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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137화 (137/740)

137화 32층 클리어

아직 몬스터도, 탑도 없었던 과거.

중학생 시절 학교에 가면 컴퓨터실이 있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구석에 박혀 총알 피하기 게임을 했던 추억.

친구들과 매점 쏘기를 걸고 열중했던 그때의 일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왜냐.

-콰앙!

-콰아앙!

“어우, 살벌해라.”

내가 직접 총알 피하기를 하고 있었으니까!

뒤를 흘낏 보자 권능을 통해 놈들이 사용하는 스킬이 떠올랐다.

너무 많아 눈이 어지러울 지경.

매직 미사일 같은 비교적 흔한 스킬이 있는가 하면, 엣지 스윙과 같은 듣도 보도 못한 스킬도 있다.

그럼 직접 공격하는 것만 있느냐? 아니, 움직임을 제한하는 디버프까지 아낌없이 쓰고 있었다.

[저주 내성 (E) Lv.3]

[마법 공격 무효화 (A) Lv.1]

[공격을 무효화합니다!]

패시브 스킬이 발동됐다.

강체와 물리 공격 내성은 진작에 발휘된 지 오래.

고개를 돌려 정면을 향해 달려갔다. 중간중간 파이어 밤을 뿌려 장애물을 만들기도 했으며, 디그를 사용해 땅을 꺼지게도 했다.

다들 폼으로 30층을 올라온 거 아닌지 순발력 있게 피해 냈지만, 앞사람한테 시야가 가린 놈 몇 명은 바닥을 굴렀다.

시간을 살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점령전이 끝나기까지 남은 시간은 1시간.

“젠장! 더럽게 잘 도망가네!”

“계속 쫓습니까? 이제 1시간 남았습니다!”

“저놈 무시하고 다른 곳부터 치죠?”

녀석들도 그 사실을 눈치챘는지 추격전을 주저하고 있었다.

길드원들의 말에, 머리가 깨졌던 대장이 이를 악물었다.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지만 멍청이는 아닌지 서서히 속도를 줄인다.

이러면 곤란한데.

“빌어먹을! 다들 돌아간다! 가서 다른 놈들부터─!”

-퍼어억!

말을 마저 끝내기도 전에 그의 상체가 사라졌다.

놈들을 휩쓰는 형형색색의 빛줄기.

[오로라 빔 (A) Lv.1]

한 번의 공격에 대장을 잃은 놈들이 날 노려본다.

수십 개의 눈에 깃든 증오와 분노. 그 박력에 식은땀이 흘렀지만 애써 여유로운 척 손가락을 까딱였다.

여기서 놈들을 보낼 수는 없다. 아직 내가 파 둔 함정까지 도달하지 못했으니까.

난 다른 놈을 향해 손가락을 겨눴다.

다시 한번 쏟아지는 오로라 빔.

오색찬란한 빛의 물결이 거칠게 길드원을 덮치려 했지만.

-콰창!

-카가가가각!

-차앙!

동시에 사용된 방어막 스킬 다섯 개가 내 일격을 막아 냈다.

역시 두 번은 안 통하는 건가. 무식한 놈들, 방어막 스킬을 다섯 개나 가지고 있다니.

인원수의 무서움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가능하면 전투를 최대한 미루고 싶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적당히 어울려 주는 수밖에.

-파앗

놈들을 향해 돌진했다. 그와 동시에 쏟아지는 디버프.

마법 공격 무효화가 발동하기는 했지만 막아 낸 건 많지 않았다.

[상태 이상에 걸렸습니다.]

[저릿함]

[감각 저하]

[나태]

순식간에 컨디션이 떨어진다.

저릿한 몸뚱이는 말을 듣질 않고, 감각 또한 무뎌져 몸이 무겁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증까지 덮치자 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지만.

[파이어 (E) Lv.2]

-화아악

바닥에 불을 지피며 춤을 추자 칭호 효과가 적용되며 디버프가 약화됐다.

게다가 정신이 드는 것뿐만이 아니다.

“저, 저놈이!”

“우릴 무시하는 거냐!”

놈들을 도발하기까지.

나 같아도 저런 반응일 것 같다.

싸우던 와중에 불을 피우고 춤을 춘다?

미친놈이잖아, 그냥.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어쩔 수 없다.

