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179화 (179/740)

179화 끼에엑!

메스토카 유충을 사냥한 내게 떠오른 메시지.

[죽음의 길에서 생존!]

[메스토카 유충을 처치했습니다.]

[요정족의 친화도가 오릅니다.]

[메스토카가 당신에게 적대심을 가집니다.]

[설계된 죽음이 빗나갑니다.]

[혼돈 수치가 1점 올라갑니다.]

요정족에 대한 친화도가 올랐다는 건 좋은 일이다.

뭐든 호감이 있어서 나쁠 건 없으니까.

문제는 메스토카가 분노했다는 건데.

“나중에 만나게 되려나.”

“그에에.”

언젠가 부딪쳐야 한다면 그 전에 준비하면 그만이다.

아직 강해질 수 있다.

그것보다.

“드랍템?”

이건 오랜만이네.

몬스터를 잡으면 간혹 아이템이 뜬다.

대부분 잡템에 가까운 물건이나 부산물이었지만.

5성급 정도 되면 뱉어 내는 것도 클라스가 다르다는 건가.

무려 스킬북 2개와 장신구를 떨궜다.

혹시 스타 버스트도 있지 않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스킬북을 집었고.

[땅굴 이동 (C)]

-빠르게 땅굴을 만들어 이동할 수 있습니다.

[소화 (A)]

-먹은 것을 소화시킬 수 있습니다.

-돌도 씹어 먹는 나이, 이제는 꿈이 아닙니다!

-독이든 똥이든 탈이 날 가능성이 낮아집니다.

“공격 스킬은 아니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메스토카 유충이라고 A급 스킬북도 나왔다.

소화라.

필요할까 싶기는 하다.

탑에 들어와서 대부분의 식사는 상점창으로 해결하고 있고, 독이 든 음식이라도 독 내성이 있으니 버틸 수 있으니까.

오염된 음식은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정화 스티커 (B)]

-스티커를 부착한 장비 착용 시 오염된 물질을 정화합니다.

34층 베팅으로 얻었던 아티팩트가 있어서 크게 걱정되지는 않는다.

여의치 않으면 생명수로 정화해도 되고.

그래도 뭐.

“익혀서 나쁠 건 없겠지.”

“그에에에.”

넌 좋겠다. 이런 스킬 없어도 잘 먹고 잘살잖아.

땅굴 이동 역시 나쁘지 않다.

디그로 비슷한 일을 할 수 있기는 하지만 이번에 겪었다시피 속도가 부족하다.

땅이 파이는 시간을 기다려야 했으니까.

한두 번이면 모를까, 계속해서 쓰다 보면 마력도 은근 소모될 거고.

나야 마력에 여유가 있지만 아껴서 손해 볼 건 없다.

내가 쓰는 스킬 대부분이 화력은 좋지만 마력을 많이 잡아먹는 것들이라…….

“특히 안개 질주가 그렇지.”

무적기라 그런지 마력 소모가 장난 아니다.

레벨이 오를수록 부담감이 커지는 중.

많이 써 봤자 두 번.

전투 중이면 한 번 정도가 고작이다.

마력 상관없이 계속 쓸 수 있었으면 그게 더 사기지.

계속 무적 상태로 움직인다는 거니까.

얻은 지 오래됐지만 아직까지도 A등급인 이유가 있다.

스킬북은 이 정도고.

장신구를 봐 보자.

“키링 같은 건가?”

생긴 거랑 다르게 귀여운 아이템을 뱉었네.

말랑말랑한 흰색 구체.

다른 곳에 부착할 수 있도록 고리가 달려 있다.

[포식자의 응어리 (A)]

-연결한 장비에 ‘물어뜯기 (A)’가 적용됩니다.

-힘 +33

-체력 +40

-민첩 +24

-방어력 +40

꽤 좋다.

방어력은 A등급치고 낮지만 그건 방어구가 아니니 어쩔 수 없는 거고.

스텟 자체는 준수하다.

게다가 ‘물어뜯기 (A)’가 적용된다는 건.

-끼릭

검 손잡이 끝에 포식자의 응어리를 연결했다.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결합되는 아이템.

-쩌억!

바닥에 쌓인 유충의 살덩이를 베자 평소와는 다른 소리가 난다.

깔끔하게 잘린 단면 주변으로 뭔가가 뜯긴 듯한 흔적이 남았다.

동시에 쏟아지는 핏물.

말 그대로 대상을 뜯어 버린다.

파괴력이 올라가는 건 당연했으며, 상대가 몬스터라면 출혈을 유도할 수도 있겠지.

한 번의 사냥치고는 보상이 좋다.

“죽음의 길. 거길 뚫어서 그런 건가.”

놈을 사냥하고 생성된 메시지가 그랬지.

이곳은 죽음의 길이라고.

애초에 들어선 이가 살아나가지 말라고 구성된 곳이다.

