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단체 면담
노역장에는 곡소리가 울려 퍼졌다.
끙끙대는 소리.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기도 하고 한숨인지 뭔지 모를 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으으, 이블아이 씨 이거 맞아요? 한 번 더 했다가는 맞아 죽을 거 같은데.”
“그래도 묘하게 살가워진 것도 같고.”
“시발. 뒈지겠네.”
“크음.”
전원 내 일행이라는 것.
아, 저기 악마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빌어먹을 메글릿, 다음에는 반드시 죽인다.”
“제기랄.”
“유물이라도 나오던가! 그럼 망할 노역에서 벗어나서 복수할 준비를 할 수 있는데.”
왜 우리가 이러고 있느냐.
면담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팀원들에게 메글릿을 공격하라고 했기 때문.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며 뭐라 했지만 결국에는 내 말에 따랐고, 그 결과 전원 떡이 되도록 두들겨 맞았다.
복잡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노역자들.
무리의 대표 격인 이선만 역시 고개를 젓고 있다.
“우리라고 탈출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자네들처럼 무식하게 덤비지는 않았는데 말이야.”
“멍청한 놈들. 쯧쯧.”
“다들 봤죠? 일단은 쥐 죽은 듯이 일이나 합시다.”
그를 따르는 무리들 역시 혀를 차 댄다.
이해한다.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만큼 우리가 하는 짓이 쓸데없어 보이겠지.
상식적으로 NPC인 메글릿을 잡아내는 건 불가능하니까.
그들은 알까. 오히려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편이 메글릿과의 관계에 이롭게 작용한다는 것을.
그 증거가 이거다.
“키헤에에에엑.”
“오, 밥 시간이군.”
노역소에 잡혀 온 지 하루가 지난 시점.
감시자 역할인 데빌 가고일이 식사를 가지고 왔다.
조악하다. 말라비틀어진 빵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스프, 고기가 맞는지 의심스러운 덩어리도 섞여 있다.
일반적으로 공급되는 식사. 악마들의 경우에는 더 심하다.
요리를 하다 남은 찌꺼기를 대충 끓인 듯한 죽 한 그릇이 전부였으니.
반면에 우리 일행은.
“오, 생각보다 잘 나오네요?”
“생긴 건 좀 별로인데 맛은 괜찮아요, 독도 없고.”
“맛있군.”
제법 그럴싸한 요리를 대접받았다.
잘 먹고 회복해서 다시 덤벼 보라는 의미인가.
형태가 분명한 고기와 건더기가 가득한 스튜. 빵도 특별하지는 않지만 적당히 따뜻하고 부드럽다.
누가 봐도 차별적으로 주어진 식사.
그 모습을 본 이선만과 그 무리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저, 저게 무슨.”
“선만 씨, 우리한테는 저런 거 준 적 없죠?”
“내가 이곳에 있는 동안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어.”
노역소에 잡혀 온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은 조금 신기해할 뿐 다른 반응이 없었지만, 노역을 한 지 한 달을 훌쩍 넘긴 이선만과 이외 고참 노역자들은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헌터는 초인. 상식을 뛰어넘는 신체 능력을 가졌고, 스킬이라는 이능을 사용한다.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에너지가 다르다는 것.
워낙 체력이 좋아 한동안은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지만, 정상 컨디션을 가지기 위해서는 충분한 영양 섭취가 필요하다.
그들이 눈치를 슬슬 본다.
식사 때만큼은 얌전한 가고일들이 우리를 바라본다.
노역소의 모든 것은 메글릿의 감독하에 움직인다.
식사 또한 마찬가지였고, 함부로 남의 음식을 건드렸다가는 가고일이 발광하여 메글릿이 나타나 처벌을 한다.
악마들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니 확실하다.
이선만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부러운 눈으로 보기만 할 뿐.
난 빵을 뜯으며 잠시 고민했다.
내게 주어진 퀘스트.
NPC, 메글릿을 처리하라.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
우리의 힘만으로도 불가능하다.
대놓고 말하지 않았던가. 악마들과 힘을 합쳐 해내라고.
여기서 한 가지 변수가 있었으니.
‘저 사람들이 문제인데.’
이곳에 잡혀 있는 사람들이다.
악마들이야 메글릿에 강한 적대심을 가지고 있으니 그렇다고 하자.
저 사람들은 어떨까.
