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161화 (161/740)

161화 오셨, 어요?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던 조각상이 되살아난다.

데몬 가디언과 데빌 가고일.

흉측하게 생긴 것만 제외한다면 평범한 석상 몬스터처럼 보였지만.

“크읍!”

“키아아아!”

놈들이 내뿜는 위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이 정도면 최소 3성. 아니, 이 정도면 4성인가.

팀원들 역시 당황했는지 자세를 고치며 저항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권능을 발휘하여 정보를 읽었고.

[데몬 가디언]

-악마의 힘이 깃든 가디언.

-노역소를 지킵니다.

-준4성급 몬스터

[데빌 가고일]

-악마의 힘이 깃든 가고일

-적과 노예들에게 고통을 선사합니다.

-4성급 몬스터

보통 놈들이 아니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준4성급에 4성급 몬스터라.

“저 녀석들 모두 4성급이라고 생각하고 싸우세요!”

난 크게 외쳐 주의를 줬다.

역시 30층 마지막 필드라 이건가.

난이도가 제법 되는 놈들로 배치해 뒀다.

그나마 탱커에 가까운 데몬 가디언은 상대하기가 쉬운데.

“키아아아악!”

-촤아아악!

돌덩이 주제에 하늘을 날며 공격해 대는 데빌 가고일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내구도도 내구도지만 공격력이 대단하다.

평범한 방어구는 그냥 찢어 버릴 거 같은데.

녀석이 허공에서 쏜살같이 떨어져 내리며 휘두른 손톱에 김서균의 방패에 흠집이 생긴 걸 보니 확실하다.

제법 좋은 물건인데도 저렇다니.

-파스스스

난 다시금 달려드는 놈에게 손을 뻗었다.

날카로운 손톱이 나를 파고들려고 했지만.

-콰아아아앙!

손을 비틀어 가고일의 손목을 붙잡았고 그대로 땅에 처박았다.

파편을 흩뿌리며 얼굴부터 박힌 녀석.

죽은 건 아니다. 애초에 생명체가 아니니 신체 일부가 부러져도 움직인다.

그게 설사 머리라고 하더라도.

“키에에에!”

얼굴 반이 날아간 녀석이 살벌한 울음소리와 함께 나를 공격했다.

묵직한 날개와 꼬리가 덮쳐 오고, 빈틈을 노리며 손톱이 그어진다.

괜히 4성급 몬스터는 아니다 이거지.

하지만.

[절삭 (B) Lv.9]

나를 위협할 정도는 아니다.

검이 매끄럽게 가고일의 몸을 지난다.

이어서 한 번 더.

아니, 좀 더.

-서걱

-사가가각!

눈 깜짝할 사이에 여섯 번의 참격이 이어졌고.

-쿠르르릉

단번에 여러 조각이 되어 버린 가고일이 무너져 내렸다.

아무리 가고일이라 하더라도 이 정도로 조각나면 살아남을 수 없는 법.

대형 길드와 싸우며, 30층대를 오르며 핥짝이와 경쟁하느라 스킬 레벨이 많이 올랐다.

절삭뿐만이 아니다. 파이어 밤, 프로즌 브레이크, 되갚기 등등 가지고 있는 모든 스킬의 레벨이 올랐지.

이렇게.

[파이어 밤 (A) Lv.10]

-콰아아앙!

나를 향해 달려오던 데몬 가디언이 그대로 터져 나갔다.

어느덧 A등급 최대 레벨에 도달한 파이어 밤.

레벨도 레벨이지만 펠라인의 빨간 머리통의 화염 속성.

19층의 지배자한테 얻은 불의 인장과 내가 가지고 있는 칭호의 효과들.

[공략자-칭호 (성장형)]

-올 스텟 +30

-행운 스텟 +15 (행운 스텟은 일반 스텟과 별개로 적용됩니다.)

-신성력 스텟 +20

-현재 공헌도: 49점 (250점 도달 시 보상이 이루어집니다.)

새내기들이 들어오며 공헌도 점수 상승.

그에 대한 보상으로 올 스텟 증가가 +30까지 올랐고.

