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135화 (135/740)

135화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결승점을 지나고 정상에 서는 순간,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끔찍했던 산사태를 지나고 맞는 휴식이라 그런가 달콤하기 그지없었고.

[1위로 결승점에 도달했습니다.]

[특별 보상이 주어집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보상은 우리의 입꼬리를 올라가게 했다.

역시 1등에게는 선물을 주는구나.

팀 단위 등반. 그들이 경쟁하게 만들려면 채찍만으로는 부족하다.

혹할 만한 당근도 같이 줘야 열과 성을 다해 열심히 하지.

탑이라는 곳. 있으면 있을수록 사람을 부추기는 뭔가가 있다.

‘좀 더 해 보지? 거지 같지? 그런데 올라가면 이런 게 있다?’ 이런 느낌이랄까?

과정 자체는 말도 안 되게 힘들지만 결과는 달콤한 그런 거.

“와! 다들 봤어요? 이 정도 보상은 처음 받는 거 같은데.”

“진짜 다들 고생 많았어요.”

“이블아이 씨가 다 했는걸요.”

보상을 받은 이들이 흥분해서 들썩인다.

그도 그럴 것이.

[5,0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상급 랜덤 스킬 박스×2가 지급됩니다.]

상급 랜덤 스킬 박스가 두 개나 지급됐으니까.

운만 좋다면 A급 스킬도 얻을 수 있다.

“이블아이 씨, 받으세요.”

김소담이 내게 스킬 박스 하나를 내밀었다.

“도움만 받은 거 같아서요. 이블아이 씨가 아니었으면 1등도 못 했을 거예요.”

“그건 맞죠. 양심이 있지.”

“흑흑, 여기 받으세요.”

김소담을 시작으로 내게 스킬 박스를 내민다.

고대진 역시 우는 시늉을 했지만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고.

어쩐다.

사실 받으면 좋기는 하다. 상급 스킬 박스를 네 개나 더 얻을 수 있는 기회니까.

하지만.

“다 같이 한 거잖아요. 여러분 중에 한 명이라도 낙오하거나 치명상을 입었다면 제가 아니라 그 누가 왔더라도 1등은 못 했습니다.”

정중히 거절했다.

이들은 39층까지 함께할 동료.

그것도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 준 좋은 사람들이었다.

지금만 봐도 그렇다. 이렇게 선뜻 보상을 넘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진심이니까 넣어 둬요. 따지고 보면 저도 대진 씨한테 스킬북 선물로 받았잖아요. 대진 씨가 말했죠. 좋은 건 서로 나누자고.”

“그렇습죠! 쁘띠공듀 님이 말했습니다!”

말한 적 없다, 이놈아.

어찌 됐든, 화기애애한 분위기 그대로 각자 보상을 챙겼다.

“32층에서도 파이팅 합시다!”

“40층까지 아니, 100층까지 쭉쭉 올라갑시다!”

힘차게 소리치는 이들.

그런 우리를 발밑에 마법진이 그려졌다.

[31층 클리어를 확인.]

[32층 대기실로 이동됩니다.]

-파아앗!

누가 뭐라 할 틈도 없이 터져 나오는 불빛.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더니 눈을 떴을 때는.

“오우, 탑에 이런 곳도 있었군요.”

하얀 공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가 떨어진 곳은 거실로 보이는 곳.

방문이 몇 개 있었고, 그 너머에는 침대가 준비되어 있었다.

[32층 대기실]

[상처가 치유됩니다.]

[경쟁 팀이 매칭 될 때까지 대기하세요.]

[32층 이동까지 남은 시간 - 09:58:32]

[대기 시간은 상황에 따라 변동될 수 있습니다.]

30층대는 팀 단위 경쟁. 상대할 팀이 준비되는 동안 휴식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모양이었다.

10시간. 충분히 체력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다.

“운이 좋았네요. 타이밍이 잘 맞아서 휴식 시간이 길어요.”

만약 우리가 너무 빨리 클리어했거나 늦게 클리어했다면 대기 중이던 다른 팀과 바로 매칭이 됐을 거다.

시스템도 말하고 있지 않은가. 기본 대기 시간은 10시간.

만약 다른 경쟁 팀이 빠르게 들어온다면 10시간이 되기 전에 32층으로 올라가게 될 거다.

