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39층 클리어
성공적으로 사람들이 포탈을 생성하는 것을 확인한 후 노역장을 향해 달렸다.
원래 계획은 다 함께 올라온 뒤 메글릿을 따돌리고 방어진을 짜는 거였지만, 메글릿은 악마들을 노역소에 남겨 두었다.
그 말은 곧 다섯 악마가 메글릿을 붙잡고 있을 거라는 뜻.
처음 계획도 그들이 주력으로 나서 버티는 거였지만… 말 그대로 버티는 거다.
메글릿은 강했으며, 나와 악마들이 동시에 덤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하기 힘들었으니까.
놈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
39층의 특이성을 이용하는 것.
포탈을 생성하면 필드 일부가 사라진다. 아무리 악마라 한들 탑에 속한 존재.
필드 자체가 사라지면 죽는 것이 당연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가야 해.”
난 권능을 사용해 포탈 생성기의 자세한 정보를 읽었다.
[포탈 생성기]
-포탈을 생성하면 필드 일부가 소멸합니다.
-소멸 지역은 포탈이 생성된 지역을 기준으로 합니다.
-소멸되는 지역에 있는 등반가는 강제로 다른 구역으로 이동됩니다.
꽤 세심한 구조.
클리어 난이도를 높이는 동시에 등반가가 어이없게 죽는 경우는 막아 놨다.
원래라면 다른 팀들이 클리어할수록 필드가 줄어들어 몬스터와의 싸움을 피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겠지.
나야 그런 부분은 신경 쓰지 않고 필드를 소멸시킨다는 것 자체를 이용할 생각이었지만.
설명 어디에도 NPC나 몬스터가 다른 구역으로 이동된다는 말이 없다.
탈출한 사람들이 포탈을 완성할 때 그 주변에 있던 몬스터까지 필드와 함께 사라졌으니 확실하다.
다만 포탈을 생성하는 곳을 기준으로 일대가 사라지므로 내가 직접 가서 포탈을 작동시켜야 했다.
다른 노역자들을 탈출시킨 이유?
단 하나다.
“놈이 어디로 도망갈지 몰라.”
메글릿이 사용하는 검은 안개.
아까도 보지 않았던가, 한순간에 노역소로 이동하는 모습을.
최대한 필드를 좁혀 놈이 도망갈 곳을 차단해야 한다.
[필드 소멸 진행률 (58퍼센트)]
[필드 소멸 진행률 (65퍼센트)]
보아하니 그 작업은 잘돼 가는 것 같다.
애초에 여섯 팀이 참가하는 층이다.
그런 곳에서 사십 명이 넘는 사람이 포탈을 생성시켰으니 필드가 남아날 리가 있나.
잘하면 놈을 잡기도 전에 필드 전체가 사라지겠는데.
그러면 안 되지.
난 속도를 높였고.
-쿠르르르릉!
굉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시한폭탄의 여파로 발생한 2차 붕괴일까.
아닌 것 같다. 메아리처럼 번지는 악마들의 목소리를 들리는 걸 보니.
“크아아압! 버텨!”
“잡아, 잡으라고!”
전투의 여파로 생겨난 거대한 공동.
그 안에는 여섯 악마가 날뛰고 있었다.
게일을 비롯한 노예 악마들이 쉴 새 없이 덤빈다. 얼굴을 일그러트린 채 공격을 퍼붓는 메글릿.
거리가 상당함에도 충격파가 대단하다.
가까이 다가가기조차 힘들 정도로.
악마들의 전투를 바라봤다.
현란하다.
원초적인 폭력이 난무하는 와중에도 각자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날카롭게 찔러 들어가는 일격이 검은 안개에 삼켜져 사라지고, 흑염이 대지를 불태운다.
이제야 알겠다.
어째서 악마들이 싸움에도 불구하고 노역장이 무너지지 않았는지.
메글릿의 주력은 안개. 이는 이동기기도 했지만 동시에 상대방의 공격을 집어삼키는 방어기기도 했다.
반대로.
“피해!”
“크흐아악!”
상대방을 먹어 삼키는 공격기기도 했고.
징조 없이 나타난 안개가 한 악마의 팔을 휘감는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는 팔.
