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돌아가다
놈의 몸에서 빛이 번뜩였다. 한 번에 쏟아져 나오는 막대한 양의 에너지 파장!
무려 A등급 최고 레벨을 찍은 스킬이다. 사실상 일회성 스킬이나 다를 바 없었으나 파괴력은 확실하겠지.
“젠장, 덕춘아!”
“궤에엑!”
내 생각을 읽은 덕춘이가 빠르게 보물 주머니를 열어 내가 원하는 물건을 꺼내 줬다.
직접 나설 수는 없지만 간접적으로는 팀원을 도울 수 있다.
[홀리 크랩 (AAA)]
-쿠콰콰!
바닥에서 거대한 집게발이 솟아나 놈을 붙잡았고.
[수호자의 의지 (AA)]
-우우우웅!
간신히 성물의 범위 안에 들어온 팀원들 앞으로 보호막이 생성되었다.
바로 그 순간.
-쩌어어어엉!
놈이 폭사했다.
어마어마한 굉음.
대지가 터져 나가고, 나무가 뜯겨 나간다.
하늘 위로 솟구치는 열기와 먼지구름.
일대가 한순간에 파괴되었고.
[10번 팀이 탈락합니다.]
한 번의 폭발에 그와 함께 있던 팀원들까지 모조리 사망했다.
설마 팀원들의 목숨까지 바쳐서 우리를 죽이려 할 줄이야.
간담이 서늘했다.
보호막은 박살 나기 직전.
구멍이 뚫린 부분으로 뜨거운 열풍이 불어닥쳤다.
만약 홀리 크랩으로 놈을 붙잡지 못했다면 우리도 무사하지는 못했을 거다.
“이, 이게 무슨.”
“미친놈들. 자폭을 할 줄이야.”
“이블아이 씨, 덕분에 살았어요!”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린 김소담이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진짜 이블아이 씨 아니었으면 죽을 뻔했군요. 감사합니다.”
“와아, 그 와중에 이런 걸 하다니. 대단하네요, 진짜로.”
감탄과 고마움.
김서균 역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목숨을 빚졌네요. 대형 길드 놈들 설마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이거. 사방에서 칭찬을 해 대니 낯간지럽다.
작게 헛기침을 하며 손을 내저으려 했지만 포기했다.
“환자기는 하지만 도울 수 있는 건 도와야죠. 그보다 서두르는 게 좋겠어요. 신호탄도 신호탄이지만 폭발이 워낙 세서 위치가 완전히 드러났습니다.”
“그렇죠. 우리를 노릴 겁니다. 이만한 폭발이 일어났으니 치명상을 입었을 거라고 생각할 테니까요.”
약해진 팀을 노리는 건 팀 경쟁에서 기본이다.
이제 남은 시간은 대략 4시간 정도.
안전 구역까지 남은 거리가 제법 된다. 앞으로도 계속 방해를 받는다면 무사히 33층을 클리어하는 건 불가능.
“속도를 올리죠. 좀 불편하겠지만 제가 업겠습니다.”
김서균이 등을 내밀었다.
들것을 사용하는 편이 체력 분배에는 더 좋겠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조금 무리해서라도 빠르게 장소에서 벗어나는 편이 안전했으니까.
“크읍!”
팀원들의 도움을 받아 그의 등에 업혔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손을 묶어 등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했고, 몸통에도 줄을 감았다.
이렇게 있으니 사냥꾼에게 잡힌 멧돼지나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지만 불만은 없었다.
일대일로 나를 마크하는 만큼 김서균의 체력 소모가 엄청나게 늘 테니까.
장비까지 입고 있어서 현재 내 몸무게는 적게 잡아도 100킬로그램이 넘었다.
앓는 소리 하나 없이 일어선 김서균이 턱으로 앞을 가리킨다.
“대진 씨가 앞으로 가고 이동을 최우선으로 합시다. 이블아이 씨, 흔들려도 참아요.”
“알겠습니다.”
-파앗!
대형을 수정한 우리는 앞으로 달렸다.
김서균이 뛸 때마다 몸이 흔들려 헛구역질이 나왔지만 억지로 삼켰다.
나만 고생하는 게 아니니까. 다 같이 힘든 상황에서 약한 소리를 할 만큼 멍청하지는 않다.
“이미 한 팀은 탈락했습니다. 운이 좋다면 다들 마찰 없이 안전 구역으로 갈지도 몰라요.”
최영미의 말에 다들 약간의 희망을 품었다.
안전 구역에 들어갈 수 있는 팀은 최대 아홉 팀.
이미 한 팀이 전멸했으니 무의미한 전투 없이 사이좋게 안전 구역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게 맞는데.
‘대형 길드 놈이 자폭을 했어, 팀원들까지 길동무로 삼아서.’
놈들이 보통 각오를 한 게 아니라는 거다.
정면 대결. 이번 마찰로 모든 것을 끝내겠다는 강한 의지가 보였다.
일이 꼬였다고 생각하는 것도 잠시.
