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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150화 (150/740)

150화 그린 스톤

오지혁이 달려들었다.

폭발적인 스피드와 빠른 속도에도 표적을 놓치지 않는 동체 시력, 급변하는 움직임에 대응하는 반사 신경까지.

타고난 신체에 끊임없는 노력. 강해질 때마다 자신의 몸에 적응하는 시간을 반드시 가져왔던 오지혁이었기에 보여 줄 수 있는 몸놀림이었다.

자신의 몸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재능!

“크하악!”

“크흡! 이 자식이!”

한 박자 늦게 공격을 가하는 길드원을 걷어차고, 이어서 바닥을 차 적의 시야를 가린다.

총알같이 안쪽으로 파고들며 미들 킥.

-뻐어억!

강렬한 타격음이 들렸지만 비명은 들리지 않았다.

가격하려 했던 부위는 최성모의 명치.

어느새 방패처럼 바닥에 내리꽂힌 대도가 오지혁의 발차기를 막았다.

그의 미간이 좁아졌다.

양산품이었다면 그대로 깨부쉈을 텐데.

역시 제대로 된 루키는 사용하는 무기도 훌륭한 걸까.

왠지 모를 열등감에 오지혁은 뒷골이 당겼다.

그것은 분노가 되었고 동시에 싸늘한 살의로 변했다.

-쾅! 콰앙!

-카아아악!

사이드로 빠지며 로우 킥, 연달아서 상단 차기.

바닥으로 엎드리시다시피 하며 바닥 쓸기.

얼마나 연습했을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한 공격이었지만.

“쓸 만하군.”

최성모는 담담하게 받아 낼 뿐이었다.

오히려 바닥에 나뒹구는 건 충격에 휩쓸린 길드원들 뿐.

“물러나라.”

이 싸움에 그들이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 걸 간파한 최성모가 팀원들을 뒤로 물렸다.

일종의 자존심이기도 했고, 오지혁에 대한 약간의 연민도 섞여 있었다.

길드 동기. 어느 순간부터 엇갈리기 시작한 인연을 상대로 하는 배려였다.

“네놈은 항상 꼬여 있었지.”

“네가 할 말은 아니지 않나?”

어떻게 보면 둘은 비슷한 사람이었다.

무뚝뚝했고, 정상에 서기를 원했으며, 강함을 추구했다. 이유는 달랐지만 미묘하게 닮은 탓에 긍정적인 경쟁 의식을 가지게 하기도 했고.

“분명 나를 따른다면 정식으로 루키 자리를 준다고도 했을 텐데. 왜 어리석은 선택을 한 거냐.”

최성모가 땅에 박힌 대도를 뽑으며 물었다.

최성모는 순수하게 궁금했다.

탑의 부름을 받기 전, 길드 소속으로 오지혁과 근 1년에 가까운 시간을 같이 보냈다.

오지혁은 결코 본인이 손해 보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즉, 이럴 이유가 없다는 것.

간혹 이상한 부분에 집착하기는 했으나, 그가 산군 길드를 비롯한 대형 길드를 적으로 돌리는 일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글쎄. 그냥 마음에 안 들어서?”

이죽거린 오지혁이 툭툭, 발끝으로 땅을 두드렸다.

긴장하면 나오는 습관. 10층 투기장에서 이블아이를 상대할 때도 이러지는 않았다.

그만큼 심리적인 부분에 있어서 오지혁에게 최성모는 부담스러웠다.

그걸 이겨 내지 못하면 성장이 멈출 거라는 생각도 맴돌았고.

“너나 나나 말을 길게 주고받는 스타일은 아니지.”

-콰악!

신형이 일그러지듯 오지혁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기다렸다는 듯 대도를 휘두르는 최성모.

발과 도가 맞부딪친다.

쩌엉! 쇳소리와 함께 풍압이 터져 나오고, 뒤로 물러나 있던 길드원들이 팔로 눈을 가리며 주춤한다.