피도 흐르지 않았다.
“이런 버러지들이, 노역장을 무너트리려 해? 반동분자는 사형이다!”
노역소장인 메글릿은 노역장이 망가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가 NPC로 자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역소장이라는 직책이 반드시 필요했으니까.
진심으로 날뛰었다면 노역장이고 뭐고 다 무너졌겠지.
악에 받쳐 소리치는 메글릿의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다. 화가 잔뜩 난 것 같은데.
눈으로 좇기도 힘든 속도로 움직이며 싸우는 악마들.
내가 끼어들 레벨이 아니기는 하지만.
“내가 왔다!”
난 크게 소리 질렀다.
석판을 꺼냈다. 이미 보석은 어느 정도 끼어 둔 상태.
덕춘이가 가져온 보석과 노역하던 사람들이 모아 준 보석이 합쳐져 총 4개의 보석이 박혀 있었고.
‘하나만 더 끼우면 돼.’
석판 중앙에 황귀석만 꽂으면 포탈이 생성, 일대에 있는 이들은 필드와 함께 소멸된다.
-우우우웅!
권능이 발휘된다.
거의 다 완성된 석판.
그것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는 경계.
이미 놈은 소멸의 경계 안에 들어섰다.
다만.
-사아아악!
안개와 함께 놈의 몸이 사라졌고.
“내 너를 귀여워해 줬거늘, 선을 넘었구나!”
메글릿의 눈앞에 나타났다.
놈이 공격했다.
눈에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공격할 것이라고 예상했을 뿐.
[안개 질주 (A) Lv.4]
나 역시 안개로 변해 놈의 공격을 피해 냈다.
안개화된 몸이 갈라졌지만 이내 다시 합쳐졌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난 공격할 수 없는 대상이었으며.
“붙잡아!”
“죽어도 잡아, 그냥 죽어!”
그 틈을 놓치지 않는 다섯 악마가 메글릿에게 달려들었다.
온몸을 이용해 덮치는 이들.
“지금이다, 사용해!”
게일이 소리쳤다.
메글릿이 도망치기 전에 끝장을 보자고.
이미 그들과는 말을 마쳤다.
설사 그들이 함께 사라지는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메글릿을 처리하기로.
난 고개를 끄덕였고 인벤토리에서 황귀석을 꺼냈다.
이것만 끼우면 끝난…….
-촤아아아악!
“으아아아악!”
“크하아악!”
보석을 끼우기도 전에 엄청난 광풍이 몰아닥쳤다.
단번에 몸이 찢어져 널브러지는 악마.
그 여파에 나 역시 날아가 벽에 박혔다.
순간적으로 손에 힘이 풀려 떨어진 석판.
“날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나, 쓰레기들?”
구구구궁!
엄청난 압력이 나를 깔고 뭉갠다.
압도적인 존재감. 무형의 기운이 온몸을 짓누른다.
첫 면담 때 당했던 것과 똑같은 상황.
아직도 이런 짓을 펼칠 정도의 힘이 남아 있었나.
예상한 것 이상으로 다섯 악마와 메글릿의 격차는 컸다.
꼼짝도 할 수 없다. 중력이 수십 배로 늘어난 것만 같다.
어쩌면 지금까지 버틴 것만으로도 기적일지 모른다.
“네놈은 천천히 죽여 주지.”
-푸슉
“크으윽!”
놈이 손을 뻗자 한 줄기 창이 날아와 내 어깨를 꿰뚫었다.
왼쪽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몸이 바닥에 고정되어 움직이는 것도 힘들었고, 어떻게든 석판을 잡으려 했지만 손이 닿질 않는다.
“이 노역장이 어떤 곳인지 알아? 대통합 전쟁에서 죽은 자들을 묻은 곳이다.”
콰직!
놈이 석판을 부쉈다.
“제4계의 악마는 죽으면 보석을 남기지. 저 노예 놈들은 동족이 묻은 곳을 파 내려가는 형벌을 받고 있는 것이고. 감히 우리에게 덤빈 대가를 치르기 위해.”
왜 노역장에서 보석이 나오나 했더니만 그런 배경이 있던 건가.
