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168화 (168/740)

168화 이면의 성소

펠라인 세트.

따지고 보면 내가 39층에서 그 난리를 피웠던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보상을 얻기는 했지만.

난 인벤토리를 열었다.

[계약에 의거, 태초의 보석이 지급되었습니다.]

[Tip. 40층에 도달한 자는 인벤토리가 20칸으로 늘어납니다.]

메시지가 떠오른다.

확 늘어난 인벤토리 안에 들어가 있는 낯선 물건.

태초의 보석.

메글릿과의 내기를 통해 얻어 낸 물건.

어떤 식으로 주나 했더니 바로 인벤토리에 꽂아 줬다.

[태초의 보석 (SS)]

-한 세계가 만들어질 때 생성된 결정의 일부

-현자의 돌을 만드는 재료

-굉장히 귀한 물건입니다.

무려 SS등급 아이템이다.

하나의 세계가 탄생할 때 같이 만들어진 거니 귀한 건 물론이요, 현자의 돌의 재료기까지.

현자의 돌이 무엇이냐.

그것과 관련된 설명이 여기에 있다.

튜토리얼 구간. 3층에서 파밍 했던 물건.

[중급 아케인 젬 Arcane gem (A)]

-강력한 에너지를 품은 보석. 특정 조건 달성 시 거대한 폭발을 일으킨다.

-현자의 돌이 1퍼센트 함유되어 있는 귀품.

-호문클루스나 고급 골렘의 심장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중급 아케인 젬이다.

상급도 아니고 중급임에도 A등급으로 분류되는 것.

이유는 간단했다. 현자의 돌이 1퍼센트 섞여 있기 때문.

그만큼 현자의 돌은 귀한 물건이다.

그걸 만드는 데 쓰이는 재료가 태초의 보석.

아무리 생각해도 태초의 보석을 사용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아쉽지만 중급 아케인 젬을 사용하는 수밖에.

고민할 필요도 없는 비교였지만.

“살짝 걸린단 말이지.”

아케인 젬에는 숨겨진 정보가 존재한다.

권능을 사용해 아이템 설명을 다시 읽었다.

[중급 아케인 젬 Arcane gem (A)]

-과거 92층까지 올랐던 현자, 존 트레일러의 작품.

-홀로 남은 그는 인공 생명체 호문클루스를 제작해 탑을 공략하려 했습니다.

-등반은 실패했지만 그의 업적은 남아 있답니다.

다름 아닌 제작자가 탑을 오른 인물이라는 것.

그것도 92층까지.

경험상 탑을 올랐던 이들이 사용했거나 제작한 물건들은 특별한 면모가 있었다.

릴카의 퀘스트를 깬 대가로 얻은 오델토의 반지? 공개되지 않은 퀘스트를 진행해 줄 트리거 아이템이다.

펠라인 세트도 마찬가지. 99층까지 오른 펠라인이 사용했던 물건이다.

당장 경계를 끊는다는 옵션이 달린 내 검도 34층의 담당 NPC, 플레타가 사용했던 거다.

어쩌면 이것 역시 숨겨진 뭔가가 있을지 모른다는 것.

플레타 때처럼 제작자가 탑 어딘가에 NPC로 있을 가능성도 있고.

아, 고민된다.

난 입술을 씹었고.

“어쩔 수 없지.”

결론을 내렸다.

벌떡 소파에서 일어났다.

주어진 선택지에서 만족할 만한 답이 없다?

그럼 만들면 되지.

내가 정상적인 닉네임이 없지. 능력이 없냐, 돈이 없냐.

* * *

거침없이 대장간으로 이어진 문을 열었다.

“릴카!”

“악! 왜 들어와!”

후끈한 열기가 나를 덮친다.

입기에는 조금 커 보이는 가죽 앞치마를 입은 릴카가 성질을 부린다.

한 손에는 망치가 들려 있었는데.

[지하로 연결하는 망치 (SSS)]

이런 미친, 무려 SSS급 아이템이다.

장인은 장비충이라더니. 저걸로 물건을 만들었던 거냐.

“작업 언제 끝나?”

“에, 나흘?”

“쉬는 시간은 있지?”

“밥은 먹어야징.”

“지금 먹자. 사 줄게.”

“웅!”

냉큼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

베팅으로 제법 벌었음에도 공짜는 좋아하는구나.

나야 잘된 일이지만.

포인트도 많겠다 릴카가 원하는 걸 위주로 상점창에서 샀고.

“이히히히. 집들이에는 밥이 최고지!”

“궤엑!”

릴카와 덕춘이가 신나게 식사를 시작했다.

나도 마찬가지.

인연이 있는 NPC들의 근황을 시작으로 등반 중에 있었던 일을 떠들었고 분위기가 무르익을 시점.

“릴카, 혹시 보석 같은 것도 취급해?”

운을 뗐다.

“상인이니까 많지는 않아도 거래하기는 하징.”

“그럼 이거에 맞는 것도 있나. 등급은 A급 이상으로.”

슬쩍 내민 보석함.