이왕 눈길을 잡은 거 어그로를 끌어 볼까.

춤 동작이 거세진다.

게다가.

[치명적인 포즈 (E) Lv.1]

-촤아악!

스킬까지 합세하니 놈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핏줄까지 튀어나온 것이 화가 많이 난 모양.

치명적인 포즈는 상대방의 감정을 끌어 올린다.

애꾸 예티가 감동을 받았다면, 저들은 분노를 느꼈고…….

“저 새끼 죽여!”

“우릴 우습게 보고 있어!”

잠시 정신이 나갔던 놈들이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난 슬쩍 뒤를 바라봤다.

대략 20미터 뒤에 내가 파 둔 함정이 있다.

놈들을 상대해 주며 천천히 빠져야 한다. 무작정 도망치면 이상함을 눈치챌 게 뻔했으니까.

“빡세겠네.”

“그에에.”

검을 고쳐 쥐었다.

버프 다이스를 사용한 건 기본.

눈금3. 효과는 집중력 강화.

내 신체와 놈들의 움직임이 더욱 선명해진다.

이어서.

[SS급 권능, 굴하지 않는 검귀가 발휘됩니다.]

-동화율 8.32퍼센트

권능이 발휘되며 검과 연결되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새 8퍼센트까지 차오른 동기화. 난 달려오는 이들을 향해 검을 겨눴고.

-촤아아악!

가장 먼저 덤벼든 놈의 팔을 그었다.

피가 솟구치며 놈이 무기를 떨군다. 바닥을 치고 튀어 오른 도끼를 그대로 걷어찼다.

“끄, 끄억!”

도끼가 부메랑처럼 날아가 다른 길드원의 목에 틀어박힌다.

이걸로 두 명은 전투 불능.

옆으로 파고드는 녀석은.

[일레트릭 쇼크 (A) Lv.1]

-파지지직!

전기 충격을 가해 쓰러트렸다. 몸을 세차게 흔들며 쓰러지는 녀석.

감전된 녀석을 향해 덕춘이가 침을 뱉었다.

빠르게 방어구가 부식되었고, 이어 몸까지 닿았을 때.

“으아아악!”

거센 비명과 함께 발작을 해 댔다.

짧은 순간 3명이 당했다. 놈들이 당황할 법도 했으나.

“스킬은 뒀다 뭐 해, 병신들아!”

누군가의 외침에 다들 이를 악물었다.

이제부터 시작이겠지.

-콰과과곽!

발아래에서 뾰족한 돌이 솟구쳤다.

진동을 느끼자마자 옆으로 회피, 이어 날카로운 바람이 나를 덮쳤지만.

[행운 스텟이 적용됩니다!]

[마법 공격 무효화 (A) Lv.1]

운이 좋게도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으며, 찔러 들어오는 창을 몸을 돌려 피하는 동시에 스킬을 발동했다.

[프로즌 브레이크 (A) Lv.7]

-콰아아앙!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굉음이 울려 퍼졌다.

순식간에 얼어붙은 길드원 두 명이 그대로 사망했을 뿐만 아니라, 사방으로 터진 얼음 조각에 다친 놈들도 많았다.

같은 A급이어도 레벨에 따라 파괴력은 천차만별.

여기까지만 보면 내가 날뛰는 것 같지만.

“크으윽. 잘도 덤볐겠다!”

“다들 마력 확인해! 막 쓰지 말고 한 번에 쓰란 말이야!”

놈들에게는 버퍼와 힐러가 있다.

쓰러졌던 이들이 하나둘 일어선다. 적의가 가득한 것이 무슨 수를 써서든 날 죽이고 싶은 것 같은데.

피차 마찬가지니 뭐라 할 건 아니고.

-카가가각!

“흐읍!”

기습적으로 들어오는 스킬을 받아 냈다.

징조 없이 발휘된 스킬. 거대한 송곳 같은 것이 내 복부를 파고들었다.

[강체 (B) Lv.7]

[물리 공격 내성 (C) Lv.5]

패시브 스킬이 떠올랐다.

그럼에도 둔중한 타격.

그도 그럴 것이.

[파이톤의 송곳 (A) Lv.4]

들어온 공격이 A급에 달했다.

이게 쓸 때는 몰랐는데 당해 보니 알겠다. A급 스킬의 힘을.

