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187화 (187/740)

187화 48층

Q&A가 끝났다.

나와 보송송이와의 대화로 인해 약간의 혼란이 찾아오기도 했다.

100층 도전의 조건과 60층대 이상의 상위층 등반가들의 존재가 밝혀졌으니까.

덩달아 내 위치에 대한 갑론을박도 벌어졌었고.

덕분에 혼돈 수치가 1점 올라갔다.

이준석이 수습에 나서고, 참가자들 역시 확신을 갖기 힘든 일인지라 생각보다 빠르게 열기가 식기는 했지만.

너무 먼 이야기기는 하지.

4, 50층도 아니고 60층 이후의 일이니까.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전체적으로 만족한 시간이었다.

물론 나를 제외하고.

혼란을 틈타 나한테 사랑 고백하는 놈들 때문에 멘탈이 갈렸거든.

“후, 후우.”

“그에에에.”

Q&A 때 받은 스트레스를 푸는 건 당연한 일.

46층에 있던 돌바위 거북을 전멸시키고, 히든 보스였던 5성급 몬스터 아일랜드 터틀까지 깔끔하게 사냥했다.

이후 47층 역시 마찬가지.

치히린에게 받은 버프를 이용하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스킬을 쏴 댔고 그 결과.

“시커멓게 그냥.”

필드 대부분이 까맣게 타들어 갔다.

곳곳이 파이고 산이 박살 났으며, 몬스터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다.

얼어붙고, 전격에 지져지고, 빔에 녹아내리고…….

뚫린 구멍 위로 지하수인지 뭔지 모를 것이 올라오고 있었다.

살벌하기 그지없는 풍경이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난 자리에 주저앉았다.

요 며칠 폭주했더니만 힘이 쭉 빠진다.

이게 다 보송송이와 했던 대화 때문이다.

“상위층에 있는 녀석들이 날 주시하고 있다고?”

카메라와 사진 등록 스킬을 주면서 보송송이를 친구 등록 했다.

아무래도 60층대 이후는 드러난 정보가 거의 없어서.

이참에 조언도 듣고 도움도 받을 생각.

이준석에게 얻는 정보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직접 상위층에 머물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가 더 현실적이니까.

“상위층에 존재하는 세력이 몇 개 있다는 거 같은데.”

보송송이 본인도 아직 60층대 중반이라 자세한 상황은 모른다고 했다.

60층 이후에 남아 있는 사람도 많지 않았고.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만 봤을 때는 대충 40명 좀 넘는 거 같다고 했나?

생각보다 많다.

커뮤니티를 쓰지 않는 사람도 있기는 할 테니 좀 더 있다고 보는 게 맞으니까.

여기서 알게 된 사실이 있었으니.

“70층 이상은 채널이 따로 열려. 60층대는 하위층과 상위층 둘 다 활동할 수 있는 중간지대고.”

커뮤니티는 기본적으로 자신이 올라온 층대 이하 채널만 글을 쓸 수 있다.

난 40층대를 공략 중이니 40층 이하 채널에는 모두 글 작성이 가능하다.

50, 60층대 채널은 보는 것만 가능하고.

70층대 채널은 접근 권한이 없어 볼 수 없었다.

65층부터 열람 가능하다나.

“실력에 따른 차등을 두겠다는 거겠지.”

서로 간섭할 수 없도록.

70층 이상 올라간 이들은 제약이 생겨 상위 채널에서만 글을 쓸 수 있다고 했다.

위층에 대한 정보가 왜 이렇게 없나 했더니만 이런 이유가 있을 줄이야.

벅벅 머리를 긁었다.

남들보다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 부족하다.

나보다 강한, 어쩌면 NPC와 비견할 수 있을 정도의 강자가 실존한다는 걸 확인했으니까.

60층대에 올랐다가 나온 사람은 S급 헌터로 분류되며, 세계적으로 다 합쳐 봐야 그 수가 100명이 채 되지 않는다.

그중에서 30명가량이 재앙이라 불리는 네임드 몬스터와 싸우다 죽었고, 갖가지 사고로 사망한 이들, 나이가 있어 은퇴한 이들까지 빼면 실질적으로 활동하는 S급 헌터는 50명 정도.

탑 생성 후 13년이 지난 현재 수치로는 그렇다.

그 말은 곧.

“밖으로 나가게 되면 헌터계를 뒤집을 사람들이 S급 헌터만큼 있다는 거네.”

인간의 한계라고 생각되었던 60층을 넘어선 괴물들.

그런 녀석들이 40명이 넘는다라.

문제는 내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어떤 생각인지 알 수 없다는 것.

친구 추가를 한 후, 보송송이와 개인 메시지로 대화한 걸 떠올렸다.

[보송송이]: 당연히 60층대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군요… 제가 괜한 말을 했네요.

[보송송이]: 상위층에 있는 애들치고 정상인은 많지 않습니다.

[보송송이]: 착하고 이상한 애들도 있고, 말 그대로 정신병자도 있고.

[보송송이]: 루키 그룹은 중도? 악인이라고 할 정도는 아닌 거 같더라고요.

