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165화 (165/740)

165화 메글릿을 잡을 방법

노역소에서의 하루 일과는 지루하고 고되다.

육체적으로 지치는 것도 있지만 정신적으로도 사람이 맛이 갈 공간이다.

계속해서 땅을 파내고 잔해를 나른다.

반복된 움직임의 연속. 귀를 때리는 쇳소리.

지겹다는 말로는 부족한 기계적인 삶.

휴식도 제대로 없고, 밖으로 나갈 수도 없다. 그나마 신선한 공기라도 맡으려면 면담을 가는 수밖에 없었으며, 수면 시간조차 불규칙하다.

이런 환경에서 한 달이 넘는 시간을 보낸 사람은 어떤 심정일까.

“젠장! 젠장!”

어쩌긴 어째 열받는 거지.

평소에는 점잖은 성격인 이선만이지만 오늘은 유독 짜증이 올라왔는지 격정적으로 곡괭이질을 하고 있었다.

다른 고참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무기가 아닌 곡괭이를 든 사람은 그들뿐이니.

남아 있는 코인이 없어 쉽사리 못 죽는다뿐이지 희망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내게는 좋은 소식이다.

내 뜻에 따라 움직여 줄 강한 동기가 있다는 것이고 동시에…….

‘쉽게 포기하지 않을 만큼의 독기도 있지.’

누군가는 멍청하다고 말할 것이다.

탈출할 가능성이 없는 곳에서 미련만 남아 가지고 추태를 부린다고.

노역을 하며 시간을 보낼 바에는 깔끔히 목숨을 끊고 탑 밖으로 나오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눈에는 아니다. 그만큼 절실하다는 방증이니까.

각자 이유야 다르겠지만 목표가 있다는 것.

평소에는 표정이 죽어 있는 이들이었지만 지금만큼은 열정이 가득했다.

생기가 돌다 못해 터질 것 같은데.

변화의 이유는 간단했다.

“이 거지 같은 곳, 반드시 빠져나간다!”

나와 함께 탈출을 계획했기 때문.

처음에는 탈출에 대한 의심이 있었다. 타성에 젖어 모험을 하고 싶지 않은 생각.

하지만 이들 역시 39층까지 올라온 이들이었고 금방 정신을 차렸다.

딱 한 명. 이들과는 상황이 다른 이가 있기는 했지만.

“아오! 으아아아!”

저기 괴성을 지르며 벽을 차고 있는 학생.

우리와 함께 잡혀 온 녀석이었고, 팀원들이 자신을 구해 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으나.

“나 혼자서라도 간다, 두고 봐.”

저번 면담 때 자신이 속한 팀원들이 전멸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부정했으나 메글릿이 친절하게도 손잡고 필드를 구경하게 해 줬다고.

어디에도 그의 팀원은 보이지 않았다.

하여간 메글릿 그놈도 제정신은 아니다. 남들 고통받는 걸 그렇게 즐기니.

뭐, 덕분에 학생도 우리와 합류. 계획을 듣고는 적극적으로 동참하기로 했다.

“키헤에에엑.”

데빌 가고일은 오늘도 어김없이 괴성을 지르며 채찍을 휘둘러 대는 중.

평소에는 슬금슬금 피했을 사람들이지만 지금은 적의 가득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다.

멍청한 돌조각은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지만.

“후우. 이블아이 씨, 작업은 끝났어요?”

“예, 충분합니다.”

“어? 덕춘이가 안 보이는데.”

“잠깐 놀러 갔어요. 여기가 좀 심심한가요.”

내 옆으로 다가온 김소담의 물음에 슬쩍 엄지를 들었다.

첫날에는 메인 광도를, 이후에는 다른 구역에서 노역을 했다.

노역소의 범위는 상당했으며 작업할 공간은 많았으니까.

어차피 노역의 목적인 유물은 이곳에 없다.

최대한 다양하게 부려 먹고 고생시키려는 메글릿의 계략이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

내게는 좋게 작용했다.

계획에 필요한 작업을 할 수 있었으니.

“드디어 오늘이네요.”

