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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145화 (145/740)

145화 내기, 우리도 하죠

폭음과 빛이 전장을 뒤덮고, 적들이 정신을 못 차리는 시점.

최영미가 마지막 일격을 준비했다.

“와, 저걸 가지고 있네.”

나는 그녀 위로 떠오른 정보를 읽으며 감탄했다.

경기를 끝내기 위해 그녀가 선택한 스킬.

[아케인 발리스타 (A) Lv.8]

-불가사의한 파괴의 에너지를 쏩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헌터, 릭 샤델.

영국의 S급 헌터인 그의 트레이드마크 스킬이 바로 아케인 발리스타다.

설마 같은 스킬을 가지고 있었을 줄이야.

등급은 그 사람이 더 높겠다만, 등급이야 시간이 지나면 올릴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제야 알겠군.”

어째서 그녀가 무리하면서까지 섬각죽을 사용한 건지. 난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아케인 발리스타는 강력한 스킬이다. 대형 몬스터 조차 일격에 박살 낼 정도로.

하지만 한 가지 단점이 있었으니.

-우우우웅!

장전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파괴의 에너지가 발리스타에 깃든다.

불길한 파괴의 힘.

느리지만 확실하게. 응축되던 에너지가 점차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고.

“끄으으으.”

“으으, 제기랄.”

일시적으로 정신 줄을 놓았던 경쟁자들이 눈을 뜨는 타이밍에.

철컥.

아케인 발리스타가 장전되었다.

망설임은 없었다.

최영미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방아쇠를 당겼으니까.

-콰아아아앙!

다시 한번 경기장이 빛으로 휩싸였다.

눈을 가리기 전, 플레타의 얼굴이 구겨지는 걸 본 거 같은데 착각일까.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났다.

“진짜. 할 수 있다니까.”

난 작게 읊조렸다.

느긋하게.

빛이 사라지기를 기다리며 눈을 감았고.

“스, 승자. B팀!”

짜내듯 내뱉는 플레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환호성이 터져 나오는 건 덤이었다.

* * *

최영미의 경기가 끝난 후, 대기 시간이 생겼다.

경기장의 파손도가 심해서 재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

덕분에 우리는 승전보를 올린 그녀를 반길 수 있었다.

“와, 뭐예요? 멋져요!”

“저거 그거 맞지, 아케인 발리스타? 으흑! 나도 태생 A급 공격 스킬 가지고 싶다는 진심이고, 고생했다. 난 믿고 있었다고!”

“최곱니다.”

호들갑을 떠는 김소담.

말이 많은 고대진.

환하게 웃으며 엄지를 세우는 김서균.

“덕분에 한시름 놓았군, 쓸 만했어.”

오지혁이야 삐딱하게 서서 영양가 없는 소리나 해 댔지만 신경 쓰는 이는 없었다.

“헤헤헤. 이게 다 이블아이 씨가 옆에서 조언해 준 덕분이죠.”

겸손하기도 해라.

자연스레 내게 공을 돌리는 그녀를 보며 손을 내저었다.

“영미 씨가 잘한 거죠. 주변에 이용할 수 있는 건 전부 이용하면서, 본인이 가진 스킬을 최대한 활용해서 싸우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 그런가요?”

“당연하죠. 좀 더 자부심을 가지세요.”

난 계속해서 최영미를 칭찬했고.

“그렇다면야. 에헴! 제가 해냈습니다, 여러분! 다섯 명이나 해치웠다고요! 승리를 따냈습니다!”

그동안 쌓인 게 많았는지 최영미는 하늘을 향해 오랫동안 소리를 질렀다.

누군가를 박수를 쳤고, 누군가는 웃으며 같이 소리를 질렀다.

한껏 고조된 분위기.

“이블아이, 네놈이 지면 다 허사다. 뒤져도 이겨라.”

오지혁이 찬물을 끼얹었다.

“우우! 아저씨, 눈치 없죠? 밖에서도 아싸였을 거 같은데.”

고대진이 불만을 토로했지만.

“죽고 싶나?”

“영미가 그랬습니다! 전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밉상이야, 진짜!”

“억!”

바로 꼬리를 내렸다.

최영미에게 등짝을 맞기까지.

뭐, 맞는 말이다.

일단 한시름 놓기는 했는데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내가 져도 죽는 건 똑같으니까.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남은 인원은 16명. 많긴 하네요.”

한 명부터 많으면 다섯 명까지 나왔던 지난 경기와는 다르다.

난 마지막 출전 선수.

적들도 남은 인원 모두가 튀어나올 거다.

생각해 보면 32층에서는 19명을 상대로 싸웠으니 상황이 나은 것도 같지만.

어쩐다.

팔짱을 끼며 전략을 짰다.

놈들의 정확한 전력은 모른다.