“오옹, 이거 찾기 힘든 물건인데. 에헤헤. 펠라인 세트 찾는구나?”

역시나 나에 대해 잘 안다.

난 고개를 끄덕였고 릴카가 잠시 고개를 기울더니.

“하나 있긴 해. 가격은 좀 비싸지만. 보석류는 등급 높은 게 많지 않거든.”

“포인트 말고 물건으로 계산할 수 있어?”

“가격만 맞으면 오케이지. 퀘스트도 깨 줬으니까 좀 싸게 해 줄겡. 으흠! 어차피 퀘스트 또 해야 하기도 하고.”

“엉?”

[릴카의 부탁 (3) - 강제 퀘스트]

-당신은 릴카의 훌륭한 노예 아니, 재료 수급자!

-이번에도 훌륭하게 재료를 모아오기를 기대합니다.

-돌바위 거북의 등껍질 (0/30)

-만드레이크 (0/1)

-괴익조의 알 (0/3)

-철면귀의 가면 (0/5)

또 강제 퀘스트냐!

도대체 밀린 주문이 몇 개기에 깰 때마다 퀘스트를 주는 거지?

컴플레인 안 들어오나?

“그, 그런 눈으로 보지 말라구. 어디 가서 이런 퀘스트 못 받는다?”

당연히 못 받겠지.

이번에는 종류도 다양하네.

돌바위 거북이야 그렇다 쳐도 괴익조?

저거 5성급 몬스터다. 고대종으로 와이번의 상위 객체니까.

그런 놈의 알을 가져와라?

게다가 철면귀 아니, 만드레이크는 찾는 과정 자체가 극악이다. 채집은 말할 것도 없고.

탑에 불려오기 전 헌터 시장에 나온 만드레이크는 고작해야 6개가 전부.

그것도 전 세계 경매를 다 합쳤을 때의 이야기다.

한국 시장에서는 나온 적 자체가 없다.

뒷골이 당겼지만 어쩔까. 거부란 없는 강제 퀘스트인데.

“그으믑드.”

이를 꽉 깨물고 고마움을 전했다.

잠깐만.

“이번엔 왜 보상 없냐?”

이렇게 나오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어?

퀘스트고 나발이고 그냥 쌩 까는 수가 있어요?

“아, 그거. 지금 당장 줄 만한 게 없더라고. 너도 단순히 A급 아이템이니 그런 거는 관심 없을 거 아니야. 그렇다고 S급 아이템을 주는 것도 좀. 계산은 확실하다구!”

누가 상인 아니랄까 봐.

맞는 말이기는 하다. 이미 플레타를 통해 얻은 장비가 많아 어지간한 등급의 아이템은 성에 차지 않았다.

A급은 물론이요, AAA급 아이템도 다수 있는 상황.

이제 막 40층에 올라왔지만 눈이 꽤 높아졌다.

“보상은 그때 너 상황 봐서 좋은 거로 줄겡. 에헤헤. 어떠냐, 내 배려심이!”

“나쁘지 않네. 좋았어.”

릴카와의 친화도가 높아서 그런지 이런 식으로 보상을 조정해 준다.

30층은 팀플레이 구간이라서 그런지 히든 피스가 많지 않았다.

테마에 맞춰 협력과 경쟁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고 해야 하나.

40층대부터는 말이 달라진다.

34층 경기를 치를 때 보지 않았던가.

독자적인 생태계를 가진 식물들이 나오는 것을.

숨겨진 것들도 많고 내가 모르는 것들도 많을 것이다.

“자, 요걸로 가져가. 보석함에 들어갈 만한 사이즈 중에는 이게 그나마 적당할 거야.”

릴카가 허공을 뒤적이더니 보석 하나를 꺼냈다.

[비애의 순간 no.3 (AA)]

-예술가이자 위대한 사냥꾼인 페갈이 만든 대표작. 그 세 번째 시리즈

-애호가들 사이에서 유명합니다.

-고대 몬스터의 심장을 정제해 만들었습니다.

AA등급이라. 훌륭하다.

나 역시 베팅을 통해 얻은 물건들이 담긴 일회성 아공간 스틱에서 동 등급의 아이템을 꺼내 건넸다.

이걸로 준비는 끝.

난 다음 질문을 했다.

“들어 보니까 여기에 이면의 성소라고 있다며. 권능 등급을 올릴 수 있다던데, 아는 정보 없어?”

“그것도 정보비가 듭니다, 고갱님!”

“얼마?”

“으음. 그리 비싼 정보는 아니니까 A급 장비 하나로 퉁쳐 줄게!”

“오케이.”

망설임 없이 아이템을 줬다. 권능과 관련된 건데 아쉽게 굴 필요가 없지.

쿨거래를 마친 릴카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이면의 성소라고 말은 하는데 별건 없엉. 그냥 탑을 등반한 과정을 확인하고 권능을 얼마나 사용했는지, 어떤 식으로 썼는지 확인하는 거지. 적절했다면 그에 걸맞은 성장을 하는 거고.”