[보송송이]: 듣기로는 몇 명은 80층대에 있다는 것도 같고.

[보송송이]: 루키 그룹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대형 길드와는 인연을 끊은 사람들이죠.

이준석이 예상한 대로 그들은 대형 길드를 벗어났다.

당연한 일이다.

루키는 일종의 제약을 받는다.

정보를 말할 수 없는 폭탄을 목에 심게 되니까.

그런 일을 한 길드에 좋은 마음을 가지지는 않겠지.

개인의 무력이 이미 길드와 대적할 수 있을 수준인데.

아마 목에 달린 폭탄도 제거했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왜 녀석들이 내게 관심을 주냐는 건데.

“아무래도 공략 때문이겠지?”

“그에에에.”

“끼이익?”

눈에 안 띄는 게 더 힘들다.

보송송이도 그거 때문에 관심을 가지는 그룹들이 몇 개 더 있다고 말했다.

따지고 보면 상위층을 제외하면 가장 큰 세력을 이끄는 중이기도 했고.

대형 길드도 이겼으니 현재 주류는 쁘찡 연합이다.

이번에 혼돈 수치를 공개하며 더 주목을 받게 될 건 뻔했고.

더불어.

[보송송이]: 이블아이에 대한 관심도 커요.

[보송송이]: 루키들을 전멸시킨 인물이니까요.

또 다른 신분인 이블아이 역시 관심을 끌고 있었다.

이건 이해된다.

어찌 됐든 길드에 발을 담갔던 이들.

후배 루키들의 소식을 듣고 있었을 거다.

이블아이와 쁘띠공듀가 동일 인물인 게 문제지.

상위층에 오르면 만나게 될 녀석들.

적대적으로 나올까, 아니면 우호적으로 나올까.

지금 걱정해서 될 일은 아니다.

머리로 생각해 봐야 실제로 만났을 때 어떤 식으로 나올지 알 수 없으니.

혹시나 문제가 생겼을 때 대응할 수 있도록 내 힘을 키워 두는 게 중요하다.

“결국 할 일은 똑같아.”

강해져서 탑 정상으로 향한다.

헌터든, NPC든, 몬스터든, 이겨 낼 수 있을 무력.

등반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했다.

[버프, 요정의 입맞춤 지속 시간이 종료됩니다.]

마음을 다잡은 내 머리 위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스킬 레벨을 올리는 데 전념하느라 제대로 확인도 못 했었네.

결과는 좋았지만.

전체적인 스킬 레벨이 크게 올랐다.

AA등급으로 승격시킨 것도 제법 되고 내성 스킬도 상승세.

기타 잡다하게 사용하던 디그나 워터 같은 스킬도 어느 정도 성장했다.

메인으로 쓰는 공격 스킬들은 AA등급 후반대를 바라보고 있고.

치히린이 말했던 대로 요정의 입맞춤은 대단한 버프였다.

등급을 올리느라 돈을 좀 많이 쓰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쓰는 김에 포인트를 더 써서 상점창도 골드 등급까지 올렸다.

왜냐, 스킬 등급을 S급으로 올리기 위해서는 골드 등급 상점창에서 파는 골드 쿠폰을 사용해야 하니까.

그 말은 뭐다?

[파이어 밤 (AAA) Lv.1]

-콰아아아앙!

S급으로 승격할 가능성이 있는 스킬이 생겼다는 거다.

손을 내뻗은 곳은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초원.

그 자리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다.

단번에 초원이 숯덩이로 변했다.

달아오른 공기가 휘몰아치고, 대지는 까맣게 물들었다.

맨 처음 이 스킬을 얻었을 때를 생각하면 엄청난 발전.

이 정도 수준이면.

“5성급도 몇 대 맞추면 잡겠는데.”

4성급은 이제 신경 쓸 필요도 없을 정도.

굳이 스킬을 쓰지 않더라도 칼질 몇 번 하면 잡을 수 있다.

맨손으로 찢어 버려도 되고.

강해졌다.

분명 강해졌는데.

“아직 갈 길이 먼 거 같단 말이지.”

왠지 모를 조급함이 생겨난다.

스펙 자체는 훌륭하다.

솔직히 말하면 50층대에 있는 헌터와 붙어도 이길 자신이 있다.

60층대까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으니.

“생각해 보면 지금 가지고 있는 스킬 전부 승격시켜서 이렇게 된 거잖아.”

“그에에에.”

파이어 밤도 처음에는 B급 스킬이었다.

변태처럼 계속해서 사용하고 승급에, 승급에, 승급을 거쳐 AAA등급까지 올린 거지.

다르게 말하면.

“태생이 A급을 넘어가는 스킬은 없었다는 거지.”

스킬 등급은 다양했지만 태생 AA급 스킬, 태생 AAA급 스킬은 존재하지 않는다.

전부 승급을 통해 AA급, AAA급으로 만드는 거지.

S급 스킬부터는 다르다.

태생 S급 스킬, 태생 SS급 스킬. 이런 식으로 얻을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차별점이 있다면.

[Tip. S급, SS급, SSS급 스킬은 승급이 불가능합니다.]

