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136화 (136/740)

136화 32층

32층은 가관이었다. 31층은 6개의 팀이 경쟁했다면 이곳은 무려 12개의 팀이 맞붙어 경쟁하는 필드였고.

[32층]

[점령전]

[12시간 안에 지정 구역을 점령하세요.]

[남은 시간 - 03:47:31]

[지정 구역 – 10개]

최소 두 팀이 탈락하는 곳이었다.

게다가 점령전. 대놓고 각 팀끼리 싸우라고 종용했다.

“저쪽 잡아!”

“무조건 뚫어야 한다!”

“죽어도 막아!”

“크하아악! 내 팔!”

사방에서 들리는 병장기 소리.

온갖 스킬이 남발했다. 폭음이 울리고 지독한 피 냄새와 함께 몬스터의 사체와 사람의 신체 일부가 널브러져 있었다.

내가 포함된 팀은 10번 팀.

현재 팀 3개가 탈락했다. 팀원 전체가 사망하면 탈락으로 처리되니까.

“이블아이 씨, 어떻게 하죠?”

옆에 서 있던 김소담이 물었다. 그녀의 주변에는 전투봇이 날카로운 칼날을 돌리며 대기하고 있었고, 위장을 마친 고대진은 수풀에 숨어 적들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었다.

김서균이 바위에 바짝 붙어 긴장했으며, 최영미는 그의 뒤에서 석궁에 볼트를 장전했다.

32층에 떨어진 지 3시간.

시작과 동시에 대형 길드 팀들이 연합을 맺어 공격을 감행했다.

12팀 중 대형 길드 소속 팀이 무려 6개다.

무소속 팀이 2개. 연합 팀이 4개.

공격에 휩쓸린 무소속 팀은 전멸. 연합 팀 하나도 탈락했다.

놈들 역시 무사하지는 못했지만, 팀 전체가 사망한 곳은 없었다.

남은 건 연합팀 3개뿐. 어떻게 적진을 뚫고 연합팀을 모았지만 수가 많지 않다. 고작해야 11명.

적들은 25명에 달했으니 두 배가 넘게 차이 나는 전력이다.

점령지 역시 8개를 빼앗겼다. 한 개는 아직 주인이 없었고, 남은 한 개는 우리가 차지하고 있었다.

“놈들이 공격을 멈췄어요.”

정찰하고 온 고대진이 점령지가 있는 곳들을 가리켰다.

“아무래도 비어 있는 점령지를 차지한 다음 이곳으로 몰려올 것 같은데요.”

정상적인 전략은 아니다. 점령전은 제한 시간이 정해져 있다.

그렇기에 미리 점령지를 선점해 버티든지, 막판에 총공세를 가해 찬탈하든지, 보통은 이렇게 하는 게 정상인데 놈들은 차지한 점령지를 지키지도 않고 움직였다.

“애초에 살려 둘 생각이 없는 거죠.”

김서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다. 쁘찡 연합 팀을 모조리 섬멸한 후 남은 점령지를 분배해 위로 향하는 것. 그게 대형 길드가 택한 방법이었으니까.

무소속 연합팀이야 단순히 싸움에 휘말렸을 뿐이다. 목적은 쁘찡 연합. 비인도적이지만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날을 갈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을 정도. 시간을 들여 계획한 게 분명하다. 그것도 모든 대형 길드가 힘을 합쳐서 말이지.

그러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움직임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상황은 더 나빠질 겁니다.”

“하위 구간을 통과하는 게 대형 길드뿐이라면 위에 있는 연합 팀들 역시 안전하지 못해요.”

고대진과 최영미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어딜 봐도 암울한 상황.

대기실에 있는 팀은 경쟁팀이 들어오기 전까지 위로 올라가지 못한다.

모든 대형 길드가 한 번에 경쟁팀으로 들어간다면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되기는 대형 길드 틈바구니에서 홀로 싸우게 되는 거지. 몇 배나 많은 적을 상대로.

