이 사용한 숟가락

-페르도의 숫돌

-헤밀리아의 머리띠 장식

.

.

.

데니엄 이 대단한 녀석.

진짜 숟가락을 목록에 넣어 뒀네.

정보를 살폈지만 특별한 물건은 없다.

정말 실생활에 썼던 것들이 대다수.

이 정도면 함정 보상 아니냐.

이런 걸 왜 가지고 있는 거야.

하나같이 별로라 고르기 힘든 건 또 처음이네.

의미도 없는 거 아무거나 선택하려던 그때.

[행운 스텟이 반응합니다.]

-우우우웅

목록 중 하나가 빛을 뿜었다.

눈을 가늘게 떴다.

“숟가락?”

목록 첫 번째, 가니안이 사용한 숟가락이 빛나고 있다.

대체 왜?

의문이 들었지만 행운 스텟이 반응한 데는 이유가 있겠지.

보상을 선택하자 하늘에서 은수저 하나가 떨어진다.

자주 사용했는지 빛에 비춰 보자 미세한 흠집이 나 있다.

[가니안이 사용한 숟가락]

-영웅 가니안 자히무스가 애용하던 은수저.

-목숨을 내놓고 사는 이들에게는 무수히 많은 미신과 징크스가 존재합니다.

-평범한 은수저지만 가니안에게는 아니죠.

정말 평범한 숟가락이었나.

일단은 보물 주머니에 넣어 뒀다.

이걸로 퀘스트 보상은 끝났고.

“남은 건 칭호인가.”

분명히 봤었다.

49층으로 올라오기 전, 칭호를 얻었다고.

[불가능을 극복한 자- 칭호]

-해낼 수 없는 업적을 이룬 당신

-당신은 불굴의 정신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신 보호 스킬이 한계치에 이를 때 단 한 번 초월할 수 있습니다.

“초월?”

새로운 개념이 나왔다.

초월이라.

좀 더 강화된다는 것 같은데.

이거야 뭐, 정신 보호의 레벨과 등급을 올리다 보면 자동으로 알 수 있을 테니 지금은 신경 끄자.

툭툭. 손을 털었다.

보상을 확인하면서 체력도 어느 정도 회복했다.

여전히 몸 곳곳이 쑤시고 마력도 충분치 않지만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다.

49층.

이번에는 뭘 선택하라는 건지.

난 공동 중앙에 섰다.

그런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걸까. 잠잠하던 알림창이 떠올랐다.

[49층]

[선택의 대가]

선택의 대가라.

[당신이 40층대를 오르며 고른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이시오.]

[피하는 것만으로는 위로 오를 수 없습니다.]

[선택되지 못한 존재 중 하나가 출현합니다.]

[출현 대상은 추첨을 통해 정해집니다.]

“이런 거였나. 와, 진짜 막판에 후려치네.”

40층대 마지막 층은 선택하는 곳이 아니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이 등장하는 곳이었지.

선택의 결과. 쉽게 오른 자들을 떨구기 위한 장치.

생각해 보면 이상했다.

40층대에서 주어진 선택지들.

그중에는 아무런 피해 없이, 어떠한 위험도 부담하지 않고 올라갈 수 있는 층도 존재했으니까.

42층의 데미 데몬.

주어졌던 선택지는 도망치는 것과 봉인을 강화하는 것.

만약 도망을 쳤다면?

“이곳에서 마주치게 됐겠지.”

43층도 마찬가지.

만약 왼쪽 통로로 나아가다가 그대로 빠져나왔다면 만드레이크와 메스토카 유충 모두 멀쩡했을 거다.

쉽게 오른 자는 그만한 책임을 져라.

경솔하게 등반에만 급급했던 자는 발목을 잡힌다.

하여간 이놈의 탑은 이해했다고 생각하면 뒤통수를 치는 경향이 있다.

현재 기준으로 50층부터는 A급 헌터로 분류된다.

A급 헌터가 이렇게 적나 했더니만.

“여기서 다 털렸겠구만.”

“그에에에에.”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추첨을 통해 정해진다 했으니 운이 좋다면 41층 때 마주쳤던 몬스터 무리 중 하나가 등장할 수도 있고, 운이 나쁘다면 데미 데몬이나 5성급 괴물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

최악은 NPC가 등장하는 거고.

뭐, 어디까지나 일반적으로 등반한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등반가, 조현수 님의 행적을 살핍니다.]

[생존 시 당신의 유형이 정해집니다.]

유형이라.

그러고 보니 40층대는 선택 구간, 내가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판단한다고 했었지.

어떤 결과가 나오려나.

난 팔짱을 끼며 알림창을 바라봤다.

[선택 기록 동기화]

[검토 중]

[로그 기록 확인]

[탑에 미친 영향 여부 확인]

[판단이 시작됩니다.]

[선택되지 못한 것들이 등장할 수 있습니다.]

[주의하십시오.]

주르륵 홀로그램과 함께 복잡한 수식들이 나열되더니 한순간 멈춘다.

깨끗해진 화면.

내 기록이 떠올랐다.

[41층- 전멸]

[42층- 데미 데몬 완벽 봉인]

[43층- 메스토카 유충 사망, 만드레이크 실종]

[44층- 전멸]

[45층- NPC 전원 구출]

[46층- 전멸]

[47층- 필드 초토화]

[48층- NPC 무력화 및 납치]

어째 멀쩡한 결과지가 별로 없는 거 같은데.

나와 같은 생각인지 홀로그램이 깜빡인다.

[…미선택 존재, 없음.]

[주어진 선택지 결정, 없음.]

[전 서버 최초, 모든 선택지를 거부했습니다.]

[10,0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예상치 못한 수확.

난 이어지는 메시지를 바라봤다.

[당신의 유형이 정해집니다.]

[당신의 유형은 ‘새로운 길의 선구자’입니다.]

[선택의 대가 종료]

[포탈이 생성됩니다.]

조금은 허무한 결과.

당연한 건가.

납득할 만한 유형이다.

난 또 청개구리 이런 유형이 나오나 했네.

의외로 정상적인 네이밍.

-치지지지직

음?

고개를 끄덕이는 찰나.

알림창이 깨지기 시작했다.

암청색으로 물드는 홀로그램.

그 위로 튀는 스파크.

“…버그.”

“그에에에에.”

이미 몇 번 겪었던 현상.

나와 덕춘이는 경계심을 끌어 올렸고.

“끼, 끼이이.”

더덕이는 공포에 질려 뒤로 물러났다.

하얗게 빛나던 공동마저 암전되기를 반복.

[당신은 단 한 번도 탑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유형이 추가됩니다.]

간헐적으로 끊기는 메시지창이 새로운 문장을 뱉어 냈고.

[당신의 유형은…….]

-파아아아앗!

[카오스의 개입 확인]

[강제 전송합니다.]

난 빛과 함께 50층으로 이동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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