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환자 이송
환자 이송.
그게 33층의 클리어 조건이었다.
“이블아이 씨!”
“뭐, 뭔데!”
내가 쓰러지자 팀원들이 놀라 부축한다.
팀원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마치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감각.
덕춘이 역시 팔짝거리며 날 핥았지만 효과는 없었다.
부상을 입어서 이렇게 된 게 아니다. 시스템적으로 환자로 분류되어 버린 거지.
“크으읍.”
부들거리는 몸을 억지로 비틀었다.
거대한 바위 아래 깔리면 이럴까? 고개를 살짝 움직이는 게 고작이다.
계속해서 노력하면 팔 정도는 움직일 수 있을 거 같은데.
[제한 시간이 지나면 환자는 사망합니다.]
[제한 시간 종료 후, 1시간씩 추가 시간이 부여됩니다.]
[환자 사망 시 다른 팀원이 환자로 지정됩니다.]
[안전 구역에는 최대 아홉 팀이 입장할 수 있습니다.]
저 멀리 빛의 기둥이 보였다. 저곳이 안전 구역. 팀원들은 무력한 나를 데리고 저곳까지 가야 한다.
호흡을 고르며 팀원들을 불렀다.
“놀랄 것 없습니다. 지금까지 한 것처럼 하면 돼요. 바로 움직여야 합니다.”
이렇게 지체할 시간이 없다.
조금이라도 빨리 움직여야 안전지대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으니까.
“아, 알았어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들것을 만들어야 하니까.”
김소담이 어디론가 간 사이 허공에 떠오른 알림창을 살폈다.
33층에 대한 간략한 정보가 적혀 있었다.
먼저 33층에 들어온 팀은 열 개. 우리는 2번 팀이다.
이 중 몇 팀이나 대형 길드 소속일지 알 수 없다.
좋은 소식이다. 다른 팀들도 서로를 파악하지 못한다는 뜻이니까.
놈들도 무작정 공격을 감행하지는 않겠지.
‘이번 층은 운이 크게 작용하는군.’
팀마다 핵심 전력이 있다. 우리 팀의 경우는 내가 최고 전력이고.
운이 나빴다. 다른 사람이 환자로 지명됐다면 조금은 더 편하게 클리어할 수 있었을 텐데.
정신 차리자. 결과론적인 이야기는 하등 쓸모가 없으니까.
환자지만 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여기 실어요. 저랑 대진 씨가 듭시다.”
들것을 만들어 온 김소담이 나를 싣는다. 앞에는 김소담이, 뒤에는 고대진이 자리 잡은 후 나를 들었고, 김서균이 정면에, 원거리 딜러인 최영미가 후방으로 빠졌다.
좋은 선택이다. 최영미는 석궁을 사용하니 양손이 자유로워야 한다.
환자가 있는 이상 활동적으로 움직이는 건 불가능하니 정찰의 중요성은 낮아지고.
김소담이야 권능으로 싸우는 만큼 들것을 들고 있어도 큰 문제가 없다.
김서균이야 유일하게 방패를 들고 있는 만큼 우리를 보호해야 했다.
제법 눈썰미가 있다고 해야 하나. 당황할 법도 하건만 김소담은 훌륭하게 재배치를 마쳤다.
“다른 팀들도 우리랑 상황이 비슷할 겁니다. 팀원 수가 적은 곳은 더 심하겠죠.”
그나마 우리는 다섯 명이라 이렇게라도 할 수 있었지 4명이었다면 단번에 전력이 반으로 깎였을 거다.
최소한 한 명은 환자를 커버해야 했으니까. 기동력 및 체력 분배를 위해서라면 두 명이 붙는 게 맞지만. 각자 상황에 맞게 움직이는 게 정답이다.
아직은 경쟁 초반. 두 사람이 환자를 들고 빠르게 목적지로 가는 게 좋았다.
-사사삭
-파앗!
팀원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안전 구역에 들어갈 수 있는 팀은 한정되어 있다. 적어도 한 팀은 탈락.
환자가 사망할 시 다른 팀원이 환자로 된다는 걸 생각하면 탈락 팀은 더 늘어날 수도 있었다.
빠르든 늦든 전투는 피할 수 없다는 말.
“조심하세요. 오히려 이동을 포기하고 다른 팀을 노리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벌써부터 싸움을 걸어오는 팀이 있을까요?”
내 말에 김소담이 의문을 제시한다.
정상적인 상태라면 모르겠지만 33층이라면 가능하다.
“제한 시간은 5시간입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죠, 그것도 환자를 데리고 움직인다고 하면. 게다가 여기는 33층입니다. 31층과 32층 중에 팀원을 잃은 팀도 존재할 거예요.”
이 부분이 중요하다.
팀원 중 일부가 사망해 탈락하더라도, 남은 팀원은 클리어 조건을 채워 위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
다섯 명으로 시작하고 층마다 한 명씩 낙오했다면 33층에 올라온 사람은 고작해야 세 명.
