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35층
뿔피리 소리를 들으며 35층 대기실에 도착했다.
킬더레스는 괜찮을까. 살짝 미안한 감정도 들기는 했지만…….
“알아서 잘하겠지.”
“그에에.”
신경을 끄기로 했다.
다른 NPC도 아니고 킬더레슨데 어련할까.
적어도 다치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다.
플레타 본인도 싸워 이길 거라 장담할 수 없다고도 했고.
지금은 35층을 대비하는 시간을 가지는 게 더 중요하다.
“이번에는 대기 시간이 좀 있네요?”
김소담의 말대로다.
우리에게 주어진 대기 시간은 16시간 정도.
정확한 건 아니다. 경쟁 상대가 잡히면 대기 시간이 줄어드니까.
그래도 여유가 있다는 건 변함 없다.
“다들 이번에 얻은 물건들 정리하고, 장비 업그레이드합시다. 휴식도 취하고. 35층이 어떤 곳인지 알잖아요.”
“그럼요. 무시무시하다는 대형 길드 루키들이 이끄는 팀과 마주칠 곳인데요.”
익살스럽게 답하는 고대진.
다들 표정을 굳히며 의지를 다진다.
어쩌면 30층대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이 될 테니까.
“어라? 오지혁 씨는 안 보이네요?”
최영미의 말에 팀원들이 주변을 둘러본다.
34층에서 같은 팀으로 묶인 만큼 어쩌면 대기실도 함께 올라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무래도 임시방편으로 엮인 팀은 정식 팀으로 인정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놈은 걱정하지 말고 우리도 준비를 시작하죠.”
“넵. 알겠습니다.”
“어우. 전 먼저 씻고 해야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각자 흩어지기 시작했다.
씻을 사람은 씻고, 배를 채울 사람은 식사하고.
난 보상부터 살피기로 했다.
우리는 베팅에 참가했기에 일반적으로 받는 보상보다 훨씬 많은 걸 얻었다.
사실 받을 게 많아서 어떤 식으로 지급할지 궁금했었는데.
“이런 것도 있었군.”
정답은 의외로 심플했다.
[플레타의 일회성 아공간 스틱 (B)]
-34층의 담당 NPC, 플레타가 배당 상품을 지급할 때 쓰는 물건
-배당된 상품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각 상품은 한번 빼내면 다시 집어넣을 수 없습니다.
-모든 상품을 빼내면 아티팩트가 파괴됩니다.
보상이 들어가 있는 아티팩트를 준 것.
다른 물건을 집어넣을 수도 없고, 한번 빼내면 끝인 물건이었지만 상당히 유용해 보인다.
생긴 건 대충 깎아 낸 나무 막대기처럼 생겼지만…….
뮈, 이건 이 정도로 봐 두고.
“안에 들어 있는 게 진짜지.”
“그헤헤헤헤.”
편하게 바닥에 누운 채로 아공간 스틱을 열었다.
가슴으로 올라온 덕춘이 역시 한껏 기대한 듯이 내용물을 살폈다.
목록을 살필 때마다 손가락이 떨린다.
그만큼 보상이 충격적이었으니까.
“…와, 미쳤다.”
나도 모르게 감탄했다.
베팅이니 뭐니 말하기는 했지만 따지고 보면 NPC들끼리 재미 삼아 한 도박 아니었던가.
물론 진심으로 참가한 경우도 있었지만.
릴카라든가, 벨라라든가.
그래도 그렇지 이건.
[최상급 스킬 박스˟2]
[상급 스킬 박스˟5]
[엘릭서˟2]
[무너진 성역의 깃발 (AA)]
[철갑장鐵甲掌 (A)]
[황홀경초액 (A)]
[432,700포인트]
[발리타의 정수 (B)]
.
.
.
상상 이상으로 굉장했다.
단순히 포인트만 하더라도 40만이 넘었고, 잡다한 장비와 아티팩트, 정체는 잘 모르겠지만 등급이 높은 아이템도 가득했다.
내게 특히 소중한 스킬북과 스킬 박스도 양이 상당했고, 베팅으로 내걸었던 성물도 다시 받았다.
AAA급 장비 하나 건 것치고는 엄청난 성과.
“우와! 우와아아아!”
“이거 꿈인가? 진짜야?”
“마, 말도 안 돼!”
다들 본인 몫으로 들어온 상품을 확인했는지 곳곳에서 기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거의 축제 분위기.
들뜬 팀원들이 얼싸안는 건 덤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나도 동참하고 싶었지만.
“여러분, 이거 한번 꺼내면 다시 못 집어넣습니다. 궁금하다고 막 꺼내면 안 돼요. 당장 쓸 것만 꺼내야 합니다.”
“그, 그렇죠?”
