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181화 (181/740)

181화 45층

괴익조와 철면귀 무리의 전투.

시작은 철면귀였다. 머릿수를 앞세워 돌격했으니까.

단순히 육탄 공격을 하는 게 아니다. 전략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미끼나 다를 바 없는 선발대를 지속적으로 보냈으며, 괴익조가 대응하기 힘들도록 다양한 방향에서 공격을 감행했다.

기회가 생길 때마다 작살과 그물을 던져 댔으며, 말뚝으로 고정.

안전거리를 확보한 채 창 같은 중거리 무기를 사용했다.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으나 괴익조는 5성급 괴물.

“키하아아악!”

압도적인 피지컬로 그물을 찢어발기고 거대한 날개를 휘둘렀다.

스킬인 게 분명한 칼바람이 철면귀를 강타!

터져 나가듯이 철면귀의 진형이 붕괴됐다.

좋은 선택이다.

사방에서 덤벼드는 만큼 범위 공격을 이용하는 게 맞았으니까.

게다가.

“철면귀는 어둠 속성이란 말이지.”

옵텍터와 비슷한 놈들이라는 것.

물리 공격에 강한 내성을 지닌다.

실체가 없는 건 아니니 타격이 안 먹히는 건 아니지만, 제대로 된 데미지를 입히려면 신성력이 담긴 공격이나 기타 마법형 공격을 해야 한다.

괴익조 또한 그걸 깨달은 걸까.

승기를 가져오기 위한 일격을 준비했다.

“키하아아악!”

활짝 연 가슴이 급격히 팽창한다. 동시에 아가리에 몰려드는 힘의 파동.

고룡족은 드레곤종의 먼 조상 격.

그 말은…….

[코어 브레스 (S)]

-쿠콰아아아아악!

손에 꼽히는 공격 스킬.

브레스를 사용할 수 있다는 거였다.

“끄가가각!”

“까가가각!”

개미 떼처럼 몰려들던 철면귀가 단숨에 휩쓸려 나갔다.

4성급과 달리 5성급은 강력한 공격 수단이 하나쯤은 있다.

모든 단점을 상쇄시킬 파괴적인 무언가가.

한 등급 차이지만 꺾을 수 없는 격차가 나는 이유.

하지만…….

“철면귀도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는 않아.”

한 번의 공격에 선발대 대부분이 전멸했지만 여전히 철면귀의 숫자는 많다.

이 정도 피해는 예상했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후발대를 보낸다.

앞서 돌진했던 놈들은 말 그대로 희생양.

괴익조의 힘을 빼기 위해 사지로 몰아넣은 거다.

그 증거로 숲 입구에는 철면귀의 본대가 남아 있었고, 일부 무리는 숲을 가로질러 절벽 아래로 움직이고 있다.

시선을 붙잡은 사이, 절벽을 타고 올라가 괴익조의 약점인 알을 챙기기 위함이겠지.

냉정하지만 효과적인 방법.

-우! 우! 우! 우!

쳘면귀 본대가 발을 구르며 소리를 지른다.

뒤쪽으로 돌아간 동족을 들키지 않기 위해 수작을 벌이는 것.

꾸역꾸역 전진하는 희생양들과 스킬을 사용하는 괴익조.

아무리 5성급 괴물이라도 스킬을 무한정 사용할 수는 없다.

이대로 가면 괴익조가 패배할 것 같았지만.

“키하아아아악!”

괴익조 역시 멍청이는 아니다.

접근하는 놈들을 날려 버리고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고점까지 상승한 놈이 몸을 비튼다.

그대로 하강.

-콰가가가가각!

육중한 몸을 무기 삼아 그대로 바닥을 스치며 지나간다.

도망가기에는 너무 빠르다.

-콰직!

피하지 못한 놈들이 뭉개지며 철가면이 박살 난다.

그림자 같던 몸이 흩어진다.

철면귀의 본체는 가면이나 마찬가지.

철면귀를 먹이로 삼은 만큼 약점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괴익조 역시 데미지를 입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날아오른다.

녀석이 무리하는 이유?

당연히 자신이 물러서면 알을 보호할 수 없기 때문이지.

전투의 열기가 극에 치달은 시점.

“움직일 타이밍이군.”

인벤토리에 넣었던 더덕이를 꺼냈다.

덕춘이는 펫이라 그런지, 영물이라 그런지 인벤토리에 넣는 게 불가능했지만 더덕이는 가능하다.

일단은 영약 취급이라 그런 것 같은데.

“끼에에에에!”

반응을 보다시피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일 잘 끝나면 맛있는 거 줄 테니까 좀 조용히 해 봐.”

“끼, 끼에에.”

가볍게 주먹을 들어 올리며 달래자, 마음이 통한 더덕이가 고개를 까딱인다.

작전은 간단하다.

어차피 난 괴익조와 철면귀 양측에 볼일이 있다.