원거리 딜러가 몇 명인지, 힐러는 존재하는지, 버퍼나 변수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있는지 등.

[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권능을 사용해 정보를 읽었다.

까득. 이가 갈린다.

플레타 이 녀석, 제일 까다로운 놈들만 남겨 둔 것 같은데.

한 명, 한 명은 나보다 못하지만 전체적으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람만 모아 놨다.

힐러가 한 명. 버프에 특화된 이도 두 명이나 있다.

속박이나 저주 같은 디버프 스킬을 가진 사람도 제법 있고.

저번처럼 미리 함정을 파 두는 건 안 된다.

떡하니 보고 있는데 멍청하게 걸려들 리가 없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가 불리해질 것 같은데.

어떻게 속전속결로 끝낼 방법이…….

“궤에에.”

“음?”

덕춘이가 갑옷을 타고 내려오더니 보물 주머니를 가리킨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뭔가를 표현하는데.

난 진중하게 그 모양을 살폈고.

“나이스 덕춘이! 그렇게 하자!”

“게엑!”

덕춘이의 뜻을 알 수 있었다.

가볍게 하이 파이브.

뚜둑. 손을 풀고 앞으로 나섰다.

마침 경기장 복구를 마친 상황.

못마땅한 표정으로 하늘을 날고 있는 플레타를 바라봤다.

권능이 발휘되며 그녀의 정보가 보인다.

그냥 지나치려 했지만.

“오호라.”

이전에 보지 못한 정보가 하나 추가됐다.

슥, 주변을 바라봤다. 이거 재밌는 일이 생길 수도 있겠는데.

난 입가를 비틀며 플레타에게 턱짓했다.

“얼추 끝났으면 시작하지? 우리 바빠. 위로 올라가야 해서.”

상당히 도발적인 발언.

그녀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사라진다.

주변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오는 건 덤.

NPC는 압도적인 무력을 지닌 존재.

등반자 중에 NPC에게 함부로 하는 이는 없었다.

“정신이 나간 건가.”

“미쳤나 봐.”

“놔둬. 저러다 죽으라지.”

저 멀리 떨어진 A팀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후우웅.

계속해서 하늘을 날고 있던 플레타가 천천히 하강한다.

안 그래도 본인의 계략이 실패로 돌아간 상황.

빡침이 가득한 얼굴을 애써 미소 지으며 그녀가 다가왔다.

“안 그래도 시작하려고 했는데요. 이번 도전자는 실력만큼이나 건방져요? 아주 고깃덩어리로 만들어 주고 싶게.”

“그럼 그쪽도 시스템에 제약을 받을 텐데.”

경기장을 가리켰다.

“사실 지금도 좀 무리하고 있지 않아요?”

내가 까불 수 있는 이유.

그녀가 여기서 더 나서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등반가도 NPC를 건들지 않지만, NPC 역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등반가를 공격하지 않는다.

정당한 사유가 없다면 시스템적인 페널티가 들어오니까.

저 강한 킬더레스마저 두려워하지 않았던가.

10층에서 실수로 면상 펀치 때렸다가 내게 혜택을 주며 항의하지 말아 달라고 했었지.

“편파적인 싸움이었던 건 본인이 잘 알겠지. 항의하면 어떻게 되려나.”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내 눈에는 보인다. 간결했던 그녀의 설명창에 한 줄이 추가됐으니까.

[플레타-NPC]

-34층 담당 NPC

-유쾌한 친구!

-선만 넘지 않으면 누구에게나 친절합니다.

-항의 대상에 포함되기 직전입니다. 강력하게 항의하면 천벌이 내릴지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요.”

플레타가 태연한 척 말했지만 난 씨익, 웃을 뿐이었다.

“지금 한번 해 볼까? 내가 진상 짓 좀 잘하는데.”

“크흠, 이블아이 씨가 항의한다면 저도 하겠습니다.”

“저, 저도! 애초에 이런 시합 말도 안 된다고요.”

“지당한 말입니다. 아, 몰라! 배 째!”

내게 합세하는 팀원들.

역시 팀원들이야. 죽이 척척 맞잖아.

플레타의 주먹이 부르르 떨리는 게 보인다.

한 발 그녀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저쪽 A팀에도 항의하자고, 이번 경기를 무효로 해 달라고 하면 같이해 줄 것 같지 않아?”

자그마치 34층의 도전자 전체가 하는 항의!

이 정도라면 플레타도 쉽게 넘어가지는 못할 터.

“…원하는 게 뭐야.”

그녀가 으르렁거린다.

이제 존대도 안 쓰네. 본색을 드러낸 건가.

난 어깨를 으쓱이며 거리를 벌렸다.

시합을 무효로 하고 위로 올려보내 달라고 할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우리도 좀 해 보자.”

난 그러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이번 시합은 승리할 것이다.

그러니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걸 얻어갈 생각.

