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제3영역
생존율 65퍼센트의 영역.
늪지대의 포식자 자할탄.
생긴 것만 보면 덩치가 이상하게 큰 리자드맨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크르롸라락!”
-콰아아아앙!
거대한 덩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력.
덩치와는 맞지 않는 스피드와 늪지대라는 환경 조건을 무시하며 이동하는 종족 특성은 커다란 위협이었고.
-푸구국!
“모습을 숨겼어요!”
“조심하세요! 어디서 나올지 모릅니다!”
과연 늪지대에서 왕 노릇을 한다는 건지, 늪 속으로 몸을 숨겼다가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튀어나오기까지 했다.
놈이 모습을 숨겼다. 우리는 긴장했다.
어디로 나올까, 혹시 도망간 건 아닐까?
그럴 일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괜한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그만큼 강적이다.
“서균 씨, 좀 괜찮아요?”
“버틸 만합니다.”
최영미가 김서균을 챙겼다.
기습적으로 덤벼든 놈을 막았다가 수 미터를 날아간 만큼 데미지가 있을 거다.
방패가 우그러들었으니, 방패를 받치고 있던 팔 또한 멀쩡할 리가 없었다.
만약 34층을 겪으며 스펙을 올리지 않았다면 어딘가 부러졌겠지.
주먹을 쥐었다 펴는 걸 보니 움직이는 건 문제없어 보였다.
그보다 저 방패 더는 못 쓸 것 같은데.
-철퍽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김서균이 늪에 방패를 버리고 아공간 스틱에서 새로운 방패를 꺼냈다.
이전에 쓰던 것보다 좀 더 큰 사이즈.
권능으로 살피니 AA등급 장비다.
“그나마 장비에 여유가 있어서 다행이군요.”
“이블아이 씨를 믿고 베팅에 참가하길 잘했어요.”
다른 팀원들도 여기저기 망가진 장비를 교체했다.
내구도가 닳은 걸 들고 전투를 벌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팀원들이 재정비를 하는 동안은 내가 이들을 지켜야 한다.
아직까지는 다친 곳도 없고 장비도 멀쩡하니.
이걸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화르륵
내 주력은 폭발.
늪지대에 사는 놈이어서 그런가 나를 꺼리는 경향이 있는 거 같다.
맨 처음 마주했을 때 폭발에 직격당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지만.
-구구구구
발밑으로 진동이 느껴진다.
우리를 덮치기 위해 장소를 물색하고 있는 거겠지.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있던 건 아니다. 우리도 가능한 모든 방법을 이용해 놈을 공격했으니까.
“모두 잘 들어요. 다들 알겠지만 자할탄은 평범한 리자드맨이 아니에요. 아무래도 35층의 보스로 탄생한 괴물인 것 같습니다.”
내 말에 고대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몬스터에 대한 지식이 많은 인물.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아는 눈치였다.
“기본적인 움직임이나 패턴은 리자드맨이랑 비슷하네요. 다만 신체 능력이 말도 안 되게 강하고, 방호력도 미쳤어요. 특이한 스킬을 쓰는 것 같기는 한데 놈도 제대로 활용 못 하는 거 같아요.”
“맞습니다. 놈은 강제적으로 보스가 됐을 가능성이 커요.”
마치 짐작한 것처럼 답했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내게는 권능이 있었고, 나는 놈의 정보를 꿰뚫어 봤으니까.
[자할탄]
-35층, 제3영역의 보스
-늪지대의 포식자
-시스템에 의해 5성급 수준으로 강화되었습니다.
-보유 스킬: 포식 (B), 철갑외피 (B), 엄습하는 위협 (A)…….
몬스터 주제에 스킬도 다양하다.
시스템적으로 강화된 탓이겠지.
그래도 한 가지 좋은 소식이 있다면.
‘스킬 정보를 읽을 수 있어.’
그동안 권능을 사용하면 알아낸 사실이 있다.
나와 격차가 많이 날수록 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적다는 것.
혹은 동급 이상의 권능을 지닌 자의 경우 정보가 제한된다는 것.
NPC가 그러했고, 10층 투기장에서 마주쳤던 탈모맨이 그러했다.
반면 6층 안전지대에서 오지혁과 싸웠을 때는 스킬 정보를 읽을 수 있었지.
그 말인즉슨.
‘자할탄, 잘하면 잡을 수 있겠는데.’
어느덧 5성급에 육박하는 놈을 상대할 정도로 성장했다는 거다.
흘낏 팀원들을 살폈다.
이미 30층에 오를 때부터 3성급 괴물을 사냥할 수 있던 사람들이다.
4성급도 혼자면 힘들겠지만 힘을 합치면 잡을 수 있을 정도고.