그렇다고 대놓고 싸우는 건 부담스럽다.

숫자가 워낙 많아야 말이지. 굳이 싸우라면 싸울 수 있겠지만, 그러다 운 나쁘게 괴익조가 쏜 브레스에 당하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서로 싸우고 있는 상황을 이용할 생각.

가장 먼저 챙겨야 할 건 괴익조의 알이다.

퀘스트 재료로 가져가야 할 알은 3개.

둥지에 있는 알도 3개.

한 개라도 깨지면 죽었다가 다시 올라와야 한다.

“그러고 싶지는 않아서 말이지.”

40층에는 지금 탈모맨이랑 냥펀이 있는 상황.

괜히 얼쩡거리다 마주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니 한 번에 제대로 끝내자.

“덕춘아, 부탁한다.”

“궤에에엑.”

“실수로라도 먹지 말고.”

“그에에에.”

“끼이이이?”

뭔가 잘못 들었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더덕이.

그러거나 말거나 날름, 덕춘이가 더덕이를 혀로 감쌌고.

“마음껏 뛰놀다 와!”

“그에에엑!”

“끼아아아아아악!”

곧장 전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풍선처럼 혓바닥에 묶여 흔들거리는 더덕이.

본능적으로 비명을 질러 댔고.

[영혼의 절규 (S)]

“끄가가가가!”

“키하아악!”

한창 싸우던 놈들이 귀를 부여잡고 뒹굴기 시작했다.

황급히 하늘로 치솟는 괴익조.

철면귀는 몸을 들썩이며 몸을 비튼다.

거리가 있음에도 소름이 끼칠 정도.

그나마 스킬 레벨이 올라서 버티는 거지 안 그랬으면 나도 같이 굴렀다.

계획은 간단하다.

5성급 몬스터도 피하는 게 만드레이크의 비명 소리.

덕춘이는 상관없으니 전장을 누비며 적들을 무력화시키고, 그사이에 나는…….

“알을 챙기는 거지.”

[땅굴 이동 (C) Lv.1]

위치는 이미 확인해 뒀다.

절벽 끄트머리.

낭떠러지나 다를 바 없는 곳에 둥지가 있다.

-콰가가가가!

내 의지에 따라 땅굴이 파지며 이동한다.

확실히 빠르다.

땅속으로 이동하는 탓에 위치를 가늠하기 힘들다는 게 단점이기는 하지만.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나중에 관측이나 탐지 스킬을 익혀 보완할 생각을 하며 둥지가 있는 방향으로 돌진했고.

-쿠르르릉

흙이 무너져 내리며 바깥이 드러났다.

절벽 한가운데.

살짝 빗나갔다. 좀 더 위로 올라가야 둥지가 나온다.

“까그가가?”

“까가각?”

대신 열심히 절벽을 오르고 있는 철면귀를 만날 수 있었는데.

“경쟁자 제거!”

-콰아앙!

“끄가가가!”

망설임 없이 절벽 일부를 부숴 놈들을 추락시켰다.

알에는 내가 먼저 침 발라 놨다.

자유 낙하를 하며 멀어지는 놈들을 무시하고 다시금 땅굴 이동을 사용했다.

이번에는 조심스럽게.

실수로라도 알이 깨지면 곤란하다.

-쿠르르릉

뚫린 구멍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근처까지 왔다.

대략 3미터 정도 위에 둥지가 있다.

여기부터는 절벽을 타고 올라가는 편이 낫겠지.

-끼아아아아악!

멀리, 더덕이가 소리 지르는 게 들린다.

아직은 저쪽에 이목이 쏠린 모양.

서두르자.

-콰득!

붙잡을 만한 게 별로 없는 지형이었지만 문제는 없었다.

그냥 절벽에 주먹을 꽂아 넣으면 되니까.

적당히 무너지지 않을 정도의 강도로 팔다리를 고정하며 위로 전진.

“가까이에서 보니까 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둥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사람 몸통만 한 사이즈.

메추리알처럼 흰 바탕에 검은색 반점이 가득한 알 3개를 인벤토리에 넣었다.

생각보다 쉽게 끝난 작전.

이제 안전하게 탈출하면…….

“키해애애애액!”

“들켰나.”

하늘로 치솟았던 괴익조가 나를 향해 활강한다.

더덕이의 비명에 정신없는 와중에도 알을 신경 쓰고 있던 모양.

거대한 놈이 달려들자 일순간 태양이 가려진다.

이미 눈이 돌아갔다. 결코 도중에 멈추지 않을 기세.

[땅굴 이동 (C) Lv.1]

뒤도 안 돌아보고 절벽 안으로 들어갔다.

놈이 나를 잡기 위해 발을 집어넣고 마구 헤집는다.

피지컬이 워낙 좋다 보니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절벽 일부가 무너져 떨어져 나갔지만, 고속으로 이동하는 나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고.

