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192화 (192/740)

192화 오델토

오델토가 헤이다를 만난 건 15살 무렵.

세인턴 피스 제국이 있던 세계에 탑이 생성된 지 5년 정도가 흐른 시점이었고, 영웅이든 국민이든 관계없이 많은 사람이 탑에 불려 가던 때였다.

극도로 혼란한 상황.

누군가에게는 위기였지만 반대로 기회기도 한 시점이었고…….

“제국은 대륙 정벌에 나섰다라.”

정확히 말하면 제국뿐만 아니라 다른 왕국에서도 전쟁이 벌어졌다.

경계하고 있던 강자가 탑에 불려가 힘의 균형이 무너졌다.

언제 모국이 보유하던 영웅이 사라질지도 모르는 타이밍에, 먼저 공격하는 편이 이득이라는 판단하에 공격을 감행한 것.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나라들이 가장 먼저 전쟁을 벌였고, 세인턴 피스 제국 역시 중재라는 명목하에 참전했다.

지리멸렬한 전투가 이어졌고, 당시에는 백작이었던 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쟁 물자를 팔아치우며 부를 늘리려 시도한 것.

물론 다른 대귀족들에 비해 세력이 약했기에 제약이 생기기는 했으나.

-하늘이 유독 맑은 날, 아버지가 요정을 데려왔다.

우연한 기회, 데니엄이 헤이다를 발견한 후부터는 상황이 바뀌었다.

오델토는 이렇게 기록했다.

불안감이 컸으며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는 아이 같았다고.

당시 15살이었던 오델토는 헤이다에게 관심을 보이며 시간을 함께 보냈으나 그다음 달.

데니엄은 헤이다를 데리고 전장으로 나섰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

프레그렌트가는 무력으로 성장한 가문이 아니었다.

도대체 왜 전쟁에 참여하려 하는가.

오델토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승전 소식이 들려왔다. 저택으로 수많은 귀족이 찾아왔다. 그중에는 중앙 귀족도 포함되어 있었다.

결과는 대단했다.

교착 상태에 빠져 있던 접경 지역을 완전히 쓸어버렸다는 소식.

운이 좋았던 걸까.

아니면 데니엄에게 천재적인 뭔가가 있던 걸까.

알 수는 없었지만 오델토는 순수하게 기뻐했다.

아버지가 살아 돌아왔으며 가문이 부흥했으니까.

그렇게 반년이 흘렀을 때쯤.

오델토는 의구심을 느끼기 시작했다.

-정원사가 사라졌다. 하녀도 여럿 없어졌다. 친근하게 지내던 집사장의 아들 역시 사라졌다.

-아버지는 패배를 모르고 승전을 이어 나갔다.

-분명 함께 갔을 터인데, 헤이다는 사라진 사람들에 대해 기억하지 못했다.

데니엄이 전장에 나갈 때마다 헤이다 역시 데려간 것.

동시에 가문에 속해 있는 인물들 역시 하나둘 사라졌다.

다시 시간이 흘러 1년이 지난 해.

-진실을 알았다. 아버지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다.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던 이유, 자꾸만 사람들이 사라지는 이유.

-헤이다는 전략 병기로 사용되고 있다.

오델토는 진실을 알게 됐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지만 대략적으로 종합해 보자면…….

“상실에 대한 분노.”

헤이다는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을 경우 광범위한 폭발을 일으킨다.

우리로 치자면 핵폭탄 같은 존재.

무력의 균형을 깨 버리는 비대칭 무기.

‘파괴의 요정’의 의미를 깨닫는 순간이었고…….

-아버지는 헤이다의 주변 사람들을 전장에 내몰고 가장 잔인한 죽음을 맞이하게 한다.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헤이다는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그에 대한 반발로 기억 일부를 잃는다.

-일종의 방어 기제. 하지만 난 안다. 마음속 깊숙이 기억이 남아 있음을, 그래서 헤이다는 가끔 극도로 불안해할 때가 있다.

-전공을 인정받아 공작 자리까지 오른 아버지의 발밑에는 얼마나 많은 시체가 쌓여 있는가.

-해서는 안 되는 짓이다. 귀족으로서,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저버리는 일이다.

이제 16살이 된 오델토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행위였다.

일기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집사장이 죽었다.

-제국은 인간 왕국을 넘어 이종족까지 흡수하려 하고 있다.

-아버지는 또다시 헤이다를 데리고 나갔다.

-어머니가 데니엄과 전장으로 향했다.

-다시는 어머니를 뵐 수 없었다.

-데니엄이 악마와 계약을 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하인과 하녀, 이후 집사장, 기어이 부인까지 승리의 제물로 사용했다.

어느 순간부터 오델토는 데이엄을 아버지라 부르지 않았다.

무력함과 분노, 헤이다에 대한 동정.