이준석에 의해 들려오는 소식도 좋은 건 없었다.

현재 핥짝이의 활약으로 31층에서는 놈들이 힘을 쓰지 못했지만, 33층과 34층에서 연합팀 대부분이 무너졌고, 35층 역시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 같다.

36층은 아직 대형 길드 사람이 별로 없어서 괜찮은 것 같지만 나중에도 그럴 거라는 보장이 없다.

아래층에서 경쟁팀이 들어오지 않으면 시작할 수 없으니 발이 묶인 거나 마찬가지.

여기까지만 해도 머리가 아픈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루키들이 이끄는 팀이 34층에서 대기 중이라.”

33층과 34층이 전멸한 이유는 하나. 산군 길드와 다성, 이클립스의 루키들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일종의 수문장이다.

밑에서 올라오는 이들 모두를 처리하고 다른 대형 길드 팀을 이끈 채 올라가겠다는 계획.

오지혁이 직접 말한 정보니 확실하다.

‘오지혁도 지금 30층대에 있다고 했지.’

정확한 위치는 말하지 않았지만 30층대 어딘가에 있는 건 확실했다.

산군의 루키, 최성모가 30층에서 대기하라 했지만 무시하고 등반을 강행했다고 했으니까.

급변하는 상황 속, 위안이 되는 소식이 있다면.

[니머리 탈모]: 나 오늘 30층 올라갈 예정. 대형 길드 놈들 다 뒈졌다.

탈모맨이 곧 올라온다는 것뿐이었다.

솔직히 탈모맨한테 미안하다. 연합 사람들을 도와 달라는 말은 결국에 대형 길드를 처리해 달라는 거였고, 결과적으로 그를 위험에 빠트리는 일이었으니까.

[쁘띠공듀]: 살인자 칭호 받은 놈들만 해치워요. 아무나 때려잡으면 탈모맨도 살인자 칭호를 받는다구요!

[니머리 탈모]: 낭만도 없는 놈들은 죽어도 싸지. 그걸 위해 살인자 칭호도 감내하겠다!

[정수리 핥짝]: 오… ㅂㅅ 같은데 멋있어.

[냥냥펀치]: 그냥 적당히 헤집어라, 멍충앙.

다들 걱정되는 모양.

무리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때 탈모맨이 나를 불렀다.

[니머리 탈모]: 사나이의 의리를 무시하지 말거라! 껄껄 그런 의미로 공듀, 약속하나만 하자.

[니머리 탈모]: 30층 지나고 술 한잔 어때?

난 잠시 고민했고.

[쁘띠공듀]: 50층대에서 기다릴게요☆.

대답을 했다.

사나이 대 사나이로 약속하지.

언제까지고 녀석을 속일 수는 없으니까. 사실 속인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 같기는 하다만.

[니머리 탈모]: 오오! 50층 간드아아아!

[정수리 핥짝]: …잘가라, 공듀.

[냥냥펀치]: 왜! 탈모맨이 어때서!

[정수리 핥짝]: …? 너도 20층대에서 피하지 않았냐?

[냥냥펀치]: 냥? 고양이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다시금 농담을 해 대는 멤버들을 놔두고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연합 사람들도 계속해서 30층에 진입하고 있으니 놈들이 지금과 같이 탄압을 유지하는 건 힘들 거다.

여기까지 생각하면 어렵기만 한 상황이었지만.

“해결책 자체는 단순하지.”

놈들이 무슨 계략을 짰든 부수고 올라가는 것.

결국 대형 길드의 전략도 그들이 승리하는 걸 전제로 만들어진 것 아닌가.

반대로 우리가 그들을 깨부수면 아무런 소용도 없다.

그들이 벌인 일이 밝혀지면서 되레 위축되겠지.

변곡점이다. 탑 안의 세력이 격변하는.

“대형 길드 인원이 총 25명이라고 했죠.”

“예. 정찰조로 움직이는 이들이 네 명, 우리를 감시하기 위해 근처에 남은 인원이 둘. 나머지 열아홉 명은 남은 점령지 쪽에서 대기 중입니다.”