“후아!”

놈에게 잡히지 않고 절벽 위로 올라올 수 있었다.

나를 찾기 위해 괴익조가 상공으로 날아오고 절벽 위에는 귀를 감싼 채 부들거리는 철면귀가 가득하다.

그야말로 개판.

“나이스, 덕춘이, 더덕이.”

“그에에에.”

임무를 완수한 덕춘이가 내게 다가온다.

정신없이 휘둘러서 그런지 더덕이는 반쯤 혼수상태.

비명을 지르는 것도 한계가 있는지 미약한 울음소리만 낼 뿐이다.

여기부터는 내가 나설 차례.

-콰아아앙!

나를 찢어발기기 위해 날아오는 괴익조를 향해 점프했다.

파이어 밤으로 출력 증가.

날듯이 놈을 향해 돌진했고.

-서걱

주둥이를 피해 몸을 돌리며 검을 그었다.

노리는 건 날개.

파이어 밤을 이용하면 허공에서도 움직일 수 있지만 마력 소모도 크고 섬세한 컨트롤은 힘들어서 말이지.

권능과 함께 절삭.

날카롭게 들어간 칼날이 놈의 뼈를 긁었고.

[포식자의 응어리 (A)]

-연결 시킨 장비에 ‘물어뜯기 (A)’가 적용됩니다.

유충을 잡으며 얻은 아이템의 효과로 상처 일부가 뜯겨 나갔다.

한순간 멈추는 날갯짓.

이어 검을 꽂아 몸을 고정하고 일렉트릭 쇼크를 날렸다.

AA등급에 오른 전기 충격이 놈을 강타했으며.

“키하아아아아!”

몸이 마비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프로즌 브레이크를 사용했다.

덩치가 큰 만큼 전부를 얼리기는 힘들었지만 날개 한쪽 정도는 가능하다.

뼈가 부러진 오른쪽 날개.

얼음으로 뒤덮인 왼쪽 날개.

놈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추락뿐이었으며, 그 자리에는.

-후우우우웅

“까가가가각!”

“까그극!”

패닉에 빠져 있던 철면귀 무리가 있었다.

거대한 몸.

그에 걸맞은 무게.

추락하는 속도.

[중량 팔찌 (C)]

[러브 앤 피스 (A) Lv.9]

나 역시 힘을 보탰다.

무게를 늘린 나와 괴익조의 몸을 신성력으로 덮었다.

철면귀의 속성은 어둠.

신성력과 상극이었으며.

땅이 가까워진다.

나를 올려다보는 철면귀.

어떤 표정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가면을 쓰기도 했고.

-콰드드드드드득!

-콰아아아앙!

미처 확인하기도 전에 나와 괴익조가 땅에 내리꽂혔으니까.

대지를 부수며 앞으로 나아가는 괴익조.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신성력의 파편.

막대한 신성력과 물리적인 힘에 터져나가는 철면귀.

게다가.

“키헤에에엑!”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 괴익조가 브레스를 뿜어 댔다.

정작 나는 놈의 위에 올라타 있어 맞을 리 없었으나, 운 좋게 살아남았던 철면귀는 공격 범위에 들어갔고.

-콰아아아아!

숲의 절반이 타들어 가는 것으로 전투는 끝이 났다.

바닥에 고개를 박은 괴익조의 머리에 검을 찔러넣었다.

뭐든 확실한 게 좋은 법.

뇌를 파괴한 후 살아남은 철면귀를 하나하나 찾아내 마무리 지었다.

옆에 다가와 도와주는 덕춘이.

도축으로 가면을 뜯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 하는 김에 괴익조도 해야지.

피막 조각과 가죽, 이빨 몇 개를 얻은 시점.

[선택을 완료했습니다.]

[45층으로 이동합니다.]

“칼같이 올라가네.”

“그에에에.”

빛이 몸을 감쌌다.

* * *

묘하게 따뜻하면서도 청량한 감각.

익숙해진 부유감에 몸을 맡겼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는.

[45층]

[선택하시오. (0/1)]

“음?”

이상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서 있는 곳은 거대한 호수 앞.

깊이를 알 수 없는 호수에는 두 존재가 있었으니.

[모빌리딕- NPC]

-평소에는 듬직한 친구, 땅의 중급 정령.

-땅의 정령은 헤엄을 칠 수 없습니다.

-물에 대한 극심한 공포

웬 흙으로 만들어진 고래 한 마리가 입을 내놓고 발버둥 치고 있었으며.

“요정 살려!”

[치히린- NPC]

-우리의 유쾌하고 짜증 나는 친구, 요정족.

-요정족은 날개가 젖으면 날 수 없습니다.

-왜 빠진 걸까요?

다른 한쪽에서는 팔뚝만 한 크기의 요정이 물에 잠겼다 떠오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게 뭔 상황일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