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132화 (132/740)

132화 벌써 치고 나갔다고?

모두의 시선이 고대진의 가방에 집중된다.

그가 가지고 온 물건.

“이거 스킬북 아니야?”

“정답. 바위 안쪽에 숨겨져 있더라고. 무려 다섯 개! 팀원에 딱 맞춰서 나왔지.”

최영미에게 눈을 찡긋한 고대진이 스킬북을 나눠 줬다.

어떤 스킬일까. 기대감이 올라갔고.

“와! 이걸 여기서 얻어요?”

“대진 씨, 최고다!”

스킬 이름을 읽은 팀원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나도 그를 향해 엄지를 세웠다.

[저주 내성 (E)]

-저주에 내성을 가집니다.

-누군가에게 원한을 샀다면 익히는 게 좋지 않을까요?

내게 필요했던 물건 아니, 이곳에 있는 사람 모두에게 필요한 물건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바로 스킬을 익혔다.

31층에는 그린 메두사가 출몰한다. 숲을 벗어난 이후에도 다른 몬스터들이 등장할 거고.

저주에 내성이 생긴다면 보다 편하게 공략을 할 수 있겠지.

‘생각해 보면 10층대도 그렇고, 20층대도 그렇고 첫 번째 층수에는 스킬북이 숨겨져 있었네.’

11층에는 화기 내성, 21층에는 냉기 내성 스킬북이 있었다.

31층에는 저주 내성이 나왔으니 이후 41층, 51층도 스킬북이 나오지 않을까?

“이걸로 한숨 덜었네요!”

김소담이 힘차게 말했다.

새로운 스킬을 익혀 기분이 좋은 모양. 다들 분위기가 밝다.

팀 단위 공략에서는 사기 또한 중요한 법.

흘낏 고대진을 바라봤다.

보통 이 정도 일을 해냈으면 으스댈 만도 하건만 당연한 일을 한 것처럼 태연하다.

욕심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스킬북을 독점하거나 상점에 팔아 버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내 시선을 느낀 걸까.

“쁘띠공듀 님을 보면서 배웠죠, 좋은 건 같이 쓰자.”

고대진이 입꼬리를 올렸고.

“좋네요.”

난 피식 웃고 말았다.

쁘찡 연합이라… 여전히 이름은 마음에 안 들지만 탑의 분위기를 바꾸는 집단인 건 확실하다.

나중에 이준석을 만나면 고맙다고 해야 하나.

“여러분, 이제 결정해야 해요. 소음이 들린 곳으로 갈까요, 아니면 우회해서 결승점으로 갈까요? 골라야 할 것 같은데.”

김소담의 말대로다.

선택해야 한다. 어느 쪽을 고르든 장단점은 있다.

소음이 들린 곳으로 가면 경쟁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들이 싸우고 있는 몬스터가 뭔지 파악하는 건 물론이요, 필요하다면 공격해 그 팀을 낙오시킬 수도 있었다.

단점이 있다면 위기에 몰린 이들이 우리를 끌어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궁지에 몰린 만큼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몰랐다. 운이 나쁘면 공멸을 선택할 수도 있고.

‘우회하는 게 안전하기는 하지.’

일단 확실하게 팀 하나는 앞지를 수 있으니까.

경쟁 팀이 뒤를 쫓아 올 수 있다는 게 문제지만, 불안 요소를 남겨두고 가는 건 그 자체로 부담감을 준다.

-구구구궁

선택을 강요하듯 또 한 번 진동음이 울렸다.

아직도 전투 중인 건가.

“투표로 결정하죠. 소음이 들린 곳으로 가겠다는 거수.”

척. 척.

김소담의 말에 김서균과 고대진이 손을 든다.

“남은 세 명은 우회해서 가자는 거죠? 다섯 명이 움직이니까 투표가 확실히 갈려서 좋네요. 그럼 접전을 피하고 돌아…….”

“잠시만요.”

그녀가 하는 말을 끊고 손을 들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김소담의 말대로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내가 있다면 말이 다르지.

“저 혼자 소음이 들린 곳을 살피고 합류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우회해서 이동하세요.”

“그건 좀 위험하지 않을까요? 대형 길드라면 적대적으로 나올 수도 있어요.”

“할 수만 있다면 그러는 게 제일 좋기는 하지만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안 하는 것만 못할 텐데요.”

내 발언에 팀원들이 고심했지만 김소담은 담담했다.

다른 사람과 달리 그녀는 내 무력을 직접 봤으니까.