“아, 바닥에 다 깔아 놓고 위에 눕고 싶은데!”
누구 한 명은 정신 줄을 잡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평소에는 진지한 김서균까지 눈을 못 떼고 있다.
팀원들만이 아니다.
“그, 그에에.”
-찰싹
어딜 감히 주인도 안 건드는데 먼저 만지려고.
은근슬쩍 물건을 꺼내려는 덕춘이의 손을 쳐 냈다.
아니, 평소에는 장비에 별 관심도 없던 애가 뭘 꺼내려던 거야.
난 다시금 목록을 살폈고.
“이거였군.”
덕춘이가 홀린 물건을 찾아낼 수 있었다.
[결정 사탕]
-설탕 요정의 날개 가루를 모아 만든 사탕
-극도로 보기 힘든 간식
-전설로 전해 오는 설탕 요정의 신비가 숨겨져 있다고 전해진다.
따로 등급이 없음에도 베팅에 올라올 정도면 보통 희귀한 게 아닌 거 같다.
나한테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이지만.
이건 덕춘이 주자.
난 사탕을 꺼내 덕춘이의 입에 물려 줬고.
“궤, 궤에에에!”
혓바닥으로 사탕을 감싼 덕춘이가 감격에 겨운 울음을 내질렀다.
동시에 녀석의 입과 눈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야, 야, 야! 왜 그래!
당황한 것도 잠시.
덕춘이 머리 위로 알람이 떠올랐다.
[덕춘 (카오스 개구리)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D → C등급]
[카오스의 영향력이 더욱 강해집니다.]
한동안 가만히 있던 덕춘이의 등급이 올랐다.
그 정도로 맛있던 걸까.
아니면 설명에 나와 있던 설탕 요정의 신비 때문인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소식이다.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덩치도 약간 커진 것 같은데.
“아무튼 축하한다, 덕춘아.”
“궤엑!”
난 흐뭇한 표정으로 덕춘이를 내려다봤다.
앞으로 맛있는 거 많이 먹여야겠군.
의도치는 않았지만 덕춘의 스펙 업을 마쳤다. 남은 건 나.
“일단 영약부터 먹어야겠어.”
당장 스펙을 올리는 데 영약만 한 게 없으니까.
종류가 제법 된다. 총 다섯 개.
등급도 A에서 C까지 다양했고.
[현자의 눈물을 섭취했습니다.]
[정신 보호가 활성화됩니다!]
[바닥을 기는 물뱀의 정수를 섭취했습니다.]
[체력이 크게 상승합니다!]
[오래된 영원의 희망 파편을 섭취했습니다.]
[모든 스텟이 반응합니다!]
.
.
.
-꾸득, 꾸드득!
즉각적인 신체 변화가 이루어졌다.
더욱 튼튼하고 질겨진 몸.
시야 또한 넓어졌고, 감각은 예민하게 살아났다.
스텟만 올랐느냐.
[정신 보호 (C) Lv.3]
-정신 공격에 저항합니다.
새로운 스킬이 생성되기까지.
이전에 물리 공격 내성 스킬을 얻었을 때와 같은 패턴이다.
안 그래도 디버프에 대한 대책이 필요했던 상황.
아주 만족스럽다.
다음으로.
“장비를 바꿔야지.”
사실 난 펠라인 세트를 사용하고 있기에 다른 장비가 크게 필요하지는 않다.
하지만 세트 아이템이 없는 왼쪽 팔다리와 기타 보조 장비는 챙길 만하다.
장비류는 잡다한 게 많아서 고르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하나하나 꼼꼼하게 정보를 살핀 후, 2개의 메인 장비와 3개의 보조 장비를 착용했다.
[부서진 드레고네스 판테아 (AA)]
-반파된 갑옷, 드레고네스 판테아의 일부를 수복한 물건
-왼쪽 팔은 가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착용 제한: 힘 +150 이상 (착용 가능합니다.)
-힘 +30
-민첩 +42
-체력 +36
-마력 +24
[차밍 가이 타이즈 (A)]
-매력적인 패턴이 그려진 타이즈!
-당신의 매력을 뽐내 볼까요?
-착용 제한: 남성 (착용 가능합니다.)
-몸이 더 유연해집니다!
-힘 +20
-민첩 +64
-체력 +19
이 두 개가 메인.
[희생의 반지 (B)]
-데미지의 일부를 대신 감당합니다.
-내구도가 다 하면 파괴됩니다.
[정화 스티커 (B)]
-스티커를 부착한 장비 착용 시 오염된 물질을 정화합니다.
[아마겟돈 파편 배지 (A)]
-한 세계를 멸망시킨 운석, 아마겟돈의 미세한 파편이 들어간 배지
-위압감이 서립니다.