한마디로 권능이 성장할 만한 자인지 확인한다는 것 같다.

막상 들어 보니 별로 걱정은 안 된다. 나도 권능을 많이 써서.

“아, 거기서 네가 처했던 고난도 다시 겪을 거야. 지금의 네가 그때보다 더 강해졌다는 걸 증명해야 하거든.”

“고난?”

“직접 해 보면 알 거야. 이기기 힘들었던 적을 다시 상대하는 것 같은? 다시 겪는다면 어떻게 이겨 낼지 생각해 둬. 넌 딱히 걱정 없을 것 같지만. 참고로 권능 등급이 낮으면 더 많이 오르는 경향이 있엉. 높으면 제한이 있거든.”

그건 그렇다 치고.

하나만 더 물어보자.

이건 좀 중요하다.

“나중에도 혹시 권능을 올릴 기회가 있나?”

권능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결정된다.

그 등급도, 능력도 천차만별.

김소담처럼 권능을 메인으로 사용하는 이도 있을 거고, 오지혁처럼 권능에 맞춰 스킬을 모으는 이도 있다.

그 말은 곧 김소담이나 오지혁 같은 경우 권능 등급에 따라 성장에 한계가 다가올 수도 있다는 거였다.

만약 이들이 이번에 충분한 수준의 성장을 이루지 못한다면?

이후에 다시는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없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영원히 탑의 고층은 노려볼 수 없는 걸까. 그건 불합리하지 않나?

내가 아는 탑은 난이도는 지랄 맞지만 분명 어딘가에는 깰 방법이 있다.

난 잠시 릴카를 바라봤고.

귀를 쫑긋거리며 눈을 굴리던 녀석이.

“에, 이건 뭐 서비스로 해 줄게.”

위를 가리킨다.

“네가 내 퀘스트를 두, 세 번만 더 깨면 기회가 있을지도?”

희미하게 올라가 있는 입꼬리.

뭔가가 있긴 한 모양.

식사는 마무리.

릴카는 작업을 하기 위해 자리를 떴고.

“우리는 바로 움직이자.”

“그에에에.”

난 곧장 이면의 성소를 찾기로 했다.

이미 안전지대의 회복 효과 덕분에 상처는 모두 치유되었다.

잠을 자면서 쉴까 생각도 해 봤지만.

“어차피 자 봤자 훈련에 연속이니까.”

알리오스의 계승자가 되면서 더 이상 수면은 회복의 시간이 아니었다.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투를 재경험, 권능의 싱크로율을 올려야 했으니까.

정신적인 피로를 풀 거면 차라리 아무 생각 없이 명상을 하는 편이 나았다.

검을 챙겼다.

이번 일은 중요하다. 다른 것도 있었지만.

“미리 알아야 친구들도 편하게 하지.”

“그에에.”

열심히 40층을 향해 오고 있는 멤버들을 위하는 것이기도 했다.

공략 글도 올리고, 점수도 받고.

가 보자.

* * *

40층 안전지대, 동쪽.

사람들이 모여 있다.

이면의 성소를 찾아온 사람들.

그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NPC들과 잡상인들.

이제 막 올라온 이들을 위한 식당과 술집이 광장에 모여 있었다면, 이곳은 군것질거리와 다양한 상점이 밀집된 곳이었다.

“여기가 이면의 성소.”

난 작게 중얼거렸다.

뭔가 대단한 곳일 줄 알았건만.

-우우우우웅

이면의 성소는 연못이었다.

물이 맑아 안까지 투명하게 보이는 곳.

한 가지 특이한 게 있다면 물임에도 불구하고 조금의 흔들림도 없다는 것?

“제발 많이 오르게 해 주세요!”

“정말 열심히 올랐습니다!”

연못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기도를 하며 작은 돌멩이를 던진다.

-스르륵

조금의 파문도 없이 물을 통과해 밑으로 가라앉는 돌.

확실히 신기하기는 하다.

가장자리에 선 나 역시 돌조각을 던지며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랐고.

투명하다 못해 거울처럼 나를 비추는 연못이 반응을 보였다.

[이면의 성소에 입장하시겠습니까?]

“예.”

[스스로를 증명하십시오.]

[만족할 만한 결과가 있기를 빕니다.]

물에 비친 나와 눈이 마주친 찰나.

-스으으으으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청량한 기분과 함께 시야가 바뀐다.

[이면의 성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도착한 곳은 거대한 공동.

바닥과 천장, 벽 모두 수정으로 만들어졌으며 따뜻한 음색이 울려 퍼졌다.

[도전자의 권능을 확인합니다.]

[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

[S급 권능, 스킬 합성]

[계승자임을 확인.]

[SS급 권능, 굴하지 않는 검귀 (미완성)]

[서버 최초! 3개의 권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혼돈 수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의 등반 기록을 살핍니다.]

.

.

.

[평가가 시작됩니다.]

어디 한번 봐 보자.

내가 어떻게 탑을 올랐는지.

더 나아갈 자격이 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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