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146화 (146/740)

146화 34층 클리어

오로라 빔.

오색 찬란한 에너지를 쏘아내는 스킬로, 강력한 위력도 위력이지만 상당히 화려한 스킬이기도 하다.

보는 사람의 시선을 잡아끌 수밖에 없다는 것.

“우오오!”

“저게 뭐야!”

자극에 굶주린 NPC들이 환호하는 건 당연했다.

비단 그들만이 아니다.

“저런 스킬도 있었어요?”

“나도 처음 보는 거군.”

“와아, 어울리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쁘네요.”

우리 팀원들 역시 감탄사를 내뱉었으며, 경쟁팀까지 입을 벌린 채 눈을 떼지 못했다.

확실히 시선이 끌리기는 한다.

암살용으로 쓰기에는 부적합하지만 한 번에 쓸어버릴 때는 유용한 느낌.

기선 제압이라고 해야 하나.

그건 그거고.

“레벨이 팍팍 오르네.”

직접 전투에서 사용했기 때문일까, 오로라 빔의 레벨이 기대 이상으로 많이 올랐다.

[오로라 빔 (A) Lv.4]

한 번의 전투에서 세 번이나 레벨 업을 하기는 쉽지 않으니까, 그것도 A등급이나 되는 스킬이.

보는 사람도, 나도 즐거웠지만, 공격을 당하는 당사자들은 그러지 못했고.

“크아아아악!”

“으으, 으아아!”

가뜩이나 내가 던진 아이템에 정신이 나가 있던 이들은 무차별하게 쓰러졌다.

아름답게 쏘아지는 빛, 그것은 죽음을 부르는 파괴적인 광선이었으며.

동시에 모든 것을 지워 버리는 에너지의 흐름이었다.

-콰가가가!

마지막 빛줄기가 놈들을 휩쓸었다.

생존자는 제로.

남은 거라고는 뒤집힌 땅과 형체를 알 수 없이 녹아 버린 바위와 풀.

적들이 존재했음을 알리는 망가진 아이템이 전부였다.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얗게 질린 채 허공에 떠 있는 플레타.

직접 봤음에도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는지 고개를 흔들고 눈을 감았다가 뜨기까지 한다.

멍한 표정이 고소하기는 했지만 슬슬 마무리해야지.

-짜악

박수를 쳐 그녀의 정신을 깨웠다.

그제야 이를 악물고 나를 바라보는 녀석.

“결과 발표 안 하나?”

난 실실 웃으며 물었고.

“크으윽. 승자, B팀! 6전 4승으로 B팀이 승리했습니다!”

한차례 날개를 퍼덕인 그녀가 34층의 생존자를 알렸다.

동시에 터져 나오는 환호성.

“와아아아아!”

“B팀이 이겼다!”

“잘했어! 잘했다고!”

“대박. 대박이다!”

“너희 나중에 50층 올라오면 나한테 들러! 맛있는 거 해 줄게!”

순수하게 경기에 만족한 이들과 우리 팀에 배팅한 NPC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릴카와 킬더레스 역시 얼싸안으며 좋아했고, 벨라와 알리오스, 페니, 19층과 29층의 지배자 역시 기쁨을 숨기지 않고 주먹을 내질렀다.

반대로 베팅에 실패한 NPC들은 A팀을 죽일 듯이 쏘아봤는데.

“너희 위로 올라오면 두고 보자!”

“이걸 지냐! 어? 이 정도도 못 할 수준이면 나가 죽어!”

“우우우우!”

비난과 조롱, 야유를 퍼부어 댔다.

파리하게 질린 이들.

NPC가 직접 협박을 해 대니 그 기세가 대단하다.

몇몇은 살기에 몸을 부르르 떨기까지.

“하아, 이렇게 끝날 줄이야. 쓰레기들은 꺼지세요.”

골치가 아픈지 이마를 짚은 플레타가 손을 내저었다.

막대한 신성력이 거칠게 요동친다.

묵직하게 응축된 신성력이 적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쏟아졌고.