“NPC들이 하는 베팅. 우리도 참가시켜 줘.”

한 차례 그녀와의 눈싸움이 벌어졌다.

역시나 등골이 오싹해지는 경험이었지만 잘 버텨 냈고.

“결코 질 거라 생각하지 않는군요. 좋아요. 단, 여러분이 베팅할 수 있는 물건은 하나씩뿐입니다.”

결국 그녀는 동의했다.

팀원들을 돌아봤다.

“모두 가장 좋은 물건 베팅해요, 포인트도 좋고. 이번 기회에 한몫 챙깁시다.”

가장 먼저 내가 물건을 건넸다.

AAA급 성물 홀리 크랩.

“그럼 저도.”

“에라 모르겠다. 이블아이 씨만 믿습니다?”

“으음, 뭘 베팅한다. 이게 좋겠군요.”

“또라이 녀석.”

팀원들과 오지혁도 주섬주섬 물건을 꺼내 플레타에게 건넸다.

[베팅이 추가됩니다.]

-B팀 승리 시 베팅 상품을 배당받습니다.

이걸로 준비는 끝.

무려 NPC들이 내건 베팅 상품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대부분 A팀에 건 거 같으니 배당률도 좋겠지.

“건방진 인간, 뜻대로 대는지 두고 보겠습니다.”

날카롭게 날 쏘아본 플레타가 하늘로 올라갔다.

날개가 달려서 그런가 짹짹거리네. 귀여워 아주.

툭. 가볍게 손을 털며 앞으로 나섰다.

이미 장막은 사라진 상황.

“여섯 번째 시합. 파이트!”

플레타가 손을 내리며 시작을 선언했고.

“빠르게 끝냅시다.”

난 살벌한 분위기를 내뿜는 16명의 적을 향해 쇄도했다.

칼날 같은 풀잎도 내게는 아무런 데미지를 주지 못했다.

레벨이 오른 강체와 물리 공격 내성이 내 몸을 지켜 주었으며.

“흡!”

사람을 유혹하는 꽃은 정신력으로 버텨 냈다.

이따위 꽃으로는 날 막을 수 없지.

왜냐.

“난 더한 것도 버텼거든.”

히죽 웃으며 보물 주머니를 열었다.

덕춘이 덕분에 떠올린 전략.

난 거침없이 물건을 꺼내 놈들 앞에 던졌다.

그건 바로.

[악마를 부르는 뿔피리 (S)]

-악마를 소환해 불멸의 계약을 맺을 수 있습니다.

-불멸은 얻은 자는 악마에게 귀속됩니다.

-상위 악마의 기운이 깃들어 있습니다. 중급 이하의 악마종이 두려움을 느낍니다.

-정신력이 약한 자들을 유혹합니다.

28층 미궁에서 얻은 뿔피리.

무려 S급에 달하는 아티팩트, 그 마성은 대단했고.

“내, 내 거야!”

“저리 꺼져!”

악마의 물건에 홀린 이들이 뿔피리를 차지하기 위해 돌진했다.

아비규환.

팀이고 뭐고, 서로를 밀치며 심한 경우 검까지 휘두른다.

그나마 정신력이 강한 이들은 이상함을 느끼고 주춤했지만 그것도 잠시.

난 두 번째 물건을 던졌다.

[망자의 램프 (AA)]

-귀속 아이템

-인지할 수 없는 경계를 만듭니다.

-경계에 들어온 자들을 봉인하고 끝없이 증식하는 고스트를 생성합니다.

-침입자의 정신이 망가질 때까지 멈추지 않습니다.

놈들의 지척에 떨어진 망자의 램프.

우우웅.

램프에 불이 들어왔고.

[망자의 램프가 침입자에 반응합니다.]

[고스트가 소환됩니다.]

-아아아아아!

-아아아! 아아!

적들은 삽시간에 고스트에게 둘러싸였다.

닿는 것만으로도 온갖 상태 이상과 정신 공격을 받는다.

가뜩이나 뿔피리에 넋이 나간 이들이 버티는 건 불가능.

“으아아아!”

“크하아아악!”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른 이들이 바닥을 구르고 머리를 감쌌으며, 발작적으로 팔다리를 휘저었다.

끔찍한 광경.

아무리 대형 길드원이라고 하지만 가만히 보고 있자니 가슴이 아프다.

인간 된 도리로 어찌 보고만 있을까.

마음 약한 내가 도와줘야지.

난 잠시 그들을 위해 묵념했고.

“잘 가라.”

[오로라 빔 (A) Lv.1]

[오로라 빔 (A) Lv.1]

[오로라 빔 (A) Lv.1]

.

.

.

끊임없이 그들을 향해 빔을 쏘았다.

스킬 레벨을 올리기 위해 아니, 그들의 고통을 빠르게 끝내 주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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