“10시간이라… 알차게 써 봅시다! 일단 좀 씻어야겠네요.”

“동감입니다.”

고대진과 김서균이 샤워 스킬을 쓴다.

지저분했던 몸과 장비에서 이물질이 씻겨 내려가고 보송해진 둘이 방어구를 벗었다.

“다들 빨리하는 게 좋을걸요? 보니까 침대 4개던데. 저희 먼저 자리 잡습니다?”

후다닥 침대에 슬라이딩한 고대진이 주변을 가리켰고.

“앗! 나도!”

최영미를 비롯한 팀원들도 서둘러 샤워 스킬을 사용했다.

나도 마찬가지.

“이블아이 씨, 이쪽으로 오십쇼. 답답할 텐데 투구랑 갑옷이랑도 좀 벗어 두시고. 침대가 편아아안합니다.”

고대진이 손짓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저는 좀 할 게 있어서요. 거실에 있겠습니다.”

공략 글도 준비해야 하고, 무엇보다 투구를 벗고 싶지 않았다.

아무래도 좀 꺼려져서. 다들 날 이블아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쁘띠공듀인 걸 들킬 일은 없지만 만약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적당히 신비주의를 유지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럼 저희 먼저 자겠습니다. 푹 쉬세요.”

눈치 빠른 최영미가 문을 닫았다.

내가 얼굴을 공개하고 싶지 않다는 걸 파악한 모양.

“일어나는 건 걱정 마세요. 제가 알람 맞춰 놓고 잘 거니까.”

“다들, 굿 나잇.”

하나둘 침실 문을 닫고 홀로 거실에 남은 난 커뮤니티를 켰다.

이제 어쩐다.

그동안에는 혼자 움직인 만큼 공략 글은 올리고 싶을 때, 필요할 때 올렸다.

이곳은 아니다. 다 같이 등반을 하니까 공략글을 올릴 시간이 항상 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었고, 무엇보다…….

“까딱하면 내 위치가 발각되겠는데.”

층을 클리어할 때마다 공략을 올리면 내가 아직 30층대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안 그래도 이블아이가 쁘띠공듀가 아니냐고 의심하는 사람이 있는 마당에 공략과 등반 층까지 겹친다? 그럼 빼박이지.

나야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정작 다른 사람들은 크게 개의치 않을지도 모른다.

미리 올라간 다음 천천히 공략을 풀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어떤 선택을 하든 짐작할 사람은 짐작하고 못 할 사람은 못 한다.

스스로 정체를 밝히기 전까지 확정 지을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천천히 하자.”

일단은 좀 쉬자. 무리한 건 팀원뿐만이 아니다.

나 역시 막판에 고생을 해서 힘을 비축할 필요가 있다.

“스킬 레벨이 올랐군.”

적당한 곳에 누워 스킬을 살폈다.

쏟아지는 토사를 버티면서 강체와 물리 공격 내성 스킬의 레벨이 제법 올랐다.

[강체 (B) Lv.7]

[물리 공격 내성 (C) Lv.5]

고생한 보람이 있달까. 점점 몸이 단단해지고 있다.

이제는 어지간한 공격은 몸을 때울 수 있을 것 같은데.

3성급 몬스터를 상대할 때도 이제는 부담은커녕 싱겁기만 했다.

스킬창을 끈 후 스킬 박스를 꺼냈다.

상급 두 개. 뭐가 나오려나.

A에서 C급 스킬이 나오니 좋은 게 나왔으면 좋겠는데.

난 거침없이 상자를 열었고.

[축하합니다!]

[B급 스킬, 파이어 밤을 획득했습니다.]

[중복 스킬. 더 높은 등급의 스킬을 사용합니다.]

“엥?”

의외의 결과를 볼 수 있었다.

파이어 밤은 이미 가지고 있는 건데 중복 당첨이라니.

다른 사람이라면 반길지 모르겠으나 나는 아니다. 이미 A등급으로 승급한 게 있으니까.

이건 일단 챙겨 두자. 스킬 합성이 있으니 따로 쓸 수 있겠지.

아직까지 스킬 합성은 비활성화 단계. 시간이 제법 지났으니 조만간 풀리지 않을까 싶다.

다음 스킬 박스를 열어 보자.

이번에는 좋은 게 걸리기를!

