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방법이라
오지혁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늘에서 거대한 검이 떨어지는 광경.
사람이 대적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압박감이 느껴졌고, 스스로를 미미한 존재로 느끼게 만들 수준의 존재감이 내뿜어졌지만.
“곱게 당할 것 같나!”
그 역시 겉모습만 보고 모든 것을 포기할 만큼 풋내기는 아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
결국에는 놈도 사람이었고, 저 일격 또한 스킬에 불과했다.
고작해야 35층.
아무리 대단해 봤자 그 한계는 분명했으니.
-콰아앙!
오지혁은 스킬을 사용하는 최성모를 직접 노리기로 결정했다.
스킬 시전자가 쓰러지면 거신의 일격 또한 저절로 캔슬 될 테니 정확한 판단이다.
다만.
“팀장님을 지켜!”
“힘으로 안 되면 몸으로라도 막아!”
최성모는 혼자가 아니었다.
루키는 대형 길드 내에서도 핵심적인 전력.
이후 탑 밖으로 나가 본격적인 헌터 생활을 한다면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게 분명한 인재였다.
이들에게 있어 탑은 등용문.
결국에는 탑 밖의 삶이 더 중요했고.
“제 이름은 박문진입니다, 팀장님!”
“으아아아, 김시언입니다!”
지금 상황은 최성모에게 눈도장을 찍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돌격하는 오지혁을 저지하는 길드원들.
“꺼져!”
오지혁의 발길질에 순식간에 길드원 절반이 당했다.
사망 처리되어 사라지는 녀석들.
허무하다면 허무한 최후였지만 시간은 벌 수 있었다.
“이름은 기억했다.”
담담하게 말을 내뱉는 최성모.
그에게 있어 길드원은 전략 자원일 뿐이었다.
필요하다면 길드원을 하나의 인격이 아닌 숫자로 바라볼 자였고.
-구구구구구궁!
어느새 하늘을 가른 거대한 검이 땅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피할 곳은 없다.
무리를 해서라도 공격을 비껴가는 수밖에.
이를 악문 오지혁이 두 다리에 힘을 집중했고 이내 검을 걷어차려던 그때.
[제3영역의 보스, 자할탄이 처리되었습니다.]
[제3영역의 소유권이 넘어갑니다.]
[관리자의 권한이 사용되었습니다.]
실시간으로 메시지가 떠오르더니.
-쿠드드드득!
-키하아아악!
-카르르륵!
필드에 변화가 일어났다.
“크흡!”
바닥을 뚫고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
늪과 나무에서 튀어나온 괴물들이 최성모와 그의 팀원들을 덮쳤고, 평범한 늪지대였던 곳이 빠르게 솟아나며 하나의 산을 이루었다.
마치 화산이 폭발하는 듯한 광경.
거친 진동과 주변의 방해 덕에 최성모의 자세가 흐트러진다.
비스듬히 눕는 거대한 검.
오지혁이 있던 곳으로 내리꽂히던 거신의 검이 새롭게 솟아난 산에 처박힌다.
이어지는 광풍.
-콰아아아앙!
질퍽한 진흙과 나무가 폭발해 허공을 수놓는다.
기세 좋게 생성된 산은 산산조각 나 갈라졌으며, 주변에 있던 몬스터는 사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터져 나갔다.
단 일격으로 해낼 수 있는 무위인가.
아니. 그 전에 이 급작스러운 환경 변화는 대체.
자신에게 날아오는 파편을 차 낸 오지혁이 눈을 찌푸렸다.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군.”
이해하기 힘든 현상.
마치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필드가 움직인 것 같지 않은가.
오지혁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다. 최성모 역시 그와 같은 느낌을 받았지.
‘제3영역의 소유자가 바뀌었다라.’
최성모가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그가 제3영역으로 들어온 이유가 무엇인가, 이블아이와 그의 팀을 전멸시키기 위함이 아니던가.
메시지를 살폈을 때 제3영역의 보스 자할탄을 잡은 건 이블아이의 팀. 도출되는 결과는 하나였다.
그의 입가가 비틀렸다.
“과연, 이블아이가 보스를 잡았다 이건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 누구도, 먼저 위로 올랐던 선배 중에서도 감히 필드 보스를 사냥할 생각을 하는 미친놈은 없었으니까.
그걸 해낸 이블아이는 어떤 놈일까.
기존에 잡아 뒀던 것보다 훨씬 위험한 놈이겠지.
이미 최성모의 머릿속에 오지혁은 사라졌다.
보스를 잡는 또 다른 공략법이 존재한다는 것과 이블아이를 어떻게 상대할지로 머리가 가득 찼지.
반면 오지혁은.
“넋을 빼면 쓰나!”
지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오지혁 또한 대략적인 정황을 눈치챘다.
간접적으로나마 이블아이가 자신을 도와주고 있다는 걸.
최성모가 준비했던 일격은 실패했고, 방패 역할을 하던 길드원은 절반 이상 사라졌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기회가 생길지 알 수 없는 상황.
모든 걸 동원해 최성모를 잡으려 했지만.
-타아악!