같이 힘을 합쳐 메글릿을 잡자고 하면 동조해 줄까?
한 명도 아니고 수십 명의 사람이다.
단 한 명도 메글릿에게 보고하지 않고 함께 움직일 가능성이 얼마나 되려나.
우리와 저들은 상황이 다르다.
우리에게는 팀원이 존재했고, 팀원들이 보석만 전부 모은다면 이곳을 탈출할 수 있다.
하지만 이선만을 비롯해 이곳에 오래 머문 이들은 구해 줄 팀원 자체가 없는 상태고.
사실상 아무런 희망도 없이, 혹시 모를 행운을 기다리며 이곳에서 버티고 있는 건데.
애초에 메글릿에게 한 번도 덤빈 적이 없는 사람이기도 하고.
어떻게 힘을 합친다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지도 의문이다.
“궤에에에엑. 그억.”
고민하는 찰나, 식사를 마친 덕춘이가 트름을 했다.
벌써 다 먹었나?
잠깐만, 덕춘이가 먹을 식량은 따로 안 나왔던 것 같은데.
“너 혼자 다 먹었냐!”
“그에에?”
내 분량으로 지급된 식사가 사라졌다.
그릇까지 깨끗하게 핥아먹었네?
그, 그래. 주인이 돼 가지고 펫을 굶길 수는 없지.
주먹이 부르르 떨렸지만 참았다.
아직 보물 주머니에 남은 식량이 제법 있으니.
아쉬운 대로 주먹밥을 꺼내 먹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준비해 둔 만큼 열량은 대단하다.
맛은 별로지만.
것보다.
“그에에.”
난 덕춘이가 가져온 물건을 살폈다.
면담을 하러 갔을 때, 덕춘이보고 노역소를 살펴 달라고 했었다.
그때 가지고 온 물건이 있었으니.
[북향의 흑귀석]
-제4마계, 북부 지대를 지배했던 흑귀의 힘이 깃든 보석
-여러 가지 힘이 섞여 탁하지만 포탈 생성 용도로는 쓸 수 있을 것 같다.
포탈 생성기를 작동하는 데 필요한 보석.
가고일과 가디언을 잡을 때만 나오는 줄 알았는데 이곳에서도 나오는 모양.
정보가 더 필요하다.
난 어떻게든 빵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스프에 빵을 적시고 있는 이선만에게 다가갔다.
“식사는 입에 맞아요?”
“음? 뭐, 매번 먹는 거니까.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먹는 것에도 차별이 좀 있죠. 먹어야 힘을 낼 텐데.”
슬쩍, 보물 주머니에서 꺼낸 초코바를 건넸다.
반사적으로 주변을 살피더니 챙긴다.
“크, 크흠. 별수 있나.”
“다음에 면담을 하면 메글릿을 공격해 보세요. 우리도 그래서 괜찮은 식사를 하게 된 것 같으니까요.”
“조언 고맙군.”
잠시 이어진 침묵.
“원하는 게 뭐지?”
“노역소에서 뭘 발굴하는 건지 아십니까?”
단순한 호의가 아님을 눈치챈 그가 물었고 난 곧장 질문을 했다.
“보니까 이곳에서도 포탈 생성에 필요한 보석을 얻을 수 있는 것 같던데요.”
“아, 그건 맞지. 드물기는 하지만 하나씩 나와. 매일 나올 때마다 수거해 가지.”
“따로 챙기는 건 없습니까?”
“나도 한때는 몰래 챙긴 적이 있기는 한데 걸리면 3일 동안 밥을 안 줘. 그걸 가지고 있으면 뭐 할까, 석판도 없는데. 그래도 사람이 미련이란 게 있어서 몇몇 고참은 가지고 있을 수도 있어.”
그렇단 말이지.
좋은 정보를 얻었다.
이번 퀘스트.
‘깰 수 있다.’
확신이 들었다.
* * *
노역소에 갇힌 지 3일 차.
면담은 계속해서 진행되었고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콰아아앙!
“쿨럭쿨럭!”
폭발과 함께 피어오르는 먼지.
이어 섬광이 번뜩인다.
여기까지는 예상했던 상황.
난 넘어지듯 몸을 눕혔고.
-카아아악!
벽 한쪽이 그대로 잘려 나갔다.
가구가 잘리는 건 당연했고, 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시점.
[파이어 밤 (A) Lv.10]
전방을 향해 파이어 밤을 날렸다.
