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결승점 도달
산악 지대로 들어온 지 1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모든 팀이 암석 지대에 진입했습니다.]
알람이 울렸다.
모두가 숲을 지나온 것.
그 말은 곧 다른 팀들도 스펠북을 찾아 사용할 수 있었다는 거였고.
“크으읍! 이거 힘든데요?”
“와, 너무하다. 진짜.”
우린 무려 3개의 디버프를 받았다.
몸이 무겁고 시야가 핑 돈다.
그뿐일까. 어디서 굴러왔는지 몬스터까지 대규모로 접근해 전투를 치러야 했으며, 뜬금없이 벼락이 쳐 그대로 직격당할 뻔도 했다.
[디버프를 받았습니다.]
[컨디션 저하]
[몬스터 유혹]
[벼락의 손길]
[디버프 유지 시간 - 14:42]
디버프는 약 15분간 유지됐다.
-콰아악!
달려드는 트롤을 들이박은 김서균이 방패에 숨으며 날 바라봤다.
“이블아이 씨, 부탁합니다!”
난 지체 없이 파이어 밤을 사용해 놈을 불태웠고, 앞으로 튀어나가 다른 몬스터를 베어 넘겼다.
종류 한번 다양하다.
이족 보행을 하는 놈들이 있는가 하며 사족 보행도 있고, 몇몇은 몸을 숨긴 채 독이나 가시를 쏟아냈다.
근처에 있는 몬스터란 몬스터는 전부 모인 모양.
디버프를 받은 상태지만 다들 열심히 움직인다.
-파아악!
“영미 나이스!”
“앞이나 봐!”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지원 사격을 하는 최영미.
“흐아아압!”
스킬을 사용하며 몬스터를 저지하는 김서균과.
“이것 좀 먹어 보시지!”
온갖 잡다한 스킬로 적들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고대진.
이들이 커버하지 못한 곳은 김소담이 채웠다.
AA급 권능 메카닉.
이렇게 한자리에서 싸울 때 더욱 빛을 발하는 권능.
-위이이이잉!
-까가가각!
수십 마리의 전투 로봇이 몬스터를 자르고 찢었다.
그녀의 목을 타고 땀이 흘러내린다. 컨디션이 엉킨 상태에서 권능을 유지하는 건 힘든 일이니까.
분명히 힘든 상황인데.
“편하네.”
각자가 본인의 역할을 충실히 해 준 덕분에 사냥 자체는 수월하게 진행됐다.
나 역시 전장을 헤집으며 몬스터를 쓰러트렸고.
“디버프 곧 끝납니다! 다들 버텨요!”
“집중합시다!”
“힘차게 파이팅!”
팀원의 사기는 올라갔다.
정말 30층에서 만나 만든 팀이 맞을까 싶을 정도의 단합력과 팀워크.
새삼 알 것 같았다. 밖으로 나온 헌터들이 파티 사냥을 고수하는 이유를, 끊임없이 사건·사고가 벌어져도 다시 뭉치는 이유를.
좋은 팀은 혼자서는 낼 수 없는 시너지를 발휘한다.
‘어디까지나 좋은 팀일 때는 말이지.’
내가 운이 좋은 거다, 괜찮은 사람들은 만난 거니까.
빠악!
마지막 남은 몬스터의 머리를 으깨며 전투가 종료됐다.
“아이고, 죽겠다.”
고대진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김서균이 고대진을 일으켜 세웠다.
“쉬는 건 이따 하죠. 이 정도로 난리를 쳤으면 흔적을 지우는 것도 힘들어요. 피 냄새 맡고 다른 놈들이 몰려올 수도 있고.”
“읏차. 맞는 말입니다. 파이팅 해야죠.”
고대진이 주먹을 내밀자 김서균이 픽 웃으며 주먹을 갖다 댄다.
김서균의 말대로다. 몬스터는 얼마든지 있다. 뒤쫓아 오는 팀들도 있고.
쉬는 건 결승점을 넘고 해도 충분하다.
