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178화 (178/740)

178화 메스토카 유충

나를 향해 덮쳐 오는 메스토카 유충.

살덩이에 끈적한 진액을 두르고 있고, 원통형 아가리에는 이빨 수천 개가 박혀 있다.

입에 닿는 건 뭐든지 분쇄할 게 분명했고.

놈의 나를 집어삼키는 순간.

“먼저 가!”

“궤에엑!”

안전한 곳으로 덕춘이를 집어 던졌다.

동시에 닫히는 입.

-카가가가각!

날카로운 이빨에 닿은 펠라인 세트가 불똥을 내뿜는다.

믹서기나 다를 바 없는 구조.

지체 없이 파이어 밤을 날렸고.

“키헤에에엑!”

놈의 입이 벌어지는 순간.

[안개 질주 (A) Lv.4]

안개화 된 몸으로 이빨 사이를 벗어났다.

나를 갈지 못한 녀석이 천장을 뚫고 위로 올라갔다.

그냥 가게 둘 수는 없지.

[망자귀환 (A) Lv.6]

단번에 스텟이 뻥튀기가 된다.

육체를 되찾으며 내뻗은 손.

[일렉트릭 쇼크 (AA) Lv.1]

[펠라인의 주황 오른 다리의 속성이 발휘됩니다!]

-콰지지지지직!

전격이 뿜어져 나간다.

펠라인 세트 효과까지 깃든 공격.

자해나 다를 바 없는 훈련을 통해 AA등급까지 올린 일렉트릭 쇼크는 강력했으며.

“크아아아악!”

메스토카 유충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데미지인지 거대한 몸을 비틀었다.

살덩이가 익으며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충격을 버티지 못한 통로가 박살 난다.

파편이 온몸을 때린다.

이 정도는 괜찮다. 스펙이 얼만데 돌덩이에 피해를 입을까.

내가 걱정하는 건 하나.

무너진 굴에 파묻혀 움직이기 힘들 때 놈에게 공격당하는 거다.

파이어 밤은 쓸 수 없다.

마찬가지로 오로라 빔도 부담스럽다.

파괴력은 좋지만 그 반발력도 엄청나니까.

가뜩이나 놈이 난동을 부려 통로 곳곳에 금이 갔다.

한곳에서 오랫동안 싸우는 건 옳은 선택이 아니다.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건.

“일렉트릭 쇼크, 절삭 정도.”

쓸 수 있는 다른 것도 좀 있지만 메인은 이 두 개가 되겠지.

방금의 일격으로 알아낸 게 있다.

놈은 덩치가 크지만 마법형 공격에는 별다른 내성이 없다.

물리 공격에는 어떨까.

-쿠르르릉

의외의 반격에 놀란 건지 놈이 도망치려 한다.

빠르다.

어느새 꽁무니만 보였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절삭 (A) Lv.1]

‘굴하지 않는 검귀’가 발휘되며 검은 더욱 날카로워지고 게다가.

[도축 (B) Lv.7]

틈틈이 사용해 레벨을 올린 도축을 함께 사용했다.

두 가지 스킬을 동시에 쓰는 건 처음.

대부분 사냥을 마친 후에 도축으로 부산물을 챙겨 상점창에 팔았으니까.

약간은 실험적인 공격이었지만.

-푸화아아악!

결과는 훌륭했다.

절삭으로 놈의 몸을 잘라내고, 도축으로 상처 일부를 부산물로 만든다.

부산물은 상점에 팔 수 있는 아이템으로 분류된다. 그 말은 곧.

“적어도 이만큼은 내 거란 말이지.”

바닥으로 떨어지는 살덩이.

대량의 핏물이 바닥을 적신다, 시커먼 오물도 함께.

말도 안 되게 크기는 했지만 기본 형태는 애벌레와 민달팽이를 합친 모습.

특징도 비슷하다.

-스르르륵

놈의 상처가 아무는 게 보인다.

재생 능력이 있는 건가.

도축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더 빠르게 회복했겠지.

-쿠콰콰콰!