단 한 번의 일격이었지만 자신들이 끼어들 레벨이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스킬을 쓰지 않는군.”

“네놈도 마찬가지 아닌가.”

두 사람 모두 순수하게 신체 능력만 가지고 전투를 벌인다는 거였다.

오로지 실력으로 꺾고 싶다는 걸까.

최성모가 미간을 찌푸렸고.

“건방지다.”

[대지를 가르는 일격 (A) Lv.9]

가차 없이 스킬을 사용하며 대도를 내리그었다.

파괴적인 힘의 이동.

방금과는 차원이 다른 위력이 담겨 있었으나.

-끼기기기긱!

어느새 생성된 마나의 실이 최성모의 팔을 조였다.

그 누구도 스킬을 쓰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적절한 타이밍을 노리고 있었을 뿐.

[마나 라인 (B) Lv.10]

-마력으로 실을 생성합니다.

-컨트롤에 따라 길이, 강도를 조절합니다.

-끈적임 등의 특성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 이블아이와의 전투에서도 썼던 스킬.

어느덧 B등급까지 승격시켰으며 그 강도는.

-꾸드드득!

-콰직!

최성모가 착용하고 있는 장비에 충격을 가할 만큼 강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이드로 빠진 오지혁이 크게 몸을 회전했다.

[반월 차기 (A) Lv.4]

날카롭게 놈의 관자놀이에 꽂힌 일격.

동시에 마나 라인이 끊기며 최성모의 몸이 날아갔다.

“티, 팀장님!”

“이런 말도 안 되는!”

길드원들의 경악성.

정작 오지혁은 웃지 않았다. 타격감이 비었다.

분명 제대로 된 데미지가 들어가지 않았다는 거겠지.

어떤 묘기를 부린 건지는 알 수 없으나 놈이 균형을 잃었다는 건 변함없다.

할 수 있을 때 끝을 봐야 한다.

-파앗!

기동력만큼은 누구에게도 꿇리지 않는다.

속도는 곧 파워.

자세를 고치며 일어서려는 최성모의 머리를 향해 오지혁이 스킬을 발동했다.

처음 탑에 올라오고부터 꾸준히 함께한 그것.

[걷어차기 (A) Lv.10]

사람이 낼 수 없는 속도와 날카로움이 그의 발에 실렸고.

최성모의 턱에 직격하려는 순간.

-섬칫!

오지혁은 위기감을 느끼고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발을 차는 힘 그대로 백 덤블링.

말도 안 되는 신체 컨트롤. 묘기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둘의 싸움을 지켜보던 이들은 왜 저러는지 알 수 없었으나 의문은 금방 풀렸다.

그의 발이 바닥에서 떠오르던 그때.

-스각

한줄기 선이 바닥을 훑었으니까.

[발목 수확 (B) Lv.8]

자세가 무너졌을 때, 상대방이 공격에 집중할 때 기습적으로 사용하던 스킬 발목 수확.

보통이라면 자신의 발목이 잘려 나가는 것조차 느끼지 못한 채 당했을 텐데.

씰룩, 최성모의 볼이 꿈틀거렸다.

‘많이 강해졌군.’

최성모는 솔직하게 감탄했다.

강해졌을 거라는 생각은 했다. 그런 놈이니까.

하지만 이건 상식 밖이다.

직감만으로는 결코 피할 수 없었다. 발목 수확은 징조가 없으니.

오지혁도 알고 있다. 그가 공격을 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칭호, 야생의 감각이 발휘됩니다!]

그가 가지고 있던 칭호의 효과 덕분이었다.

범위 공격이 없던 시기, 오지혁은 끊임없이 방황하며 적을 각개격파 할 수밖에 없었다.

필드에서 살아남기 위해 항상 긴장하고 집중하고 집요하게 적을 쫓은 결과 생성된 칭호.