노예가 되며 상점창이 봉인된 탓에 아직도 AA등급으로 올리지 못한 상황.
그럼에도 파괴력은 훌륭했고.
“하이고, 난장판이구만.”
여느 때와 같이 검은 안개가 폭발을 집어삼켰다.
빨려 들어가듯 사라지는 홍염.
이어 메글릿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만 더 앞으로 와라.
“폭탄 같은 친구로군, 안 그래?”
“어, 맞아. 내가 좀 그렇지.”
자연스럽게 맞장구치며 놈을 기다렸다.
어깨를 으쓱인 그가 내 쪽으로 걸어오는 타이밍.
[시한폭탄 (A) Lv.6]
[시한폭탄 (A) Lv.6]
.
.
.
3일에 걸쳐 몰래 깔아 두었던 폭탄이 폭발했다.
붉게 타오르는 마법진.
그와 함께 폭발적으로 쏟아지는 화염.
강렬한 열기와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 같은 파괴의 힘이 놈을 덮쳤지만.
“이건 좀 안 좋은걸.”
-사아아아악!
그가 허공에 손을 내뻗자 불길이 힘을 잃었다.
스킬 자체를 억제하는 듯한 느낌.
삽시간에 소장실의 일부가 재가 돼 버리고, 놈의 옷도 불타 버려 피부가 그대로 드러났다.
“소장실을 매번 고치는 것도 번거롭단 말이야.”
“아예 없애는 것도 좋을 것 같, 크학!”
도발하는 것과 동시에 메글릿의 발이 가슴을 강타했다.
한 번에 우그러든 갑옷.
[펠라인 세트가 자체 수복을 시작합니다.]
방어를 뚫고 들어온 공격에 피를 한 움큼 내뱉었다.
지금 와서는 어지간한 공격에는 강한 내성을 가지고 있는 나다.
적어도 3성급 따위는 맨몸으로 공격을 받아 낼 수 있고, 4성급도 어느 정도 버틸 만하다.
그도 그럴 것이.
[강체强體 (B) Lv.10]
[물리 공격 내성 (C) Lv.10]
[강철의 의지 (B) Lv.5]
이 세 가지 스킬이 있어 몸 하나는 다른 사람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단단하니까.
그럼에도 메글릿의 공격은 감당하기 힘들다.
늑골이 부러졌는지 숨쉬기가 힘들다.
확실히 단순히 싸워서는 놈을 이길 수 없다.
계획대로 하는 수밖에.
난 소장실 한쪽을 바라봤다.
폭발을 일으키며 소장실을 개판으로 만든 데는 이유가 있었다.
투구로 얼굴을 가린 채 놈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원하는 것을 찾았다.
있다, 잘못 본 게 아니다.
“후우. 오늘도 재밌군. 역시 너랑 놀면 스트레스가 풀린다니까.”
그야 혼자서 신나게 두들겨 패니까 그렇겠지.
털썩. 소파에 앉은 그가 턱짓했다.
놀이는 여기까지라는 뜻, 면담할 시간이다.
“노역소 생활은 잘하고 있는 것 같더군. 트러블도 없고, 기존에 있던 사람들이랑도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사람이 무난하잖아, 시비 안 걸고.”
통증이 올라오는 가슴을 붙잡으며 맞은편에 앉았다.
그가 시선을 창문으로 돌린다.
“그거 알아? 39층에 올라온 여섯 팀 중에 두 팀은 이미 낙오된 거? 한 팀은 이미 위로 올라갔지.”
나도 안다. 같이 이곳으로 잡혀 왔던 덩치가 어느 순간 사라졌으니까.
팀원들이 석판을 완성한 거겠지.
옆에 있던 학생이 왜 자기 팀은 아직이냐고 난동을 피웠었다.
가고일도 두 마리 정도 부쉈고.
뭐, 메글릿이 곧장 나타나 놈을 제압했지만.
덕분에 알게 된 사실 하나.
‘놈은 문제가 생기면 노역장으로 내려와.’
아무리 놈이 악마라 한들 몸은 하나.
당시에도 면담을 진행 중이었고 오지혁이 소장실에 있었다.
그가 증언하길, 안개가 생기는 것과 동시에 메글릿이 사라졌다고.
중요한 정보다.