바뀌어 버린 세상에 대한 원망과 끝을 모르는 탐욕의 결과에 오델토는 낙담했다.

고작해야 16살.

아직 성인식도 치르지 못한 나이였으며, 공작가로 발돋움한 가문 내에서의 입지도 강하지 않았다.

보통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고개를 돌렸겠지만…….

-헤이다, 불쌍한 아이.

-친구들이 어디 있냐고 묻는 날이 많아진다.

-데니엄이 목적을 달성한 후 헤이다는 어떻게 될까.

-오늘도 데니엄이 헤이다를 데리고 나섰다. 그는 단 한 번도 헤이다에게 전장에 나간다고 하지 않았다.

-여행, 사람들이 가득한 곳으로 가자고 했지. 새로운 친구를 사귈지도 모른다면서.

-그녀를 구해야 한다. 모든 일의 원흉을 없애야 한다.

그는 헤이다를 포기할 수 없었고 끝내…….

-더 이상 헤이다를 방치할 수 없다.

-방법을 찾았다. 내 유일한 재능, 주술을 이용하자.

-도와줄 사람을 찾았다. 현자가 우리를 구할 것이다.

방법을 찾아냈다.

생각을 정리하듯 휘갈겨진 필체.

-영혼.

-요정은 정신체에 가깝다.

-힘을 봉인하는 데 필요한 게 무엇인가.

-새로운 생명.

수많은 계획이 구성되다 폐기되기를 반복.

이윽고 오델토의 플랜이 완성되었고.

-때가 됐다.

-이제 헤이다에게 남은 사람은 나와 데니엄뿐.

-전쟁 역시 막바지에 이르렀다. 큰 전투만이 남았다.

-이번에 제물이 되는 건 나일 것이다.

-유일한 기회다.

-그가 찾아왔다. 내일, 모든 걸 끝내자.

-모두의 눈에서 벗어나자.

때가 찾아왔다.

오델토의 계획은 간단했다.

자신의 죽음을 확신할 수 있었기에 할 수 있던 계획.

“영혼을 꺼내 다른 곳에 이식한다.”

오델토는 검술이나 마법적인 재능은 대단치 않았지만 주술에는 뛰어났고, 자신에게 영혼 이전의 주술을 걸었다.

죽음에 이르는 충격을 받았을 시 따로 만들어 둔 인형에 영혼이 스며들도록 하는 술법.

주변 사람들은 오델토가 죽은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실제로도 죽은 것이나 다를 바 없지만…….

-현자, 존 트레일러. 그라면 날 호문쿨루스로 만들 수 있다.

-정신체에 가까운 헤이다를 잠시 봉인할 수도 있다.

-현자가 나와 헤이다를 챙겨 주기로 했다.

-나와 헤이다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이어 나갈 것이다.

-가문도, 힘도 사라진다. 제대로 된 인간으로서도 살 수 없겠지만 그래도 괜찮다.

즉, 현자가 도움을 주기로 했고, 오델토는 죽음을 위장할 것이며, 헤이다는 모습을 감춘다는 것.

병기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헤이다가 친구의 죽음을 목격해야 한다.

적어도 마지막 순간에는 함께 할 수 있다는 뜻.

오델토는 이걸 노렸다.

현자와 만나기로 한 장소로 입장.

그곳에서 오델토는 영혼이 될 것이며, 헤이다는 잠시 봉인될 것이다.

현자가 둘을 챙겨 빠져나오면 그걸로 끝.

헤이다를 잃은 가문은 힘을 잃을 것이고, 오델토는 헤이다와 함께할 수 있다.

그런 이야기였지만…….

“이렇게 된 걸 보니까 제대로 안 됐나 보군.”

오델토는 죽었고, 헤이다는 여전히 요정으로 남아 있었다.

계획을 들킨 걸까, 아니면 예상치 못한 사고를 당한 걸까.

어쩌면 현자가 배신했을 수도 있다.

뒷 내용이 궁금했지만 일기는 이걸로 끝이었다.

그것보다 존 트레일러라.

아는 이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중급 아케인 젬 Arcane gem (A)]

-과거 92층까지 올랐던 현자, 존 트레일러의 작품

-홀로 남은 그는 인공생명체 호문클루스를 제작해 탑을 공략하려 했습니다.

-등반은 실패했지만 그의 업적은 남아 있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아이템을 만든 장본인이니까.

일기장을 덮었다.

그때.

[오델토의 선물- 히든 퀘스트 클리어!]

[보상이 지급됩니다.]

퀘스트 클리어 알림이 떴다.

헤이다가 편지를 읽은 모양.

하늘에서 보상이 떨어졌고.

[오델토의 부탁-히든 퀘스트가 생성됩니다.]

[오델토의 영혼 인형 활성화]

[인형을 찾을 시 퀘스트가 진행됩니다.]

동시에 퀘스트가 생성됐다는 말과 함께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오델토의 영혼 인형.