“여섯 명이 따로 있다는 거군요. 우리는 11명이고요. 당장은 우리가 더 많네요?”

“그렇죠.”

“먼저 칩시다.”

난 뒤를 돌아봤다. 생존한 10명의 사람이 나를 바라본다.

다행히 전투 불능에 빠진 사람은 없었다. 덕춘이가 회복을 시켜 준 덕분.

그들을 모았다.

이블아이라는 이름값 때문일까. 어느새 나는 리더 비슷한 입장이 되었고, 사람들은 내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다섯 명씩 팀을 짤 겁니다. 1번 팀은 우리를 감시하는 놈들을 처치하고, 2번 팀은 저랑 같이 움직이다 정찰조를 치는 거예요.”

동시에 덮쳐야 한다. 그래야 놈들의 본대가 공격받은 사실을 뒤늦게 알 테니까.

힐끗 알림판을 바라봤다. 남은 시간은 3시간.

지체할 시간이 없다.

“감시 인원과 정찰조를 처치하면 여러분은 대형 길드의 점령지를 차지하세요. 대형 길드에서 점령지를 지키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를 빼면 10명이니까 한 사람당 하나씩 차지하면 돼요, 알겠죠?”

“그럼 이블아이 씨는요?”

“저는 놈들의 시간을 뺏을 겁니다.”

내 발언에 모두가 경악했다.

혼자서 대형 길드 팀을 상대하겠다는 말과 마찬가지였으니까.

“안 돼요! 강한 건 알지만 혼자서 상대하는 건 무리예요!”

“저희가 잔챙이를 처리한다 하더라도 19명입니다. 스킬 하나씩만 써도 19번 얻어맞는 거라고요!”

절대적인 인원 차이. 맞는 말이다. 그런데 말이지.

“저는 혼자서 여럿을 상대할 때 더 빛납니다.”

“궤에에.”

아직 팀원들이 모르는 게 있다.

20층 디펜스 이벤트에서 보여 준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

난 더 강해졌고, 성물을 사용할 수 있게 됐으며 새로운 스킬들도 얻었다.

그리고.

[S급 권능, 스킬 합성이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32층에 올라온 직후 봉인되어 있던 스킬 합성이 깨어났다.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도 난 권능을 사용했고.

‘이거면 충분히 상대할 만해.’

유용한 스킬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난 사람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 방법이 최선이에요. 놈들이 한 번에 이곳에 몰려오면 어떻게 될 거 같아요? 어떻게 살아남더라도 여기 모인 분 중 대다수는 사망할 겁니다.”

다들 입을 다문다. 사실이었으니까.

아무리 나라도 10명이나 되는 사람을 모두 보호하면서 싸울 수는 없다.

성물을 사용하더라도 마찬가지.

수호자의 의지를 쓰더라도 적들이 일제 사격을 한다면 신성력이 거덜 나 깨지고 말 거다.

이후부터는 뭐. 죽기 살기로 싸우다 진짜 죽는 거고.

“우리가 점령지를 차지한다면? 녀석들도 선택을 하겠죠. 시간이 넉넉하지 않으니 모든 점령지를 찾아가지는 않을 겁니다. 기껏해야 한두 개? 여러분의 생존 확률이 올라갈 거라는 뜻이죠.”

“이블아이 씨가 희생하고요?”

김소담의 말에 그녀를 바라봤다.

“더 좋은 방법이 있나요?”

어찌 보면 냉정한 말. 그녀가 입을 꾹 다문다.

다 같이 들이박고 죽자는 것도 답이 될 수는 있지만 글쎄, 여기 있는 사람들 전원이 그렇게 생각할까?

“그, 그렇게 해 주신다면 저희야 감사하죠.”

“꼭 살아 돌아오세요.”

소수기는 하지만 몇몇은 벌써 고맙다고 하는데.