[폭탄마-칭호]

-여기서 펑! 저기서 펑!

-당신의 폭발은 세계를 놀라게 할 것입니다!

-인성은 터지지 않게 조심하세요. (저런, 이미 터졌군요!)

-모든 폭발형 공격이 강화됩니다.

여기에 폭탄마 칭호까지 합쳐지니 위력은 굉장했다.

3성급 수준의 몬스터는 한 방에 박살 낼 수 있을 정도로.

준4성급이라고는 하나, 데몬 가디언 역시 3성급 몬스터에 불과했다.

칭호 내용에 변화가 약간 생기기는 했지만 모른 척 넘어가자.

효과만 좋으면 됐지 뭐.

그보다.

[행운 스텟이 반응합니다.]

“이놈들을 잡아야 떨어지는 거였구만.”

난 방금 잡은 데몬 가디언이 있던 자리에 굴러다니는 보석을 주웠다.

타오를 것만 같은 붉은 보석.

[남향의 홍귀석紅鬼石]

-제4마계, 남부 지대를 지배했던 홍귀의 힘이 깃든 보석

-여러 가지 힘이 섞여 탁하지만 포탈 생성 용도로는 쓸 수 있을 것 같다.

홍귀? 제4마계?

알 수 없는 문장이 섞여 있었지만 우리가 찾는 물건인 거 같긴 하다.

자세한 건 확인해 보면 되겠지.

-찰칵

-우우웅

석판 아랫부분 홈에 맞춰 보석을 넣자 붉은빛이 떠오르며 마법진 일부가 활성화된다.

제대로 찾은 것 같은데.

“여러분, 이놈들을 잡으면 보석이 나옵니다. 석판에 넣으면 돼요!”

“알겠습니다!”

“으아아앗!”

팀원들 역시 분발하고 있다.

처음 30층대에 들어올 때도 3성급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35층에서는 다 같이 힘을 합쳐 5성급 몬스터를 잡기도 했고.

데빌 가고일은 좀 버거워 하는 느낌이 있었지만 데몬 가디언 정도는 충분히 사냥하고 있었다.

아직 나를 제외하고 보석을 얻은 사람은 없다.

쉽게 나오지는 않는 모양. 나도 행운 스텟이 있어 얻은 것 같으니까.

이 정도 난이도면 39층에서 전멸하는 팀도 있겠는데.

그나마 우리는 1등으로 층을 공략하기도 하고, 34층에서 베팅도 해서 스펙이 수직 상승 했지만 모든 팀이 그러지는 못했을 테니.

“여기 얻었습니다!”

사냥할 놈을 물색하며 주변을 살피던 때, 김서균이 소리쳤다.

나이스. 그의 손에 들린 건 하얀 보석.

혹여나 같은 색이 나오면 어쩌나 했는데.

“끼우세요!”

난 그를 향해 석판을 던졌다.

그대로 잡아 보석을 끼워 넣는 김서균. 이번에는 하얀색 빛이 터지며 마법진을 이룬다.

이걸로 남은 보석은 3개.

잘하면 쉽게 클리어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했고.

[다량의 가디언과 가고일이 파괴됐음을 확인.]

[노역에 적합한 자가 선별되었습니다.]

[노역소장 메글릿의 부름을 받습니다.]

그럼 그렇지.

쉽게 끝날 리가 없었다.

메시지가 떴었다. 노동을 착취하는 하수인이 일어서고 노예를 뽑겠다고.

설마 놈들을 잡는 게 노예를 선별하는 과정이었을 줄이야.

당연하게도 가장 많은 가디언과 가고일을 잡은 건 나였고.

-쿠르르르르

징조 없이 나타난 어두운 안개가 내게 몰려왔다.

보나 마나 날 잡아가기 위함이겠지.

혹시나 싶어 달아나 봤다. 빠르게 쫓아오는 안개, 역시 무리인가.

어느새 지척까지 쫓아온 안개가 내 발목을 잡았고.

“저 없어도 계속 클리어해요!”

“이, 이블아이 씨?”

“잠깐만. 저기……!”

완전히 붙잡히기 전 팀원들에게 소리쳤다.