“도망쳤군.”

살덩이를 남긴 채 사라진 녀석.

진동이 멀어진다.

적어도 한동안은 덤비지 않을 거 같다.

성체가 되면 국가 단위가 움직여야 하는 네임드가 되겠지만 지금은 아니니까.

경험도 강함도 덜 여물었다.

계속 움직이자.

지금은 놀라서 달아났지만 언제 또 공격할지 모른다.

자세한 정보를 모르는 지금, 조금은 사리는 것도 좋겠지.

그러니.

“엉? 덕춘아?”

얘 어디 갔어?

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살폈지만 보이지 않는다.

돌덩이에 깔려 있은 녀석도 아닌데.

설마.

난 메스토카 유충이 빠져나간 구멍을 바라봤고.

-궤에에에에에!

“덕춘아!”

곧 익숙한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기껏 빠져나가라고 던져 놨더니만!

오케이. 계획 변경이다.

“넌 죽었어.”

애벌레 달팽이 녀석.

아주 반죽으로 만들어 주마.

놈에게서 잘라 낸 살덩이를 챙기고 토굴 안으로 진입했다.

피 섞인 진액이 이어져 있다.

아직 흔적이 있을 때 따라잡아야 한다.

재생을 마치면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을 것이고, 복잡하게 이어진 터널에서 놈을 쫓는 건 불가능에 가까우니까.

-파앗!

빠르게 달렸다.

역시나.

핏자국이 희미해지고 있다.

진액은 도움이 안 된다.

어떻게 되먹은 건지 시간이 지나도 점도가 유지된다.

방금 지나갔든, 며칠 전에 지나갔든 똑같다는 것.

야간 시야의 레벨이 올랐다는 메시지가 떠올랐지만 무시하고 움직였다.

집중하자.

귀를 열고 놈이 움직이며 경로를 예측하자.

발소리가 울리는 통로를 내달리며 청각에 집중했고.

“좌측!”

[디그 (D) Lv.1]

-꾸드드득!

대충이나마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다.

놈은 빠르다. 단순히 지나간 곳을 따라 달려서는 붙잡기 힘들다.

직접 길을 뚫으며 앞질러 가야 한다.

중간중간 메스토카 유충이 뚫은 길이 나왔다.

그때.

-화륵

저 멀리서 불꽃이 보였다.

덕춘이다. 녀석에게는 화염 특성이 있으니까.

자신의 위치를 알리고 있는 거다.

처음에는 단순 사고인 줄 알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일부러 매달려 있는 거야.”

애초에 덕춘이가 놈에게 덤빌 리가 없다.

나한테는 한없이 강하지만 다른 전투에는 별 관심이 없는 녀석이다.

다른 놈도 아니고 5성급 몬스터를 상대로 적극적으로 덤빌 리가 없다는 것.

게다가 전투 직전에 덕춘이를 안전한 곳으로 던져 두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유충이 덕춘이를 물고 갔을 리도 없으니 직접 놈에게 달라붙었다고 보는 게 맞았다.

우연히 놈의 몸에 붙었다 하더라도 중간에 뛰어내리면 그만.

그러지 않고 나를 부르고 있다는 건…….

“뭔가가 있다는 거야.”

덕춘이.

카오스 속성을 지닌 영물.

NPC들도 뭔가 아는 눈치였으나 정작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했다.

탑을 오르면서 덕춘이 이외의 영물을 본 적이 있던가?

탑에서 살지만 몬스터는 아닌 존재.

혹시 녀석은 메스토카에 대해 알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세간에 알려진 정보가 극히 적은 놈에 대해서.

50층에 오르면 릴카에게 덕춘이에 대한 정보를 사야겠다.

대체 영물이 뭔지. 카오스 속성을 지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콰악!

다리에 힘을 더했다.

이를 악물었다.

그동안 많이 강해졌다. 스킬도 남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부족해.”

아쉬운 부분이 느껴진다.

더 많은 공격 스킬.

적을 따라잡을 수 있는 이동기가 필요하다.