상황이 나쁘다면 두 명이서 33층에 올랐을 수도 있다.
만약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다른 팀을 공격해 전력을 줄일 겁니다. 환자 한 명이 남을 때까지요.”
환자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다.
자연스럽게 홀로 남은 팀은 안전 구역에 도달하지 못하고 탈락.
잔인한 일이었지만 나라도 그런 선택을 할 거다.
결국 남의 팀원보다는 자신의 팀원이 소중하니까.
남들이 올라가는 것보다는 자신이 올라가는 게 중요하니까.
모든 사람이 하하, 호호 웃으며 올라가는 방법 따위는 애초에 막혀 있다.
탑은 그런 곳이다.
뭉칠 수도 있지만 언제까지나 그럴 수는 없는 곳.
힘을 합치는 것과 동시에 등을 돌리는 법을 배워야 하는 곳.
내 설명을 들은 팀원들이 속도를 더 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내 말이 사실이니까.
“그럴 바에 차라리 우리가 먼저 선수를 치는 건 어떻습니까? 아직 전력이 남아 있을 때 공격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까득, 이를 악물고 수풀을 쳐 낸 김서균이 말했다.
매정하다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말도 일리가 있다.
다만.
“우리가 대형 길드와 싸우는 게 아니라면 말이죠.”
현재 우리는 대형 길드와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
33층에 떨어진 대형 길드 팀이 몇이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뭉친다면 환자 이송팀과 전투팀을 따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았다.
머릿수에서 차이가 나니 우리가 분리한 건 분명하고, 어떻게 잘 넘어간다 하더라도 피해는 막심할 거다.
괜히 전투를 벌여 우리의 위치를 들키면 곤란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부상자기에 그런 걸지도 몰랐다.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 전투를 벌이고 싶은 사람은 없으므로.
“그러면 더더욱 먼저 손을 써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들이 뭉치기 전에 전력을 줄여놔야죠.”
반면 김서균은 달랐다.
위험 부담을 가지더라도 확실한 방법을 원했으니까.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으니.
어차피 정답은 없다. 선택하고 선택의 결과를 보고 다시 그에 맞는 선택을 반복해 나가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
다른 팀원들도 고민하는 표정이다.
그러고 보니 30층에 오르고 처음으로 의견이 갈리는 건가.
절충안이 필요할 때, 괜히 어느 한쪽으로 밀고 가 봐야 팀워크만 저해된다.
“그럼 이동을 하다 우리 쪽에서 먼저 적의 위치를 파악하면 결정하도록 하죠. 아직은 서로의 위치를 모르니까요.”
“좋습니다.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으면 공격하고, 힘들다 싶으면 피해 가는 거로 하죠. 그전까지는…….”
-촤악!
김서균이 들것이 걸리지 않도록 세밀하게 나뭇가지를 쳐 냈다.
“이블아이 씨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목적지로 달려갑시다.”
한 손에 쥔 방패를 흔드는 그의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쿨 하고 좋네.
다른 팀원들도 분위기가 나빠지지 않고 부드럽게 넘어간 사실에 안도하는 것 같았다.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가 느끼고 있을 거다.
팀끼리 싸우면 절대 살아남을 수 없음을.
이미 한 차례 힘을 합쳐 위기를 뚫지 않았던가.
그 뒤로 말은 없었다.
가능한 은밀하게 움직이는 게 좋았으니까.
흔들리는 들것에 누운 채 하늘을 바라봤다.
나무 사이로 드러난 청명한 하늘.
팀원들에게서 나는 은은한 땀 냄새와 흙내음.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등반을 하는 건 처음이다.
동시에 안전하다고 느낀 것도.
편하다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미안한 감정도 든다.
확인하자. 환자가 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일단 육체적인 건 안 돼.’
현 상태로는 걷는 것도 불가능. 직접 전투하는 건 꿈도 못 꾼다.
그렇다면 스킬은 어떨까?
난 간신히 손을 들어 파이어를 사용했다.
불의 정수에 불 속성을 가지고 있는 펠라인의 빨간 머리통까지 보조해 줬지만.
-치직, 치이익
불꽃이 조금 일어나다 말뿐, 금세 꺼졌다.
파이어가 이 정도면 다른 공격 스킬은 사용 자체가 불가능하겠지.
혹시나 싶어 버프 다이스도 써 봤지만 발동이 취소됐다.
신성력을 이용한 스킬은 어떨까.
[러브 앤 피스 (A) Lv.1]
주먹에 은은한 빛이 맺힌다.
그나마 신성력 기반 스킬은 좀 낫다지만.
-파스스
오래 유지되지 못하고 신성력이 흩어졌다.
몇 가지 스킬을 쓰면서 내린 결론.
일단 스킬 사용은 불가능하다.
마력이 부족해서? 아니다. 스킬이 발동되는 중간에 시스템이 개입해서 방해한다.
‘마력이랑 신성력 자체는 그대로야.’
한 가지 떠오르는 게 있다.
