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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갇혀 고인물-133화 (133/740)

133화 얜 덕춘입니다

31층, 암석 지대.

대형 길드원들이 빠르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31층으로 떨어진 대형 길드 팀은 셋.

한 팀은 아직 숲에 있었고, 남은 두 팀은 빠르게 연합을 해서 필드를 돌파했다.

“역시 선배님들이 알려 준 루트로 가니까 편하군요.”

“당연한 말을. 어디 듣도 보도 못한 놈들 정보력과는 수준이 다르다고.”

이미 30층대를 넘어선 각 대형 길드들의 헌터들이 알려 준 공략법.

그게 있는 이상 이들이 상위권을 차지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주변 잘 살핍시다. 몬스터가 숨어 있을 수도 있어요.”

“방해 아티팩트도 찾아야 해요. 다른 팀들 못 오게.”

“선배님이 말해 준 바에 따르면 쌍 뿔 모양 바위 아래에 하나 더 있다고 하거든요? 그쪽 먼저 가죠.”

31층 필드의 지형, 출현 몬스터, 설치된 함정의 종류.

그 외에도 암석 지대에서만 얻을 수 있는 특별한 아이템의 위치는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일명 스펠북.

경쟁팀을 방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직접 나서 경쟁팀을 공격하는 것도, 함정을 파 두는 것도 전략이었지만 시간과 체력을 소모해야 하니까.

최악의 경우 역공을 맞아 되려 당하는 수도 있고.

“저쪽에 쌍 뿔 바위가 보입니다, 가시죠.”

“경계 잘해. 언제 다른 팀이 덤벼들지 모르니까.”

“에이, 벌써 숲을 통과한 팀이 우리 말고 있겠습니까.”

“맞는 말이기는 하지.”

낄낄거리는 길드원들.

이미 31층 클리어는 따 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 두 팀을 제외하고 암석 지대로 넘어온 팀은 없었다.

그때.

“크아아악!”

“크읍!”

스펠북이 숨겨진 쌍 뿔 바위로 정찰을 나간 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무슨 일이야!”

다급히 뛰어가는 길드원들이 눈을 부릅뜬다.

비명을 질렀던 이들이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석화.

돌이 되어 버린 이들의 다리를 타고 그린 메두사가 올라가더니 그대로 몸을 옥죄었고.

-쿠궁!

석화된 길드원들이 조각났다.

“그, 그린 메두사가 어째서 여기에!”

“숲에서만 나타나는 놈인데!”

비정상적인 상황.

병장기를 움켜쥔 이들이 쌍 뿔 바위를 노려봤고.

“저, 저기다!”

“연합 사람이야!”

한 손에 스펠북을 쥔 남자가 거만하게 그들을 내려다봤다.

“덕분에 좋은 정보 얻어 갑니다.”

조현수가 파이어 밤을 날렸다.

* * *

숲을 지나고 바로 암석 지대를 향해 움직였다.

암석 지대에 도달한 팀이 있다는 걸 안 이상 그들의 정체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으니까.

숲을 돌아다니며 팀에 합류하는 것도 좋았지만 엇갈릴 가능성도 있다.

그럴 바에야 미리 암석 지대에 간 다음, 팀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낫지.

은신할 만한 곳이라고는 바위밖에 없어 위치를 파악하기도 쉽고.

겸사겸사 경쟁팀을 떨구기 위해 그린 메두사도 챙겨 갔다.

석화 능력.

잘만 사용하면 힘쓰지 않고 상대 팀을 제압할 수 있으리라.

결과는 대성공.

“생각 이상으로 효과가 좋네.”

“궤에에.”

쌍 뿔 바위에 걸터앉으며 손을 털었다.

쓰고 있던 투구도 벗어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을 닦았다.

펠라인의 빨강 머리통이 환기가 잘되기는 해도 갑갑한 느낌은 어쩔 수가 없어서.

손부채질을 하며 내가 한 일을 되뇌었다.

암석 지대에 돌입한 후,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대형 길드 팀을 쫓아갔다.

덕춘이의 활약이 컸다. 아무래도 직접 움직이는 것보다는 덕춘이가 그들을 추격하며 위치를 알려 주는 편이 들킬 가능성이 낮았으니까.

쌍 뿔 바위로 향하는 것을 확인.

대형 길드원들을 추월해 먼저 도착한 후, 잡아 온 그린 메두사를 풀었다.

바위 뒤에 숨어 그들이 하는 말을 훔쳐 듣는 것도 잊지 않았고, 권능을 사용해 스펠북의 위치도 찾았다.

이후 대기하다 뒤늦게 도착한 길드 팀까지 공격.