여전히 디버프가 유지되고 있었지만 서로를 부축한 채 나아갔다.
부상을 입어 속도가 나지는 않았지만.
“고마워, 덕춘아.”
“그에에에.”
덕춘이가 한 명씩 달라붙어 회복 특성을 써 준 덕분에 상처는 빠르게 아물었다.
역시 만능 개구리. 영물의 위대함을 느낀 팀원들이 저마다 간식을 꺼내 들었다.
먹여도 되는지 묻는 팀원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먹어 볼래?”
“궥!”
“뭐야, 뭐야. 나도 줄래!”
“궤엑!”
“오, 혹시 젤리도 먹어?”
“궤에에엑!”
누가 훔쳐 가기라도 하는지 한입에 집어삼키는 녀석.
그래. 많이 먹고 쑥쑥 커라.
“이블아이 씨, 혹시 애 굶기는 건 아니죠?”
“절대요.”
고대진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내 밥도 뺏기는 마당에 굶기기는 무슨.
그냥 먹성이 좋은 거다.
“나도 이런 펫 가지고 싶다.”
“은근 귀엽지 않아요?”
“색도 예쁜데. 봐 봐요, 무늬도 막 움직여요.”
어느새 인기 스타가 된 덕춘이를 어깨에 올렸다.
말이 많아진 걸 보니 다들 체력을 회복한 모양.
디버프도 종료됐는지 발걸음이 가뿐하다.
문제는…….
-쿠콰콰콰!
“오우, 이건 또 뭐야.”
“저걸 넘어야 한다는 거죠?”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장애물.
눈을 의심했다. 탑의 생태계가 이상한 건 알고 있었지만 지형도 이 모양이라니.
끊임없이 발생하는 산사태가 우리의 눈앞에 있었다.
급류처럼 밑으로 쏟아지는 토사와 바위, 나무.
그것들은 이내 중턱 경계의 틈으로 빨려 들어갔고, 결승점이 있는 정상에서 다시 쏟아져 나왔다.
-턱
시험 삼아 돌을 하나 집어 던졌다.
토사에 박히자마자 빠른 속도로 내려간다.
물길이었어도 부담스러운 속도인데, 더 무겁고 단단한 흙과 돌덩이라니…….
“다른 길이 있을까요?”
“없어 보이네요.”
고대진이 일말의 희망을 걸며 물었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겠지만 내 눈에는 보인다.
[쏟아지는 토사의 오름길]
-정상 부근에서 시작되는 산사태를 뚫고 올라가세요.
-거꾸로 올라가는 연어처럼요!
-시스템의 제약으로 모든 이동 스킬이 봉인됩니다.
권능을 통해 보인 정보.
중턱을 기준으로 모든 곳에서 토사가 흐르고 있다.
이건 정면으로 뚫어야 한다.
이동 스킬을 봉인한다라. 공중으로 날아가는 것도 불가능. 특수한 스킬을 사용해 빠르게 돌파하는 것도 안 된다.
시험 삼아 안개 질주를 사용해 봤지만.
[스킬이 봉인되었습니다.]
스킬 발동도 전에 막혔다.
어쩔 수 없지.
난 보물 주머니에서 로프를 꺼냈다.
“다들 몸에 묶어요. 다 같이 움직여야 합니다. 혹시라도 토사에 휩쓸려도 다른 사람들이 끌고 가야 해요.”
고개를 끄덕이는 팀원들.
30층대는 팀플레이 구간이라더니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단단히 줄을 묶은 뒤 일자로 대형을 만들었다.
가장 앞에 선 사람이 큰 부담을 지겠지만 뒤에 있는 사람들은 비교적 편하게 오르겠지.
선두는 번갈아 하면 된다.
시작은 김선균.
“갑니다! 크흐으읍!”
-촤아아악!
그가 발을 디디기가 무섭게 자갈과 흙이 튀어 오른다.
급류나 다를 바 없는 상황.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그가 자세를 낮췄다.
다행히 깊지는 않았다. 허벅지를 덮는 정도.