내 계획을 완성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
“자네가 속한 팀은 좀 더 분발해야겠는걸? 다른 노예들도 마찬가지지만. 저번처럼 편지라도 보내지 그래? 열심히 좀 하라고.”
놈이 비아냥거린다.
면담을 진행하면 그는 나와 몇몇 사람에게 특혜를 줬다.
첫 만남부터 공격을 해 댄 것이 마음에 들었는지, 두 번째 면담 때 밖에 있는 팀원들에게 편지를 쓸 수 있게 해 줬다.
나 역시 고대진과 최영미, 김서균에게 편지를 보냈고.
그의 말대로 아직 나를 비롯한 다른 이들의 팀원들은 포탈 생성기를 완성하지 못했다.
실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보석을 떨구는 확률이 낮기 때문.
운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메글릿은 알까? 그 모든 것이 계획의 일부라는 걸.
난 팀원들에게 시간을 끌어달라 했다.
보석을 최대한 모은 채.
아마 지금쯤이면 충분히 포탈 생성기를 활성화할 정도로 보석을 모으지 않았을까.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향했다.
필드를 어슬렁거리는 몬스터에는 관심 없고 최대한 시야를 멀리 잡았다.
조금이지만 바뀌었다.
슬슬 시작해도 되겠지.
창가에 걸쳐 앉으며 메글릿을 바라봤다.
여전히 자신만만한 얼굴.
조만간 무참히 구겨질 걸 생각하니 묘하게 기분이 좋다.
그동안 당한 게 있어서 그런가.
“아, 맞다. 메글릿, 35층에 있는 펜그릴 알아?”
“대충은.”
“그 친구가 말하더라고. 너한테서 AA등급 이상의 보석을 얻을 수 있다고, 진짠가?”
계획을 짜고 작업을 하느라 그동안 묻지 못했던 질문.
조만간 모든 일을 끝낼 예정이니 지금 물어보는 게 맞았다.
“고위 등급의 보석이라, 있지.”
그가 피식 웃으며 손을 펼쳤다.
안개가 피어오르며 주먹만 한 뭔가가 보인다.
“그거 알아? 노역소에는 유물이 숨겨져 있고 노예들은 그것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동을 하지. 내 이름으로 약속도 했어. 유물을 찾으면 모두 해방시켜 주겠다고.”
이건 처음 듣는 이야기.
키득거리는 녀석의 눈빛이 번뜩인다.
“이미 유물은 얻었어. 바로 이거지. 노예 놈들은 있지도 않은 유물을 발굴하기 위해 영원히 고통받는 중이다. 네가 마음에 들어서 말해 주는 거야.”
악취미다.
희망을 던져 놓고 농락하는 거니까.
뭐, 상관없겠지.
대가는 치르게 될 테니.
“그 보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글세, 아주 귀한 거라서 말이야.”
보석을 만지작거리던 메글릿이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인다.
“네가 날 죽이면 주도록 하지.”
“죽는데 어떻게 줘.”
“크큭! 절대 못 한다고는 안 하는군. 마음에 들어! 좋아. 이런 거라면 어떨까.”
메글릿이 서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낸다.
계약서.
“나, 메글릿은 이블아이에게 죽으면 태초의 보석을 양도한다.”
-스스스스
메글릿의 선언과 함께 보석이 모습을 감춘다.
떠오르는 메시지.
[계약에 의거, 태초의 보석은 맹약의 금고에 보관됩니다.]
[계약 달성 시 태초의 보석이 양도됩니다.]
“어때? 이러면 내가 죽어도 네가 못 받을 일은 없는데.”
“후회하지 마.”
이렇게까지 해 준다니 나야 고마울 따름.
맹약의 금고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툭툭. 손가락으로 창틀을 두들겼다.
태초의 보석이라. 40층으로 넘어가는 기념품으로는 충분하겠지.
퀘스트 보상도 있고.
“메글릿.”
난 그의 이름을 불렀고.
“일대일로 면담하면 심심하지 않아? 이참에 단체 면담도 해 보지?”
대놓고 놈에게 요구했다.
일대일이 아닌 여러 명을 상대하라고.
정상적인 사고방식이라면 받아들일 리가 없는 제안이었지만.
“큭! 크하하하! 뻔한 수법을 쓰는구나. 좋다! 무료함도 어느 정도 달래질 테지.”
놈은 악마였고 하루도 빠짐 없이 면담을 하는 지루한 변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