“보석을 가공해 가디언도 만들고, 가고일도 만들지. 시간을 보내는 데는 제격인 작업이야.”
메글릿이 내 머리를 짓밟으며 미소를 지었다.
명백한 악의가 감돈다.
“인간은 보석조차 남기지 못한다는데 널 어쩌면 좋을까? 언데드로 만드는 것도 재밌을 것 같은데. 물론 작업은 살아 있는 채로 할 생각이야.”
꾸드득.
머리를 짓누르는 힘이 강해진다.
투구에서 괴상한 소리가 난다.
당장이라도 투구와 함께 머리를 뭉갤 것만 같다.
“그래. 네놈의 동료들도 이곳에 묻어 주지. 언데드가 되어 동료의 시체를 발굴하는 것도 즐거울 테니!”
“재밌, 기는. 뒤나 돌아보지, 그래?”
“뒤? 크하악!”
-콰아아앙!
뒤를 돌아보던 메글릿이 그대로 날아갔다.
그런 내게 다가온 한 악마.
게일.
“…게일.”
그의 모습이 다르다.
푸른 피부 시커먼 눈. 뿔은 하얗게 빛났으며 붉은 머리카락이 나풀거렸다.
그런 그의 뒤에 남은 시체 네 구.
함께 노역을 했던 악마들이 저마다의 보석을 남긴 채 죽음을 맞이했다.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이들을 바라보던 게일이 주먹을 쥐었다.
그들이 생각한 메글릿을 잡는 유일한 방법.
통합.
[게일이 황귀를 제외한 모든 일족을 죽였습니다.]
[해당 일족이 통합됩니다.]
[게일이 대악마의 반열에 오릅니다!]
“결국은 이렇게 되는군.”
“그 작전을 썼군요.”
“어쩔 수 없지.”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얼굴에는 분노와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노예가 되어 버린 다섯 악마가 만든 최후의 계획.
[게일-NPC]
-원형에 가까워진 제4마계의 악마
-흑귀와 백귀, 홍귀를 흡수한 청귀
-주의!
-결합이 불안정합니다!
“이제는 너와 나 둘뿐이구나, 메글릿.”
멸망한 제4마계. 남은 건 게일과 메글릿뿐이었다.
동료를 죽이고 흡수한 게일에게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다만.
-치지직, 치직
그의 몸에서는 쉴 새 없이 스파크가 튀어 올랐으며, 신체가 조금씩 뒤틀리고 있다.
불완전한 결합.
안정화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게 분명하다.
“이블아이, 이 상태로는 놈을 이길 수 없다. 결합이 불안정한 것도 있지만 애초에 놈은 90층을 넘어간 악마다. 나를 비롯한 다른 친구들은 고작해야 80층 언저리에서 낙오되었고.”
힘을 합쳤지만 승리를 확신할 수 없다는 것.
“하지만 붙잡는 정도는 할 수 있겠지.”
그 말을 끝으로 게일은 앞으로 달렸고.
“크아아아! 다 필요 없어! 노역장이고 뭐고 다 죽여 주마!”
몸을 일으킨 메글릿이 흉악하게 소리 질렀다.
맞붙는 두 악마.
나를 배려하는 걸까, 아니면 마지막 힘을 짜내는 걸까.
게일은 온 힘을 다해 메글릿을 몰아붙였다.
내게 피해가 가지 않게, 혹시 모를 충격에 내가 죽지 않도록 전진만을 이어 나갔다.
오로지 안쪽으로, 뒤는 없는 것처럼.
지축을 흔들리고 선혈이 뒤따른다.
한순간이지만 메글릿을 압도하는 게일.
-카드드득
-파삭!
그의 몸이 조금씩 무너진다.
완전히 결합되지 않은 뿔이 조각나고, 탐스러웠던 머리카락이 타들어 간다.
검게 물든 눈에서는 핏물이 흘러내리고, 푸르게 빛나던 몸은 조금씩 균열이 갔다.
몰아붙이던 힘이 약해졌다.
기회를 놓치지 않은 메글릿이 안개를 흩뿌렸고.
“게일!”
-파스스스
게일의 신체 일부가 그대로 사라졌다.
치명적인 상처!