일기장에 쓰여 있던 그거 같은데.

-드드득

“음?”

근처에서 소음이 들렸다.

덕춘이가 낸 건가 싶었지만 얌전히 침대에 드러누워 졸고 있다.

그렇다는 건.

-끼이익, 끽

폐가 한구석에 쌓여 있는 잡동사니.

필드를 돌아다니며 헤이다가 모은 물건들이었고, 그중에는…….

[오델토의 영혼 인형]

-오델토의 영혼이 깃든 인형

-부분 파손이 있지만 영혼은 건재합니다.

“여기 있던 건가. 헤이다가 찾긴 했었구나.”

헤이다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오델토가 있었다. 비록 불에 그슬리고 균열이 간 목각 인형의 형태였지만.

역시나 48층 필드는 오델토가 죽은 장소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건가.

난 기다시피 내게 다가오는 인형을 들어 올렸다.

[오델토의 영혼 인형이 퀘스트를 제안합니다.]

[오델토의 부탁-히든 퀘스트]

-헤이다에게 선물과 편지를 전해준 당신!

-진짜 일기장도 찾았을 게 분명하군요.

-그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델토와 헤이다가 함께할 수 있도록 도와줍시다.

-오델토의 부활 (0/1)

-부활한 오델토와 헤이다의 만남 (0/1)

-헤이다의 악몽 처리 (0/1)

-보상: 죄악의 저주 인형, 업보의 희생양

내게 주어진 퀘스트 내용을 확인했다.

여전히 헤이다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

측은한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이거 깰 수 있는 건가?’

퀘스트 난이도가 엄청나다.

첫 번째 조건부터 심상치 않다.

“부활이라니… 사라진 몸뚱이를 복구하라는 건 아닐 테고. 처음 계획했던 호문쿨루스로 만들어 달라는 거 같은데.”

[오델토가 맞다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난 못 만들어, 그거.”

장비 제작 스킬이 있기는 하지만 호문쿨루스는 무리지.

다른 것도 아닌 마법 생명체를 만드는 건데.

[오델토가 52층에 현자, 존 트레일러가 있다고 전합니다.]

[그가 도와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렇다면 말이 다르지.

52층까지 올라가는 건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문제는 얘를 호문쿨루스로 만들어도 두 번째 조건이 걸린다.

헤이다와 만나게 하라니.

당연하게도 50층대를 넘어서면 40층대는 올 수 없다.

편법이 가능하다면…….

“혹시 호문쿨루스도 아이템으로 분류되나?”

[그건 아니라고 오델토가 고개를 흔듭니다.]

개인 거래를 통해 40층대를 오르고 있는 사람한테 부탁하는 것도 불가능.

이건 고민 좀 해 봐야겠는데.

난 인형을 침대 위에 올려 두고 생각에 잠겼고.

[오델토가 고마움을 전합니다.]

“응?”

[당신이 퀘스트를 클리어해 준 덕분에 헤이다의 나쁜 기억들을 꺼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나쁜 기억이라니.

설마?

난 보상으로 얻은 아이템, 헤이다의 악몽의 정보를 살폈다.

[헤이다의 악몽 (SS)]

-헤이다가 정신 보호를 위해 무의식 속에 봉인한 기억들

-끔찍한 감정과 트라우마가 깃들어 있습니다.

-대상에게 주입 가능합니다.

이런 것도 가능하구나.

헤이다의 기억이 온전하지 않은 이유는 떠올리기 싫은 기억들을 무의식에 감췄기 때문.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지만 계기만 있다면 언제 다시 기억이 되살아날지 몰랐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제거해 버린다면 갑작스럽게 폭주할 일도 없겠지.

[오델토가 자신이 내준 퀘스트가 어렵다는 건 알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이 퀘스트에 특수 조건도 달 생각이었다고 전합니다.]

“특수 조건?”

[비록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데니엄에 대한 분노는 남아 있다고 외칩니다.]

[그에게 복수해 준다면 추가 보상으로 ‘영혼 찢기 (S)’를 주려고 했었다고 중얼거립니다.]

[욕심인 걸 알기에 퀘스트를 받지 않아도…….]

잠깐만.

S급 스킬이요?

“그, 그 추가 보상이라는 거 퀘스트 안 받으면 못 얻는 거지?”

[원칙상 그렇다고 전합니다.]

“퀘스트 한다! 데니엄한테 복수도 해 줄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퀘스트 수락을 눌렀다.

사람은 가끔 머리가 비상해질 때가 있다.

위기의 순간, 심리적으로 쫓기고 있을 때,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기회를 눈앞에 뒀을 때 등등.

난 빠르게 머리를 굴렸고.

“할 수 있어.”

기어이 방법을 찾아냈다.

헤이다의 악몽.

그리고…….

“그것만 있으면 전부 클리어 가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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