-위축된 대상에게 더욱 큰 데미지를 줍니다.
나머지 세 개가 보조 아티팩트다.
이번에 제대로 스펙 업을 했다.
그래.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 대형 길드 루키들을 상대하지.
놈들에겐 길드 차원에서 지원이 들어가니까 온갖 장비와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을 게 분명하다.
“시간이 제법 지났군.”
잠잘 시간도 확보해야 하는데.
턱을 긁적였다. 이번에 얻은 걸 한 번에 정리하는 건 힘들 것 같고.
플레타가 준 보석함은 35층에서의 일이 끝나고 난 뒤에 확인해야 할 것 같다.
35층. 내게는 중요한 곳이다.
대형 길드와의 악연을 끝내는 것도 있지만 그곳에는 프리스트 드루이드가 존재하니까.
세계수 씨앗을 심어야 한다.
여러모로 복잡한 상황.
우선 전투에 집중하자.
릴카의 말에 따르면 35층에 있는 드루이드는 사람한테 악감정이 있다고 했다.
무력적인 마찰이 생길 수도 있다는 말.
결국에는 내가 강해져야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
아이템을 통해 올릴 수 있는 스펙은 모두 올린 상황.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스킬 합성.”
난 모든 스킬 박스를 꺼냈다.
* * *
[대기 시간이 종료됩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컨디션을 회복한 팀원들이 포지션을 잡았다.
대기 시간 종료 알림이 뜨며 시야가 빛으로 뒤덮였다.
익숙한 부유감.
공기의 흐름마저 바뀐다.
이내 눈을 떴을 때.
[35층]
[총 스무 팀이 참가했습니다.]
[세이프 존에 진입하십시오.]
[남은 세이프 존 18개]
광활하게 펼쳐진 공간이 눈앞에 있었다.
숲과 평원, 암석, 호수까지 존재했고,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우오오오오!
필드 끝에 다섯 개의 빛의 기둥이 있다는 것.
처음에는 저곳이 세이프 존인 줄 알았지만.
[35층에는 다섯 개체의 보스가 존재합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보스의 영역이 늘어납니다.]
[보스에 따라 생존율이 다릅니다.]
설명을 듣자니 보스가 차지하는 영역인 것 같았다.
한마디로 35층의 룰은…….
“넓어지는 보스 영역을 피해 세이프 존으로 들어가면 되는 거군요.”
위험을 피해 안전한 곳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얼핏 보면 쉬워 보인다.
세이프 존이라는 게 어떤 모습인지는 알 수 없으나 18개나 있다.
어쩌면 보스의 영역에 있을 수도 있겠지만 필드 자체가 넓으니 평범한 곳에 있을 가능성도 크고.
[각 보스의 위험도가 드러납니다.]
우리는 연달아 떠오르는 알림을 바라봤다.
정보는 곧 힘.
특히나 이런 식으로 특별한 방식이 적용되는 곳에서는 필수적으로 정보를 모아야 한다.
[제1구역]
-웅크린 지하의 괴물, 카르쟌
-생존율 30퍼센트
[제2구역]
-돌산의 은둔자, 데니옴
-생존율 80퍼센트
[제3구역]
-늪지대의 포식자, 자할탄
-생존율 65퍼센트
[제4구역]
-꿈길의 안내자, 호머
-생존율 40퍼센트
찬찬히 알림을 살폈다.
하나같이 살벌하다. 그나마 2구역 보스는 살 만할 것 같지만… 1구역은 피하는 게 좋아 보이고.
남은 건 제5구역의 보스.
난 침을 삼켰고.
[제5구역]
-추방당한 드루이드, 펜그릴
-생존율 1퍼센트
“망했네.”
내가 찾던 드루이드가 놈인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만 해도 심난하건만.
-치직, 치지지직
문제가 하나 더 생겼다.
소리의 근원은 오지혁한테 받았던 통신 아티팩트.
대형 길드 팀의 팀장들에게 뿌려진 물건이었고.
-A23번 팀 35층 도착했습니다.
-B05번 팀도 도착했습니다.
-루키 팀 셋도 올라왔다. 계속 보고하도록.
-오지혁도 35층에 도달했다는 것 같습니다.
-라져.
스피커를 통해 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순히 대화한 거면 상관이 없겠지만.
-이블아이를 비롯한 김소담, 고대진이 있는 팀이 올라왔을 것이라 판단됩니다.
-확인해 보겠다.
-발견 시 곧장 사살하도록.
-라져.
-합류 후 바로 움직인다.
놈들의 말을 들어 보니 곧장 전투를 벌일 것 같았다.
한마디로.
“다들 준비하세요. 시작과 동시에 전투가 펼쳐질 겁니다.”
난리가 날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