“길이 끊겼습니다.”
빠르게 이동하던 김서균이 멈춰 섰다.
계속해서 이어질 것 같은 길이 사라졌다.
절벽. 뛰어넘을 만한 거리가 아니다. 못해도 1킬로미터는 넘어 보였으니까.
한 가지 다행인 점이라면.
“줄을 타고 가야 하는 것 같죠?”
“그런 것 같네요. 이거 괜찮나 모르겠네요.”
단단한 케이블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
하늘을 날 수 있다면 모를까 지금은 줄을 타는 것 말고는 답이 없었다.
“제가 이블아이 씨를 데리고 먼저 지나가겠습니다. 뒤에서 경계하시다가 따라오세요.”
“좋아요. 힘내세요, 선규 씨.”
생각은 많았지만 행동은 빨랐다.
대체 수단이 없으니 선택지 자체도 없었고.
환자를 업고 있는 김서균이 가장 먼저 줄에 매달렸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케이블.
바람이 불 때마다 심장이 쫄깃해진다.
도대체 얼마나 높은 거야.
흘낏 바닥을 내려다보니 까마득하기만 하다. 뾰족하게 솟아 있는 암석들.
떨어지면 무조건 죽겠지.
김서균이 빠르지는 않지만 꾸준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절반 정도를 넘었을 무렵.
“이블아이 씨.”
“예.”
열심히 손을 내뻗으며 줄을 타던 그가 나를 불렀다.
“사실 전 이블아이 씨가 부럽습니다.”
뜬금없는 고백.
나와 김서균 둘만 있어서일까. 그는 평소에 하지 못했던 말을 내뱉었다.
“쁘띠공듀가 들어오기 전, 저는 이미 10층대를 오르고 있었죠.”
몰랐던 사실이다.
10층대에 있었으면 나보다 몇 기수는 빨랐다는 건데.
잠깐만…….
“10층대였다고요?”
내가 올린 공략이 많지만 그중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게 몇 개 있다.
튜토리얼 구간 공략법. 그리고 7, 8, 9층 성장 구간.
나와 멤버들이 대형 길드원들보다 강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성장 구간을 통해 스텟을 올렸기 때문이다.
김서균은 그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말인데.
“전혀 몰랐습니다. 다른 분이랑 비교해도 스텟이 부족하진 않았던 거 같은데.”
“노력했죠. 스텟 올리려고.”
줄에 매달린 그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
“쁘띠공듀가 공략을 올리고 이후에 등반을 한 이들은 하나같이 강해졌습니다. 이블아이 씨도 그중 한 명이겠죠.”
끼이이익.
흔들리는 케이블을 움켜쥔 그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10층 투기장 이벤트에서, 20층 디펜스 이벤트에서 보여 준 위용은 항상 가슴에 남아 있었습니다. 나도 성장 구간을 제대로 클리어했다면 저렇게 될 수 있었을까, 등반은 내가 더 먼저 시작했는데 어째서 내가 더 모자랄까 같은 많은 생각이 들었죠.”
담담히 말을 뱉는 그의 표정을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진심을 다해 말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처음에 이블아이 씨를 만났을 때는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조금은 질투도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33층에 들어오고 이블아이 씨의 의견에 반대한 것도 그런 마음이 섞여서 그랬던 거 같습니다.”
김서균이 잠시 뒤를 돌아본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기에 우리를 따라 최영미가 줄을 타고 오고 있다.
우리와 같이 반대편으로 넘어가 원거리 사격으로 팀을 지원하기 위함이겠지.
눈이 마주친 둘이 오케이 사인을 보낸다.
아직까지는 적이 나타나지 않은 상황. 서둘러야 한다.
김서균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반대편까지 남은 거리는 이제 약 10미터 정도.
“그러다 이블아이 씨와 팀이 되고 31층과 32층을 클리어했죠. 다른 사람들한테는 말하지 않았지만 전 사람을 잘 안 믿습니다. 원래부터 그랬던 건 아닌데, 탑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의심이 많아져서요.”
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면 팀에서 김서균은 그리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
말을 하더라도 잡담보다는 공략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고.
서슴없이 떠들며 분위기를 올리는 고대진과 최영미, 분위기에 동화되어 윤활유 역할을 해 주는 김소담과는 달랐다.
어떻게 보면 나와 김서균은 동류였다.
나 역시 숨기는 게 많아 허물없이 지내기는 어려웠으니까.
“이해됩니다.”
“탑도 탑이지만 20층에서 크게 덴 적이 있어서 더 그런 거 같습니다.”
그의 말에 짐작 가는 게 하나 떠올랐다.
김서균이 가지고 있는 칭호.
살아남은 희생양.
“저도 디펜스 이벤트를 했었습니다. 사람이 좀 많은 구역이었는데 다들 준비를 많이 안 해 왔어요. 초반에는 좀 버티는 듯하더니 3성급 몬스터가 나타날 때부터는 빠르게 무너지더군요.”