“괜찮을 거예요. 이블아이 씨라면 일이 꼬여도 빠져나올 수 있을 테니까요.”

김소담이 너무 당당해서일까. 미심쩍어 하던 팀원들도 어깨를 으쓱였다.

“소담 씨가 그렇다면야 뭐.”

“믿어 보죠. 같은 팀원인데.”

“정찰이야 제가 있으니까 포지션이 꼬이지는 않을 겁니다. 좋아요.”

오케이.

난 팀원들 앞에 스킬을 발현했다.

[카메라 (D) Lv.3]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뽑을 수 있는 정보는 모두 뽑아 오죠.”

팀원들의 눈이 동그래진다.

카메라 스킬. 극소수의 인원들만 가지고 있는 거였으니까.

“그게 있었으면 진작에 말씀을 하시지, 부탁합니다!”

“크으. 팀원 중에 카메라 스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정찰 역할 하신다고 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먼저 갈 테니 무사히 돌아오세요.”

“네. 흔적은 남기지 마세요. 뒤따라오는 팀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팀원들이 멀어져 갔다.

그들이 움직이는 방향을 기억해 두고 나 역시 소음이 들리는 곳으로 달렸다.

전투를 벌이고 있는 이들은 누굴까, 싸우고 있는 대상은?

가 보면 알 일이다.

-스팟!

속도를 더했다. 감각이 예민해지며 주변의 소리가 더욱 또렷이 들리고 휙휙 지나가는 풍경도 한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10분.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마력을 다 쓴 건지, 아니면 근접전으로 형태가 바뀌어서인지 폭발음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크르르르라!”

“크아아악!”

몬스터의 울음소리가 가까워졌다.

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혈향.

그리고.

“옆으로 돌아간다! 막아!”

“원거리 딜러 뭐 해! 지원해 줘!”

“버텨요! 뒤쪽에서도 옵니다!”

다급하게 외치는 사람들이 보였다.

총 5명.

한 명은 쓰러져 있었고, 그를 보호하기 위해 진을 친 사람들이 싸우고 있었다.

그들을 공격하는 건 3성급 몬스터 스컬 하운드와 2성급 몬스터인 오크 워리어.

어째서 두 종류의 몬스터가 힘을 합쳐 덤벼드는지는 모르겠지만 상황이 좋지 않다.

서른 마리가 넘는 객체가 정신없이 달려들고 있었으니까.

-콰직!

“크으윽!”

탱커로 보이는 이가 스컬 하운드의 몸통 박치기에 뒤로 쭉 밀렸다.

그 틈을 타 오크 워리어 세 마리가 도끼질을 해 댔으며.

“숙이세요! 아악!”

팀원을 지원하기 위해 활을 든 남자 역시 틈을 비집고 들어온 스컬 하운드한테 어깨를 물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악을 쓰며 버틴 덕분에 몬스터의 숫자도 줄어들고 있었지만 얼마나 갈까.

카메라 스킬로 상황을 찍었다.

이제 어쩔까. 그냥 이대로 빠져도 문제는 없다.

다만.

‘6번 팀. 저 사람들도 연합 사람이네.’

그들이 차고 있는 연합 띠가 걸렸다.

탑은 경쟁. 특히나 30층대는 팀끼리 순위를 매기는 형식이다.

결국 위로 올라갈 사람들은 한정되어 있다는 것.

언젠가는 연합 사람들끼리도 경쟁할 게 분명했지만.

[파이어 밤 (A) Lv.7]

-콰아아앙!

지금은 아니니까.

폭발을 일으켜 스컬 하운드 두 마리를 날려 버렸다.

지원군의 등장에 사람들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한다.

“연합 사람이다!”

“도와주세요!”

“환자가 있습니다!”

애타게 도움을 부탁하는 이들.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검을 뽑아 휘둘렀다.

오크 워리어가 도끼 채로 잘려 나간다.

압도적인 전력 차이.

-파앙!

세차게 발을 박차며 돌진했다.

나를 물려고 달려들던 스컬 하운드가 허공을 물고 그 자리를 붉은 홍염이 차지했다.

[지옥불의 순례자 (AA)]

성물로 만들어 낸 불의 장벽.

나와 무리를 잇는 길이 생성되었고.

“잠시 여기서 기다리세요.”

난 불길 속으로 들어갔다.

신성한 불길은 거셌지만 내게는 아무런 데미지도 주지 않았다.

“크르르르.”

“쿠루루룩.”

불길 주변에 몰려든 놈들.