힘차게 마지막 상자를 오픈.

-파아앗!

[행운 스텟이 적용됩니다!]

찬란한 빛과 함께 행운 스텟이 발동되었다.

오오! 나도 모르게 감탄했다.

스킬 박스에서 나온 건.

[A급 스킬, 마법 공격 무효화를 획득했습니다.]

다름 아닌 마법 무효화였다.

아주 드물게 발견되는 스킬들이 있다. 일명 무효화 스킬.

내성 스킬은 말 그대로 내성이다. 저항력을 가지게 된다는 말. 성장 과정에서 크고 작은 고통이 뒤따르는 건 물론이고, 지속적으로 자극을 받다 보면 데미지를 입기 마련이다.

마치 핫팩을 두고 자다가 저온 화상을 입는 것처럼.

그에 반해 무효화는 내게 적용되는 효과 자체를 없애 버리는 능력. 피해 자체가 없다.

빠르게 설명을 읽었다.

[마법 공격 무효화 (A) Lv.1]

-일정 확률로 마법 판정 공격을 무시합니다.

-현재 확률 10퍼센트 (행운 스텟이 적용됩니다.)

굉장하다. 10퍼센트. 얼핏 낮은 확률인 것 같지만 10번 중의 1번은 마법 공격을 막을 수 있다는 것 아닌가.

거기에 행운 스텟까지 적용이 된다고 한다.

사실상 10퍼센트 이상이라고 봐야지.

“마법 공격으로 한정되어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드는군.”

만약 공격이 아니라 모든 마법 무효화였으면 페널티가 심각했다.

내게 적용되는 회복 스킬이나 버프 스킬까지 무효화시킬 수 있었으니까.

좋은 걸 얻었다. 이 정도면 A급 이상의 스킬이 아닐까 싶을 정도.

하기야 완벽한 방어 능력은 아니니 납득은 된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달래며 바닥에 머리를 뉘었다.

일단 자자.

좋은 건 좋은 거고 휴식은 휴식이다.

습관적으로 주변에 알람 스킬을 펼친 후 눈을 감았다.

대기실이라고는 하지만 이곳은 탑이다. 언제 어떤 변화가 생길지 알 수 없는 노릇.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

“그에에에.”

머리맡에 자리 잡은 덕춘이가 잠드는 걸 시작으로 나 역시 잠을 청했다.

* * *

-띠링!

-띠링!

-띠링!

연달아 울리는 알람에 난 몸을 세웠다.

덕춘이 역시 내 어깨에 올라왔고 주변을 살피자.

“알람 스킬이 아니었네.”

멀쩡하게 설치되어 있는 알람 스킬이 보였다.

대략 8시간 정도 잔 건가. 오래간만에 숙면했다.

그럼 이 알람 소리는.

“커뮤니티?”

미간을 찌푸렸다.

이준석으로부터 개인 메시지가 엄청나게 쌓여 있다.

커뮤니티에도 글이 빠르게 올라오고 있고.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하다.

[이준석]: 대형 길드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준석]: 30층대를 노리고 있던 거였어요. 팀 경쟁. 대형 길드 팀이 연합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준석]: 33층과 34층은 괴멸적인 타격을 입었어요. 30층에 머물던 루키들이 이끄는 팀이 있는 곳입니다.

[이준석]: 급하게 연합 사람들끼리 힘을 합치라고 전해 뒀지만 기습을 받아서 제대로 될지는…….

메시지를 읽을 때마다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대형 길드 이 새끼들. 이런 식으로 하는 거였나.

뿌득. 이를 갈기가 무섭게 상황은 더 나빠졌다.

[이준석]: 30층에 부활한 연합 사람들까지 공격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이준석]: 개인에 다수가 덤벼 반격하기가 힘들어요. 이대로 가다가는 퇴출당하는 사람이 수백 명 가까이 될지도 모릅니다!

[이준석]: 하다못해 루키 팀만 어떻게 해도 방법이 생길 텐데……. 제길! 더 준비했어야 했습니다

그들이 말했다. 전쟁이라고.

말 그대로다. 놈들이 이렇게 나온다면 나도 어쩔 수 없지.

확실하게 끝내는 수밖에.

[쁘띠공듀]: 연합 사람들한테 전하세요. 최대한 뭉쳐서 싸우라고.