연합 사람이라고 다들 특별한 뜻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지원을 받기 위해, 정보를 얻기 위해, 단순히 재밌어 보여서 들어온 사람들도 많으니까.

김소담도 알 거다. 여기서 분열해 봐야 아무것도 안 된다는 사실을.

“바로 움직입시다. 김소담 씨가 네 명 뽑아서 감시하는 인원들 정리해 주세요. 나머지 분들은 저 따라오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말이 없던 김소담이 자기 팀원들과 홀로 동떨어져 있는 이 한 명을 데려갔다.

그래. 이게 심리다.

살릴 수 있다면 가능한 자기와 가까운 사람을 살리고 싶은 거.

나도 같은 이유 때문에 김소담을 보내는 거다.

감시조를 처리하는 팀이 더 멀리 있는 안전한 점령지로 갈 수 있으니까.

다들 무사하기를.

처음과 달리 조용하게.

우리는 움직였다.

* * *

기습.

성공만 한다면 큰 효과를 줄 수 있는 전략.

우리를 궁지로 몰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힘을 합쳤다고는 하나 서로 다른 길드 소속이라서일까. 그들은 따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었고 경계는 그리 삼엄하지 않았다.

덕분에 1팀과 2팀 모두 성공적으로 작전을 수행해 냈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

[32층 점령전 현황]

-1번 점령지 (10번 팀 점령)

-2번 점령지 (11번 팀 점령)

-3번 점령지 (10번 팀 점령)

.

.

.

대형 길드가 차지했던 점령지가 쁘찡 연합 소속 팀의 이름으로 바뀌었으니까.

10번 팀은 내가 속해 있는 팀, 11번 팀은 다른 연합 사람들이고.

상황은 좋게 흘러갔다.

그 사실을 파악한 건 나뿐만이 아니다.

“뭐, 뭐야!”

“정찰조 연락해! 연락하라고!”

“감시하던 놈들 다 어디 갔어! 상황이 이 꼴이면 보고를 했어야지!”

19명으로 이루어진 본대에서 소란이 일었다.

그들의 얼굴이 분노로 차올랐다.

점령전 종료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2시간 남짓.

“돌아간다! 가면서 점령지란 점령지는 모두 부숴 버려!”

대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검을 뽑아 들었다.

그렇게는 안 되지.

-퍼억!

윽박지르던 놈의 머리가 보기 좋게 꺾였다.

풀썩 쓰러지는 녀석. 부들거리는 걸 보니 죽지는 않은 모양.

“어떤 놈이냐!”

길드원 한 명이 소리쳤고, 난 수풀에서 걸어 나왔다.

놈에게 던진 것과 비슷한 사이즈의 돌멩이를 집어 든 채.

한 번 더 던져 볼까.

팔을 크게 휘두르며 돌팔매질을 하자.

-카앙!

놈이 재빠르게 쳐 낸다.

확실히 경계를 하지 않을 때와 할 때의 수준은 차이가 있다.

“저 녀석 이블아이 같은데요?”

“확실합니다. 보고 받은 거랑 옷차림이 똑같아요.”

“저놈이 수작을 부린 건가.”

“지원군은 없어 보입니다.”

난 검을 뽑으며 터벅터벅 걸어갔다.

“왜 다들 말이 많아. 시간 없어. 빨리 끝내자.”

손가락으로 허공에 떠올라 있는 알림판을 가리켰다.

[점령전 종료까지 - 01:46:32]

천연덕스러운 내 태도에 화가 난 걸까. 돌멩이를 쳐 낸 녀석이 기세를 올리며 달려들었다.

“저 새끼 죽여!”

뒤이어 나를 없애기 위해 달려드는 녀석들.

빛이 번쩍이는 것이 다들 스킬을 사용하려는 것 같은데.

[독자무강獨者武强 (A) Lv.2]

-인생은 개인전!

-홀로 싸울 때 더욱 강해집니다.

난 피식 웃으며 자세를 취했고.

“와라.”

-파아아악!

그대로 뒤돌아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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