그 증거로 메스토카 유충을 잡았음에도 선택지가 뜨지 않았다.

혼돈 수치도 1점이지만 올라갔고.

돌아가자.

언제까지고 여기서 죽치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44층으로 가야지.

일단은 처음 갈림길이 나왔던 곳으로 가야 하나?

“덕춘아, 혹시 길 아냐?”

“그에에.”

그래. 알 리가 없지.

우리 덕춘이는 머리가 조그매서 뇌도 작을…….

-짜악!

“억! 농담이야, 농담. 우리 덕춘이가 얼마나 똑똑한데. 유충이 별빛 모으러 간 것도 알고.”

바로 뺨을 때리는 녀석의 머리를 긁적여 줬다.

혀를 날름거리며 째려보는 녀석.

“너 진짜 정체가 뭐냐. 메스토카 유충에 대해서는 어떻게 안 거야.”

“궥. 그에에. 궤엑.”

손짓하며 설명을 해 댔지만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차차 알게 되겠지.

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덕춘이랑은 이미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가 없는 사이.

선택지를 찾아내는 게 급선무다.

“릴카 퀘스트도 깨야 하는데.”

43층까지 올라왔지만 아직 모아야 할 재료를 얻지 못했다.

더 위로 올라야 있는 건가.

정보가 없으니 확신할 수가 없다.

혹시나 싶어 상점창에다가 검색해 봤지만 나오는 것도 없고.

가는 길에 이것들이나 챙겨 가자.

도축을 이용해 바닥에 널린 유충의 잔해를 분해했다.

5성급이니까 뭐에 써도 쓸 수 있지 않을까.

평범한 몬스터도 아니고.

무려 네임드 몬스터의 유충이다.

[메스토카 유충의 살덩이]

-말랑합니다!

-미식가 사이에서는 귀한 음식 재료로 손꼽힙니다.

[메스토카 유충의 진액 주머니]

-피부 미용에 좋은 진액이 한가득!

-더럽다고요? 당신의 얼굴이 더 더러울지 모릅니다!

대부분 뭉개져 얻어 낸 건 많지 않다.

살덩이 한 무더기와 손바닥만 한 진액 주머니가 전부.

가지고 있다가 상점창에 팔든 릴카한테 팔든 해야지.

챙길 건 다 챙겼고.

“갑시다.”

난 그나마 멀쩡한 통로로 이동했다.

위로 뚫린 곳으로 이동할까도 했지만.

[시스템적으로 막혀 있습니다.]

[주어진 필드 이탈 시 사망합니다.]

올라가는 건 불가능했다.

다른 곳과 달리 40층대는 비교적 제약이 많다.

밖으로 나가는 건 원치 않는다는 거겠지.

아예 페널티로 사망을 걸어 두기도 했고.

-저벅저벅

통로를 따라 걸었다.

어디로 이동되는지는 모른다.

한 가지 단서가 있다면.

“여기는 진액이 좀 말랐네?”

어느 시점부터 통로에 묻어 있는 진액이 말라붙었다는 것.

유충이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는 거겠지.

그것도 제법 오랜 시간 동안.

43층에 올라오고 마주친 두 갈래 길.

오른쪽은 유충이 있는 곳이었고, 왼쪽은 해골이 가득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왼쪽 통로에는 진액이 묻어 있지 않았고.

유충이 가지 않을 만한 이유가 있다는 거겠지.

즉, 진액이 마른 곳을 따라 움직이면 왼쪽 통로로 갈 수 있다는 것.

[정상적인 루트에 진입했습니다.]

예상이 맞아떨어진 건가.

반나절을 걸어서 도착한 통로에 들어서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벽을 쓸어내렸다.

“건조해.”

진액이 완전히 없어졌다.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왼쪽 통로랑 이어진 곳에 도착했다는 건 알 수 있다.

곳곳에 널린 뼈다귀들.

오래됐는지 살은 보이지 않는다.

냄새도 안 나고.

슥, 상태를 살펴보니.

-파스슥

가루가 되어 사라진다.

간신히 형태만 유지했을 뿐 내부는 텅 비어 있다.

이렇게만 봐서는 전혀 모르겠다.

“왼쪽 통로 입구에는 검은색 원이 그려져 있었지.”

그건 뭘 뜻하는 걸까.

그거랑 연결되는 것 같은데.

몬스터? 아니면 함정인가.

어떻게 되먹은 곳인지 발광 이끼조차 없다.

뭐든 조심해서 나쁜 건 없는 법.

검을 치켜들고 앞으로 나아갔다.

덕춘이 역시 듬직하게 어깨 위에 올라와 하품을 해 대고.

경계심을 유지한 채 앞으로 향한 지 얼마나 됐을까.

일자로 연결된 통로.

갈림길조차 없다.

“음?”

그때, 뜬금없이 떠오르는 선택지.