오른팔은 어깨 아래로 보이지 않았으며, 발목이 사라진 다리는 위태롭게 기울었다.
그럼에도 게일은 멈추지 않았다.
슬쩍 나를 돌아보는 게일.
만신창이였지만 눈빛은 또렷했다.
“뒤를 부탁한다, 친구.”
[게일이 존재를 건 속박을 시전합니다.]
[메글릿이 저항합니다!]
“메글릿, 오랜 악연을 끝내자.”
“이, 이놈이!”
우뚝 선 게일의 몸에서 영체가 튀어나왔다.
뒤엉키는 영체와 메글릿.
발버둥 쳤지만 소용없었다. 적어도 지금의 게일은 그와 비슷한 수준까지 성장했으니까.
[필드 소멸 진행률 (87퍼센트)]
[필드 소멸 진행률 (93퍼센트)]
계속해서 올라가는 소멸 진행률.
조금씩이지만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다.
“네놈들 설마, 그럴 수는 없다!”
우리의 노림수를 알아챈 메글릿이 발악을 한다.
그와 함께 조금씩 깨져 가는 게일의 영체.
이미 영체가 돌아갈 몸은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진 상황.
메글릿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은 필드가 소멸되기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필드 소멸 진행률 (99퍼센트)]
[포탈 생성이 종료됩니다.]
[필드 소멸이 끝납니다.]
그런 우리 위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필드 전체를 울리던 진동이 멎었다.
순간 정적이 깔린다.
“큭, 크하하하하! 아쉽게 됐구나. 이제 어떻게 할 거지? 인간 혼자서 날 죽일 수 있을 것 같나? 석판도 없는데!”
승리를 예견한 걸까. 메글릿이 광소를 내뱉는다.
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어깨에 박힌 창을 뽑아내 던지고 게일이 흡수한 악마들이 남긴 보석을 챙겼다.
총 네 개.
백귀석, 홍귀석, 흑귀석, 청귀석.
그리고 내가 마지막까지 움켜쥐고 있던 황귀석.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인간. 으하하하!”
여전히 웃고 있는 녀석에게 몸을 돌렸다.
어떻게 할 거냐고?
자신을 죽일 수 있을 거냐고?
“난 석판이 하나라고 한 적이 없는데?”
“뭣?”
놈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대부분 사라진 필드.
그 안에서 익숙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궤에에엑!”
덕춘이.
이곳으로 향해 열심히 달려오는 녀석의 혓바닥에는 석판이 남아 있었고, 이내 내 쪽을 향해 힘껏 던졌다.
일을 꾸미기 전 보험을 들어놨다.
혹시나 내가 실패했을 때를 대비해서 덕춘이 역시 석판과 보석을 모으라고 했으니까.
-턱
나 그나마 성한 오른팔로 석판을 잡았고.
“약속은 지켰습니다, 게일.”
“고맙다.”
망설임 없이 다섯 가지 보석을 석판에 끼워 넣었다.
-파아아아앗!
광채가 번진다.
1퍼센트 남아 있는 필드 전체에.
[포탈이 생성됩니다.]
[팀원들이 한곳에 모입니다.]
[필드가 소멸합니다!]
만약 팀원들이 대부분의 필드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다면 이번 작전은 실패했을 거다.
고마운 사람들.
빛에 휘감기며 난 메글릿과 게일을 바라봤고.
“아, 안 돼!”
메글릿이 비명을 끝으로 완전히 빛에 둘러싸였다.
[40층, 안전지대로 이동합니다.]
위로 올라가기 직전, 게일이 웃는 것을 본 것 같기도 하다.
* * *
조현수가 39층을 클리어한 공간.
여러 메시지가 연달아 울렸다.
[39층 클리어]
[복수를 꿈꾸는 악마들-히든 퀘스트가 클리어됩니다.]
[메글릿과의 계약이 성사됩니다.]
[전 서버 최초, 한 계층을 소멸시켰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칭호를 획득합니다.]
[칭호를 획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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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의 의지에 따라 39층이 재생성됩니다.]
[39층의 담당 NPC가 게일로 변경됩니다.]
[새로운 지배자의 출현!]
[탑의 종말 가능성이 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