“며칠 안 됐지만 지긋지긋한 곳이었다.”

“다들 도와줘서 고맙습니다.”

“별말씀을.”

난 팀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따지고 보면 팀원들이 굳이 날 도울 필요는 없었다.

퀘스트는 개인적인 일이었고, 노역소로 잡혀 온 일행들은 가만히 있었어도 필드에 있는 팀원들이 구해 줬을 테니까.

물론 세상에 무조건이라는 건 없어서 어떤 변수가 생길지는 몰랐으나, 팀원들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포탈 생성에 필요한 보석을 얻어 냈겠지.

며칠 동안 수많은 괴물 사이에서 살아남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좋은 일 아닌가. 우리만 아니라 다 같이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쁘찡 연합의 구호가 뭡니까. 사랑, 평화, 쁘띠공듀 아니겠습니까! 최대한 많은 사람이 탑을 오를 수 있게 하는 것, 적어도 기회는 가질 수 있게 해 줘야죠.”

이상옥과 김소담이 씩 웃는다.

참 착한 사람들이다.

“이러고 다 죽으면 누가 책임질지 궁금하군.”

오지혁이야 얼굴을 구긴 채 불만을 토로했지만.

말은 그렇게 하면서 일은 제일 열심히 한다.

솔직하지 못한 녀석 같으니.

“키헤에에엑.”

어느 정도 작업이 진행됐을 무렵, 가고일이 식사를 가져왔다.

식사 시간이다. 이후에는 단체 면담이 예정되어 있고.

노동을 하면서 몸은 다 풀었다. 기분 좋은 열기가 몸에 감돌았고 컨디션도 훌륭하다.

“다들 밥 먹고 합시다.”

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악마들도 같이.

처음에는 악마들을 꺼렸던 사람들이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좀 풀어졌다.

같이 고생했던 이에 대한 유대감 때문이겠지.

“든든하게 먹어야 일을 하죠.”

보물 주머니에서 그동안 아껴 두었던 식량을 모두 풀었다.

도시락도 있었고, 기타 간편식과 군것질거리도 섞여 있다.

“오오오! 좋군!”

“이거 맛있어 보이는데?”

환호하며 배를 채우기 시작하는 사람들.

나 역시 도시락을 하나 챙겨 먹었고.

“크흠. 잠깐 좀 볼까.”

“네.”

내 곁으로 이선만이 다가왔다.

멋쩍게 머리를 긁던 그가 손을 내민다.

“고맙네. 이 말을 전하고 싶었어.”

“아직 탈출한 것도 아닌데요, 뭘.”

“아니. 우리를 구하려고 시도한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지. 난 성공할 거라고 믿어. 대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뭔가.”

어… 퀘스트 깨려고?

곧이곧대로 말하면 좀 그러니까 적당히 둘러 대자.

“쁘띠공듀가 말했습니다. 탑은 경쟁자를 쳐 내는 것이 아니라 다 함께 올라가야 한다고. 적어도 기회를 뺏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특히나 여러분처럼 끝까지 희망을 찾는 사람들은 내버려 둘 수 없죠.”

“쁘, 쁘띠공듀! 크흑, 절대 자네와 쁘띠공듀를 잊지 않겠어. 우리를 도와준 사람들 모두!”

그 쁘띠공듀가 바로 접니다.

아무튼.

“준비한 건 어떻게 됐죠?”

“여기, 많이는 못 구했어.”

이선만이 슬그머니 물건을 건넨다.

보석 두 개.

[중앙의 황귀석]

[동부의 청귀석]

이선만과 그의 무리들이 괜히 열정적으로 작업을 한 게 아니었다.

나를 위해 보석을 얻으려고 노력한 거지.

인벤토리에 넣었다. 이걸로 준비는 끝.

난 고개를 끄덕였고 악마들을 살피러 갔다.

그들의 역할 역시 중요하니.

“오, 왔는가?”

“우리 악마들의 친구!”

“크큭. 너한테 이블아이는 너무 귀여워. 이참에 발록이라 하는 건 어때?”

어느새 꽤 가까워진 악마들.