[선택하시오.]

[되돌아간다.]

[죽음의 길로 향한다.]

-쿠구구궁

선택지의 등장과 함께 벽면이 무너지더니 터널이 생성되었다.

내가 왔던 곳으로 이어지는 통로.

“뭐야?”

약간 허무할 지경.

이게 전부인가?

그냥 돌아가기만 해도 43층을 클리어할 수 있다는 거 아니냐.

“밸런스가 맞기는 한데.”

갈림길에서 한쪽은 죽으러 가는 길이었으니 한쪽은 사는 길인 게 인지상정.

죽음의 길은 이미 갔다 왔다.

지금은 죽음의 길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길이 아닐까.

그것보다.

“아직 길이 이어져 있잖아.”

“그에에에.”

안에 뭐가 있길래 돌아가라는 거지?

자고로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

선택지를 무시하고 다시 앞으로 들어갔다.

[경고!]

[되돌아갈 것을 추천합니다.]

친절하게 경고 메시지까지.

더 가고 싶어지잖아.

“게흐으.”

덕춘이가 작게 한숨을 내쉰다.

왜, 너도 가고 싶잖아.

아니야?

“그엑?”

코를 후비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녀석.

하긴 너한테 선택지가 뭐가 있겠냐.

내가 가면 따라가는 거지.

이러나저러나 운명의 파트너 아니겠는가.

난 주먹을 내밀었고.

“궤에에.”

심드렁하면서도 덕춘이 역시 주먹을 갖다 댄다.

운명 공동체 파이팅!

시시덕거리며 1시간가량을 전진.

변화가 생겼다.

“어째 좀 더 까매진 것 같다?”

빛이 없어 어두운 건 매한가지지만, 야간 시야로 보고 있는 내게는 분명한 변화가 느껴졌다.

바닥과 벽면 모두 시커멓게 죽어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색은 짙어졌고.

“어?”

막다른 길.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파리가 돋아나 있었다.

그것을 중심으로 퍼진 검은 웅덩이.

저게 통로 입구에 그려져 있던 표식인가.

난 자세를 낮추고 다가갔다.

이질감이 느껴진다.

이곳만 뼛조각이 없다.

[S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권능을 사용해 웅덩이를 살폈다.

여기까지는 별다른 특징이 없었지만.

[만드레이크의 이파리]

-강력한 독을 품고 있습니다.

-뛰어난 약제사라면 귀중한 약의 재료로 쓸 수 있습니다.

이파리는 달랐다.

릴카의 퀘스트 재료.

만드레이크.

그게 이곳에 있었다.

어디서 찾아야 하나 고민했는데 이렇게 나타나 주면 고맙지.

“귀마개부터 사야겠다.”

만드레이크는 시장에 나온 게 거의 없지만 제법 유명한 영약이다.

매체에도 여러 번 소개되었고.

특징이라 하면 역시 사람처럼 생긴 뿌리에, 뽑히면 비명을 지른다는 것?

상상 속의 모습과 실제 모습이 일치하는 영약이다.

실제로 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라 자세한 건 겪으면서 알아내야 하지만.

귀마개를 끼고 강철의 의지로 몸을 굳혔다.

이 정도면 비명을 들어도 대응할 수 있겠지.

-찰박

썩은 내가 풍기는 웅덩이 발을 담갔다.

찌꺼기만 모아 둔 것 같은 비주얼.

코가 저절로 찡그려졌지만 참아 냈다.

허리를 굽혀 이파리를 잡자.

[독 내성 (B) Lv.8]

[스킬 레벨 업!]

[독 내성 (B) Lv.9]

“크읍!”

이파리에 깃든 독이 올라오며 팔이 저려 왔다.

어찌나 강력한지 독 내성이 있음에도 버티기 힘들다.

빠르게 끝내자.

난 있는 힘껏 만드레이크를 뽑아냈고.

[만드레이크]

-전설적인 영약

-최상위 마법 재료

-흑마법사의 보물

-애호가들의 귀염둥이

-죽인 대상의 영혼을 흡수하고 시체는 거름으로 씁니다.

“끼에에에에에엑!”─

사람의 얼굴 모양의 뿌리가 모습을 드러내며 귀가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질렀다.

한순간 그로기 상태.

귀와 코, 눈에서 핏물이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으며.

[영혼의 절규 (S)]

-대상의 영혼을 갉아먹는 비명을 지릅니다.

[정신 보호 (B) Lv.2]

[저주 내성 (C) Lv.3]

[스킬 레벨 업!]

[스킬 레벨 업!]

.

.

.

연달아 스킬 레벨이 올랐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궤에에엑!”

흐릿해진 정신.

옆에서 덕춘이가 소리치는 게 느껴졌고.

완전히 의식을 잃기 직전, 덕춘이가 만드레이크의 뺨을 때린 걸 본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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