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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152화 (152/740)

152화 짜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이블아이와 일행들이 제3영역을 벗어난 시점. 대형 길드 팀은 접선지에 모여 있었다.

미리 도착해 있던 다성의 루키 이하영과 이클립스의 루키 김창후가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는 사이, 다른 길드원들은 주변 정찰을 나섰다.

수십 명의 헌터가 움직이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압박감이 있었으나, 정작 이들을 이끄는 루키들 표정은 좋지 않았다.

“최성모 팀장님 오십니다!”

정찰 나갔던 길드원이 소리쳤다.

그의 말마따나 대도를 등에 단 최성모와 제3영역에 들어갔던 팀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왔냐?”

“보다시피.”

이하영의 물음에 최성모가 어깨를 으쓱인다.

별다른 말 없이 장비를 내려놓는 최성모를 보며 이하영이 눈매를 좁혔다.

“이블아이 잡으러 간다던 놈이 왜 빈손이시실까?”

“으음, 팀원도 줄었는데요?”

한눈에 변화를 눈치챈 이하영과 김창후가 관심을 보인다.

분명 제3영역에 들어간 팀은 최성모가 이끄는 곳을 포함해 다섯.

정작 돌아온 건 네 팀뿐이었다.

그뿐이랴. 최성모의 팀원 역시 수가 줄어 2명밖에 안 남았다.

“오지혁이 방해를 했지. 이블아이는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아, 그 오지혁? 걔 네 따까리잖아. 걔한테 진 거야?”

“그 사람도 제법 강한 모양이군요?”

비아냥거리는 건지 호기심인지 모를 질문 공세에 최성모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강하긴 하다, 예상보다도 더. 나와 합을 겨루었고 팀원도 둘이나 데려갔지. 난 놈을 죽이지 못했고.”

그의 말에 표정이 구겨지는 루키들.

안 그래도 이블아이를 어떻게 해야 고민인데 의외의 변수가 하나 더 생겼다.

걱정할 상황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최성모의 표정은 담담했다. 오히려 입꼬리 한쪽이 올라가기까지.

“그뿐이다. 놈은 내 적수가 되지 못해. 이블아이의 방해만 없었어도 그 자리에서 죽었다.”

“결국 놓쳤다는 거잖아. 아니다 싶으면 신호탄 쏘라니까, 왜 그냥 오냐고!”

“에이, 진정해요. 어차피 그때 싸웠으면 안 됐어요. 이블아이에 오지혁, 다른 놈들도 있었으니 혼자서는 무립니다.”

흥분하는 이하영을 말린 김창후가 ‘나 잘했지?’라는 표정으로 최성모한테 윙크했다.

물론 그런 걸 받아 줄 사람은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린 최성모가 길드원들을 바라봤다.

“제3영역에 들어선 팀 하나는 전멸. 아무래도 연합 팀한테 당한 것 같으니 69명이 전부로군.”

35층에 들어온 길드 팀은 15개. 총원 77명.

제3영역에서 8명이 당했으니 최성모의 판단은 맞는 것 같았지만.

“아니. 59명이야.”

이하영은 손가락을 저었다.

59명. 생각보다 훨씬 적은 수다.

“35층에 올라온 직후 오지혁한테 한 팀이 당했어. 게다가…….”

“다른 팀 하나도 당했더군요.”

“개판이군.”

“그러게 말입니다.”

김창후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경쟁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피해가 발생했다.

“우리 편이 아닌 팀은 5개입니다. 현재 이블아이는 오지혁과 이상옥 팀과 합류, 이렇게 세 팀이 모여 있어요. 집합지로 모이며 연합 팀 하나를 전멸시켰으니 남은 건 어디 소속인지 알 수 없는 팀 하나뿐이죠.”

“그 정체불명 팀에 우리 팀 하나가 소리, 소문 없이 당했고 말이야.”

“아, 참고로 그 팀은 임시로 X팀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제 아이디어죠. 센스 좀 있었나요?”