“지금은 빠지자.”
“이블아이?”
언제 왔는지 알 수 없는 이블아이가 오지혁을 붙잡고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파이어 밤으로 공중 도약.
밑으로 멀어지는 최성모의 모습이 보였다.
* * *
아슬아슬했다.
조금만 늦었으면 오지혁의 머리가 두 쪽이 되지 않았을까.
-타악
적당한 구릉 지대에 내려선 난 오지혁을 내려놨다.
급하게 뛰어서 그런지 숨이 다 차네.
무릎을 잡고 호흡을 고르는데 녀석이 내 멱살을 잡았다.
눈이 시뻘게진 게 열이 잔뜩 오른 모양.
“왜 도망친 거냐! 놈을 잡을 기회였는데!”
배은망덕한 녀석 같으니. 기껏 도와줬더니 은혜도 모르고.
-빠악
놈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큭!”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날 쏘아보는 녀석.
최성모, 최성모 노래를 부르더니 눈이 뒤집혔군그래.
팔짱을 끼며 필드 반대편을 턱짓했다.
“거기 있으면 좋은 꼴 못 봤을걸?”
제3영역의 소유권을 얻고 영역 내에서 벌어지는 일을 확인했다.
현재 대형 길드 팀 다섯 개가 이곳으로 들어왔다.
그중 하나는 최성모가 섞여 있는 루키 팀이고.
“적이 너무 많아. 다른 루키 두 명도 어디 있는지 파악이 안 되고… 너도 문젠데 다른 친구도 위험에 빠져서 말이지. 당장은 너랑 나밖에 없어.”
“둘이면 최성모를 잡는 건 충분하고도 남지. 넌 기회를 날린 거다.”
“루키 하나 잡으면 뭐 해. 우리가 싸우는 동안 다른 팀원들이 다 죽을 텐데.”
난 오지혁을 구하러 가고 김소담과 고대진, 최영미, 김서균은 이상옥의 팀을 도우러 갔다.
개개인의 전력이 높은 편이니 어느 정도 버틸 수는 있겠지만 장기전으로 가면 불리한 게 사실.
오지혁을 데리고 팀원들과 합류해야 한다.
“어차피 기회는 많아. 놈들을 처리하지 않고 위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아?”
주먹을 움켜쥐고 있는 녀석을 바라봤다.
여전히 눈빛이 살벌하다. 도대체 최성모와 어떤 악연이 있었던 건지.
평소 싸가지는 없었지만 멍청하지는 않았는데.
“아니면 그놈을 죽이면 너도 죽어도 좋다, 이렇게 생각하기라도 한 건가?”
“크흠!”
정곡을 찔렀는지 놈이 인상을 구긴다.
이놈도 이상한 부분을 집착한다.
“정신 나간 생각하지 말고 제대로 봐. 네놈이야 어떻게 돼도 상관없지만 거래한 게 있잖아?”
툭. 녀석의 어깨를 찔렀다.
“난 네놈이 최성모를 잡을 수 있게 돕고, 넌 우리가 다른 루키를 처리할 수 있게 돕는다. 개인으로 움직이지 마. 적어도 35층에서는 팀이니까.”
“…알겠다.”
놈도 흥분이 가셨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죽일 듯이 날 바라보기는 했지만.
설마 이번 일로 원한을 가지고 뒤통수를 치는 건 아니겠지?
워낙 제멋대로 움직이는 놈이라 약간의 불신이 생겼지만 일단은 넣어 두기로 했다.
지금은 누구라도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으니.
“그럼 가자고.”
[제3영역의 관리자 권한을 사용합니다.]
권한을 이용해 팀원들이 위치를 파악했다.
이미 이상옥과 만나 적들과 교전하는 중이었다.
길드원 한 명이 신호탄을 쐈으니 위치는 발각된 상황.
필드를 뒤엎고 몬스터를 조종해 시간을 벌고는 있지만 임시방편일 뿐, 서둘러야 한다.
-파악!
난 말 없이 발을 박찼고, 오지혁 역시 나를 따라왔다.
확실히 강한 놈이라 그런지 이동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없다.
대략 20분의 시간이 지나고 나와 오지혁은 팀원들이 있는 곳에 진입할 수 있었다.
고함이 들리고, 늪지대 특유의 악취와 피 냄새가 섞인 기묘한 향이 올라온다.
사람을 돌아버리게 하는 음침한 분위기 속 사람들이 무기를 맞대고 있었다.
“이블아이 씨!”
“오셨군요!”
후방에서 지원하던 김소담이 나를 발견해 소리쳤고, 적의 시선을 끌며 시간을 벌던 고대진이 반색했다.
저 멀리 길드원을 암살하고 있는 이상옥이 보인다.
한순간 눈이 마주치자 그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아직까지는 팀원 중에 전투 불능에 빠진 사람은 없다.
반면 대형 길드 팀원은 세 명이 쓰러진 상황.
남은 건 7명인가.
나와 오지혁이 합세하면서 우리 편의 수는 9명.
전세 역전이다.
놈들 또한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뒷걸음질 쳤고.