펠라인의 노랑 몸통이 우묵하게 들어갔다 다시 복구된다.

위장을 타고 올라오는 핏물을 억지로 삼키는 찰나.

“공격이 들어갔다, 다들 찔러!”

“놈이라고 마력이 무한하지는 않다! 계속 몰아붙여!”

“죽이고 아이템을 빼앗자!”

세 개의 공격 스킬과 네 개의 디버프 스킬이 나를 향해 날아왔다.

[홀리 크랩 (AAA)]

-카아아앙!

거대한 집게발에 가로막힌 공격이 빛이 되어 산란하고, 내 몸 직격한 디버프는 내 상태를 악화시킨다.

[저주 내성 (E) Lv.3]

그중 하나는 저주였는지 막아 낼 수 있었지만.

[상태 이상에 걸렸습니다.]

[졸음]

[시야 제한]

[멀미]

나머지는 막지 못했다.

놈들이 기회라 여겼는지 집게를 무시하고 나를 향해 진격한다.

화살이 날아오고 창이 날아와 몸을 강타했다.

찌릿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다지 아프지는 않았다.

이미 내 몸은 놈들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하니까.

조심해야 할 건 스킬 공격뿐.

놈들도 마력이 여유롭지는 않은지 각자의 무기를 쥐고 휘둘렀다.

-꽈득!

목으로 날아오는 할버드의 자루를 잡았다.

그대로 놈의 복부를 걷어차고 옆으로 굴렀다.

거대한 워해머가 땅에 꽂히기가 무섭게 쇠몽둥이가 안면에 박혔다.

-까앙!

투구를 쓴 덕분에 직접적인 데미지는 없었지만 순간적으로 머리가 돌았다.

디버프만 아니었어도 바로 정신을 차렸을 텐데.

“카아악, 퉤!”

덕춘이가 산성 침과 독침을 뱉어 시간을 끄는 사이, 뒤로 물러났다.

확실히 사람이 많으니까 힘들긴 하네.

‘덕춘아, 옆으로 빠져 있어.’

난 속으로 말했다. 놈들에게 얻어터지며 조금씩 물러나다 보니 어느새 내가 파 둔 함정까지 도달했다.

여기가 중요하다.

“다 들어와.”

난 놈들을 도발했다.

갑옷 사이로 피가 주르륵 흘러내린다. 시야가 일그러지고, 몸에서 힘이 쭉 빠졌지만 약한 척할 수는 없는 노릇.

그런 나를 보며 길드원들이 비릿하게 웃었다.

“다들 마력 얼마나 남았어?”

“한 번 정도는 충분히 쓸 수 있습니다.”

“30층에 연락해. 이블아이 내려간다고.”

“이블아이를 잡은 걸 윗분들이 아시면 우리에게 보상을 주실 거다.”

이미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모습.

고개를 저었다.

왜 다들 승리를 쉽게 점칠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데.

[지옥불의 순례자 (AA)]

-화르륵

양옆으로 신성한 불길이 길게 치솟으며 놈들과 나를 잇는 길이 생겨났다.

어서 들어오라고. 네놈들이 갈 수 있는 길은 내가 있는 쪽밖에 없다고.

“돌격!”

“우아아아!”

놈들 역시 결판을 지을 생각인지 나를 향해 돌격했다.

열댓 명의 헌터가 살의를 가지고 뛰어오는 모습은 흉악하기 그지없었지만.

“너희는 그러면 안 됐어.”

내게는 불길로 뛰어드는 나방으로 보일 뿐이었다.

놈들과의 거리는 이제 10미터.

헌터 입장에서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고.

가장 먼저 내게 검을 내민 녀석의 얼굴이 명확하게 보일 때쯤.

[수호자의 의지 (AA)]

난 성물을 사용했다.

나와 길드원들을 감싼 보호막.

원래라면 보호용으로 쓰겠지만 이런 식으로 쓰면.

“감옥에 들어온 걸 환영한다.”

놈들을 가두는 역할을 할 수 있었고.

[파이어 밤 (A) Lv.7]

[파이어 밤 (A) Lv.7]

[파이어 밤 (A) Lv.7]

.

.

.

그대로 폭발을 일으켰다.