“제발 닥쳐, 멍청아.”

김창후의 얼굴을 밀어낸 이하영이 미간을 문질렀다.

결론을 내리자면 현재 35층에 있는 건…….

대형 길드 팀 12개, 총원 59명.

이블아이가 이끄는 연합 팀 3개, 총원 9명.

정체불명의 팀 하나, 몇 명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알 수 없음.

이렇게 3개의 세력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다시 생각해도 화가 나는지 이하영이 거칠게 머리를 쓸어올렸다.

“모자란 놈들! 당할 수는 있어. 그래도 보고는 하고 죽어야 할 거 아니야! 적어도 어떤 놈한테 당했는지, 적이 몇 명인지는 말을 했어야지.”

연합 팀도 연합 팀이지만 정체불명의 팀이 마음에 걸렸다.

얼마나 빠르게 당했는지 제대로 된 보고조차 남기지 못하고 죽었다.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놈이 얼마나 될까?

이블아이? 오지혁? 아니면 처단 목록에 올라간 놈들의 연합인가?

가뜩이나 연합 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 짜증이 몰려왔다.

“너무 열 내지 마요. 어찌 됐든 계획했던 대로 전부 모였잖아요? 뭐하면 차라도 한잔 줄까요?”

“넌 이 상황에서 차가 넘어가? 어? 아주 정신 줄이 느슨하다 못해 놨지 그냥?”

“나사 빠졌다는 말은 종종 듣습니다. 하하!”

“웃어? 이런 씨……!”

“워워. 진정하고.”

틈만 나면 싸우려는 둘을 말린 최성모가 말을 이었다.

“제3영역에서 성과가 아예 없던 건 아니다. 이블아이가 그 구역의 보스를 잡았지. 보스를 잡으면 그 구역을 관리할 권한이 생긴다. 지형 변화, 몬스터 조종 등등 혜택이 있다.”

“처음 듣는 말이군요.”

“그보다 보스를 잡았다고? 그게 가능해?”

“가능하다.”

직접 눈으로 본 건 아니었지만 정황상 확실했다.

대도의 손잡이를 움켜쥔 최성모가 입가를 비틀었다.

“잘 들어라. 이블아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 예상보다 전력이 깎인 만큼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지.”

먼저 주의점을 말해 준 그가 말을 이었다.

“놈들은 다른 구역의 보스도 노릴 가능성이 높다. 각 영역의 관리자 권한. 인원이 적은 놈들이 우리와 맞서려면 그 정도는 있어야 하니까.”

“오호라. 마치 놈들이 제2영역으로 들어갈 거라는 말로 들립니다?”

“맞다. 제2영역은 가장 생존율이 높은 구역이니까. 다른 곳에 비해 만만하겠지.”

적의 움직임을 예상할 수 있다면 대형 길드도 전략을 짤 수 있었다.

먼저 안으로 들어가 진을 짠 후, 보스를 잡으러 움직이는 놈들을 노릴 수 있으니.

“그럼 움직이자고. 가만히 있는다고 되는 건 없으니까. 각 영역은 오면서 체크해 뒀으니 바로 가자.”

이하영이 가장 먼저 자리를 떴고, 고개를 끄덕인 두 루키도 길드원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연합 팀이 모일 것이라 추측되는 제2영역으로 이동한 지 한 시간.

“기습! 기습이다!”

“으아아아아!”

대형 길드 팀은 기습을 당했다.

정확히 옆구리를 잘라 먹는 공격.

숨어 있던 연합 팀이 선수를 쳤다.

최영미가 쏜 볼트를 시작으로 김소담의 전투봇이 전장을 헤집었고, 김서균과 고대진이 시간을 버는 동안 이상옥이 적들을 암살했다.

오지혁이야 대놓고 날뛰었고.

한 번에 쏟아부은 화력에 길드원 6명이 사망.

부상자 역시 5명이 넘었다.

“무리하지 말고 빠져요!”

“오케이!”