그린 메두사에 두 명이 당해 당황한 이들을 쓸어버리는 건 쉬웠다.

아쉽게도 세 명 정도가 도망쳤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지.”

어떻게 수습하더라도 결승점에 도달하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

콰직.

바닥을 기고 있던 그린 메두사를 밟았다.

발버둥 치던 놈이 나를 노려봤지만.

[저주 내성 (E) Lv.3]

효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이미 저주 내성의 레벨을 올려 둔 이후였으니까.

[불과 춤의 화신-칭호]

-불을 피우고 춤을 추면 버프가 적용됩니다.

-심신 안정, 상태 이상 회복, 회복 효과 증가…….

그린 스네이크 한 마리를 잡아서 눈을 바라보고 칭호 효과로 저주를 극복한다!

내성 스킬의 레벨을 올릴 때는 직접 당하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

고되기는 했지만 단시간에 레벨이 3으로 올랐으니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어깨를 으쓱이고 쥐고 있던 스펠북을 바라봤다.

31층에서만 쓸 수 있는 특수한 아이템.

[스펠북-체력 저하 (31층 전용)]

-경쟁팀에 디버프를 부여합니다.

-공격할 팀을 지정할 수 있습니다.

체력 저하면 나쁘지 않다. 전반적인 수행 능력이 떨어진다는 거니까.

이 정도면 팀원들도 만족하겠지.

저 멀리 숲이 있는 곳을 바라보자 낯이 익은 사람들이 보였다.

거리가 멀어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반갑게 손을 흔드는 팀원들.

다행히 낙오자는 없었다.

“그에에에.”

덕춘이가 힘 빠지게 울며 갑옷 속으로 들어가려 한다.

사람들이 있을 때는 항상 모습을 숨겼으니까.

안전지대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31층에 들어오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잠깐만, 덕춘아.”

“궤에?”

“언제까지 숨기고 있을 필요는 없지 않냐?”

결국에는 모습을 드러낼 거였다.

30층대를 오르는 동안 함께해야 하는 팀원들도 있었고, 이제는 대형 길드와의 전면전까지 앞둔 상황이다.

언제 덕춘이의 도움이 필요할지도 알 수 없었고.

덕춘이의 존재를 숨긴 가장 큰 이유가 대형 길드의 추격 때문이었던 만큼 눈치 볼 필요도 없다.

“이제 그냥 돌아다니자. 너, 갑옷 속에 있는 거 안 좋아하잖아.”

난 덕춘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고.

“궥! 그엑!”

신이 난 덕춘이가 팔짝 뛰었다.

얼마나 신났는지 내 뺨을 타고 머리 꼭대기에 올라간다.

손으로 더듬어 보니 아예 왕관 안에 자리를 잡은 거 같은데.

신기하기도 하지. 이놈의 왕관은 투구를 쓰든 말든 머리에 딱 붙어 있다.

덕춘이의 입장에서는 전용 공간이 생긴 샘.

“그러니까 네가 주인 같다, 야.”

“궥. 궥.”

아하!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그건 몰랐네. 조만간 서열 정리 한번 하자.

내가 그동안 인간의 존엄성 때문에 양서류를 핍박하지 않았거늘. 안 되겠다. 내가 이번에 혼쭐을 내 줘야…….

주먹을 부르르 떨며 마음을 다지고 있던 찰나.

“퉷.”

-치이이익.

머리에 뜨끈한 통증이 올라왔다.

산성, 산성 침이다!

“이놈의 개구리가! 머리에 침을! 대머리 되면 네가 책임질 거야!?”

“그에에에. 카아아악─!”

“미안합니다. 제가 주제넘게 까불었습니다!”

덕춘이가 침을 모으는 소리를 듣자마자 사과를 내뱉었다.

치사한 녀석, 내 머리를 볼모로 잡다니.

투구를 벗은 내 잘못이다. 계속 쓰고 있었어야 했는데.

아니. 목걸이 투구는 왜 작동을 안 한 거야.

머리 쪽을 공격당하면 자동으로 발동될 텐데. 산성 침 정도면 엄연히 공격 판정 아닌가?

난 목에 차고 있던 아티팩트를 살폈고.

[Tip. 펫은 주인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Tip. 펫의 공격은 아티팩트가 공격으로 인식하지 않습니다.]

오랜만에 팁 메시지를 볼 수 있었다.

뭐 이딴 게 다 있냐.

작게 한숨을 내쉬며 덕춘이의 등을 잡고 들어 올려, 어깨에 내려놨다.

빨강 투구도 다시 썼고.

“이블아이 씨!”

김소담이 손을 흔들며 오고 있다.