[Tip. 태생 S급 스킬 이상부터는 특별한 강화가 가능합니다.]

S가 붙는 스킬들은 승급이란 개념이 없다는 것.

더불어.

[Tip. A급 이하 일반 스킬들은 최대 S급까지 승급할 수 있습니다.]

태생이 A급 이하인 스킬은 명확한 한계를 가진다.

결국 지금 가지고 있는 걸 갈고 닦아 봤자 끝은 정해져 있다는 것.

S급 Lv.10.

파이어 밤이든, 오로라 빔이든 뭐든 이게 한계다.

더 높은 등급의 스킬을 얻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벽에 부딪힐 거다.

“NPC들은 탑을 올랐던 존재고, S급까지 승급한 스킬도 많이 가지고 있겠지.”

킬더레스도 그렇다.

고작 침묵 스킬을 S등급까지 올리지 않았던가.

그쯤 되면 어지간한 스킬들은 S등급. 주력기로 쓰는 스킬은 그 이상이라는 말이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층에는 도달하지 못했다는 거지.”

이게 참.

처음 아무것도 몰랐을 때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붙어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탑에서 보낸 시간이 늘어나고 아는 게 많을수록 도전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게 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평생 탑에 박혀서 명예 NPC가 되는 건 사양이다.

잠깐만…….

“세계가 멸망할 때까지 탑에 갇혀 있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밖으로 자동 퇴출당하나?

아니면 진짜 NPC로 변환?

등 뒤로 소름이 돋았다.

내 상상력이 부족한 건지는 몰라도 좋은 결과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최악의 경우 존재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을까?

상식 따위는 갖다 버린 곳이 탑.

그러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이미 탑이 생성된 자 10여 년이 흐른 상황.

우리 세계는 얼마나 버틸 수 있는 걸까.

“덕춘아, 올라가자. 더덕이도 준비해.”

“궤에에에.”

“끼이이이.”

난 필드에 즐비한 몬스터 사체를 흡수하고 있던 더덕이를 불러왔다.

요즘 잘 먹어서 그런가 덩치가 좀 늘었다.

윤기도 좔좔 흐르고.

얼굴 윤곽도 더 명확해진 것 같은데.

묘하게 잘생겨서 살짝 기분 나쁘기도.

“그에에.”

“흠흠, 움직이자.”

덕춘이의 핀잔에 헛기침을 하고 일어섰다.

47층에서 스킬 레벨을 올리며 선택지도 생성됐다.

[선택하시오]

[숨겨진 저주 인형 봉인]

[숨겨진 저주 인형 해제]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저주 인형을 봉인하거나 해제하라는 선택지였는데.

“어쩌냐 이거.”

스킬을 펑펑 써 댄 턱에 인형이 망가져 버렸다.

[망가진 저주 인형]

-강력한 저주가 담긴 장치

-…였습니다.

-잘 고치면 작동할지도?

-이 튼튼한 게 망가지네요.

노린 건 아니지만 이번 선택지도 글러 먹었다.

봉인이든 해제든 멀쩡해야 뭘 하지.

살짝 억울하기도 하다.

숨겨져 있던 탓에 의도치 않게 망가트린 거니까.

원래라면 어지간한 충격은 버틸 정도로 튼튼한 모양이지만 치히린의 버프 덕에 스킬 레벨이 많이 올라서…….

어쩔 수 없지.

“부수자.”

“그에에.”

“끼이이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드는 덕춘이와 더덕이.

어쩌겠냐. 원래 세상 사는 게 마음먹는 대로 안 돼요.

난 망가진 저주 인형을 손에 쥐었고.

-파삭!

그대로 움켜쥐었다.

내구도가 한계에 다다랐던 인형이 부서지고.

[선택 완료]

[저주 인형 완전 파괴]

[48층으로 전송됩니다.]

-우우우웅!

난 포탈에 삼켜졌다.

[48층]

[선택하시오. (0/1)]

익숙한 전송 시간이 흐르고.

눈을 떴을 때는 삭막한 풍경이 날 반겼다.

포탈로 이동하지 않았다면 내가 부숴 버린 47층이라고 착각했을 정도.

이 정도면 상태가 더 심한 것 같기도 하고.

“핵폭탄이라도 맞은 거 같은데.”

실제로 핵폭탄이 떨어진 곳을 간 적은 없지만 가 보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허허벌판.

까맣게 타들어 간 나무는 쓰러지지도 못한 채 숯이 되어 서 있었고, 산은 모래성처럼 옆으로 밀려났다.

건물이 있던 자리로 추정되는 곳은 돌덩이 몇 개가 전부.

뿌옇게 흐린 하늘.

당장이라도 비가 올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느껴지는 건 건조하고 탄내 가득한 바람뿐이었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바닥에 쌓인 잿가루가 밟혀 눈길처럼 발자국이 남는다.

대체 이곳에 무슨 일이 있던 걸까.

다른 곳도 아니고 48층은…….

“오델토의 반지랑 연관된 퀘스트가 있는 곳인데.”

그런 내 의문을 풀어 주기 위함일까.

다른 곳과 다르게 선택지가 바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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