-퍼억!

-퍽!

A팀 사람들의 몸이 단번에 터져 나갔다.

패배자에게 가하는 처벌이라기에는 과한 모습.

본인의 화풀이를 하는 게 분명하겠지.

[최하위 팀, A팀이 사망합니다.]

[34층 클리어]

이걸로 경기는 끝.

경기장 한가운데 포탈이 생성되었다.

“이블아이 씨!”

“믿고 있었다고요!”

장막이 사라지자 팀원들이 달려와 나를 두드린다.

다들 긴장했던 모양인지 이마에 땀을 흘리고 있었다.

내가 이길 거라고 믿기는 했지만 불안한 건 사실이었을 테니.

난 가볍게 달라붙는 팀원들에게 화답해 줬고.

“이제 보상을 받아 보죠.”

허공에 떠 있는 플레타를 보며 눈을 찡긋거렸다.

그녀의 표정이 썩어 들어가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잠시 입술을 씹던 그녀가 등을 돌렸다.

“경기가 종료되었습니다. 정산이 시작됩니다!”

-파아아앗!

이러나저러나 그녀는 34층의 담당자.

수차례 시합을 진행해 온 프로였고, 그녀의 말에 관객석에 앉아 있던 NPC들이 부산스러워졌다.

우리에게 베팅한 이들은 얼굴이 밝아졌고, 다른 이들은 얼굴을 구겼다.

남은 건 우리.

“여러분도 받아야겠죠.”

플레타가 나와 팀원들을 내려다본다.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지만 눈빛은 싸늘했다.

[B팀 전원 베팅에 참가했습니다.]

[정산 중…….]

녀석이야 뭘 하든 관심 없다.

내가 받아 갈 보상이 뭔지가 중요하지.

정산이 어떤 식으로 될지는 모르겠지만 포인트 말고 다른 걸로 줬으면 좋겠다.

영약도 괜찮고, 아티팩트나 스킬북도 좋다.

귀금속은 딱히 관심 없으니 패스. 트리거 아이템 같은 건 없으려나.

즐거운 기다림.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궤에에에.”

그런 나를 흔드는 덕춘이.

손가락으로 경기장을 가리킨다.

아차.

잠시 잊고 있었다.

“물건들 챙겨야지.”

적팀을 해치우는 데 사용한 뿔피리와 망자의 램프를 아직 회수하지 않았다.

그뿐일까. 플레타의 능력으로 재구성된 경기장에는 온갖 식물이 존재했다.

독초나 마약 같은 것도 있지만, 영약보다는 못하지만 스텟을 올려 주는 과일과 여러모로 유용한 식물도 있다.

“여러분, 정산 끝날 때까지 시간 좀 걸릴 거 같은데 경기장 돌면서 파밍 좀 하죠? 폭발 버섯이나 섬각죽도 괜찮고. 제가 쓸 만한 것들로 알려 줄게요.”

“정말요? 고마워요!”

“그, 그래도 되겠죠? 아까부터 저 NPC가 엄청 째려봐서.”

“일단 챙깁시다. 나중에 뭐라 하면 그때 내려놓죠, 뭐.”

난 팀원들에게 유용한 식물과 과일 등을 알려 줬다. 간단한 설명도 함께.

약간 수고롭기는 했지만 팀 좋다는 게 뭔가.

어차피 팀 단위로 움직이는 만큼, 팀원들의 전력이 증강하는 것은 우리 전체의 힘이 강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당장 35층에 올라가면 대형 길드의 루키들이랑 싸워야 하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더 강해져야 한다.

플레타에게 베팅에 참가하게 해 달라 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각 층에 존재하는 NPC들이 참여한 베팅. 좋은 아이템과 장비를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아닌가.

경기장을 돌며 쓸 만한 것들을 챙기면서 생각을 계속했다.

대형 길드의 루키는 얼마나 강할 것인가.

그나마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은 오지혁.

