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33층
점령지를 차지하고 무사히 32층을 클리어했다.
팀원들이 안전을 위해 주변 경계를 서는 사이, 난 회복에 집중했고 남는 시간에 커뮤니티를 살폈다.
분명 점령지로 가는 타이밍에 알람이 울렸었는데.
알람을 확인한 난 눈썹을 올렸다.
글을 올린 건 탈모맨.
그가 올린 글에는 사진이 하나 있었다.
[니머리 탈모]: 30층 입성!
이 쌍노무시키들! 왜 죄 없는 사람을 핍박하고 그러냐, 대형 길드 놈들아!
계속 설쳐 봐. 내가 맨손으로 갈아 줄라니까.
(사진)
박살 나 버린 산군 길드의 건물과 바닥에 나자빠진 길드원들이 보였다.
산군만이 아니다. 다른 소속 길드원들도 팔다리 어딘가가 꺾인 채 머리를 처박고 있었다.
여전히 쫄쫄이를 입은 탈모맨 근처에는 분홍색 띠를 찬 연합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탈모맨을 도와 길드원들을 처리한 모양.
몇몇 머리 위에는 붉은 글씨로 살인자 칭호가 붙어 있다.
다행히 탈모맨은 살인자 칭호를 받지 않았지만 마찰이 계속되다 보면 어떻게 될지. 부디 무리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나마 대형 길드 사람 중에 살인자가 많아서 다행이네.”
살인자 칭호를 받은 사람을 죽이는 건 페널티를 받지 않으니까.
놈들은 30층에서 부활한 연합 사람들을 공격했다.
처리관 혼자서 모든 이를 처리할 수는 없으니 다른 길드원 역시 일에 가담한 결과였다.
30층 안전지대는 이걸로 한시름 놓았다.
탈모맨의 등장과 부활한 연합 사람들.
단순히 근처에 있었다는 이유로 피해를 본 무소속 헌터들 역시 우리의 편을 들어 주고 있었다.
아무리 대형 길드가 뭉쳐서 통제한다 하더라도 다른 이들 역시 운으로 여기까지 올라온 게 아닌 만큼 제압하는 건 불가능할 거다.
[주모여기]: 대형 길드 이번에 선 씨게 넘었는디?
[파랑새]: 이건 커버 못 치지. 저게 뭔 관리야, 폭거지
[하늘생선]: 하다못해 연합 애들만 공격하면 모르겠는데 주변에 있는 애들도 같이 피해 보잖아.
커뮤니티의 여론도 우리 쪽으로 기울었다.
어떤 대의명분을 내세워도 납득할 수 없었으니까.
아예 몇몇 중소길드는 대형 길드에 반대한다면서 적대적인 포지션을 취하기도 했다.
게다가.
[미니모니]: 새내기들 이번에 많이 올라왔네?
[하성근]: ㅇㅇ 6층에 내 친구 있는데 저번 기수에 비해 3배는 많다는 듯?
[길성혜]: 쁘띠공듀가 올린 공략법이 맞았던 거 아니냐 이 정도면?
[서민경]: 그렇게 생각하면 아다리가 맞지. 공듀가 진짜 공략 올려서 보복한 거.
[세모방패]: 근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고구마맨]: 낸들 아냐. 이유가 있겠지.
무사히 6층을 통과해 7층을 올라온 새내기들이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처음에는 중립을 유지하던 이들도 상황이 이쯤 되니 대형 길드를 의심했고.
[박문지_피닉스]: 대형 길드 전체가 뭉쳐서 탄압하고 있는 거 맞음. 공듀가 올린 공략도 진실이고. 새내기 중에 내 친구도 있었다, 길드 씹새끼들아!
[김도준_파이어 플로]: 내 형도 새내기로 들어왔는데 이번에 죽을 뻔함. ㄹㅇ 개새끼들임. ㅈ 같은 길드 탈퇴하고 만다. 더러운 새끼들. 카악─ 퉷!
자신의 가족, 친구, 연인이 새내기에 포함되어 있던 대형 길드원들의 내부 고발까지 겹쳐지자 분위기는 완전히 뒤집혔다.
해명하라는 글이 커뮤니티를 뒤덮다시피하고, 그동안 쌓였던 게 많은 이들은 원색적인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대형 길드는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이대로만 간다면 사람들의 지지를 얻은 우리가 유리해지겠지만.
“우리가 30층대에서 전멸하면 그걸로 끝이야.”
“그에에.”
이것도 다 우리가 목소리를 내기 때문에 생긴 변화다.
쁘찡 연합 사람들이 전멸해서 탑 밖으로 나가게 되면 어떻게 될까.
지금이야 대형 길드들이 이미지에 타격을 입어 힘이 위축되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다시 원래의 통제력을 가지게 될 거다.
우리의 노력이 허사로 돌아간다는 것.