결계 안을 가득 채우는 불길.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이걸로 끝낼 거였다면 끌어들이지도 않았다.

스킬 합성을 얻은 새로운 스킬.

[시한폭탄 (A) Lv.1]

봉인된 공간 속, 바닥에 수십 개의 마법진이 붉은빛을 띠며 드러났다.

진정한 포문을 여는 건 지금부터.

[되갚기 (A) Lv.6]

[안개 질주 (A) Lv.1]

-쿠아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을 시작으로 시한폭탄이 연달아 터져 나갔다.

비명을 지를 순간도 없었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홍염.

바닥이 터져 나가며 쏟아지는 공간은 죽음과 같았으며.

-쩌적! 쩌저저적!

-콰아앙!

결국 압력을 버티지 못한 보호막이 깨졌을 때는.

-구구구구

필드의 일부가 사라져 있었다.

[안개화가 종료됩니다.]

털썩.

마력과 신성력이 거덜 난 난 자리에 주저앉았다.

사람의 흔적은 없었다. 달궈진 대지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가득하던 나무는 숯덩이가 된 지 오래.

언덕과 같았던 지형은 거대한 크레이터가 되었고, 하늘에는 까만 재가 가득했다.

나풀거리며 떨어지는 보호막의 파편.

[1번 팀이 탈락합니다.]

[3번 팀이 탈락합니다.]

[7번 팀이 탈락합니다.]

.

.

.

까만 하늘을 배경 삼아 메시지가 연달아 떠올랐다.

총 여섯 개 팀.

전멸.

“이겼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낄 때, 멀리 떨어져 있던 덕춘이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녀석의 등을 쓰다듬으며 계속해서 하늘을 바라봤다.

아직 메시지는 끝나지 않았다.

[홀로 경쟁팀 절반을 몰살시켰습니다!]

[강력한 폭발!]

[칭호, 폭탄마를 획득합니다.]

[압도적인 강함!]

[10,0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필드에 존재하는 모든 이가 당신에게 경탄합니다.]

[칭호, 잊힌 교단의 팔라딘 효과.]

[신성력이 증가합니다!]

난 지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놈들은 해치웠지만 32층은 클리어하지 못했다.

[점령전 종료까지 남은 시간 - 00:14:32]

점령지를 차지해야 했으니까.

그곳까지 가야 하는데.

“크흡!”

몸이 따라 주질 않는다.

일어서기가 무섭게 엎어지는 몸.

놀란 덕춘이가 회복 특성으로 날 핥아 줬지만 데미지가 상당히 쌓였는지 회복이 더디다.

왜 다 와서 이러냐.

억지로 팔을 움직여 기어서라도 가려던 그때.

“이블아이 씨!”

“저희가 왔습니다!”

이곳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점령지에 있어야 할 김소담과 동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점령지를 점령하자마자 이곳으로 오지 않았다면 절대 도착할 수 없는 시간.

“업히세요!”

김서균이 등을 내밀었고, 고대진과 최영미가 나를 일으켜 그의 등에 올렸다.

김소담이 전투봇을 뿌려 호위를 하는 건 덤.

“왜 왔어요, 점령지에서 대기하고 있으라니까. 혹시라도 제가 졌으면 어떻게 하려고.”

점령전은 주어진 시간이 끝날 때 점령지 안에 있어야 한다.

만약 점령전이 끝났을 때 구역 밖에 있으면 그대로 탈락, 죽게 된다.

무모하다. 기껏 가장 안전한 곳으로 보냈건만.

“어떻게 하기는요. 놈들을 물고 늘어져서 다 같이 탈락하면 되죠.”

“아무래도 안 되겠더라고요. 늦었지만 바로 왔습니다.”

“어떻게 팀을 버립니까, 안 그래요?”

그들의 반응에 난 피식 웃었다.

“그럼 점령지까지 부탁드립니다.”

몸에 힘을 빼고 편하게 등에 업혔다.

[점령전 종료까지 남은 시간 - 00:01:23]

종료까지 약 1분을 남긴 시점. 우리는 점령지에 도달할 수 있었고.

[10번 팀, 점령 완료]

[32층 클리어]

“오오오오! 살았다!”

“아슬아슬했어요!”

“다들 고생 많았습니다!”

-띠링

피곤함에 절은 귓가로 커뮤니티 알람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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