“그에에에엑!”

목소리가 가까워졌다.

전보다 선명해진 목소리.

그와 함께 계속해서 이어지던 진동이 멎고 있다.

유충의 움직임이 느려지고 있다는 것.

체력이 다 된 건가?

설마, 자그마치 5성급 몬스터다.

전기 충격에 맞고, 피 좀 흘렸다고 어떻게 될 리가 없잖아.

그렇다는 건.

“은신처에 도달했나?”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놈조차 두려워하는 몬스터를 마주쳐 멈춘 걸 수도 있으니까.

그런 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반쯤 무너진 통로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자 놈이 보였다.

[야간 시야가 해제됩니다.]

몽환적인 빛도 함께.

뻥 뚫린 천장.

족히 수백 미터는 이어진 터널 끝에는 하늘이 보였다.

어두운 하늘을 차지한 건 찬란한 별무리.

은하수라고 불러도 이상할 게 없는 광경이다.

문득 이곳에 들어오기 전 본 표식이 떠오른다.

노란색 별 문양.

이걸 뜻하는 거였나.

난 고개를 저으며 앞을 노려봤다.

느긋하게 경치 구경이나 할 때가 아니다.

별빛을 받아 빛나는 동굴.

돋아난 수정들이 빛을 반사하고, 벽면을 뒤덮다시피 붙은 발광 이끼가 환하게 타오른다.

가장 많은 빛이 내리는 곳에 웅크리고 있는 건 메스토카 유충.

“궤에에엑!”

놈의 몸 위에 올라타 있던 덕춘이가 소리를 지른다.

이상하다.

쫓아오던 내가 왔음에도 놈이 반응이 미적지근하다.

알 수 없는 위기감이 느껴진다.

덕춘이가 몸에 불을 두른 채 산성침과 독침을 내뱉는다.

단단하게 경화시킨 몸으로 놈의 피부를 찢기까지.

“크아오오오!”

괴성을 지르며 몸을 비틀지만 적극적인 방어에는 나서지 않는다.

오로지 음미하듯 별빛을 즐길 뿐.

잠깐만.

별빛이라면.

“그래서 이곳에 온 거였나!”

재앙이라 불리우는 네임드 몬스터.

그중 하나 메스카토.

초대형 몬스터인 녀석에게 붙은 이명은.

‘별을 삼키는 거귀충巨鬼蟲.’

거대한 몸집도 위협적이었지만 가장 많은 피해를 입힌 건 따로 있었다.

-츠즈즈즈즈!

놈의 몸이 빛난다.

동시에 별빛이 죽어 간다.

[메스토카 유충]

-5성급 괴물

-유충에 불과하지만 성체의 능력 일부를 지니고 있습니다.

-보유 스킬: 재생 (AA), 짓뭉개기 (A), 소화 (AA), 스타 버스트 (SS)

스타 버스트!

별빛을 삼켜 쏟아내는 일격.

드래곤의 브레스와 비견되는 파괴적인 광선이자, 메스카토 토벌에 나선 S급 헌터를 죽음으로 내몬 공격.

놈은 내게 놀라 도망친 게 아니다.

별빛을 흡수하여 확실하게 나를 죽이기 위해 이곳으로 온 거지.

덕춘이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거고.

-콰아앙!

놈을 향해 돌진했다.

스킬이 완성되기 전에……!

-쩌어어어어엉!

공기가 찢어졌다.

제기랄, 벌써!

식별하기도 힘들 정도의 속도로 스타 버스트가 뿜어져 나온다.

시야 전체를 덮어 버리는 광범위한 공격.

안개 질주로 피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다.

방어 스킬? 성물?

SS등급에 이른 공격스킬 앞에서는 의미가 없다.

남은 건 하나.

[무지개 반사 (S)]

SS급 스킬은 35퍼센트 확률로 놈의 공격을 튕겨 낼 수 있다.

마음 같아서는 소리쳐 확률을 올리고 싶었지만 입을 때기도 전에 광채가 나를 집어삼켰고.