일단은 녀석도 루키에 준하는 대우를 받았으니 그 정도 실력은 되지 않을까.

‘아니야. 더 강할 거야.’

오지혁 역시 다른 사람들에 비해 강하지만 진짜 루키에 비하면 부족한 부분이 있을 거다.

루키들은 탑에 불려 오기 전부터 길드의 지원을 받고 훈련을 한다.

먼저 탑에 들어간 선배 루키한테 개인적으로 받는 장비와 정보도 있으니 격차는 더 벌어지겠지.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해 봤을 때 루키들의 전투력은…….

“최소 오지혁, 최악의 경우 탈모맨 정도.”

탈모맨은 현재 30층에 머물고 있다.

녀석의 강력함은 10층 때 절실히 느꼈고.

이후 직접 대면한 적은 없지만, 더 강해졌으면 강해졌지 약해졌을 리는 없었다.

커뮤니티를 통해 들려오는 소식만 봐도 상식을 벗어나는 무력을 가지고 있는 거 같은데.

30층 안전지대에서 설치던 대형 길드원 대부분이 그 녀석한테 털렸다.

난 어깨를 으쓱였다.

“별수 있나. 파이팅 해야지.”

“궤엑. 궤엑.”

스텟을 올려 주는 과일과 기타 유용한 것들을 챙긴 후, 적들을 처치하기 위해 던졌던 아이템들을 수거했다.

이어서 시합 때 사용한 아티팩트를 챙겼는데.

“오우. 다 망가졌네.”

상태가 영 별로다.

오로라 빔에 노출되어 반 정도 녹아내리고 뭉개진 모습.

[망가진 망자의 램프]

-망가졌습니다.

-쓰레기로 쓸 수 있습니다.

아예 등급까지 사라진 걸 보니 완전히 못 쓰게 된 모양.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그나마 S등급인 악마를 부르는 뿔피리는 멀쩡했다.

겉에 묻은 흙을 털어 내고 보물 주머니에 넣으려는 그 때.

-사아아악

“어?”

시야가 바뀌었다.

* * *

순백의 공간.

엉망진창이었던 경기장은 어디 가고 평평한 공간에 들어왔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무것도 없다. 팀원도 보이지 않았고, 관람석에 있던 NPC들도 없어졌다.

-파스스스

공간 한쪽이 일그러지더니 플레타가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바로 검을 꺼내 경계했다.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녀석이 수작을 부린 건 확실한 것 같았으니까.

“뭐 하는 짓이지?”

“그에에에.”

덕춘이 역시 몸을 부풀리며 플레타를 노려본다.

정작 플레타는 인상을 찌푸린 채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잠시 저만의 공간으로 불러들인 것뿐입니다. 칼 내려놓으시죠. 할 말이 있어서 부른 거니까.”

-따악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고풍스러운 의자와 테이블이 나타난다.

자리에 앉은 그녀가 턱으로 맞은편 의자를 가리켰다.

무슨 꿍꿍일까. 난 잠시 그녀를 노려봤고.

“할 말이 뭐야. 우리가 잡담이나 나눌 정도로 돈독한 사이는 아닐 텐데?”

팔짱을 끼며 맞은편에 앉았다.

“맞아요, 지금도 당신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 검.”

플레타가 내 허리에 찬 검을 미묘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원래는 내가 쓰던 거죠. 천족의 배반자 플레타, 설마 등반가 중에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왜? 치부라도 되나 보지?”

“치부라기보다는… 비슷하네요. 흑역사니까.”

후우. 그녀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굳이 당신을 부른 건 거래를 하기 위함이에요. 악마를 부르는 뿔피리, 저한테 넘기시죠.”

“이거 S급 아이템인 건 알고 있지?”

“물론입니다. 그걸 사용하면 킬더레스를 불러낼 수 있다는 것까지도요.”

난 눈썹을 올렸다.

알고 있는 아이템이었나.

이야기를 듣자 하니 아무래도 킬더레스한테 볼일이 있는 것 같은데.