그렇다면 5성급은 어떨까.
내가 메인으로 나서고 팀원들이 보조해 준다면 필드 보스를 사냥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은데…….
‘예전에 화갑룡을 봤을 때는 피하라는 조언이 있었지.’
사실상 잡을 수 없는 놈을 가져다 놓은 거였으니까.
생각해 보면 35층에 대한 메시지에서도 필드 보스를 잡지 말라는 내용은 없었다.
어쩌면 이게 해결책 아닐까?
보통이라면 피하기 바쁠 보스를 꺾으면 그만한 보상이나 혜택이 있다던가.
도전하고 승리하라, 그만한 보상이 뒤따를 테니.
탑을 오르며 느낀 감상이다.
새로움을 추구하고,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던 것을 살피며, 거대한 위협에서 극복하는 것.
그로 인해 더욱 강해지는 것이야말로 탑이 우리에게 바라는 게 아닐까.
하자.
보스몹을 잡아 보자.
난 각오를 다졌고.
“여러분들, 우리 보스몹 잡아 볼까요?”
재정비를 마친 팀원들에게 동의를 구했다.
30층대는 팀플레이. 나 혼자서 움직일 수는 없었으니까.
난 빠르게 말을 이었다.
“강요는 아닙니다. 상황이 안 좋은 것도 알고요. 폭음이 일어났으니 대형 길드도 우리 위치를 알아차렸을 겁니다. 시간이 지체되면 놈들이 올 수도 있겠죠.”
한 영역의 보스를 잡는 건 단순한 일이 아니다.
특히나 지금처럼 외부의 적까지 존재하는 상황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놈과 싸우는 건 오히려 전력을 갉아먹는 걸 수도 있습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자할탄을 잡으면 그에 상응하는 뭔가가 있을 거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짐작에 불과했으니까. 만약 했는데 아무것도 얻은 게 없다면 우리는 피해만 보게 된다.
그 과정에서 팀원이 다치거나 죽기라도 한다면 최악이고.
그럼에도 내가 이러고 싶은 이유는…….
“이대로 도망칠 수도 있겠죠. 놈이 곱게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이미 위치는 발각되었고 세이프 존은 찾지도 못했습니다. 마찰은 불가피해요.”
이미 적들과의 교전은 예정되어 있었으며, 이곳에서 물러선다 하더라도 자할탄이 추격해 오면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맞서 싸우는 거나 도망치거나 결과는 비슷하다는 말.
사실 도망친다 하더라도 어디로 가야 영역 밖으로 나갈 수 있는지도 모르고, 운 좋게 밖으로 나갔다 한들 그곳이 또 다른 보스의 영역이 아니라는 보장도 없다.
65퍼센트 생존율인 영역을 나가 생존율 30퍼센트인 영역에 들어섰다?
어떻게 될지 궁금하지도 않다.
그럴 바에야 혹시 모를 가능성이라도 물고 늘어지는 게 낫지.
난 빠르지만 분명한 발음으로 설명을 마쳤고.
“어렵군요.”
“쉬운 결정이 하나도 없네요.”
“후우. 어차피 이대로 있어 봤자 포위만 되겠죠?”
“그럴걸요. 놈들이 오면 도와주진 않을 테니까. 멀찍이 떨어져서 우리가 지치기만 기다릴 겁니다.”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던 팀원들이 선택을 내렸다.
“합시다. 다른 방법이 없네요.”
“어느 쪽이든 위험하다면 그나마 보상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 쪽을 고르겠습니다.”
“이블아이 씨도 고민했을 거잖아요.”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 준다.
좋다. 아직 대형 길드 팀이 오지 않은 상황.
하려면 빠르게 끝내야 한다.
-터엉
김소담이 인벤토리에서 쇳덩이를 꺼냈고, 최영미가 석궁을 견착했다.
김서균 역시 방패를 앞으로 내밀며 검을 들었고, 고대진 역시 나이프와 검을 쥔 상태로 주변을 경계했다.
가장 앞에 선 건 나.
포지션을 바꾼다. 메인 딜러의 자리로.
-쿠구구궁!
지축이 흔들린다.
놈이 온다.
“갑시다.”
* * *
35층 필드.
홀로 떨어진 오지혁은 장비를 점검했다.
34층 베팅을 통해 스펙 업을 한 건 이블아이 팀만이 아니었다.
그 역시 상당한 수준으로 스펙을 올릴 수 있었고.
“후우, 짜증 나는군.”
35층에 올라온 것과 동시에 마주친 대형 길드 팀 하나를 전멸시켰다.
전투의 흔적이 역력한 곳.