게일이 손을 흔들고 다른 악마들 역시 반가운 표정을 짓는다.

“덕분에 맛있는 걸 먹는군.”

“흐흐. 최후의 만찬으로 나쁘지 않아.”

“최후는 무슨 최후예요. 잘만 풀리면 괜찮은데.”

“세상일은 모르는 법이지.”

게일이 어깨를 으쓱이더니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간밤에 대화를 좀 나눴네. 우리도 우리 나름의 대책을 세워야 하니까. 잘 듣게.”

계획을 짠 건 나뿐만이 아니다.

어쩌면 나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준비해 왔을 그들의 계획.

난 조용히 게일의 말을 들었고.

“그게 무슨.”

이내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 * *

단체 면담.

유례없는 행사가 진행됐다.

십여 마리의 가고일이 우리를 감싸듯 이동해서 도착한 곳은 메글릿이 있는 노역소장실 앞 공터.

일하는 이들이 사십 명이 넘었으니 소장실로 들어가는 건 불가능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악마들은 못 왔군.”

“메글릿도 경계를 하겠지. 어찌 됐든 같은 악마잖아.”

단체 면담으로 불려온 인원 중에 악마는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

다섯 명의 악마는 노역소 내부에서 대기 중이다.

괜찮다. 여기까지는 상정 내다.

“다들 반가워. 이렇게 모아 놓으니까 기분이 색다른데!”

소장실 문이 열리더니 메글릿이 모습을 드러냈다.

잇몸을 보이며 웃는 녀석.

눈가에는 장난기가 가득했으며, 기쁨을 숨기지 못하고 몸을 떨었다.

“멋진 아이디어였어, 이블아이! 분노에 찬 눈동자 수십 쌍이 나를 노려보다니… 짜릿해!”

저 변태 새끼는 어째 가면 갈수록 정이 떨어지냐.

노역소에 있는 악마들도 저러지는 않았는데. 이쯤 되면 메글릿이라는 악마가 유독 나사가 빠진 게 아닐까 싶다.

“오늘은 잊지 못하는 날이 될 거다, 메글릿.”

“암, 그렇고말고. 으흐흐흐! 크하핫!”

손을 비비며 입맛을 다신 메글릿이 우리를 쭉 살폈다.

들뜬 모습이 보기 좋다.

조만간 무참히 구겨질 테니까.

“더는 못 기다리겠군. 단체 면담을 시작하지! 어서 준비한 것을 보여 봐!”

놈이 양손을 펼치며 외쳤고.

난 작게 손을 튕겼다.

보고 싶다는데 보여 줘야지.

[시한폭탄 (A) Lv.8]

[시한폭탄 (A) Lv.8]

.

.

.

-쿠르르르릉!

-콰아아앙!

우리가 빠져나온 노역소에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며칠을 소모해 노역장 곳곳에 설치한 트랩.

스킬을 하도 써서 레벨이 8까지 올랐다.

위력은 말할 것도 없었고.

“뭐, 뭐야! 이런 제기랄! 다들 꼼짝 말고 있어!”

노역소를 책임져야 하는 메글릿은 안개와 함께 사라졌다.

이걸로 첫 번째 단계는 클리어.

“다들 움직여요! 밖에 동료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좋았어! 가자고!”

“와아아아!”

우리는 곧장 노역소장실로 돌진했다.

가고일이 저지하려 했지만 분노한 이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콰앙! 벽을 부수고 안으로 진입.

난 저번 면담에서 확인한 것들을 찾아냈다.

놈의 사용하는 테이블 아래 서랍.

“하나씩 받아요! 나가면 바로 발동시키고!”

서랍을 뜯다시피 열어 안에 든 물건을 사람들한테 뿌렸다. 내가 쓸 것도 챙기면서.

내가 던진 건 다름 아닌 포탈 생성 석판!

궁금했다. 분명 39층에 올라온 사람은 많고, 팀원이 전멸해 노역소에서 생활하는 이들 역시 수십 명이다.

그럼 그들이 지급받았던 석판은 어디에 있는가?

다름 아닌 노역소장인 메글릿이 관리하고 있었고, 난 그 위치를 알아냈다. 놈한테 두들겨 맞으면서.