“이, 이거 맞겠죠?”

“이블아이 씨를 믿어 봅시다.”

“아, 몰라! 갑시다!”

최영미의 외침에 연합 팀이 도주하기 시작했다.

앞서 움직이던 이하영이 달려오고 있던 것.

어찌나 빠른지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저 새끼들 잡아!”

버럭 소리를 지르는 이하영.

그녀의 외침에 길드원들이 어떻게든 시간을 끌려고 했으나.

-콰아아앙!

거세게 바닥을 걷어찬 오지혁 때문에 시야가 막혔고, 연합 팀은 무사히 빠질 수 있었다.

쫓아야 한다.

이하영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잠깐만 멈춰요.”

김창후가 그녀를 말렸다.

“저쪽, 5구역입니다. 생존율 1퍼센트인 영역. 따라가 봤자 답 없어요.”

“이런 제기랄! 으아아아!”

그녀가 분노 섞인 비명을 내질렀다.

열이 올라 목까지 벌게졌지만 머리는 돌아갔다.

“개 같은 녀석들 들어가서 다 뒤지라지.”

어차피 놈들 또한 죽게 될 테니까.

적어도 이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후 네 차례의 기습을 받기 전까지는.

* * *

난 가만히 서서 숨을 골랐다.

팀원들은 잘하고 있으려나. 지금쯤이면 대형 길드와 마주쳤을 거 같은데.

“무리만 안 했으면 좋겠네.”

이상옥과 합류한 후 계획을 팀원들에게 알렸다.

방법은 간단했다.

치고 빠지고, 적의 전력을 깎는다.

원래라면 될 리가 없는 방식이다. 놈들이 바보도 아니고 기습 한 차례 당하면 이후에는 경계할 게 뻔하니까.

인원도 인원이고 루키도 세 명이나 있으니 역으로 당할 위험도 있지만.

“놈들은 아는 게 너무 많단 말이지.”

“그에엑.”

놈들의 특성을 이용하면 말이 달라진다.

내가 팀원들에게 요구한 사항이 있다.

공격한 뒤 무조건 제5영역으로 빠지라고.

생존율 1퍼센트의 공간.

제정신 박힌 사람이라면 절대 들어가지 않을 곳이었다.

특히나 그동안 쌓은 정보가 많은 대형 길드라면 절대 들어가지 않겠지.

먼저 35층에 도달했던 선배들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 알고 있을 테니까.

멍청하게 도망가는 걸 구경할 게 뻔했다.

사실 대형 길드가 맞다.

필드 보스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우리나 대형 길드나 들어가면 죽을 게 뻔하다는 말.

괜히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라 한 게 아니다.

-뚜둑

몸을 풀었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나를 믿고 팀원들은 제5영역으로 도주할 터.

난 5영역의 보스가 팀원을 공격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어차피 세계수 퀘스트 때문에 만나기도 해야 하고.

미리 꺼내 두었던 화관을 머리에 썼다.

[눈의 정령 여왕의 화관 (AA)]

-눈의 정령 여왕이 직접 만든 화관

-유일하게 남은 눈의 정령의 힘이 담긴 진귀한 물건

-착용자에게 ‘눈꽃의 가호 (A)’를 내립니다.

-드루이드와 엘프와의 친화도가 상승합니다.

제5영역의 보스는 추방당한 드루이드 펜그릴.

전 프리스트이자 왕국 하나를 멸망시킨 괴물이다.

인간에 대한 적개심이 있는 건 물론이고.

그냥 들어갔다가는 바로 죽겠지.

화관을 쓴 만큼 조금은 시간을 벌 수 있을 거다.

“좋았어. 준비 끝.”

노랑 몸통, 파란 팔. 빨강 투구에 왕관과 화관. 어깨에는 개구리까지.

올해의 패션 스타상은 내 거다.

살짝 현타가 왔지만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옷이 중요하냐, 성능이 중요하지. 그치, 덕춘아?

“그, 그에에.”