결국 30층대에 있는 놈들을 모두 물리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뿐만 아니라 30층대를 오르고 있는 이들 모두가 파이팅을 해야 하고.
연합 사람들 역시 개인의 역량을 뛰어넘는 퍼포먼스를 보여 줘야 했다.
전력 증강이 필요하다.
당장은 쉬는 게 먼저지만.
난 팀원들이 안 보이는 틈을 타 포션을 마시고 적당한 사이즈의 바위에 몸을 기댔다.
몸이 회복되는 동안 지난 전투를 점검할 생각.
[시한폭탄 (A) Lv.1]
-폭발 마법진을 설치합니다.
-원하는 타이밍에 폭발시킬 수 있습니다.
이번 전투의 핵심은 이거다.
스킬 합성을 통해 새롭게 얻은 스킬.
보유하고 있던 위협 스킬과 알람 스킬을 합성해 얻은 게 굉음 폭탄 (C). 거기에 중복으로 얻은 파이어 밤 (B)를 합성하자 A급 스킬인 시한폭탄이 생성됐다.
설치형 스킬. 파괴력 자체는 파이어 밤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중복으로 설치할 수 있다는 게 컸다.
어떻게 사용하냐에 따라서 비장의 한 수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주르륵, 스킬 목록을 살피자 입꼬리가 올라갔다.
시한폭탄을 얻으며 A급 스킬이 10개가 됐다.
하나같이 강력한 스킬들.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든든할 지경.
물론 이것들을 전부 승급하려면 돈이 장난 아니게 들겠지만.
“…돈 많이 벌어야겠다.”
많이 벌어도 나가는 건 순식간이니.
왠지 가슴 쓰리다.
작게 한숨을 내쉬고 새로 얻은 호칭도 살폈다.
[폭탄마-칭호]
-여기서 펑! 저기서 펑!
-당신의 폭발은 세계를 놀라게 할 것입니다!
-인성은 터지지 않게 조심하세요.
-모든 폭발형 공격이 강화됩니다.
좋은 효과다. 주력 스킬이 폭발인 만큼 직접적으로 전력이 증가되는 거니까.
오케이. 칭호는 여기까지 보고.
“스킬 합성을 마저 써야지.”
32층에 오르면서 활성화된 스킬 합성.
다시 비활성화되기 전에 뽕을 뽑자.
상점창을 열어 스킬북을 구매했고 ‘카메라 (D)’와 ‘사진 등록 (C)’ 스킬북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작업이 이어졌고, 충분한 물량을 확보한 난 게시글을 올렸다.
[쁘띠공듀]: 여러분☆ 여러분! 제가 돌아왔습니닷!
스킬북을 가지고 말이죠! 성원에 힘입어 2차 재고를 풀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서두르라고요! 늦으면 금세 사라질지도 몰라용. 후후… 이번에는 두 스킬북을 같이 사면 무. 려. 20퍼센트 할인 혜택이!
츄라이! 츄라이!
구매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연락을 보내왔다.
* * *
32층에서 상처를 치유하고 어느 정도 회복을 한 뒤에서야 우리는 포탈을 넘을 준비를 했다.
“다른 팀들은 먼저 올라간 것 같네요.”
점령지에 자리를 잡고 경계를 서던 최영미가 손을 털며 돌아왔다.
그녀의 손에 들린 석궁에는 특별한 화살이 장전되어 있었다.
[속성이 부여된 화살]
-불 속성이 섞여 있습니다.
-폭발과 함께 화상을 입힙니다.
화살 자체는 특별할 게 없는데 스킬을 사용했는지 옵션이 붙어 있다.
따로 빼 둔 화살통에도 비슷한 것들이 보인다. 수는 많지 않았지만 속성의 종류가 다양해서 전략적으로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영미 씨, 화살 좀 줘 보실래요?”
“이거요?”
의문스러운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내게 화살통을 건넨다.
바닥에 화살을 쏟았다.
속성이 붙은 화살을 옆으로 치웠다. 평범한 화살이 총 65개.
“와, 지금 속성 붙은 화살 따로 빼 둔 거예요?”
“제가 눈썰미가 좀 있어서요.”
사실은 권능 덕분이지만. 고개를 돌리고 평범한 화살을 집어 들었다.
그녀에게 선물해 줄 게 있다.
[인챈트 (A) Lv.3]
[파이어 밤을 인챈트 합니다.]
[숙련도가 낮아 등급이 하향됩니다.]
붉은빛과 함께 화살에 파이어 밤이 깃들었다.
정보를 읽은 걸까. 그녀의 눈이 동그래진다.
“올라가기 전에 전력 증강 먼저 하죠. 팀에서 원거리 담당은 영미 씨뿐이잖아요.”