“소담 씨, 대진 씨, 잠깐만요. 제가 무거워지는지 확인해 주시겠어요?”
“예? 무거워져요?”
“으헉!”
[중량 팔찌 (C)]
아티팩트가 작동하자 일순간 무게가 무거워졌다.
순간 김소담과 고대진이 휘청거렸지만 넘어지지는 않았고.
“고맙습니다.”
“아, 아닙니다.”
“어우, 깜짝이야.”
난 아티팩트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직접 도울 수는 없지만, 간접적인 방법은 쓸 수 있다는 이야기.
아이템은 쓸 수 있다. 같은 이유로 성물도 사용할 수 있을 것이고, 어쩌면 칭호 효과도 발휘할 수 있겠지.
계속해서 이동하는 팀원들을 바라보며 난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확인했고.
“전방에 적 발견! 다들 준비하세요!”
가장 앞에서 움직이던 김서균의 말과 함께 분위기가 돌변했다.
들것을 곧장 내리는 김소담과 고대진.
고대진이 김서균과 합류하고, 최영미와 김소담은 나를 감싸듯 보호한다. 덕춘이 역시 내 배 위에 자리를 잡는다.
삐걱거리는 몸을 비틀어 앞을 바라봤다.
체고가 낮아 자세한 상황을 살피는 건 불가능했지만.
“제길! 벌써 만나다니!”
등에 환자를 업고 움직이던 대형 길드 팀이 앞에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 수가 대략 다섯.
우리와 같은 숫자다.
“서로 좋을 것 없는데 그냥 모른 척 지나가지?”
그들의 팀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양손을 들며 다가왔다.
길드 팀 역시 환자를 내려두고 눈치를 살피는 모양새.
아직 경쟁 초반. 저들도 다른 길드 팀을 만나지는 못했다.
“어쩔까요?”
고대진이 앞을 주시하며 물었고.
“이블아이 씨, 아까 말했죠. 적 만나면 그때 정하자고. 다른 팀이면 모를까 대형 길드 소속이면 여기서 확실히 끝내는 게 맞습니다.”
김서균이 검을 내밀며 자세를 갖췄다.
이미 서로의 위치는 파악된 상황. 이대로 지나친다면 언제 길드 놈들이 뭉쳐 덤벼들지 몰랐다.
“서균 씨, 말대로 가죠.”
난 그의 말에 동의했고.
“빌어먹을! 다들 공격해!”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걸 파악한 대형 길드원이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놈들이 노린 건 바로 나.
-피슝!
화살이 나를 향해 날아왔다.
“어딜!”
김소담이 빠르게 화살을 쳐 냈다. 어느새 인벤토리에서 나온 쇳덩이.
그녀가 권능을 발휘했고.
-위이이잉!
쇳덩이가 분열하며 전투봇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칼날을 돌리며 돌격하는 로봇들.
뒤편에 있던 최영미 역시 석궁을 발사했다.
-콰아아앙!
“크하아악!”
“환자부터 지켜!”
땅에 꽂히는 것과 동시에 폭발이 일어났다.
내가 인챈트해 준 화살을 사용한 모양.
놈들이 움츠리는 사이, 김서균이 방패를 들이밀며 앞으로 달려 나갔고.
“저도 돕습니다!”
고대진 역시 옆으로 돌며 놈들의 진형을 부수기 시작했다.
“환자부터 노려야 합니다! 그래야 전력이 줄어요!”
“알겠습니다!”
내 외침에 고대진이 안으로 파고들었다.
환자가 사망하면 다른 사람이 환자로 지명된다.
누가 먼저 환자를 공략하느냐에 따라 전력이 뒤바뀐다는 이야기.
“으아악!”
옆구리를 깊게 베인 길드원 한 명이 선혈을 내뿜는다.
몬스터가 아닌 사람을 상대로 검을 휘두르는 것.
탑을 오르고 있는 이들에게도 상당한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었고.
“우리만 죽을 줄 알아! 네놈도 다 뒤질 거다!”
악에 받친 길드원이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하늘 위로 뻗은 손.
놈이 방아쇠를 당겼다.
-피유우우웅!
-파아앙!
허공으로 날아간 불꽃이 환한 빛을 터트렸다.
신호탄!
김서균이 검을 휘둘러 놈의 팔을 잘라 냈지만 이미 늦었다.
“곧 이곳으로 향해 길드 팀이 모일 거다!”
눈을 번들거린 녀석이 비명인지 기합인지 모를 소리를 내며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그를 막기 위해 나서는 팀원들.
“다들 뒤로 빠져요!”
난 악을 쓰며 소리를 질렀다.
팀원들은 보지 못하겠지만 내 눈에는 보인다.
[자폭 (A) Lv.10]
-체내에 있는 모든 마력을 가동해 거대한 폭발을 일으킵니다.
-자폭 레벨은 10으로 고정되어 있습니다.
그가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쩌어어엉!
거대한 폭발이 우리를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