[행운 스텟이 반응합니다!]

[반사에 성공합니다!]

“키하오오오오!”

막대한 빛의 에너지가 놈에게 되돌아갔다.

몸을 비틀어 빛의 방향을 바꿨다.

노리는 건 놈의 머리.

-콰가가가가강!

-콰르릉!

연달아 부서지는 동굴.

하늘을 향해 내뻗어지는 빛의 기둥에, 한순간 낮이 찾아왔다.

오로라 빔조차 초라해지는 위력.

-치이이이익

공격을 튕겨 냈음에도 몸에 부하가 온다.

내 의도를 눈치채고 자리를 피한 덕춘이가 무사한 걸 확인.

아무리 5성급이라도 이런 공격을 맞고 무사할 리가 없다.

무사할 리가 없는데.

“크하아아아으.”

“질긴 녀석.”

놈은 기어이 살아남았다.

저걸 살아 있다고 해도 될지는 의문이지만.

그 짧은 사이에 움직였는지 몸의 대부분이 사라졌지만 머리통은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살덩이들이 꿈틀거리고, 체액과 핏물이 바닥을 적셔 번뜩인다.

재생으로 가까스로 목숨을 유지하고 있던 놈이 다시 한번 입을 벌린다.

“크하아악!”

저 상태에서 한 번 더 쏜다?

말이 안 됐지만 놈은 그걸 해내고 있었다.

두 번은 못 막는다.

반사 스킬은 하루에 한 번밖에 쓸 수 없으니까.

다시 한번.

별이 빛을 잃기 시작한다.

방금 일격으로 태반이 빛을 잃었지만 여전히 별은 남아 있었고.

“크하오오오오!”

놈은 죽음을 불사하고 스킬을 완성하려 했다.

녀석을 죽이는 것과 스킬이 완성되는 것.

어느 쪽이 더 빠를까.

폭발의 여파로 놈은 벽에 처박힌 상태.

저곳까지 접근하려면 적어도 5초는 필요했고, 최대 출력으로 머리를 박살 내는 데 2초.

반면 놈의 스킬이 완성되는 시간은 기껏해야 5초 내외.

오로라 빔을 써도 되지만.

‘그건 아직 A등급이야.’

놈은 5성급 괴물이고.

조금이라도 파괴력이 모자라 죽이지 못한다면 죽는 건 내가 된다.

그렇다면.

“스킬 자체를 막는 수밖에!”

[워터 (E) Lv.6]

마력을 때려 부어 워터를 사용했다.

물 속성을 지닌 펠라인의 오른팔이 푸르게 빛나며 힘을 보태 준다.

-투둑

-쏴아아아아!

소나기.

이어 폭우에 가까운 물이 쏟아져 내렸고.

“크, 크아오?”

-사아아아아악!

이내 완전한 어둠이 찾아왔다.

내가 노린 건 하나.

하늘을 향해 뚫려 있는 수백 미터의 굴.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발광 이끼.

발광 이끼는…….

“물을 주면 빛을 빨아들이지.”

그게 별빛이라 하더라도.

일순간이지만 야간 시야로도 앞을 볼 수 없을 정도의 짙은 어둠이 찾아왔고.

-콰아아앙!

난 놈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날아갔다.

터지는 동시에 빛을 잃는 파이어 밤.

반동만큼은 남아 내 등을 떠밀었고.

“크하아아악!”

-파지지지지직!

놈의 날카로운 이빨이 손에 닿는 것과 함께 일렉트릭 쇼크를 사용했다.

온몸이 방전될 때까지.

피부가 튀겨지는 듯한 착각.

스파크에 나까지 죽을 맛이었으나 그동안 올려 둔 전격 내성 스킬이 나를 보호했다.

“그르르르륵.”

거품 끊는 소리가 울린다.

이어 어둠이 서서히 걷혔고.

몇 개 남지 않은 별이 반짝이는 하늘이 보였으며.

“잡았다.”

까맣게 타 버린 놈의 머리가 바스러졌다.

내게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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