슬쩍 멀어지는 녀석.

아니, 네가 부끄러워하면 안 되지.

그리고 멀어져 봤자 내 어깨 안이거든?

살짝 울컥했지만 참았다. 개구리가 뭘 알겠냐.

-스으으

영역의 경계에 선 난 앞으로 한 발 내디뎠다.

[제5구역에 들어섰습니다.]

[주의!]

[즉시 벗어나십시오!]

경고 메시지가 떠오른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숲.

정확히는 숲보다는 아름답게 가꾼 정원에 가까웠지만.

-꾸드드득

-콰아아아악!

내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분위기가 반전됐다.

삽시간에 우거지는 풀과 나무.

화려한 꽃이 독 가루를 뿌리고, 바닥을 뚫고 솟은 나무뿌리가 나를 잡기 위해 날뛴다.

이어 뾰족하게 자란 나뭇가지가 도끼처럼 내게 달려들었으나.

“흡!”

나 역시 이 정도에 당할 정도로 물렁한 녀석은 아니라서 말이지.

가시나무를 밀어 찬 후 풀밭으로 달렸다.

독가루가 코로 들어왔지만 독 내성으로 버텼다.

내 발목을 노리는 뿌리?

-타앗!

가뿐하게 디딤 발로 이용해 위로 점프.

-콰아앙!

타이밍에 맞춰 파이어 밤으로 영역 안으로 돌진했다.

이 정도로는 날 막을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걸까.

“침입자는 오랜만이군.”

영역의 지배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만히 잔디밭에 앉아 묘종을 심고 있는 남자.

나무와 신체가 섞인 모습이 이질적일 수도 있건만 거부감보다는 조화롭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확실히 인간은 아닌지 자리에서 일어서자 체고만 3미터에 달했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

이끼 묻은 어깨에 앉아 있던 새를 부드러운 손길로 쫓아낸 그가 내 머리를 내려다봤다.

“…여왕이 만든 화관.”

“부탁할 게 있어 왔습니다, 펜그릴. 아니, 저 프리스트 드루이드.”

“눈의 정령 여왕은 친구가 아니면 화관을 만들어 주지 않지.”

확실히 화관의 효과가 있는지 예상과 달리 바로 공격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대화로 잘 풀 수 있을지도.

그가 돌발 행동을 하기 전에 일을 마치자.

세계수 씨앗을 보면 펜그릴도 함부로 움직이…….

-그오오오오오!

삽시간에 펜그릴의 눈이 붉게 변했다.

어, 잠깐만. 이거 좀 안 좋은데?

내가 위기감을 느끼는 찰나, 그의 몸을 감싼 나무껍질은 더욱 두꺼워졌고, 뿌리를 닮은 다리가 거세게 땅을 밟는 순간.

-쿠우우웅!

“으, 으앗!”

지축이 흔들렸다.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 같은 느낌.

균형을 잡기도 전에 놈이 내 앞에 다가왔다.

표정은 없었지만 눈에는 진득한 살기가 깃들어 있었다.

“네놈이 인간이 아니었다면 성대하게 환영했을 것이다.”

펜그릴의 주먹이 당겨진다.

그대로 날 짓뭉개 버릴 심산.

“인간과 대화할 생각은 없다. 나를 원망하라.”

그 말을 끝으로 펜그릴이 주먹을 뻗었다.

사람한테 악감정이 있는 건 알았지만 설마 화관을 보고도 이렇게 나올 줄이야.

어쩜 이렇게 예측하기 쉬울까!

-찌이이익!

난 준비했던 또 다른 물건을 찢었다.

-콰아아아아앙!

놈의 주먹이 꽂히며 자욱이 피어오른 먼지.

내가 맞았다면 핏물이 되었겠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왜냐.

“짜잔! 그럴 줄 알고 준비했습니다.”

[킬더레스 소환권을 사용했습니다.]

“지금부터는 악마와 대화하시죠.”

킬더레스가 그의 주먹을 막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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