길드원들은 사망 처리되어 사라졌지만 그들이 남긴 물건들은 남아 있었다. 대부분 부러지고 망가져 바닥에 나뒹굴던 것이지만.
근처에 박힌 도끼를 집은 오지혁이 혀를 찼다.
“쓸데없이 눈만 높아졌어.”
A등급의 도끼였으나 그의 눈에는 차지 않았다.
세미 루키가 되며 받은 지원과 이번에 얻은 온갖 장비.
하나같이 대단한 것들이었으니까.
이미 그가 착용하고 있는 장비와 아티팩트는 모두 A등급 이상.
스킬까지 추가로 습득했으니 34층 때와는 차원이 다르게 강해진 게 분명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멀리, 폭음이 이어지고 있다.
보나 마나 이블아이의 짓일 터. 그렇게 생각한 오지혁이 발을 박찼다.
분명 그곳으로 대형 길드 팀이 움직이고 있을 거다.
어쩌면 산군 길드의 루키 최성모가 있을지도 모르고.
그에게 있어 최성모의 존재는 꺾어야 할 벽이었다.
같은 기수로 산군 길드에 입단.
똑같은 훈련과 교육을 받으며 지낸 기간이 6개월.
그때까지만 해도 경쟁자로, 동기로 살았지만.
“많이 바뀌었지, 너나 나나.”
길드에 소속된 지 8개월이 되던 시점, 최성모는 길드장의 눈에 들어 루키가 되었고 오지혁은 평범한 길드원 중 하나로 남았다.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 오지혁은 알 수 없었다.
길드장만이 알겠지.
위치는 바뀌었고, 최성모는 오지혁보다 빠르게 탑의 부름을 받았다.
이후 오지혁도 탑에 들어섰지만.
-넌 6층의 처리관을 맡아라.
-그게 네게 어울린다. 살인 경험이 있으니까.
-위로 올라올 수 있을까, 네가 과연?
가뜩이나 삭막하던 최성모의 성격은 더욱 말라비틀어져 있었고, 더 이상 동기가 아닌 길드원과 루키의 관계가 된 이후였다.
오지혁은 특별 대우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런 걸 바랄 성격도 아니었고, 원하지도 않았으니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처리관. 다른 길드원이라면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거였으니.
다만.
“살인자라.”
놈이 내뱉은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격변 초기. 인권이 바닥을 치던 시절의 일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말한 적이 없다. 그렇기에 그는 다른 이에게 있어 살인자일 뿐이었다.
하지만 오지혁은 변명할 생각도, 포장할 생각도 없었다.
어쩌면 그때부터 삐뚤어진 걸지도 모른다.
“쯧.”
놈과의 만남이 코앞이라 그런가. 옛 생각을 많이 했다고 느낀 오지혁이 혀를 차며 속도를 높였다.
[제3영역에 들어섭니다.]
이미 늪지대에 들어섰다.
폭음이 더욱 선명해지고, 희미하지만 병장기 소리도 들린다.
아직까지 다른 대형 길드 팀은 도착하지 않은 모양.
만약 그들까지 있었다면 진작에 신호탄이 쏘아졌을 것이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이블아이는 강했다.
34층 시합 때 느꼈다.
객관적인 수치로. 육안으로.
-타앗!
오지혁이 쓰러진 나무를 뛰어넘었다.
이어진 내리막길.
촤아아악!
“흡!”
미끄러지듯 아래로 내려가던 오지혁이 몸을 비틀었다.
-파악!
그가 있던 자리로 꽂히는 작살.
이끼 낀 바위에 선 오지혁이 작살이 날아온 곳을 바라봤다.
무리를 이룬 채 다가오는 놈들.
오지혁의 입꼬리가 한없이 올라갔다.
익숙한 엠블럼.
그리고 참으로 보고 싶던 얼굴.
“최성모.”
산군의 루키가 있었다.
단단히 다문 입술.
어김없이 들려 있는 담배.
짧게 자른 머리카락.
과거의 기억보다 상처가 는 최성모가 싸늘한 눈으로 오지혁을 바라봤다.
“이블아이를 잡으러 왔더니 배신자가 나오는군.”
물고 있던 담배를 뱉은 최성모가 대도를 들어 올렸다.
“몸풀기로는 적당하겠지.”
“난 이미 풀고 왔는데.”
날카롭게 찔러 들어오는 기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지혁은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내 바닥에 던졌다.
그 정체를 확인한 최성모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곳에 올라와 가장 먼저 처리한 팀.
“너도 곧 저렇게 될 거다.”
그건 산군 길드의 팀이었다.
동시에 쏟아져 나오는 패기.
오지혁이 바닥에 던진 산군 길드의 마크들을 밟으며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