[쁘띠공듀]: 루키 팀과 30층은 제가 어떻게 해 볼게요.

이준석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멤버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다들 소식을 들었는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정수리 핥짝]: 와, 이게 뭔 난리냐. 대형 길드쉨 ㅈㄴ까부네.

[냥냥펀치]: 30층 개판 아님?

[정수리 핥짝]: ㅇㅇ. 나 지금 31층인데 쉬이벌럼들이 단체로 덤비더라.

[니머리 탈모]: 겁도 없이, 인성 파탄 파괴자의 심기를 거스르다니. 불쌍한 놈들.

[정수리 핥짝]: 너도 지금 건들고 있는 거 알지? ^^

[니머리 탈모]: 전 언제나 핥짝 님을 응원합니다!

[냥냥펀치]: 아, 님들. 나 디펜스 이벤트 1등 함. 보상 달달~합니다.

[니머리 탈모]: ㅊㅊ. 누구랑 달리 1등 했구먼.

[냥냥펀치]: 핥짝 선생님, 전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죽이려거든 저 대머리만 조져 주세요

[니머리 탈모]: …? 이렇게 선을 긋는다고?

핥짝이가 31층에 올라왔다.

냥펀은 아직 30층에 올라오려면 멀어 보이고.

[쁘띠공듀]: 다들 고생이군요. 흑흑.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요.

자연스럽게 멤버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정수리 핥짝]: 공듀, 넌 괜찮냐? 이놈들 하는 거 보니까 어떻게든 너 잡으려 할 거 같은데.

[니머리 탈모]: 아니, 어떤 놈이 공듀를! 나도 아직 못 만났는데 용서할 수 없다.

아. 그 부분이 안 되는 거였냐.

잠깐 감동할 뻔했네.

아무튼 다행이다. 아직 탈모맨은 30층에 도달하지 않은 상황. 그의 도움이 필요하다.

[쁘띠공듀]: 맨맨! 탈모맨!

[니머리 탈모]: 그대의 기사 니모가 왔소.

[정수리 핥짝]: 우욱… 이게 무슨.

[냥냥펀치]: 니모는 또 뭐냥?

[니머리 탈모]: 니머리 탈모에서 앞뒤 글자만 합친 거. 앞으로는 탈모맨 말고 니모라고 불러라!

[냥냥펀치]: 응! 탈모맨!

[정수리 핥짝]: 그래! 탈모맨!

[니머리 탈모]: ㅂㄷㅂㄷ…….

얘들아 잠깐만 진정해 봐. 지금 놀 때가 아니야.

[쁘띠공듀]: 니모탈모맨 아직 30층 전이죠?

[니머리 탈모]: 아니, 뒤에는 빼 달라니…….

[쁘띠공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대형 길드 놈들이 우리를 노리고 있어요.

[쁘띠공듀]: 핥짝이도 그렇고, 탈모맨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는 만큼 표적이 될 겁니닷.

[쁘띠공듀]: 몸조심하고, 가능하다면 30층 안전지대에서 사람들을 없애고 있는 대형 길드 좀 말려 줘요.

[니머리 탈모]: 30층 애들?

[쁘띠공듀]: 제가 올린 공략 글 믿었다는 이유로 쁘찡 연합 사람들을 다 죽이고 있어요.

[니머리 탈모]: 이런 쉬이이뻘넘들이 감히 팬클럽 회원을 건드려? 팬클럽 돌격 대장으로서 용서 못 한다.

너 이미 가입했었냐? 아니, 그 전에 팬클럽에 돌격 대장이 왜 있…….

됐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탈모맨이 도와준다는 게 중요하지.

[쁘띠공듀]: 그럼 부탁해요! 저도 다른 문제 해결하고 있을게요!

[니머리 탈모]: 오케이. 30층 금방 가니까 걱정 ㄴㄴ.

이걸로 안전지대는 한시름 놨고.

난 대기실에 표시된 알림창을 노려봤다.

2시간 정도 남았던 대기 시간이 사라졌다.

[경쟁팀이 잡혔습니다.]

[대기 시간이 종료됩니다.]

[10분 뒤, 32층에 진입합니다. 준비하세요!]

벌컥, 침실 문을 열며 팀원들을 깨웠다.

빠르게 올라가자. 루키 놈들을 쳐부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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