다들 옷에 흙과 나뭇잎이 묻어 있었지만 부상은 없었다.

이제는 길리슈트 수준으로 위장은 한 고대진이 제대로 정찰 역할을 한 모양.

“숲에서 합류하기 힘들 것 같아서 바로 암석 지대로 왔습니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팀원들을 반겼다.

그들의 눈이 바닥으로 향한다.

곳곳에 파인 땅. 불에 그슬려 검게 물들어 있는 곳에는 피가 흥건했다.

누가 보더라도 전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는 흔적들.

“대형 길드 두 팀이 연합을 맺었더라고요. 처치했습니다. 정찰조의 본분을 다한 거죠.”

정찰이란 무엇인가. 미리 위험을 파악해 동료들이 안전하게 만드는 것 아닌가.

위협을 없애 버리면 팀원이 안전해지는 건 당연지사. 암, 그렇고말고.

“그에에.”

내 생각을 읽은 덕춘이가 낮게 울었지만 무시했다.

“어? 어깨에 두꺼비는?”

“두꺼비가 아니라 개구리입니다. 제 펫이죠. 덕춘이라고 불러 주시면 됩니다.”

“아, 예. 덕춘이…….”

왜 말끝을 흐리는지는 모르겠네.

어딜 봐도 잘 지은 이름인데.

탑이 워낙 이상한 곳이라 그런가, 개구리를 펫으로 지니고 있다는 말에도 별다른 말이 없다.

테이밍 비슷한 거로 생각한 걸 수도 있고.

호기심이 동하는지 다들 덕춘이를 힐끗거렸고.

“궤에.”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덕춘이가 손을 흔들었다.

“꺄악! 귀여워. 방금 봤어요? 손 흔드는 거?”

“오, 똑똑한 친구네요.”

“응? 지금 윙크하지 않았어요?”

작은 행동에도 반응해 주는 팀원들. 덕춘이도 싫지는 않은지 콧구멍을 벌렁거린다.

너 은근히 관종끼 있었구나?

하기야 그동안 갑옷에 숨어 있다가 나왔으니 기쁠 만하다.

팀원들의 리액션이 좋아서일까, 손 흔들기에 윙크. 메롱까지 하더니 이번에는 가운뎃손가락을.

어허, 그거 아니야. 손가락 내려.

자연스럽게 덕춘이의 손을 가리고 스펠북을 꺼냈다.

“알아낸 정보가 더 있어요. 암석 지대에서만 나오는 아티팩트가 있습니다. 스펠북이라 불리는 건데, 경쟁팀에게 직접적인 페널티를 주는 31층 전용 아이템이죠.”

“스펠북이요?”

“이런 게 있었군요. 처음 알았습니다.”

스펠북으로 시선을 끄는 데 성공했다.

대형 길드 팀을 공격하면서 우리 팀이 선두를 차지했다.

결승점까지 순위를 유지하려면 스펠북을 잘 사용해야 한다.

이번에 나와 맞붙으면서 정면 승부가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을 테니, 내가 있는 5번 팀에 집중적으로 스펠북을 사용할 게 뻔하니까.

일방적으로 맞으면 곤란한 만큼 우리도 스펠북을 찾아야 한다.

“숲은 시작점이고, 암석 지대는 경쟁에서 승리할 핵심 아이템을 찾는 곳, 결승전이 있는 산에서 결과가 결정되겠죠.”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김서균이 말했다.

그의 말대로다. 스펠북은 암석 지대에서만 얻을 수 있다. 지금 미리 모아 둬야 산악 지대에서 밀리지 않고 갈 수 있다는 말.

“저거 보여요?”

김소담이 하늘을 가리켰다.

이전까지 없던 알림창이 떠올라 있다.

[31층 순위]

-5번 팀

-3번 팀

-4번 팀

-1번 팀

-2번 팀

-6번 팀

순위가 나왔다.

어느 팀이 선두에 있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된 것.

우리가 가장 앞서고 있는 걸 모두가 알았으니 집중적인 견제를 받겠지.

“서두릅시다.”

내가 앞으로 나섰고.

“스펠북이 어디 있는지 알 것 같아요.”

[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

암석 지대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빛무리를 가리켰다.

팀원들은 모르겠지만 난 안다. 어디에 스펠북이 숨겨져 있는지.

단 30분.

우리는 다섯 개의 스펠북을 얻고, 결승전이 있는 산악 지대에 진입할 수 있었다.

가파른 경사. 빽빽한 나무.

그리고.

“이건 좀 그런데?”

-쿠콰콰콰콰!

생각도 못 한 종류의 장애물이 우리를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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