그렇겠지. 지금이야 내 공략을 본 사람들이 많아져 평균적인 수준이 높아졌지만 그 전에 오른 사람들은 아닐 테니까.
처음 3성급을 마주했을 때의 압박감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준다. 나 역시 죽을 뻔했었고.
운이 좋았다. 만약 내게 S급 권능이 없었다면, 히든 피스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몇 번이고 죽었을 테니.
“그때 버려졌습니다. 저를 미끼로 던지고 건물 뒤로 후퇴하더군요.”
뿌득. 김서균이 이를 갈았다.
“결국은 살아남았어요. 칭호도 얻었고, 제 권능과도 시너지를 내서 빠르게 강해질 수 있었습니다. 위기가 기회가 된 셈이지만 뿌리 깊은 불신도 같이 생겼어요.”
“저라도 그럴 것 같네요. 결국에는 뒤통수를 친 거랑 마찬가지잖아요, 자기들 살겠다고.”
“네. 결국에는 개인전. 끊임없는 경쟁과 생존의 연속. 그게 탑의 본질이라 생각했었습니다만…….”
다만?
“이블아이 씨를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블아이 씨는 단 한 번도 팀을 버리지 않았죠. 도저히 답이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는 스스로 희생했습니다. 저처럼 타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요.”
씨익. 입꼬리를 올린 김서균이 나를 바라봤다.
뭐야. 저 끈끈한 눈빛은.
괜히 부담스럽다.
“방금도 그렇죠. 이블아이 씨는 환자임에도 우리를 도우려고 최선을 다했어요. 감명받았습니다.”
턱.
케이블 끝자락에 도달한 김서균이 안간힘을 쓰며 절벽 위로 오른다.
무게가 상당할 텐데도 군말 없이 팔을 움직였고, 이내 나와 김서균은 반대편에 도달할 수 있었다.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내가 누굴 질투하고 부러워했나 웃기기도 했고요. 그런 당신이 따르는 쁘띠공듀는 어떤 사람일까 하는 호기심도 듭니다. 뭐 말이 많았는데.”
툭. 김서균이 나를 묶고 있던 줄을 끊었다.
“당신은 멋진 남자입니다, 이블아이.”
그 멋진 남자가 쁘띠공듀임을 꿈에도 모를 김서균이 나를 부축해서 나무 기둥에 기대어 두었다.
끝 무렵까지 기어 온 최영미를 붙잡아 절벽 위로 끌어 올려 주는 건 덤.
이제 넘어오지 못한 이는 두 명. 고대진과 김소담.
“어, 어?”
막 올라오자마자 반대편을 바라본 최영미가 말을 더듬었다.
나 역시 건너편의 상황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사방에서 나무가 흔들리고 있다.
총 8개의 흐름. 경쟁 팀인 게 분명했다.
고대진과 김소담이 서둘러 케이블을 넘어오려고 했지만 이대로라면 늦는다.
이곳으로 넘어오는 사이에 적들이 줄을 끊으면 그대로 사망할 게 뻔했으니까.
-찰칵!
최영미가 빠르게 석궁을 장전했다.
“빨리 넘어와! 빨리!”
-피슉! 피유우웅!
이어지는 속사.
손이 보이지도 않게 빠른 속도로 장전한 최영미가 적들이 다가오는 경로로 볼트를 날렸다.
이어지는 굉음.
인챈트 한 화살이 폭발했지만 적들의 흐름을 멈출 수는 없었다.
적은 너무 많았고, 인챈트의 숙련도는 낮아 화력이 부족했으니.
“이 멍청이들아, 그냥 넘어오라고!”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깨달은 최영미가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그녀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미 늦었다는 걸. 이대로라면 10분 안에 적들이 도달한다.
케이블을 지나는 데는 적어도 20분의 시간을 필요하고.
김소담과 고대진도 그걸 느꼈는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고는 각자의 무기를 꺼냈다.
결사 항전을 펼치겠다는 의지.
“영미 씨.”
계속해서 비명과 같은 외침을 내뱉는 그녀의 어깨에 김서균이 손을 얹었다.
물기 있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최영미.
김서균이 희미한 입꼬리를 올렸다.
“이블아이 씨를 부탁합니다.”
“예?”
그녀가 반문하기도 전에 그가 검과 방패를 들고 절벽 끝에 섰다.
잠시 멈칫한 김서균이 나를 뒤돌아본다.
“저도 당신처럼 되고 싶군요.”
-타앗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미련 없이 케이블로 뛰어내렸고.
[칭호, 살아남은 희생양이 빛납니다!]
[B급 권능, 결사대가 발휘됩니다.]
[사지를 향한 돌진 (A) Lv.6]
[균형 감각 (C) Lv.4]
[결사 항전 (A) Lv.5]
그림과도 같이 케이블을 밟고 달렸다.
숲을 지나 절벽까지 도달한 적들.
고대진과 김소담이 전투를 벌이는 그때, 김서균이 도착했다.
-띠링
커뮤니티 알람이 울리는 건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