“제, 젠장! 후퇴해!”
“곧 있으면 지원군이 온다! 그때까지 뒤로 빠져!”
“후발대랑 합류해!”
곧 후퇴하기 시작했다.
이것 참, 멋대로 때릴 때는 언제고 불리해지니 빠지냐.
[제3영역의 관리자 권한을 사용합니다.]
-쿠르르릉
내 의지에 따라 필드가 바뀐다.
도망치던 놈들을 옥죄듯 솟아오른 대지.
늪지대가 흘러내리며 놈들을 휩쓸었고.
“이깟 놈들 때문에 내 기회를 놓쳤다는 거지.”
-뿌득
가뜩이나 신경이 곤두서있던 오지혁이 놈들을 무참하게 짓밟았다.
7명에 달하는 인원이었지만 전투로 체력이 빠져 있었고 도망치던 상황이었으니 제대로 된 대응은 불가능.
이상옥 역시 쌓인 게 많았는지 전투에 합류했으며, 고작해야 10분이 지난 시점에 놈들을 모조리 처리할 수 있었다.
괜찮은 성과다.
적의 규모가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
이런 식으로 잘라먹는 게 중요하다.
“후우. 겨우 끝났군.”
손에 묻은 피를 닦아낸 이상옥이 내게 다가왔다.
자잘한 상처가 있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멀쩡한 모습.
“오랜만이다, 이블아이.”
그가 내게 손을 내밀었고.
“살아 있어서 다행이네.”
나도 그의 손을 맞잡았다.
이상옥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20층에서 함께 싸운 적이 있어서 그런가 반갑다.
어쩌면 힘든 상황에서 만나 더 그런 걸지도 모르겠고.
지금 인원만으로는 놈들 전체를 상대하기는 힘들었으니까.
“덕분에 살았다. 은혜를 입었군.”
“은혜는 무슨, 돕고 사는 거지.”
“나는 안 반가워?”
김소담이 슬쩍 끼어든다.
그녀 역시 그때부터 인연이 있었으니.
“반갑지. 싸우느라 반길 여유가 없었다.”
“으으, 여전히 사교성 없어.”
그녀가 이상옥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찌른다.
이상옥이 딱딱한 면이 있기는 하지.
여기 한 명 더 있지만.
“이상옥, 기억난다. 네놈도 살생부에 적혀 있던 놈이지.”
초면에 바로 놈이라 부르는 클라스.
역시 오지혁은 정상이 아니다.
“산군의 개로군. 왜 이런 놈이 같이 있는 거지?”
그대로 맞받아치는 이상옥도 보통은 아니었지만.
미묘하게 닮은 둘의 신경전에 김소담이 풉! 하고 웃음을 내뱉었다.
“아, 미안해요. 둘이 은근히 닮아서… 헙!”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김소담을 째려보는 둘.
에휴. 별수 있나. 내가 나서야지.
“상옥 씨가 참아요. 이 녀석이 사회화가 덜 돼서.”
“죽고 싶나?”
“아, 좀 있어 봐. 앞으로 같이 싸울 팀인데.”
살벌한 소리를 하는 오지혁을 밀어내고 이상옥의 팀을 살폈다.
두 명. 중상까지는 아니지만 상처가 제법 크다.
파우치에서 상급 포션을 꺼내 건넸다.
“고,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치료부터 해야죠. 곧 여기를 떠야 할 텐데.”
이상옥의 팀원들이 회복하는 동안 정보부터 모아 보자.
그래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정할 수 있으니.
난 팀원들을 불러 모았고.
“자, 다들 알아낸 정보부터 공유하죠.”
“산군 길드 소속 팀 하나를 박살 냈지. 최성모가 이끄는 놈들도 타격을 입혔으니 8명은 탈락이다.”
오지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제3영역에 들어오기 전에 한 팀을 없앴다는 거군.
좋은 소식이다. 다음은 이상옥.
“35층에 들어온 20개 팀 중 15개 팀은 대형 길드 소속이다. 근 80명 정도가 적인 거지.”
“그 정보 어디서 얻은 거죠?”
아직 우리도 적들의 전력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옥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33층 때부터 놈들과 부딪치며 정보를 모았다. 팀원 중에 정보 수집에 능한 자가 있기도 했고. 결국 35층에 올라온 후 당하고 말았지만.”
씁쓸하게 웃는 이상옥. 남은 팀원이 두 명밖에 없을 때부터 짐작하기는 했지만 진짜 일을 당했을 줄이야.
숙연해지는 분위기 속 이상옥이 가볍게 손을 쳐 이목을 모았다.
“팀원의 희생을 헛되게 할 수는 없지. 이블아이, 너라면 방법이 있겠지? 길드 놈들을 끝내고 위로 올라갈 방법 말이야.”
난 턱을 쓸어내렸다.
따지고 보면 나도 35층은 처음이다.
대형 길드와의 마찰은 많았지만 이렇게 목숨을 걸고 전면전을 펼친 적도 없고.
그런 내게 답이 있냐고 묻는다면…….
“있긴 하죠.”
뭐.
“정상적인 방법은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