나에게 오로라 빔이 있기는 하지만 워낙 화려해서 한 번 쏠 때마다 위치가 들통난다.
지속적으로 사용하기도 부담스럽고.
최영미는 눈에 띄는 활약을 하지는 않았으나 알게 모르게 지원을 꾸준하게 해 줬다.
견제를 당한 상대들이 주춤하는 것만으로도 앞에서 싸우는 사람들은 숨통이 트였고, 숨어 있는 암살자나 레인저를 먼저 공격함으로써 우리의 안전도 지켜 줬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전체적인 전투력이 좀 낮다는 것.
그녀의 권능과 칭호 덕분에 어느 정도 강력한 힘을 지니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직접 쏴 버리는 스킬보다는 약해서.
이런 식으로 보조 능력을 넣어 줘야 좋을 것 같았다.
“이거 그거 맞죠? 이번 새내기들한테 나눠 준 파이어 밤 돌멩이!”
“맞네! 생각해 보니 파이어 밤 하면 이블아이 씨 아니었나?”
“연합 회장님이 쁘띠공듀 님한테 인챈트 스킬을 줬다고는 했는데, 설마?”
삽시간에 소란스러워지는 팀원들.
난 허허 웃으며 손을 저었다.
“쁘띠공듀한테 부탁받았거든요. 겸사겸사 인챈트도 얻고.”
“아, 하긴 파이어 밤이 파괴력 하나는 좋죠.”
“역시 공듀 님은 다르네요. 저였으면 인챈트 얻자마자 꿀꺽했을 텐데.”
맞습니다. 꿀꺽했습니다.
슬쩍 고대진의 시선을 피했다.
“대충 50발 정도만 인챈트 걸고 위로 올라가죠. 어때요?”
“저희야 좋죠.”
“감사합니다!”
최영미가 밝게 웃으며 발을 구른다. 어지간히도 신난 모양.
“부럽다아. 나도 하나만 슬쩍.”
-찰싹
“가만히 있어라. 혼난다.”
“네에.”
고대진이 다가와 화살을 가져가는 시늉을 하기가 무섭게 최영미가 손등을 친다.
처음 볼 때부터 느꼈는데 둘이 참 잘 논단 말이지.
“혹시 둘이 커플?”
인챈트를 계속하며 넌지시 물었고.
“이블아이 씨, 혹시 싸움 잘하십니까? 옥상으로 따라… 억!”
고대진이 인상을 팍 쓰며 대꾸하다 최영미한테 뒤통수를 맞았다.
최영미의 얼굴이 살짝 붉어진 걸 보아하니 커플은 아니어도 호감 정도는 있는 것 같다.
탑이란 곳이 워낙 폐쇄적이다 보니 등반 중에 눈이 맞는 사람도 많다던데.
왠지 옆구리가 시려진 난 덕춘이를 쓰다듬었다.
안쓰러운 눈빛은 덤.
난 주변에 사람이라도 있지, 덕춘이는 평범한 개구리랑 만날 리도 없으니 평생 솔로…….
-빠악!
“어흑!”
“그에에에.”
알았어. 미안해.
얼얼한 팔뚝을 매만졌다. 손이 점점 매워지는 것 같아.
그래도 뺨을 안 때리네. 투구 쓰고 있어서 그런가.
잡담을 주고받으며 인챈트를 한 지 30분 정도. 드디어 완료했다.
다른 팀원들에게도 뭔가를 해 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마땅한 게 없어서.
나중에 챙겨 주도록 하고 당장은 등반에 집중하자.
“다들 준비됐죠?”
“그럼요. 체력, 컨디션 최곱니다!”
“장비 점검도 끝났고, 마력도 다 채웠어요.”
팀원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33층으로 올라갈 시간이다.
-우우웅
우리는 포탈을 넘었고.
[33층 대기실]
[경쟁팀을 물색합니다.]
[10분 뒤, 33층으로 이동합니다.]
이전에 봤던 것과 똑같은 대기실에 들어왔다.
10분 후 바로 시작이라. 포탈을 넘기 전에 휴식을 취하길 잘했다.
마지막으로 스트레칭을 한 우리는 각자의 무기를 꺼내 포지션을 잡았고.
[대기 시간 종료]
[33층으로 이동합니다.]
-파아앗!
빛과 함께 33층에 떨어졌다.
동시에 떠오른 메시지.
[33층]
[환자를 이끌고 안전 구역으로 이동하라.]
[제한 시간 05:00:00]
-띠리리리링
우리의 머리 위로 화살표가 생성되더니 룰렛처럼 돌아가기 시작했다.
천천히 속도가 줄어드는 화살표.
김서균과 김소담을 지나 화살표가 최영미를 가리키더니.
-띠링
[당신은 환자입니다.]
미미한 차이로 내 쪽에 멈춰 섰다.
힘이 쭉 빠지며 몸이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