만만치 않다, 동시에 그런 놈에게 맞대응하고 있다는 사실에 오지혁은 입꼬리를 올렸다.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되는구나.”

반면 최성모는 못마땅한 표정이었지만.

카득. 그가 대도를 고쳐잡았다.

너무나 정직한 자세.

오지혁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자세를 낮추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놈이 저런 식으로 공격할 리가 없다.

분명 뭔가 꿍꿍이가……!

“이블아이를 만나면 쓰려 했건만 어쩔 수 없지. 그만 죽어라.”

그 말을 끝으로 최성모가 대도를 그었고.

[파태산도破太山刀 (AAA)]

-산마저 무너트릴 검

-거력이 함께합니다.

-‘거신의 일격 (AA)’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후웅, 바람이 부는 듯하더니 머리 위로 거대한 검이 떨어져 내렸다.

그 길이를 짐작하기 힘들 정도.

피할 곳은 없었다.

말 그대로 태산을 무너트릴 일격.

“이런 씨……”

오지혁이 욕설을 내뱉는 순간.

지축이 흔들렸다.

* * *

늪지대의 포식자 자할탄.

시스템에 의해 5성급에 육박할 정도로 강해진 리자드맨.

나와 팀원들은 놈을 몰아붙였다.

평범한 공격은 박히지도 않을 정도로 단단한 외갑.

움직임을 예측하기 힘든 짐승 같은 움직임.

언제 어떤 식으로 들이닥칠지 모르는 꼬리 공격.

몬스터 주제에 사용하는 수많은 스킬까지.

말 그대로 한 영역의 지배자였고 포식자였으나.

“그르르, 크라악!”

결국에는 잡아냈다.

놈에게는 약점이 있었다.

불을 상당히 꺼린다는 것.

단순히 무서워하는 게 아니었다. 폭발에 휩쓸리고 열기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놈의 움직임에 제약이 생겼고, 말라비틀어진 가죽의 방어력이 한없이 깎였으니까.

상성이 좋았다. 난 마력이 넘쳐났고, 주력 스킬은 폭발이었으며, 나를 보조해 줄 팀원들까지 존재했다.

그 말은 뭐다?

“죽는다는 거지.”

“궤에엑.”

-푸국!

확실하게 놈의 머리에 검을 꽂아 넣었다.

혹시 모르니 한 바퀴 휘저어 뇌를 완전히 파괴하는 것도 잊지 않았고.

이 정도로 했으니 가뜩이나 조그마한 뇌가 쉐이크가 됐을 거다.

[서버 최초, 늪지대의 포식자 자할탄을 처리했습니다!]

[칭호-늪지대의 지배자가 지급됩니다.]

[10,0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35층 한정, 제3영역의 소유권을 얻습니다.]

연달아 떠오르는 알림.

포인트에 칭호라, 짭짤하다.

나만 받은 게 아니다. 팀원 모두가 받았지.

“오오! 칭호라니!”

“늪지대 서식하는 몬스터에 두려움 효과, 버프까지 들어오네요?”

“늪지대 정도면 그래도 좀 흔한 필드니까 위로 올라가도 잘 써먹겠네요.”

“크으! 잡은 보람이 있구만!”

기뻐하는 팀원들을 내버려 둔 채 난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건을 잡았다.

청록색을 띠는 육각형 돌멩이.

[그린 스톤]

-35층, 제3영역의 소유권을 증명하는 물건

-당신은 제3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 수 있습니다.

-영역의 구조를 소폭 조절할 수 있습니다.

-영역 내 존재하는 몬스터를 다룰 수 있습니다.

-자할탄 사냥에 가장 많은 공로를 세운 이에게 귀속됩니다.

-35층을 벗어날 시 소멸합니다.

“오호라.”

이런 게 있는 줄은 몰랐는데.

역시 보스를 잡으면 그만한 보상을 얻는 건가.