동시에 암전되는 시야.

-후우우웅

포탈을 넘을 때와 비슷한 부유감이 전신을 잠식한다.

몸이 늘어났다가 줄어드는 듯한 기분.

약간의 멀미와 함께 시야가 돌아왔고.

[노역소장실에 입장했습니다.]

낯선 공간을 마주할 수 있었다.

* * *

건조한 공기. 기름 냄새가 나는 램프.

원목 테이블에는 알 수 없는 언어로 적힌 서류가 가득했고, 벽에는 해골만 남긴 어떤 생물의 머리가 달려 있었다.

후우.

33층에서는 환자가 되더니 39층에서는 노예가 다 되네.

돌아버리겠다, 진짜.

약간의 짜증과 함께 억울함이 솟아났지만.

“이블아이 씨?”

“엇?”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눈을 깜빡이며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김소담.

팀원 중 나를 제외하면 가장 전투력이 높은 만큼 꽤 날뛴 모양이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노역소니 뭐니, 쯧.”

자연스럽게 옆에 붙은 김소담과 함께 소장실을 둘러봤다.

불려온 건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4명의 사람이 더 있다.

놀라운 건 그중 2명이 구면이라는 것.

“상옥 씨랑 오지혁 새끼도 있었군요!”

“빌어먹을, 네놈들이랑 같은 층이었나. 그것보다 방금 뭐라고.”

“반갑다.”

오지혁과 이상옥이라니.

핥짝이와 경쟁하며 등반하다 보니 벌써 따라잡은 모양.

잘됐다.

지금처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두 사람의 전력은 큰 도움이 될 거니까.

모르는 사람들이랑 있는 것보다 편하기도 하고.

저마다 안부를 물으며 시간을 보내던 찰나.

“크윽. 여긴 또 뭐야! 어, 누구 없어?”

“아 씨, 보석 줍고 있었는데.”

남은 두 사람도 정신을 차렸다.

처음 보는 얼굴이다.

꽤 성질 더러워 보이는 덩치 하나와 눈매가 올라가고 입술이 얇은 남자 한 명.

덩치는 서른 정도 되어 보였지만, 다른 한 명은 학생으로 보였다. 많아 봐야 스무 살?

다른 건 몰라도 저들 역시 실력은 뛰어날 게 뻔했다.

몬스터를 많이 잡은 이를 기준으로 불러온 것 같았으니까.

성격 자체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실력을 믿어서인지 아니면 조심성이 부족한 건지 낯선 곳에 불려왔는데 조용히 있기는커녕 들쑤시고 다닌다.

슬쩍 김소담을 훔쳐보기도 하고 괜히 목소리를 높이며 힘을 과시해 댄다.

그다지 현명한 선택이 아닐 텐데.

다른 이들도 비슷한 생각인지 얼굴을 구겼고.

“시끄러운데 조용히 하지, 뒈지기 싫으면.”

“뭐?”

일행 중 가장 성질이 더러운 오지혁이 나섰다.

역시나 직설적인 발언. 하루에 뒈지라는 말을 몇 번 할까? 쓸데없는 생각이 드는 것도 잠깐.

도끼를 움켜쥔 덩치가 험악한 표정으로 다가온다.

“방금 나한테 한 건가?”

“아니. 정확히는 돼지 새끼랑 쥐 새끼, 둘한테 말한 거지.”

친절하게 덩치와 학생을 가리키는 오지혁.

역시 사람 성질 긁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

때문에 책상 아래를 뒤지던 학생까지 오지혁 앞으로 다가갔고.

“아저씨, 정신 차려. 여기 경찰 없어.”

“그게 참 좋아.”

-쾅!

-콰직!

오지혁의 발이 두 사람의 턱을 날렸다.

반응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쓰러지는 사람들.

난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왜 사람을 패고 그러냐, 인성 덜된 녀석아.”

“시끄럽게 굴어서 위험해지는 것보다는 낫지. 너도 그래서 가만히 있던 거 아닌가.”

“그건 맞지.”

적당히 두 사람을 구석에 박아 넣고 문에 귀를 댔다.

인기척은 들리지 않는다.