“장막에 막혀 있습니다!”

탈출하던 이들이 소리쳤다.

노역소에 진입하는 길이 투명한 장막으로 막혀 있다.

탈출을 대비하기 위함이겠지. 더불어 밖에 있는 이들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장치일 거고.

여기까지도 예상했다. 혼자서 노역소를 관리하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닐 테니까.

하지만 걱정 마라.

[타락한 천사의 검 (A)]

-경계를 끊을 수 있습니다.

내게는 장막이 통하지 않으니.

-서걱

뭔가가 잘리는 소리가 나더니 장막이 무너진다.

균열을 시작으로 터져 나가는 장막.

마나의 파편이 빛에 반짝이고.

“이블아이 씨!”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쪽으로 오십쇼!”

최영미와 김서균, 고대진. 그리고 이상옥의 팀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몰골이 말이 아니다. 며칠씩이나 필드에서 굴렀으니 당연한 일.

팀원들이 몰려나오는 사람들에게 그동안 모았던 보석을 나눠 줬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젠장! 드디어 탈출이라고!”

기쁨의 비명을 지르며 달려 나가는 사람들.

“최대한 멀리 가세요!”

난 그들을 재촉했으며.

“여러분도 자리를 피해요. 포탈 생성 준비는 끝났죠?”

“예. 끝났어요. 빨리 도망치죠?”

“아뇨. 저는 아직 볼일이 남았습니다.”

나를 반기는 팀원들과 해후를 나누기도 전에 몸을 돌렸다.

“여러분을 위험하게 할 수는 없어요. 석판은 충분하지만 보석을 모자를 가능성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메글릿을 잡고 있어야 해요.”

“메, 메글릿이라면?”

“이곳이 담당 NPC입니다.”

담당 NPC라는 말에 팀원들이 경악한다.

“말도 안 돼요! NPC를 어떻게 잡아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미 할 만큼 한 거잖아요. 여기서부터는 각자 알아서 살아가야 한다고요!”

팀원들의 마음도 이해한다. 나라도 내 팀원이 이러면 말렸을 거다.

“걱정 마세요. 제가 언제 여러분을 실망시킨 적이 있던가요?”

툭. 고대진의 어깨를 터치했다.

“도망치는 사람들을 도와줘요. 그리고 혹시나 내가 죽으면 지체 없이 포탈을 발동시키고요. 살 사람을 살아야 하니까.”

“그게 무슨.”

“자자. 시간 없습니다. 오지혁, 도와줘!”

조금은 냉정하지만 몸을 돌렸다.

여기서부터는 나와 악마들이 움직여야 한다.

이미 이야기는 끝냈다. 이상옥이 내게 고개를 끄덕이며 나아갔고.

오지혁은.

“죽지 마라. 넌 나랑 끝을 봐야 한다. 반드시 꺾어 주마.”

“징그럽게 왜 이래? 얼른 꺼져.”

“뭐, 꺼져? 이 씨바……!”

“에헤이, 빨리 가요! 여기서 난동부리지 말고.”

미쳐 날뛰기 전에 김소담이 데리고 빠져나갔다.

홀로 남은 난 필드로 달려가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허전하다.

덕춘이는 잘하고 있겠지?

난 작게 숨을 내쉬었고.

-파앗!

-파아아아아앗!

필드 곳곳에서 빛기둥이 솟아올랐다.

[주의!]

[대규모 포탈 생성이 진행되었습니다!]

[필드가 빠르게 소멸합니다!]

눈부신 광경.

이걸로 두 번째 과정도 클리어.

난 손에 들려 있는 석판을 내려다봤다.

[포탈 생성기]

-위치에 맞게 보석을 배치해 포탈을 생성하세요.

-포탈이 생성될 때마다 필드가 사라집니다.

[필드 소멸 진행률 (29퍼센트)]

[필드 소멸 진행률 (43퍼센트)]

.

.

.

암막에 가려지듯 쪼그라드는 필드.

위로 올라가는 사람들을 바라본 나는 악마들이 있는 노역소를 향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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