일반인이었다면 버티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겠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은 모두 30층까지 올라온 초인이다.
한 걸음, 다시 한 걸음.
이를 악문 채 꿋꿋이 걸음을 옮겼다.
“급하게 움직이면 안 돼요. 앞사람이 무너지지 않게 뒷사람이 잘 봐 주고요!”
내 위치는 김선균 바로 뒤.
비틀거리는 그의 등을 받쳤다.
어떻게든 위로 올라갈 수 있지만 혼자서는 버티기 힘든 정도.
난이도 한번 제대로 잡았네.
“한 걸음씩! 하나! 둘!”
구호에 맞춰 위로 올라갔다. 그렇게 5분.
뒤를 돌아보니 그리 많이 올라오지도 못했다.
“교, 교대해 주세요.”
“고생했어요.”
잘 버텨 주던 김선균이 내 뒤로 빠졌다.
지금부터는 내가 선두.
뒤에 있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저항력이 느껴졌다.
그나마 스텟이 받쳐 줘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고생 꽤 했겠는데.
[강체 (B) Lv.4]
[물리 공격 내성 (C) Lv.1]
패시브 스킬이 발동되니 좀 낫다.
속도가 조금씩 붙는 와중.
“다른 팀 붙었어요! 산악 지대 초입이에요!”
“오른쪽에도 있습니다! 곧 중턱에 도착할 거 같아요!”
김소담과 최영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벌써 따라붙은 건가.
암석 지대에서 서로 싸우기를 바랐는데 다들 바로 이동한 모양.
알아차린 거다. 뒤에서 치고받아 봐야 선두권에 있는 팀만 이득이라는 걸.
[모든 팀이 산악 지대에 진입했습니다.]
알람이 떠오른다.
모두가 암석 지대를 통과했다.
아직 정상까지는 거리가 제법 있다. 서두른다고 서두를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편법이 있지도 않다.
[경쟁팀이 스펠북을 사용했습니다.]
[디버프가 적용됩니다.]
[암전]
삽시간에 시야가 어두워졌다.
순간 몸을 휘청이자 토사에 쓸려 가던 돌덩이가 머리를 치고 지나간다.
투구 덕분에 데미지는 없었지만 다른 이들은 아닌 모양.
“으, 으아아!”
고대진의 비명과 함께 몸을 묶은 줄이 팽팽해졌다.
발을 헛디뎌 균형을 잃은 모양.
게다가.
“안 돼!”
넘어진 그에게 부딪혔는지 최영미의 다급한 목소리까지 들렸다.
두 배로 늘어난 부담감.
“다들 움직이지 말고 멈춰요! 디버프가 사라질 때까지 버티는 겁니다!”
이 상황에서 움직이는 건 자살 행위다.
부상을 입는 건 물론이요, 중턱까지 그대로 미끄러질 수도 있다.
스펠북의 영향인지 야간 시야도 먹히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건 단 하나.
[디버프 종료까지 – 09:14]
시스템적으로 떠오른 메시지뿐.
10분, 다른 디버프에 비해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블아이 씨, 괜찮아요?”
“괘, 괜찮습니다. 다들 자리 유지해요. 10분 동안 어떻게든 버텨 볼 테니까.”
김선균이 선두에서 버틴 시간은 단 5분이다.
그만큼 앞자리의 부담이 크다는 말.
이미 5분가량 선두를 선 마당에 10분을 더 버티라는 건 사실상 포기하라는 것과 마찬가지였지만.
‘어떻게든 버틴다!’
나는 악을 쓰며 10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좋게 생각하자. 이 순간에도 강체와 물리 공격 내성 스킬의 레벨이 올라가고 있다.
이건 훈련이다. 레벨을 올리기 위한 이벤트다.
정신을 다잡으며 집중했다.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 걸까.
[경쟁팀이 스펠북을 사용했습니다.]
[디버프가 적용됩니다.]
[탈진]
또 하나의 디버프가 우리를 덮쳤다.
“크하아악!”
피잉!
줄이 더 팽팽해진다.