“킬더레스를 만나려는 건가. 미안하지만 킬더레스한테 민폐를 끼칠 생각은 없어.”

“글쎄요. 민폐는 내가 아니라 그 악마가 끼쳤는데.”

테이블에 턱을 괸 플레타가 나를 빤히 바라봤다.

“킬더레스와 친분이 나름 있는 것 같은데 내 이야기는 안 했나 보군요.”

피식. 그녀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왤까. 웃고 있는데 굉장히 화가 난 것 같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난 그녀가 말할 때까지 기다렸고, 이내 플레타가 입을 열었다.

“내 전남편이 킬더레스예요.”

“그렇군, 응?”

내가 방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전남편이요?

“왜 그런 눈으로 보죠? 천족이나 악마나 수명이 아주 기니까 평생에 결혼 서너 번쯤은 하는 게 보통이에요. 인간의 상식으로 판단하는 건방진 짓은 하지 마세요.”

“아니, 남이야 결혼을 몇 번 하든 관심 없는데. 킬더레스랑 부부였을 줄은 몰라서 그렇지.”

“됐어요. 그리 좋은 이야기는 아니니까. 그 녀석 때문에 배반자가 됐으니 그리 좋게 끝난 건 아니죠. 당시에는 천마대전이 한창이었으니까.”

천마대전?

뭔가 거창한 게 나온 거 같은데.

잠깐 생각을 해 보자.

킬더레스는 마계의 지배자였고, 플레타는 천계에 속한 천족이었다.

두 진영이 전쟁을 벌이고 있었고, 플레타가 경계를 끊었다면…….

어째서, 어째서 그녀가 배반자가 됐는지는 알 것 같다.

둘 사이에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 좋은 이야기는 아니겠지.

“이 이상은 말해 줄 생각 없어요. 사생활이기도 하고. 그리고 킬더레스는 걱정할 필요 없어요. 진지하게 싸우면 나도 이길 거란 보장이 없는 괴물이니까.”

툭. 자리에서 일어난 플레타가 내게 다가왔다.

“그저 못다 한 대화를 좀 하고 싶어서 그래요.”

“그런 이유면 직접 관람석에 찾아가면 되잖아.”

“관람석은 제 영역이 아니랍니다. 어떻게 다가가도 도망치기 일쑤고, 매정한 악마 같으니.”

짜증이 났는지 그녀가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바쁜 건 피차 마찬가지니 빨리 정하죠? 뿔피리를 준다면 그 대가로 펠라인 세트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 줄 테니까.”

“내가 펠라인 세트를 찾는 건 어떻게 알았지?”

“대놓고 펠라인 세트를 입고 있는데 당연한 거 아니에요? 이상한 데서 맹한 느낌이 있네. 골라요. 거래할 거예요, 말 거예요?”

플레타가 턱을 치켜들며 팔짱을 낀다.

확실하게 정하라는 뜻.

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펠라인 세트 중요하지.

하지만 거래에 응하면 킬더레스가 불편한 자리에 오게 된다.

사람이 정이 있지.

물건에 넋이 빠져서 인연을 등한시할 수는…….

“좋다.”

있지. 당연히 있지.

진작에 이렇게 대화의 장을 마련했어야지.

둘 사이의 일을 둘이 해결하는 게 맞잖아. 암, 그렇고말고.

“…시원해서 좋군요.”

뿔피리를 건네받은 그녀가 작은 보석함을 줬다.

그와 동시에 터져 나오는 빛.

“그 안에 단서가 있습니다. 그럼 꺼지세요, 정산 끝났으니까. 다신 보지 말자고요.”

-파아아앗!

난 어느새 다시 경기장에 돌아왔고.

[정산이 완료되었습니다.]

[34층의 담당 NPC, 플레타의 권한으로 B팀 전원 35층 대기실로 이동합니다.]

[대기시간 - 15:59:59]

플레타에 의해 35층 대기실로 이동됐다.

대기실로 이동되기 직전, 뿔피리 소리를 들은 건 착각이었을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