난 가볍게 검을 돌렸다.

얼추 20마리 좀 넘나?

“5분 정도면 충분하겠군.”

* * *

몬스터 정리가 끝나고 난 성물을 비활성화시켰다.

밖의 상황을 모르고 있던 사람들이 바닥에 널브러진 몬스터들을 보며 놀라는 것도 잠시.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경쟁자인데 도움을 주실 줄이야. 정말 감사합니다!”

다들 내게 감사함을 표했다.

덕분에 하나는 알았다.

연합 사람들이라고 모두 강한 건 아니라는 걸.

내가 속한 팀원들이 유독 스펙이 좋은 편이었다.

“별거 아닙니다. 이거 받으시죠.”

보물 주머니에서 상급 포션 두 개를 꺼내 건넸다.

쓰러져 있는 사람한테 한 개 쓰고, 남은 한 개로 나누어 쓰면 상처는 어느 정도 회복할 거다.

“포, 포션까지!”

“천사인 건가!”

“앗. 혹시 그분 아니십니까? 이블아이?”

“진짜다. 저 화려한 갑옷 색깔, 이블아이셨군요!”

상처를 치료하다 말고 눈을 빛내며 날 바라본다.

아무래도 연합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블아이의 이름이 널리 퍼진 모양.

하긴 복장이 적당히 화려해야지.

나중에 돌아다닐 일이 있으면 겉옷이라도 하나 걸쳐야겠다.

“네. 이블아이 맞습니다. 보니까 몬스터들이 이상하리만치 몰려들던데 무슨 일이 있었나요?”

안전지대였다면 대화를 좀 더 할 수도 있었겠으나 지금은 등반 중이다.

이곳에 온 이유는 정보를 얻기 위함.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고.

“저희도 정확히는 모릅니다만 알람이 떴었어요.”

“경쟁팀에서 디버프를 쓴 모양입니다.”

“맞아요! 31층에서만 쓸 수 있는 아티팩트가 있는 것 같아요.”

디버프?

그것도 31층에서만 쓸 수 있는 아티팩트로 발생한 거라니.

미간을 좁히던 중 활을 들고 있던 남자가 손을 들었다.

“잠시만요. 아! 찾았습니다. ‘경쟁팀이 몬스터 유혹 디버프를 사용했습니다’라고 떴어요.”

“암석 지대에서 얻을 수 있다는 것 같은데요.”

암석 지대라면 숲 너머에 있는 곳이다.

그 말은 곧 벌써 숲을 통과한 팀이 있다는 것.

빠르다. 운이 좋게 숲 끄트머리에 떨어진 팀이 있는 건가.

다른 건 몰라도 특수한 아이템으로 상대 팀을 공격할 수 있다는 건 중요한 정보였다.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파이팅 하시고 무사히 32층으로 향하길 빌죠.”

“자, 잠시만요! 괜찮으시면 팀끼리 합쳐서 움직일 수 있을까요?”

난 고개를 저었다.

팀끼리 연합해서 움직이는 것도 훌륭한 전략이었지만 그런 걸 나 혼자 결정할 수는 없다.

30층대는 엄연히 팀플레이니까.

“이미 팀원들이 움직이고 있어서 그건 힘들 것 같네요. 수고하세요!”

-콰앙!

가볍게 손을 흔들고 발을 박찼다.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 결국은 스스로 극복해야 살아남는 곳이 탑이다.

이제 어쩔까.

바로 팀과 합류해야 하나.

빠르게 주변을 훑었지만 팀원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누군가가 쫓아올 수도 있으니 흔적을 남기지 말라고는 했지만 이 정도로 깔끔하게 지웠을 줄이야.

“나중에 추적 스킬도 하나 얻어야겠군.”

“궤에에.”

부족한 점을 파악하며 빠르게 발을 옮겼다.

괜히 숲을 헤매다 엇갈리는 건 곤란하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암석 지대로 앞질러가 기다리는 편이 낫지.

맨손으로 가기는 아쉬우니까.

“선물을 좀 준비해야겠구만.”

암석 지대에는 다른 팀이 존재한다.

연합 사람들은 모두 숲에 있으니 무소속 팀 아니면 대형 길드 팀이겠지.

이참에 경쟁자 좀 없애 두자.

어떻게 처리할까. 난 계속해서 달리며 생각했고.

“그게 좋겠네.”

괜찮은 방법이 떠올랐다.

숲을 벗어나기 전에 준비물을 좀 챙겨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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