체력이 빠져 있던 김선균마저 쓰러진 것.
나와 김소담 둘이서 세 명을 붙잡고 있어야 한다.
“이, 이블아이 씨! 저도 좀 있으면 한계…….”
설상가상으로 김소담까지 위험하다.
나 혼자서 네 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
뭐라도 해 봐야지!
난 보물 주머니에서 스펠북을 꺼냈다.
종류가 뭔지는 모른다. 일단 닥치는 대로 잡아 펼쳤다.
[어느 팀에게 사용하시겠습니까?]
“2번!”
대형 길드 팀은 2, 3, 4번.
이미 3, 4번은 괴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혔다.
놈들이 힘을 합쳤다면 가장 멀쩡한 곳은 2번 팀이다.
‘분명 몬스터와 싸웠을 때 디버프 3개가 동시에 걸렸어.’
한 번에 사용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
대형 길드 팀이 단합해 한 일인 게 분명하다.
물론 같은 연합 팀과 무소속 팀이 했을 수도 있기는 하지만 아니기를 빌어야지.
예상이 적중한 걸까.
-끄아아악!
멀리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이걸로 시간은 벌었고.
[홀리 크랩 (AAA)]
[수호자의 의지 (AA)]
성물을 사용해 토사를 막았다.
땅에서 솟아난 홀리 크랩으로 1차적으로 방어.
이어서 수호자의 의지로 나와 팀원들을 감쌌으니.
“일어나세요! 지금 전열을 가다듬어야 합니다!”
넘어졌던 이들이 하나둘 일어설 수 있었다.
홀리 크랩과 수호자 의지 모두 고정형 능력이다.
산을 오를 때는 쓸 수 없지만 지금처럼 한자리에서 버텨야 할 때는 유용했고.
[디버프가 해제됩니다.]
“사, 살았다.”
“이블아이 씨, 고생했어요!”
“진짜 대박, 미쳤다.”
한 명의 낙오자 없이 팀원 모두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여전히 성물은 유지되고 있는 중.
빠르게 신성력이 빠져나가고 있다.
하늘에 떠 있는 알림판을 보니 순위가 뒤집혔다.
우리가 5등.
대형 길드 팀 3개가 연달아 1위부터 3위를 차지하고 있었고, 무소속 팀이 4등을 차지하고 있었다.
“다른 팀 모두 토사를 오르고 있어요. 여기서 결판을 짓죠.”
더 이상은 여유가 없다.
끝을 내야 할 때.
난 팀원들을 바라봤고.
“끝내 버리죠.”
“1등은 무조건 우리 겁니다.”
“보여 주세요!”
그들의 지지를 받으며 남은 스펠북을 모조리 사용했다.
산을 오르던 팀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고함인지 비명인지 그 외의 무엇인지.
[순위가 변동됩니다.]
-5번 팀
-6번 팀
-1번 팀
.
.
.
되찾은 1위.
“갑시다.”
난 성물을 거두며 앞으로 진격했다.
“제가 앞장설게요!”
“저 아직 안 죽었습니다. 저한테 맡기세요.”
“마냥 업혀 갈 수는 없어요.”
팀들의 만류했지만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그녀 역시 체력이 바닥이다. 다른 세 명 역시 토사에 휩쓸릴 때 바위와 돌덩이에 부딪혀서 상태가 심각한 수준이고.
정상을 바라보며 다리에 힘을 줬다.
“소담 씨가 말했죠. 제 역할은 선봉장이라고.”
결승점이 점차 가까워진다.
“저는 제 역할에 충실할 겁니다.”
잠깐의 정적.
“이블아이 씨…….”
“진짜 당신은.”
“젠장! 다들 뭐 해요! 이블아이 씨 받쳐요! 무조건 1등입니다!”
“갑시다! 하나! 둘!”
뒤이어 등을 받치는 힘이 강해졌다.
한 걸음, 다시 한 걸음.
[가장 먼저 결승전에 도달했습니다.]
[특별 보상이 지급됩니다.]
우리는 결승점에 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