슬쩍 다른 보스들도 잡으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지만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는 운이 좋았다. 비교적 약한 놈이기도 했고.

“여러분, 제3영역의 소유권이 들어왔습니다. 이걸 사용하면 세이프 존의 위치도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아, 그런데 이게 귀속템이라 저만 쓸 수 있습니다.”

난 자할탄의 사체에서 내려와 그린 스톤을 흔들었다.

“그런 게 있었어요? 다행이네요!”

“빨리 써 봐요!”

닦달하는 팀원들.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기가 무섭게 긴장감을 느끼고 있을 거다.

언제 대형 길드 팀이 들어올지 모르니까.

그럼 한번 써 보실까.

난 그린 스톤을 잡은 채 집중했고.

[제3영역을 관리합니다.]

메시지와 함께 시야가 넓어졌다.

공감각적인 자극.

늪지대로 이루어져 있는 제3영역의 모습이 펼쳐진다.

단순히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어디에 어떤 몬스터가 있는지, 구조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 직관적으로 깨닫기까지.

난 세이프 존을 살폈고.

“3개 있군요.”

곧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다.

이곳과 거리가 좀 멀기는 하지만 못 갈 정도는 아니다.

중간에 다른 영역과 마주치는 곳이 있으니 조심은 해야겠지만.

이걸로 세이픈 존은 됐고, 남은 건 영역에 들어온 사람들.

분명 아티팩트로 들었을 때는 최소 두 팀이 들어오는 것 같았는데.

난 영역 구석구석을 살폈고.

“어, 잠깐만.”

예상치 못한 상황에 얼굴을 구겼다.

먼저 반가운 얼굴이 있다는 것에 놀랐고, 예상보다 많은 팀이 이곳으로 진입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상옥 씨도 35층에 올라왔네요.”

“맞아요! 상옥 씨가 저보다 먼저 올라갔거든요. 33층에서 간신히 살아서 위로 올라갔다고 들었어요. 이후에 연락이 안 됐는데 다행이네요.”

내 말에 김소담이 반색한다.

나와 김소담, 이상옥 셋은 20층 디펜스 이벤트에서 함께 싸운 전적이 있다.

생각해 보면 내가 30층에 올라왔을 때도 이상옥은 이미 팀을 꾸린 상태였지.

난 그의 모습을 확대했다.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상처를 입었고, 팀원을 잃었는지 그의 주변에는 두 명밖에 없었다.

그런 이상옥을 쫓는 건 다성 길드 마크를 달고 있는 이들. 숫자로 보아하니 팀 2개가 따라붙은 것 같다.

-우우웅

이어 시야를 바꾸었다. 제3영역에 침입자는 이들뿐만이 아니다.

산군 길드 소속 팀 하나와 이클립스 소속 팀 두 개가 안으로 들어와 있었으며.

“…오지혁?”

다른 곳에서는 오지혁이 한 남자와 싸우고 있었다.

산군 마크를 단 이들이 뒤로 물러서 있었고, 오지혁과 그들의 팀장으로 보이는 이가 공격을 주고받는 중이었다.

오지혁을 맞상대할 수 있는 자가 일반 길드원일 리는 없고.

“산군의 루키.”

난 그가 오지혁이 말했던 루키, 최성모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접전을 벌이는 둘. 확실히 강하다.

오지혁도 대단했지만 최성모 역시 보통이 아니다. 이대로라면 인원수가 많은 최성모가 유리…….

잠깐만.

“저게 뭐야!”

둘의 싸움을 보던 난 소리를 질렀다.

서로 치고받으며 싸우던 것도 잠시.

최성모가 대도를 휘두르자 하늘 위에서 거대한 검이 떨어졌으니까.

목적지는 오지혁.

저대로 떨어지면 죽을 게 분명하다.

-우우우웅!

[제3영역을 조정합니다!]

난 곧장 관리자의 권한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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