지금이라면 탈출할 수 있지 않을까?

굳이 노예가 되고 싶지는 않은데.

문고리를 돌려 봤지만 잠겼는지 움직이지 않는다.

“으! 창문도 닫혔어요.”

잽싸게 창문을 확인한 김소담이 고개를 흔들었다.

창문 밖으로 데몬 가디언과 데빌 가고일과 싸우는 사람들이 보인다.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해 보자면.

“아까 그 동굴 근처 같군요.”

시야가 높다.

노역장 전체가 보이는 위치기도 하고.

관리자가 위치하기 좋은 곳이라는 뜻.

난 미간을 좁히며 생각했다.

분명 노역소장 이름이 메글릿이라고 했지.

펜그릴이 말한 NPC와 같은 이름이다.

찾아가기도 전에 납치당할 줄이야. 말해 줄거면 노역소장이라는 말도 같이 해 주지.

머리를 벅벅 긁고 있는 사이 동료들이 한곳에 모였다.

“탈출구로 보이는 건 따로 없군.”

“그냥 부수고 나가 볼까요?”

투덜거리는 오지혁 옆에서 벽을 훑던 김소담이 물었다.

부순다라, 마음먹고 날뛰면 부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탈출해서 빠르게 보석 모으고 뜨면 되잖아요. 뭔지는 몰라도 노예가 되긴 싫어요.”

“메시지를 봤으니 알겠지만 이곳은 악마의 노역소다. 좋지 않은 건 분명하지.”

김소담의 말도 이상옥의 말도 수긍이 간다.

“때마침 여기 미끼도 있군. 이놈들이 저지른 걸로 꾸미면 된다.”

오지혁 역시 쓰러트린 헌터 둘을 들어 올리며 입꼬리를 올리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저 녀석이 악마보다 악독한 것 같은데.

어쩐다.

마음 같아서는 메글릿과 만나 보석함에 넣을 보석을 얻고 싶지만.

‘그건 내 욕심이지.’

그가 순순히 보석을 내줄 거라는 보장도 없고.

NPC라고 무조건 우호적이지는 않단 말이야.

알리오스도 그렇고, 펜그릴도 그렇고 첫 만남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게다가 난.

‘대체재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니까.’

조금 아쉽지만 괜찮은 물건도 하나 있었다.

정했다.

“뚫읍시다.”

난 고개를 끄덕였고.

오지혁에게 손을 까딱였다.

삐딱하게 고개를 비트는 녀석.

“뭐.”

“인간 총알 도와줘. 나가더라도 가능하면 조용히 나가는 편이 좋잖아.”

와락. 놈의 얼굴이 구겨졌지만.

“오지혁 힘내라.”

“와, 멋있다!”

그의 편은 없었다.

“빌어먹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다가오는 녀석.

난 그에게 강철의 의지를 사용했다.

단단해진 몸.

꼿꼿이 편 놈을 들어 올렸고.

“따끔합니다, 따끔!”

“따, 너 설마!”

-콰강!

그대로 공성추처럼 오지혁을 벽에 박았다.

오케이. 잘 꽂혔다. 역시 돌머리.

죽인다느니 개 멍멍이라느니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깔끔하게 무시했다.

이제 남은 건.

“다들 앞으로 전진!”

“옙!”

“흐읍!”

오지혁을 꼬챙이 삼아 벽을 부수는 것뿐.

나와 김소담, 이상옥이 합심해 오지혁을 붙잡고 앞으로 밀었다.

초인 셋이 힘을 합친 만큼 그 힘은 굉장했으며.

-꾸득

-쿠르르르릉

균열이 간 벽은 이내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약간의 소음이 발생했지만 이 정도는 감안해야지.

폭발을 일으키는 것보다는 훨씬 조용하게 끝났다.

올라오는 먼지구름을 해치며 걸음을 옮겼다.

이제 밑으로 도망치면 끝.

끝인데.

“오, 활발한 노예들이 왔군. 다들 반가워.”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

뚫어 버린 벽. 그 앞에는 한 악마가 서 있었으니까.

황금과도 같은 피부를 가진 악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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